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마 20:28
(2016년 3월 13일 설교자: 비전교회 마경훈 목사)
빌립보서 2:6-8을 보겠습니다. 주님의 낮아지심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의 낮아지심의 첫 번째 단계가 성육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신학적으로 그것을 성육신이라고 표현합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기독교신학에서 성육신의 교리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육신이 없었다면 죄사함도 구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무엇 때문에 성육신 하신 것일까요? 오늘 설교는 이 부분을 마태복음에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 죄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오셨다.
마 1:21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오신 많은 목적이 있는데 그 중에 인간 편에서 볼 때 죄 문제 해결하시려고 오신 이 목적이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갖게 된 모든 문제가 죄로 인하여 찾아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 8:1-2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믿는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시켜주실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롬 8:3-4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구약 시대에는 죄인이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제물에 안수를 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러면 제주의 죄가 제물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이것을 전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죄가 전가된 제물을 잡아서 하나님께 드리면 제주의 죄가 사해졌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죄 없으신 그분이 육신을 입으시고 육신에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마 16:21입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주님께서 많은 사역을 하셨지만 모든 사역의 최종 목적지는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에 초점이 맞추어졌었습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변화되셨습니다.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습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옷이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주님은 그들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 대화의 내용이 마태복은 17장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만 눅 9:30-31에는 주님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의 대화 내용은 주님이 별세하실 것을 말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눅 9:30-31입니다.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별세가 무슨 말입니까?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변화산의 그 영광스러운 장소에서 구약시대의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주님과 주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중요한 것입니다.
죄 없으셨던 주님은 자신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주님이 우리들을 섬겨주신 방법입니다. 마 20:28에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은 자신의 목숨으로 우리를 섬겨주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 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오셨다.
마 1:23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주님의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그 목적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죄로 인하여 단절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사람은 아무런 장애물이 없이 만나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범한 이후에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 막았습니다. 그래서 창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아오셨지만 사람들은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창 3:8-10입니다.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니 아담이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막고 있는 담을 제거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담을 허물어버리신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성전으로 나아갔습니다. 성전의 구조는 크게 성전 뜰과 성소 그리고 지성소로 이루어져있었습니다.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시은소가 있었고 하나님은 그 시은소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러나 시은소가 있는 지성소에는 백성들도 제사장들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1년에 한번 대제사장만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이 휘장은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시자 성소의 휘장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 27:51입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의 상징이었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교통이 열리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찢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휘장이 찢어질 때가 언제였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큰 소리를 지르고 영혼이 떠나시자마자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인간의 막힌 담을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헐어버린 것입니다.
임마누엘은 다섯 가지 차원으로 봐야 합니다. 첫째는 성육신적인 차원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둘째는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셋째는 성령강림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넷째는 우리 주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 믿음을 가지고 죽었던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고,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던 사람들은 공중으로 들림을 받게 될 것이며, 그 이후 주님이 지상 재림하시면 이 세상에서 천년 동안 주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다섯째는 천년 왕국이 끝난 후에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이 믿는 사람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세 번째 단계인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과 이 세상에서 함께 있는 것입니다. 곧 주님이 다시 오시면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고, 영원한 천국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세세토록 함께 살 것입니다. 이 놀라운 임마누엘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려고 오셨다.
마 4:23입니다. 주님의 3대 사역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주님의 3대 사역이 무엇입니까? 첫째, 가르치는 사역이었습니다. 둘째,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는 사역이었습니다. 셋째,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는 사역이었습니다.
주님이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이 성경말씀을 가르치시던 곳은 회당이었습니다. 회당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모여서 예배하며 성경을 가르치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회당을 찾아가셔서 성경을 가르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 당시 회당의 가르침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 오후 예배 시간에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2문을 공부했습니다. 무슨 내용입니까? 질문은 “하나님께서 무슨 규칙을 우리에게 주사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셨습니까?”입니다. 답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그를 즐거워하고 영화롭게 할 것을 지시하는 유일한 규칙입니다.”라고 배웠습니다.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규칙입니다.
