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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60327]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 이후의 삶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 이후의 삶

20:19-23(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삶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드리는 3개의 대지 중에 첫 번째 대지와 두 번째 대지는 제가 201044일 부활절에 설교했던 내용을 요약해서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부활의 증거

 

1) 성경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합니다.

주님은 성경대로 죽으셨다가 성경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이 말은 성경이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전 15: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24장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에 관한 성경 말씀을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여기서 모든 성경은 구약성경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설명에 보면 구약성경이 주님의 부활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 중에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한 4복음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결론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습니다. 진리의 책인 성경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2) 텅 빈 무덤이 부활의 증거입니다.

세상과 타종교는 무덤의 크기를 자랑으로 여기고 있으나 기독교의 자랑은 빈 무덤입니다.

24:1-3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주님이 금요일에 돌아가셨습니다. 금요일저녁부터 안식일이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던 여자들이 주님의 무덤만 확인하고 이틀 후인 안식 후 첫날, 즉 주일 새벽이 돼서야 주님의 시체를 둔 무덤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무덤은 큰 바위에 굴을 파고 시체를 둔 후에 큰 돌로 입구를 막아둔 무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기 위하여 안식 후 첫날인 주일 아침에 무덤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은 옮겨졌고 주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때 찬란한 빛이 나는 천사 둘이 나타나서 주님이 부활하셨고 갈릴리로 가셨다고 증거했습니다. 텅 빈 무덤은 기독교의 자랑입니다.

 

3) 예수님의 말씀이 증거입니다.

16:21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주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뒤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복음서에서만 25회 이상 예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은 진리만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진리를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4) 제자들이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된 모습이 부활의 증거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주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을 것처럼 장담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잡히시자 제자들은 두려워서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본문에도 보면 그들은 다락방에 모였으나 두려움 때문에 다락방의 문들을 닫았었습니다. 그랬던 제자들이 사도행전에서는 갑자기 주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그것도 목숨을 걸고 부활을 증거합니다. 그들이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에 그런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4장에 보면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들 그리고 사두개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부활을 전하는 것을 싫어하여 잡아들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4:19-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그렇게 두려움이 많았던 제자들에게 그런 담대한 마음이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그들은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5) 초대교회의 설교의 내용이 십자가와 부활뿐이었다는 것이 증거입니다.

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한 내용입니다. 그는 성경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언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초대교회 때에 사도들이 어떻게 사역을 했는지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사도들의 여러 편의 설교가 나옵니다. 베드로, 바울, 스데반, 빌립 등 여러 명의 설교자들의 설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설교는 언제나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들이 핍박 중에도 부활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부활을 목격했기 때문입입니다.

 

6) 이 세상의 역사도 증명하고 있습니다.

세계제일의 권위를 가진 대영백과사전은, 예수님을 설명하는데 2만여 단어와 400여 페이지를 할애하여 그분의 삶과 부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최대의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는 마호멧, 석가, 나폴레옹, 씨저, 죠지 워싱턴 등의 여섯 위인을 합한 것 보다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세계역사의 기초를 제공한 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네로황제의 아들 티베리우스 치하에서 유대총독 빌라도에게 사형되었고, 그 예수님은 자신이 예언한대로 다시 살아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역사도 주님의 부활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7) 오늘날에도 기적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부활을 증명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복음을 증거 할 때 따르는 표적이 많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며 믿는 자들의 삶과 사역에서 기적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8) 오늘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사실이 부활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일주일의 끝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이라 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날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을 주일로 지켰습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된 것은 그들이 목격하고 체험한 부활에 대한 확신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주님이 주일에 부활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이 땅위에 주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9) 성령이 내 마음 안에서 부활을 증거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아들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교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부활을 믿게 하시고 부활을 증거 하게 하십니다.

믿는 사람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활의 주님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영적인 체험을 통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을 직접 만난 경험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안에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버지로 믿어집니다. 그 이유는 성령께서 믿는 자 속에서 증거 하시기 때문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의 사실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실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다음과 같은 많은 사실들을 의미 있게 해 주었습니다.

 

1) 성경 말씀이 모두 진리임을 증명합니다.

사람이 강하지만 아무리 강해도 죽음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죽게 되어 있고 죽으면 이 세상과는 이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주님의 부활을 예언하였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진리이기 위해서는 어느 한 말씀도 잘못되면 안 됩니다. 한 말씀이라고 잘못 되었다면 진리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 이라는 불가능해 보였던 말씀마저도 그대로 성취되므로 성경이 진리임을 증명하게 된 것입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임이 밝혀졌습니다.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은 다른 인간과 구별됩니다. 인간 중에서 출중한 한분이 아닙니다. 석가모니나 공자나 소크라테스 같은 위인 중의 한분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람의 자식으로 났고 사람 중에 위대했으나 사람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자기의 죄 문제로 고민하다가 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결국 죽었습니다.

