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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마경훈목사

[스크랩] [20160306]열매가 풍성하려면

열매가 풍성하려면 13:1-23(201636일 주일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본문을 흔히 씨 뿌리는 자의 비유라고 말합니다만 네 가지 밭에 관한 비유가 더 어울립니다. 본문에서 농부는 말씀 사역자를 보여주고,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고 네 종류의 밭은 사람들의 다양한 마음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3가지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와 씨앗과 밭입니다.

  씨앗도 좋아야 하고 밭도 좋아야 하지만 씨를 뿌리는 사람이 없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설교하는 것은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으로 나가서 전도를 하는 것도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열매가 좋으려면 씨앗이 좋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1등급의 씨앗만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가 1등급입니다. 문제는 설교자와 전도자가 1등급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설교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밭입니다. 4가지 밭이 나옵니다. 4기지 밭이 나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시대에 유대인들의 씨 뿌리는 방법은 우리와 조금 다릅니다. 두 가지 방법으로 씨를 뿌리는데 한 가지는 높은 곳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 씨앗을 날려 버립니다. 그러면 바람에 씨앗들이 날려서 이리저리 뿌려집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나귀 등에 구멍 뚫린 씨앗 자루를 얹고 나귀가 온 밭은 돌아다니게 합니다. 그러면 구멍으로 씨가 떨어져서 뿌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씨앗이 좋은 땅에도 뿌려지지만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덤불에도 뿌려지는 것입니다.

  19절에 보니 씨앗이 길가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었으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말씀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악한 자가 와서 말씀을 빼앗아간다고 말씀합니다.

  설교 시간마다 조는 것이 습관이 된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분이 설교 시간에 졸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알아봤더니 이분이 설교 시간에 신기한 체험을 했습니다. 졸다가 보니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목사님의 입에서 씨들이 막 쏟아져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 씨앗들이 성도들에게 떨어지는데 창문을 통해서 새들이 들어오더니 졸고 있는 사람들에게 떨어진 씨앗을 먹어버리더라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씨앗이 길가에 떨어진 경우에는 새들이 먹어버렸다고 했는데 이분이 여기서 새가 마귀를 상징하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강단에서 좋은 말씀이 떨어져도 설교 시간에 졸면 마귀가 말씀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20-21절에 보면 씨앗이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았지만 뿌리가 없어서 시험과 문제가 올 때에 곧 넘어지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22절에 보니 씨앗이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23절에 보니 씨앗이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로서 결실하여 100, 60, 30배의 열매를 맺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사역자들을 통해서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계십니다. 제가 설교하는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에 씨앗을 뿌리시는 것입니다.

  씨도 좋고 밭도 좋아야 합니다. 밭이 아무리 좋아도 씨앗이 좋지 않으면 좋은 열매는 없습니다. 반대로 씨앗이 아무리 좋아도 밭이 좋지 않으면 열매가 풍성할 수 없습니다.

  같은 설교를 듣고도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있고, 시험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의 밭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히 4:2에 보면 같은 복음을 들었으나 유익을 얻은 사람들이 있고 유익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들은 바 그 말씀이 유익이 된 것은 믿음으로 들었기 때문이고, 들은 바 말씀이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전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결국 마음 밭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말씀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23절에 보니 100, 60, 30배의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10:17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1:3에 보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읽고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는 우리들에게 경고이기도 합니다. 경고는 들어야 합니다. 경고를 듣는 것과 듣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201111월 말에 어느 빌라에 불이 났습니다. 중학생 2명이 그것을 보고 빌라 안으로 들어가서 뛰어다니면서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20여명이 목숨을 구했습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의 말을 듣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학생 2명의 외침을 들은 사람들이 있고 못들은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들은 사람들은 살겠지만 듣지 못한 사람들은 죽는 것입니다.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듣기만 잘 해도 열매가 열릴 수 있습니다. 좋지 않은 밭에 떨어졌어도 몇 개라도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필리핀 선교사님의 말을 들어보니 필리핀 산지족에서는 벼를 산에다 뿌린다고 합니다. 뿌려진 씨앗은 여기저기서 듬성듬성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열매가 부실합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열매가 열린다고 합니다.

  밭이 좋지 않아도 자꾸만 들으면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으로 치유가 일어나고 열매가 풍성하지 못할지라도 열리는 것입니다.

 

2. 마음을 부드럽게 해야 한다.

  길가는 사람들이 땅을 많이 밟아서 단단해져있습니다. 씨가 땅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길가에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새들이 와서 먹어버립니다.

