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세대 고후 6:14-18
(2016년 4월 10일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지난 주에 다니엘 세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다니엘 세대는 거룩한 세대, 성령의 세대, 충성의 세대, 기도하는 세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설교는 거룩한 세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진미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를 결단하고 채식을 하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시켰습니다. 우리도 다니엘처럼 거룩한 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1.복의 근원이 되라.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창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받는 것입니다(갈 3:14). 창세기 12:2에 보면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나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세 가지 복을 말씀합니다. 그 복을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첫째, 아브라함의 복은 큰 민족이 되는 복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신령한 민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민족보다 더 큰 민족은 없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받은 첫 번째 복을 받았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의 복은 이름이 창대하게 되는 복입니다. 여러분! 제가 아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보겠습니다. 그 사람들은 창대한 이름을 가졌는지 그렇지 않은지 맞춰보세요. ‘이희성, 손경동’ 모르겠지요. 이 두 사람은 이름이 창대한 사람은 아닙니다. 지난 주 중에 저를 찾아온 고등학교 동창들입니다. ‘반기문, 박근혜’ 이분들은 이름이 창대합니까 아닙니까? 창대한 분들이죠. 그럼 여러분의 이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이름은 제가 먼저 불렀던 ‘이희성, 손경동’의 부류에 속합니까? 아니면 ‘반기문, 박근혜’의 부류에 속합니까? 어디에 속하는지 아시죠? 그러나 여러분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는 무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이 창대한 복을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창대한 이름을 가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일꾼인 자신이 많은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하는 고난을 당했다고 말 하고서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고린도후서 6:9.10입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그는 세상에서 무명한 자 같으나 사실은 유명한 자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무명한 자이지만 하늘에서는 유명한 자라는 말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무명한 자 같으나 하늘에서는 유명한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우리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천사들도 알고 하나님께서도 아십니다. 우리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입니다.
셋째, 아브라함의 복은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는 말을 개역성경에서는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고 번역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인 내가 복의 근원으로 살면 나 때문에 가정에 복이 넘치고, 나 때문에 나라에 복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의 근원으로 살려면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5:1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악이 가득한 것 때문에 유다를 멸망시키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사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의 근원으로 살려면 거룩해야 합니다.
2. 거룩하게 살라
본문에서는 거룩함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본문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내용은 14절 앞부분에 나오는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부분입니다. 흔히 이 말씀을 불신자와 결혼하지 말라 혹은 불신자와 동업하지 말라로 풀이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해서 전도하면 되지”라고 말합니다. 좋은 의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험입니다. 그 사람이 믿을지 믿지 않을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신앙생활의 시작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결혼 전에는 교회에 잘 나가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막상 결혼을 한 후에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 처조카가 결혼을 할 때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조카사위 될 사람이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은 두 사람의 결혼의사가 너무나 확고했고 또 조카사위 될 사람이 잠시 교회를 나오면서 결혼 후에도 교회를 다니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에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결혼 후에 조카사위가 교회를 나오지 않았고 조카마저도 교회를 못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불신자들과 완전히 단절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고전 5:9-10).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믿지 않는 자들과 단절하고 살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과 멍에를 같이 메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특히 결혼이나 동업은 피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주 훌륭한 왕이었는데 자식 결혼을 잘못시켜서 망한 왕이 있습니다. 유다의 여호사밧 왕입니다. 대하 18:1입니다.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 여호사밧의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했을 때 아합과 연혼합니다. 여호사밧은 유다에 있는 우상을 찍어 없애고 하나님의 성전을 청결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치게 하셨습니다. 믿음을 가지면 영혼의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잘 지키고 주일을 잘 지키고 십일조를 잘 하고 부지런히 살면 이 땅에서도 축복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사밧은 어리석게도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했습니다. 그것도 보통 믿지 않는 자가 아니라 극악한 아합과 멍에를 같이 멨습니다. 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아합 왕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그동안 하나님만 의지했던 여호사밧이 마귀가 주는 생각에 넘어간 것입니다. 