죽음을 해결하실 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주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3)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는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한 죽음이고 예수님의 부활이 나를 살리기 위한 부활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믿음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4) 우리 육신도 부활 할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고전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셨습니다. 주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씀한 이유는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주님을 따라서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죽었던 자들이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 혼자만의 부활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의 대표자의 부활이며 모든 성도들도 주님을 따라 곧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5)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잘 살아야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16장에 보면 주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칭찬하신 후에 자신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때 베드로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주님의 길을 막았습니다. 베드로의 행동을 보신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할 이유를 밝히셨습니다.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주님이 재림하시면 우리들은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부활 후에 우리가 받을 상급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잘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3.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삶

본문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마가의 다락에 모여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신 내용입니다. 그때 주님은 행동과 말씀으로 제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1)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19-21절을 보면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평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첫 번째 하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말씀을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러분 생각에는 제자들이 왜 두려워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 가지원인이 있겠지만 믿음을 잃어버려서 그렇습니다. 성경은 두려움은 믿음의 부재에서 생기는 감정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담대하고 믿음이 없으면 두려운 것입니다.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이 말씀은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피곤해서 주무셨습니다. 주님이 주무시는 동안 큰 놀이 일어나서 파도가 배를 덮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워서 주무시는 주님을 깨웠습니다. 그때 주님이 일어나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이 말씀을 하신 후에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결핍입니다.

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이 말씀은 모세가 출생한 후에 있었던 내용입니다. 모세가 출생할 당시에 유대인들은 애굽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애굽사람들은 유대인들이 번성하니 유대인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유대인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심지어 애굽의 왕은 유대인들이 사내를 나으면 죽이는 법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과 어머니 요게벳은 모세를 죽이지 않고 숨겼습니다. 11:23에서는 그들이 믿음으로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긴 것입니다.

11: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이 말씀은 모세가 애굽을 떠나 광야로 가서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을 시작할 때의 내용입니다. 모세가 애굽을 떠났던 것은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모세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애굽 왕 바로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담대하십니까? 두려움이 없습니까? 저는 간이 콩알만한가 봅니다. 저는 자주 두려움을 느낍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저는 두려움을 느낄 때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제가 엎드리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임재하십니다. 성령님은 저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면 저는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해집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찾아가셔서 평강을 비신 후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보았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대못에 박히셨는데 주님은 그 못 자국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옆구리에 있는 창 자국을 보았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흔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이렇게 부활체로 제자들 앞에 서계신 것 보여주신 것입니다.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 성령님께서 믿는 자 속에 거하십니다. 그리고 그 영으로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함께 합시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 능력의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십니다이 믿음으로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기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2) 전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21절에 보니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까? 생명 살리는 일을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주님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일이 생명 살리는 일입니다. 주님은 많은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2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자기 생명을 대속물로 주신 것이고 또 하나는 전도하신 것입니다.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내놓아도 우리의 생명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도는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전도를 위하여 이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주님도 우리를 전도를 위하여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제자들은 전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모든 성도가 목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각자 부르심대로 직업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는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는 목사로서 전도하고, 직장인은 직장인으로서 전도하고, 학생은 학생으로서 전도하고, 예술가는 예술가로서 전도하고, 사업가는 사업가로서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자의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3) 성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22절에 보니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제자들은 왜 성령을 받아야 했습니까? 믿음의 삶을 위해서입니다.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 영적인 삶이고 믿음으로 살 수 있는 방법입니다.

또 제자들은 왜 성령을 받아야 했습니까? 전도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10일 동안 오로지 기도에 힘을 썼던 초대교회에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자 초대교회는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선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성령으로 충만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전도요 선교입니다. 전도하지 않고 선교하지 않는 사람은 성령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믿는 사람 속에서 믿는 사람을 전도의 현장으로 선교의 현장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자꾸만 전도하는 것이고 선교의 현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전도의 부담이 있습니다. 전도의 부담에 순종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성령충만할 수 있습니다. 전도의 부담에 불순종하는 사람은 갈수록 성령의 역사와 인도가 약해집니다. 결국 성령을 소멸하게 됩니다. 자동차가 계속해서 달리려면 중간 중간에 기름을 채워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려면 계속해서 기도하고 계속해서 전도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은 성령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4)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23절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대의 죄가 내 마음에 남아 있으면 내가 괴롭습니다.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상대의 죄를 없애려면 내가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해야 함을 알지만 용서가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주님의 사랑이 가슴에 충만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충만하면 그 사랑 때문에 다 용서 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사람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스데반은 핍박자들에게 돌을 맞아서 죽어가면서도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스데반이 주님으로 충만하니 그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물이 들어있는 컵을 뒤집으면 물이 쏟아지고 콜라가 들어있는 컵을 뒤집으면 콜라가 쏟아집니다. 내 속에 사랑이 충만하면 사랑이 나가고 내 속에 미움이 충만하면 미움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사랑을 만들어낼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는 여전히 죄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사랑을 채워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채우면 주님의 사랑이 나를 통해서 나가게 될 것이며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채울 수 있을까요? 성령충만입니다.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는데 어떻게 부어집니까?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첫 번째가 사랑입니다.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그래서 우리는 간절히 성령님을 사모하고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지금도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부활의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삽시다. 전도하며 삽시다. 성령으로 삽시다. 사랑하며 삽시다.

출처 :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글쓴이 : 마경훈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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