  마음이 단단해지면 말씀을 받을 수 없습니다. 2장에는 베드로의 설교가 나오고, 7장에는 스데반의 설교가 나옵니다. 두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두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차이점은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고는 회개했고,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고 결국은 돌로 스데반을 쳐 죽였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와 스데반의 설교를 읽어보면 둘 다 아주 복음적인 설교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말씀이 바르면 결국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농부들은 파종하기 전에 먼저 흙을 갈아엎습니다. 흙을 갈아엎는 이유는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서 씨앗이 뿌리 내리기 좋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호 10:12에 보면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 마음을 기경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회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요즘 은혜를 받고 있습니까? 만약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혹시 마음의 밭이 단단해지지는 않았는지 혹시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져서 마음이 묵은 땅이 된 것은 아닌지, 혹시 마음의 상처로 인하여 마음 밭이 굳어져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제 아내는 제 설교에 은혜를 받습니다. 고맙죠. 지난 금요일에는 설교 후에 저에게 오늘 설교는 부흥회를 해도 되겠어요라고 하더군요. 저는 설교를 잘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말을 하니 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고마웠습니다. 제 아내가 제 설교에 은혜를 받는 것은 저와 사이가 좋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가정을 해봅시다. 늘 은혜를 받던 아내가 하루는 저하고 부부싸움을 심하게 했다고 가정을 합시다. 질문합니다. 그날은 제 아내가 제 설교에 은혜를 받을까요? 아마도 제 아내의 마음이 저에게 굳은 마음이 될 것입니다. 절대 은혜를 못 받습니다. 아마도 제 설교를 들으면서 속으로 저 인간 얼굴도 두껍다.’라고 생각하며 앉아있을지 모릅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지려면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아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주님과 깊은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상처가 치유 됩니다. 사랑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하면 치유 됩니다. 주님과 사랑에 푹 잠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주님에게 미쳐야 합니다.

  김준곤 목사님의 [예수칼럼]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코카콜라의 사장은 내 혈관에 흐르고 있는 것은 내 피가 아니고 코카콜라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사상에 미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이런 정열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과의 사랑에 미쳐야 합니다.

  계 1장에 보면 아주 훌륭한 교회가 나옵니다. 에베소교회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행위와 수고를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올바르게 살았고 주님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칭찬하셨습니다. 에베소교회는 환난 중에도 참았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에베소교회는 충성스러운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한 가지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말씀을 지켰고, 열심히 주의 일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볼 때 그들의 신앙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보였을 것입니다. 아니 그들의 신앙은 굉장히 건강한 신앙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사랑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부끼리 싸우는 일도 없이 늘 함께 다니며 같은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하는데 사랑이 식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행복한 부부인지 알지만 당사자들은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직분 때문에, 위치 때문에, 의무감 때문에, 축복 받기 위해서, 저주 받지 않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제가 아내를 사랑합니다. 제 마음에 사랑이 충만하면 아내가 어떤 말을 하건 어떤 행동을 하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제 마음에 아내를 향한 사랑이 식어졌습니다. 그러면 전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말과 행동이 문제가 됩니다. 이건 제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뜨겁게 사랑할 때는 언제나 아내를 향한 제 마음이 부드럽습니다. 아내를 향한 사랑이 식어지면 아내를 향한 제 마음은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십시오. 첫사랑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말씀의 열매가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신앙의 깊이가 있어야 한다.

  20,21절에 돌밭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넘어지는 자들입니다.

돌밭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오래 가지 못합니다. 마음의 깊이가 없어서 금방 시들어 죽어버립니다.

  어느 목사님의 한국교회를 향한 지적입니다. 세계적으로 우리 한국 교회가 창피한 것이 있습니다. 집사이면 집사이지 왜 집사 앞에 서리를 붙여서 서리집사라고 합니까? 선교사들이 만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이 마음이 얼마나 자주 변하는지 집사했다가 예수를 안 믿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이거 함부로 집사 시키면 안 되겠다.’ 그래서 집사 될 사람이라고 하고 몇 년을 지켜보자는 것입니다. 또 세례 받기 전에 학습 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에만 있거든요. 내가 예수 믿겠다고 하면 세례를 주는 것이지 왜 학습을 먼저 받게 합니까? 왜 그러냐면 사람들이 마음이 잘 변해서 그렇습니다. 세례 받은 후에도 마음이 변해서 주님을 떠나니까 먼저 학습을 해서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그 후에 지켜봐서 세례를 주자는 겁니다.

  우리 한국인들의 마음의 밭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감정으로 움직입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합니다. 빨리 뜨거워졌다가 빨리 식어버립니다. 그래서 정치도 교회도 사회도 감정에 안 맞으면 아무리 진리이고 합리적이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밭이 그렇습니다. 신앙의 뿌리가 깊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뿌리가 깊어져야 합니다. 방법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신앙의 깊이는 연수나 직분이나 사역의 크기로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깊이가 신앙의 깊이입니다. 3:17을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랑이 부족하니까 사람보고 환경보고 흔들리는 것입니다.

  남녀의 사랑을 생각해봅시다. 서로 환경이 맞지 않아서 주변에서 반대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줄거리입니다. 한 사람은 재벌 집 자녀고 한 사람은 보통 사람입니다. 재벌 집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극악하게 방해합니다. 이런 경우 사랑의 강도가 약하면 작은 반대에 부딪혀도 포기하고 맙니다. 반대로 사랑이 너무나 깊으면 어떤 방해를 받아도 목숨을 걸고 견디며 결국은 사랑의 꽃을 피웁니다. 신앙생활도 그런 것입니다. 신앙의 깊이는 사랑의 깊이입니다. 주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가 되십시오.