자기가 아합왕과 사돈이 되면 두 나라의 평화 관계가 지속되고 주변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그의 집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합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아람 왕을 치러 가는데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악한 자가 멍에를 같이 메자고 한 것입니다. 그때 여호사밧이 거절했어야 했는데, 사돈지간이 되었으니 거절할 수가 없어서 함께 멍에를 메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아합은 전사했고 , 여호사밧은 간신히 살았습니다. 역대하 19:2에 보면 전쟁에서 간신히 살아서 돌아오는 여호사밧 왕에게 하나님의 사람 예후가 책망합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예후의 예언대로 그때부터 여호사밧과 그의 가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시작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이 죽고 여호람이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람은 악한 여인 자기 아내 아달랴의 꼬임에 넘어가서 친 형제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 악한 여호람을 치시어 창자가 빠져나와 죽게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죽은 후에 여호사밧의 손자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아하시야는 아버지가 하나님을 버리고 악을 행하다가 저주 받아 창자가 흘러나와 죽었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자기 어머니인 악한 여자 아달랴의 영향으로 역시 우상을 섬기고 악한 아합 왕의 길을 갔습니다. 결국 그는 예후의 칼에 죽습니다. 아하시야가 죽자 아달랴는 자기가 왕이 되어 왕족의 씨를 진멸하려 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서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던 여호사밧이 악한 자와 멍에를 같이 메므로 가문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여호사밧을 통해서 악한 자와 멍에를 같이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말씀은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지 말라는 의미도 있지만 본문에서 말하는 더 확실한 메시지는 ‘너희는 거룩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정체성 때문입니다. 16-18절에 보면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17절)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말씀을 그레이스 주석에서 잘 설명했습니다. 잠간 소개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농사를 지을 때 땅이 척박해서 두 마리의 소를 이용합니다. 그럴 때 만약 두 마리의 소가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다면 농사를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멍에를 같이 한다는 것은 서로 마음이 맞는다는 뜻이 됩니다. 즉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는 것은 믿지 않는 자와 마음이 맞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지 않는 자의 사고방식과 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이 멍에를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레이스 주석에서 말하는 것은 믿는 자들은 믿지 않는 사람과 사고방식을 달리하고 그들과 다른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구별된 생활 즉 거룩한 생활입니다.
3. 거룩함을 실천하라
그러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면에서 거룩해야 할까요? 몇 가지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1) 꿈이 거룩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욕망과 비전이 다른 점은 출발점입니다. 세속적인 욕망은 자기로부터 출발하고 비전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세속적인 욕망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꿈꾸며 그것을 위하여 노력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소원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빌립보서 2:13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는 꿈이 거룩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꿈이 세상적인 욕망에서 왔다면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꿈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기도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2) 생각이 거룩해야 합니다.
생각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요한복음 13:2입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가룟유다는 마귀가 준 생각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 생각을 따라 행동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면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영의 생각을 따라 살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5-9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생각이 거룩해야 합니다.
3) 눈과 귀가 거룩해야 합니다.
눈과 귀는 영의 통로와 같습니다. 마귀가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들려면 보고 듣는 것을 통제하면 됩니다. 악하고 음란하고 폭력적인 것들을 보고 듣게 되면 그것이 마음에 쌓이고 결국은 그것들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입력된 것이 출력되게 되어 있습니다. 컵에 물을 담으면 컵에서 물이 나오고 컵에 콜라를 담으면 컵에서 콜라가 나오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이 선한 말을 하지 않고 악한 말을 하는 것은 그들 마음에 채운 것들이 악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마 12:34). 우리는 눈과 귀를 통해서 마음을 채우기 때문에 보는 것과 듣는 것이 거룩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15-16입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천국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 천국비밀을 아는 사람들을 비교한 말씀입니다. 천국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에 둔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습니다. 천국비밀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잘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들입니다. 눈과 귀가 거룩해야 합니다.
4) 입이 거룩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4을 보겠습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그리스도인은 해야 하는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습니다(엡 5:4).
말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말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말대로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을 들으시고 말대로 역사를 하시기 때문입니다(민 14:28).