주님이 오셨을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과 행위의 규칙은 성경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성경보다 우선시했습니다. 마 15:3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그들은 성경을 버리고 장로들의 전통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헛되이 섬겼던 것입니다. 마 15:7-9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주님이 이사야의 예언을 가지고 그 당시 성경을 따르지 않고 장로들의 전통을 따르던 유대인들이 헛되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을 읽고 배워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붙들지 않고 교회의 전통이나 사람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면 하나님을 헛되어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 받은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롬 10:2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여기서 올바른 지식은 성경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심은 있었으나 성경 말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망했던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도 로마서를 쓴 사도 바울과 동일한 내용의 말을 했습니다. 호 4:6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을 버리고 이방 나라의 우상숭배를 따라하다가 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제사장들이 망한 이유도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레위인들과 소금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소금언약이란 영원히 변치 않는 언약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언약은 어느 한 쪽에서 깨면 유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분이라 소금언약을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제사장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했기 때문에 버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말 2:7-8을 보겠습니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8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을 옳은 길로 인도해야 할 제사장들이 백성들로 하여금 옳은 길에서 떠나게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게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인들도 망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했던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람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 상식이나 세상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했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의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4.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려고 오셨다.
마 4:23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주님의 사역 중에 하나가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는 사역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일을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천국복음을 전파하셨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 중에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은는 구원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롬 1:16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 자체가 구원의 능력이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하려면 우리는 복음만 전하면 됩니다. 그러면 복음이 능력으로 역사해서 사람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적들이 숨어있는 진지에 폭탄을 던지면 폭탄이 터지면서 적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폭탄을 던져놓고 밖에서 “죽어라. 죽어라. 적들은 죽어라”라고 소리칠 필요가 없습니다. 폭탄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소리치지 않아도 적들은 죽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 자체가 능력이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만 전하면 듣는 사람들 속에서 복음이 역사를 해서 구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독특한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자신만의 사명이 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의 사명이 있고, 어떤 사람은 중보기도자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음악가로서의 사명이 있고, 어떤 사람은 사업가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의 크기가 다르고 사역의 방향은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사명자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부르심을 알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사람입니다. 남과 나를 비교할 것도 없고 남의 사명을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발견하고 그 사명대로 살면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자신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사명이 있고 또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사명이 있습니다. 예배는 모든 사람의 사명입니다. 기도도 모든 사람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전도도 모든 사람의 사명입니다. 누구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예배자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예외 없이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외 없이 천국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실버에배를 시작하고 복음을 전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제가 계산을 잘 하지 않는데 실버예배에 들어가는 쌀을 계산해봤습니다. 1년이면 20kg 짜리 쌀이 250-300포는 들어갑니다. 간식이나 성도들의 수고는 빼고 쌀만 그렇게 들어갑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어제도 구원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아무리 많은 봉사를 해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구원의 역사는 없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동부 지역 선교사 빈센트 도노반이 쓴 책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재발견]이라는 책입니다. 도노반 선교사가 동부 아프리카에 선교하러 들어갔습니다. 의료 시설, 교육시설이 완벽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독교인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유를 알아보았습니다. 먼저 온 선교사들이 이런 시설을 짓느라고 예수님을 전하지 못 하였습니다. 도노반 선교사는 이제는 예수님만 전하여야 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만나는 이에게 예수를 전하였습니다. 십자가, 부활, 재림, 승천, 심판 이야기를 전하였습니다. 아프리카 마시이 족에게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마사이 족 추장이 도노반 선교사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생명의 말씀을 왜 이제 전하십시까? 우리 조상들을 어떻게 합니까?” 복음을 전해야 구원의 역사가 있습니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도 전도해야 합니다.
5. 우리의 병을 짊어지시려고 오셨다.
마 8:14-17에 보면 주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셨는데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시고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님께 수종들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주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실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마 8:17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주님은 다양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 중에 질병의 치유와 관련된 고난이 있습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날카로운 짐승의 뼈가 달렸고 또 납덩어리가 달린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주님은 채찍에 맞으시므로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셨습니다. 그런 고난을 당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들을 질병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이 오시기 약 800년 전에 그 사실을 예언했습니다. 사 53:5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후에 베드로 사도는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진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사야의 예언이 실제가 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벧전 2:24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주님은 믿는 사람들의 질병의 치유를 위하여 채찍에 맞는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이 채찍에 맞으신 고난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면 우리의 질병도 치유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도 해결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주님이 나의 병의 짐과 연약함의 짐을 대신 짊어지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치유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그리고 고백하십시오. 신유가 일어날 것입니다.
신유는 즉각적인 역사가 있고 점진적인 역사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다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기도하고 확인해보니 변화가 없고, 안수를 받고 확인해 봐도 변화가 없는 경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로 병든 자를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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