 

4. 신앙의 독소를 제거해야 한다.

  22절에 가시떨기 밭이 나옵니다. 거기에는 씨앗이 떨어지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유는 가시가 기운을 막아서 그렇습니다. 여기서 가시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을 말하는 것입니다.

염려, 걱정, 근심하지 맙시다. 우리는 걱정거리가 많아요. 자식 걱정, 집 걱정, 직장 걱정, 사업 걱정, 건강 걱정, 내 걱정할 것이 없으면 남의 걱정, 친척 걱정, 친구 걱정, 이웃 걱정, 나라 걱정, 인류의 장래 걱정, 지구 환경 문제 걱정 등 말로다 할 수 없는 걱정거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성경 원문에 염려라고 하는 말은 물어뜯는다. 찢는다. 쪼갠다.’라는 말에다가 마음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된 단어입니다. 원어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염려란 마음을 찢어놓는 것입니다.

영어의 염려는 날카로운 이빨로 갈기갈기 찢어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염려하면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영적인 침체와 더불어 건강까지도 파괴합니다.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합니다.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합니다.

  염려는 벌레와 같습니다. 지난 가을에 교회 주차장에 대추가 많이 열렸습니다. 어떤 것은 겉모습은 아주 탐스러운데 먹으려고 보면 속에 벌레가 있습니다. 그건 대추는 먹을 수 없습니다. 염려는 우리의 신앙을 실패로 만들어가는 벌레입니다. 염려하는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벌레 먹은 대추처럼 쓸모없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벌레가 작다고 우습게보면 큰 코 다칩니다. 몇 백 년 동안 번개를 맞고도 버틴 거목이 쓰러졌습니다. 원인을 조사해보니 벌레 먹어서 쓰러진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말씀의 기운을 막는 두 번째 가시는 재물의 유혹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돈이라면 세상 하직하려고 하다가도 다시 눈을 뜬답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재물의 유혹은 연탄가스와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의 유혹에 영적으로 질식당하고 있습니다. 재물은 사람을 단번에 질식시키지는 않습니다. 재물에 의한 질식은 아주 서서히 일어납니다.

  따라합시다. “물성이 영성이다그가 재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을 보면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물질에 관한 설교를 많이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사용하신 비유가 성경에 37가지 나옵니다. 그 가운데 17가지가 물질에 관한 비유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말하기를 당신이 회개했다고 하나 당신의 전대 돈주머니가 회개하기 전까지 나는 당신의 회개를 믿을 수 없다. 당신이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하나 당신의 돈 주머니가 열리기까지 열려진 당신의 마음을 믿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지난 금요일에 저희 가정의 헌금생활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1년간 3,300만원, 1달에 275만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잘못 알았더군요. 아내가 약 3천이라고 합니다. 작년에 특별헌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헌금이 있을 때는 더 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희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헌금했던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이정팔 집사님이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지금 버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기도 후에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집사님은 알겠다고 순종의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집사님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선택한 부분을 놓고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앙생활은 단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마치 자기의 팔을 자르는 것처럼 어렵고 힘듭니다. 영적으로 방해되는 것은 단호하게 잘라야 합니다. 세상 염려와 물질의 유혹을 자르십시오. 단호하게 자르십시오. 그래야 열매가 풍성합니다.

 

5.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말씀이 열매를 맺으려면 깨달아야 합니다. 23절에 보니 듣고 깨닫는 자가 100, 60, 30배 결실을 한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이 왜 천국을 설명하시는데 비유로 하셨는지 압니까? 신앙생활의 원리를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도움을 받아서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말씀을 풀어주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비유의 내용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신앙생활을 바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은 보혜사이십니다. 보혜사는 곁에서 돕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보혜사가 되셔서 제자들 곁에서 제자들이 이해 할 수 없었던 비유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는 보혜사이신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육적인 사람은 아무리 들어도 모릅니다.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도 성령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은 보혜사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제 설교는 쉽습니다. 만약 제 설교가 이해가 안 되고, 제 설교를 듣기만 하면 졸리는 분이 있다면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예배 전에 미리 오셔서 기도로 준비하십시오. 보혜사이신 성령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외국인들에게 설교를 할 때는 통역자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통역자를 만나면 설교하기 쉽고 참석한 사람들이 설교에 은혜를 받습니다. 좋지 않은 통역자를 만나면 설교하기가 힘들고 사람들도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한번은 제가 필리핀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는데 통역자가 시원치 않았습니다. 그 양반이 통역하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니까 아이 시팔 모르겠네라고 해서 제가 웃어버렸습니다. 그날 학생들이 은혜를 받았을까요? 제가 볼 때는 별로 은혜를 못 받았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철저히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말씀이 이해됩니다. 성령님의 도움이 있어야 깨닫습니다. 성령님이 도우셔야 치료도 일어나고, 기적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늘 성령의 도움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글쓴이 : 마경훈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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