그리스도인은 아무것이나 먹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피나 부정한 짐승을 먹지 않았습니다. 또 무교절에는 유교병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합당하지 않은 것들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술이나 담배 마약 등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입이 거룩해야 합니다.
5) 행위가 거룩해야 합니다.
기차가 레일 위에서 달리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형통의 비결입니다(수 1:8). 우리는 감정대로 행하거나 다수를 따라 행하면 안 됩니다. 모두가 원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안 해야 합니다. 모두가 반대를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하라고 하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6) 하는 일이 거룩해야 합니다.
하는 일이 거룩해야 한다는 말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고 교회 일이고 착한 일이어도 자기 영광을 위하여 하는 일은 거룩한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큰 일은 아니고 빛이 나는 일이 아니어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해야 거룩한 일입니다. 공부든 사업이든 직장생활이든 목회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고전 10:31).
우리가 하는 일은 목적도 선해야 하지만 방법도 선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7) 물질과 달란트 그리고 은사 사용이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돈도 주시고 재능도 주시고 은사도 주십니다. 우리는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주의 나라와 주의 의를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물질과 재능과 은사가 거룩하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 있다면 청지기 의식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8) 시간 사용이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허비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1년 365일, 8,760시간, 525,600분, 31,536,000초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한강에 물이 흐르듯이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예배자로 살아야 합니다. 전도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 감당을 위하여 사간을 사용해야 합니다(엡 5:16).
시간을 거룩하게 사용한다고 해서 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만큼은 쉬어야 합니다. 사람도 만나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여행도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사용하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9) 대인관계가 거룩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담을 쌓고 살라는 말은 아닙니다. 전도를 위해서도 만나야 하고, 사회생활을 위해서도 만나야 합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남도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골 4:5)
4. 어떻게 거룩하게 살 수 있는가?
정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0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그분은 우리의 거룩함이 되십니다. 거룩하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면 거룩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해서 거룩하게 사는 구체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충만입니다.
딤전 4:5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무엇으로 거룩해집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입니다. 출 29:21입니다. “제단 위의 피와 관유를 가져다가 아론과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에 뿌리라 그와 그의 옷과 그의 아들들과 그의 아들들의 옷이 거룩하리라” 제사장을 세울 때 제사장과 제사장의 옷을 거룩하게 하는데 2가지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는 숫양의 피입니다. 또 하나는 관유입니다. 관유는 표준 새번역에서는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름’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피와 기름으로 제사장과 제사장의 옷을 거룩하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숫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죄를 씻는 능력이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있습니다. 기름은 성령님의 상징입니다. 성령님은 거룩하게 하는 영이십니다. 고전 6:11입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본래 불의한 자였으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었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주님으로 충만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리고 늘 기도하는 생활을 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고백하시고 성령님을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대가지불이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생활을 하려고 해도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치룬 대가지불에 대해서 반드시 갚아주시는 분입니다.
미국의 큰 공장에 18륜 디젤 트럭을 정비하는 독실한 신앙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술자리에 가지 않으니 상사가 그를 미워해서 7년간 승진도 못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직장 동료들로부터 은근히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직장에서 따돌림을 받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그는 당장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그래도 기도하면서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아시겠지.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나를 도와주시겠지.’ 7년째 되는 어느 날, 회사 사장이 그를 불렀습니다. “자네 이 회사의 오너가 되고 싶지 않나?”, “사장님, 저는 돈이 없습니다.”, “이 사람아, 돈은 내게 있어.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야. 내가 시작한 이 회사를 끝까지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신실한 사람이 필요해. 그 사람이 바로 자네야. 자네가 이 회사를 맡아주게.” 그래서 그가 1불도 내지 않고 그 큰 회사를 맡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휴스턴에서 그 회사를 잘 경영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거룩함을 지키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총리 자리에 앉혀주셨습니다. 다니엘은 거룩함을 지키다가 사자굴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니엘의 적들을 죽이셨고 다니엘을 더욱 높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직장이나 학교에 가서 거룩함을 지키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왕따를 당할 수도 있고, 물질적인 손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들이 거룩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룩함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그에 합당한 보상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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