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복된 신앙생활
본문 - 창세기 49장 22 - 25절
본문 - 창세기 49장 22 - 25절(개역개정)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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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요셉의 복된 신앙생활]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2010년 마지막 주일에 이 설교를 하면서 이런 한 가지 소원을 가져봅니다. 요셉이 옥살이를 하던 중 왕의 꿈을 해석해주고 하루아침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죄수가 하루아침에 총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2010년이 혹시 종살이 하던 요셉, 옥살이 하던 요셉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다면 2011년은 총리 요셉처럼 회복되고, 높여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은 야곱이 자기의 열두 아들에게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이 축복은 두 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하나는 장래 일에 대한 예언적 성격이 있고, 또 하나의 특징은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한 것입니다.
야곱의 축복은 예언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에 아들들과 후손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축복기도를 받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축복에는 장래 일에 대한 예언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말의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 축복을 하게 되면 그 말은 받는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민 6장에 보면 제사장의 축복기도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 것을 말씀합니다. 먼저 축복의 내용을 말씀하신 후에 민 6:27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축복하면, 그 축복을 받은 사람이 받을 만하면 그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축복기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목회자의 축복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그대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 부모의 축복기도가 중요합니다. 자녀를 축복하는 부모는 자녀의 장래를 아름답게 빛나게 만드는 부모입니다.
야곱의 축복기도의 또 다른 성격 하나는 분량대로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28절에 보면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고 말씀합니다. 야곱이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했다는 말은 축복하는 사람이 중요한 것처럼 축복을 받는 사람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축복기도를 하는 사람이 아무리 좋은 복을 빌어줘도 받는 사람이 받을만하지 못하면 그 복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두 사람에게 동일한 축복기도를 해주어도 한 사람은 목회자가 빌어준 복이 그대로 이루어지는가 하면 한 사람은 빌어준 복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 10:12,13에 보면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전도자가 어느 집에 들어가서 평안을 비는데 그 집이 평안의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집이면 전도자가 빈 평안이 그 집에 이루어지지만, 그 집이 평안의 복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으면 그 집에 평안의 복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평안을 빌어준 전도자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분량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야곱이 요셉을 축복한 내용입니다. 기가 막힌 내용들이 많습니다. 22절에서는 요셉의 후손들이 번성할 것에 대한 축복입니다. 23,24절에서는 약했던 요셉과 요셉의 후손들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을 통해서 역전승할 것에 대한 축복입니다. 25절에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위로 하늘의 복 땅의 복 그리고 자손의 복을 받을 것에 대한 축복입니다.
우리는 야곱이 요셉을 축복한 내용을 굉장히 복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축복을 받은 요셉이 굉장히 복된 인생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요셉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신비한 은사를 받아서 꿈을 해석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비록 형들이 그를 종으로 팔았지만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형통하였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당한 고난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는 30이라는 젊은 나이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주신 꿈을 해몽하는 은사로 7년 가뭄 중에 애굽 백성들과 그 근방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요셉에 관한 내용이 창 37-50장까지 나옵니다. 그 중 38장에는 유다에 관한 내용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에 관한 내용의 분량이 총 13장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한 사람에 관한 내용이 13장이라면 굉장한 분량입니다. 요즘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의 모범으로 유명한 야베스에 관한 내용이 대상 4:9,10 두 절에 불과한 것을 보면 요셉은 성경 전체적으로 봐서 너무나 중요한 인물입니다.
요셉이 그렇게 복된 인생을 살았고 또 야곱에게 복된 축복을 받은 것은 요셉이 그런 복을 받을 분량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는 자신의 생애를 그렇게 훌륭하게 만들었고 야곱에게 너무나 복된 축복을 받았던 요셉의 분량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경의 기록 속에서 발견한 네 가지 보배로운 교훈입니다.
1. 성실한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실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시 71:22에서 시편 기자는 주의 성실을 찬양한다고 말합니다.
요셉의 성실함을 살펴봅시다. 창 37장에 보면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야곱이 요셉을 양을 치고 있는 형들에게 보냅니다. 요셉은 헤브론에 있었고 형들은 세겜에 있었습니다. 거리가 약 100km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에게 순종해서 그 먼 거리를 걸어서 형들에게 갑니다. 그런데 요셉이 형들이 있다는 세겜에 도착하니 형들은 목초지를 따라 이동을 하고 없었습니다. 요셉이 어떤 사람을 만나서 형들의 소식을 물으니 그곳에서 30km 떨어진 도단에 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냥 헤브론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는데 다시 30km 걸어서 형들을 찾아냅니다.
보통 사람이 하루 종일 걸으면 30km 정도 걷습니다. 요셉은 3일 길을 걸어서 세겜에 도착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서 힘든 일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도 다시 30km를 걸어서 형들에게 갔던 것입니다. 요셉의 성실성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요셉의 성실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가 악한 형들 때문에 노예상인에게 팔리고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 일을 합니다. 그의 성실함은 노예 일을 하면서도 빛을 발합니다. 그의 성실함을 본 보디발은 요셉을 집안 총무로 삼고 자기 재산을 다 요셉의 손에 맡깁니다. 요셉이 정직하고 지혜롭고 성실하였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총무 일을 하다가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갇힙니다. 그런데 감옥 속에서도 요셉의 성실함이 빛을 발합니다. 간수장은 요셉의 성실함과 지혜로움을 보고 요셉에게 감옥의 모든 죄수와 모든 사무를 요셉의 손에 맡깁니다. 이 역시 요셉이 성실하였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요셉이 30에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는 총리가 된 후에도 굉장히 성실했습니다. 창 41:46절에 보면 요셉이 총리가 된 후에 애굽 온 땅을 순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왕이 요셉에게 모든 권한을 주었습니다. 왕이 높은 것은 왕좌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요셉의 자리는 요셉이 궁궐에서 편하게 있으면서 명령만 내려도 되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성실함이 자신을 궁궐에만 있게 놔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애굽은 요셉의 지혜로 7년 풍년이 있는 동안 창고를 짓고 곡식을 많이 저축해서 7년 흉년을 대비했습니다. 그리고 7년 흉년이 시작되니 애굽 백성들과 주변 나라 백성들이 곡식을 사려고 했습니다. 이 때 요셉은 총리였고 또 왕과 백성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움직이지 않고 말만해도 모든 일이 잘 돌아갈 수 있는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여기서 요셉이 성실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형들이 곡식을 사로 왔을 때 형들이 온 것을 알아 봤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현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총리자리에서 왕과 전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현장에 나와서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의 성실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성실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잠 28:10에입니다. “성실한 자는 복을 받느니라” 왜 성실한 자가 복을 받습니까? 하나님께서 성실한 자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주의 일에는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시고, 세상일에는 성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엡 6:5과 골 3:22에서는 믿는 자들은 직장생활도 성실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교역자는 사역에 성실해야 하고, 학생은 공부에 성실해야 하고, 직장인은 직장생활에 성실해야 합니다.
우리교회 박승연집사님을 칭찬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는데 너무나 성실하다는 평입니다. 직장에 가장 먼저 출근을 해서 문을 열어 사람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답니다. 보통 사람도 그런 일을 한 두 번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몇 년을 그렇게 하는 것은 성실함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박집사님이 너무나 성실하게 일하기 때문에 실적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뛰어나다고 합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로만 판단할 때 집사님의 직장생활의 성공은 성실함의 결과라고 생각을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성실하십시오. 요셉은 성실함이라는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성실한 신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임재의식 속에서의 생활입니다.
요셉의 장점 중에 하나는 임재의식입니다. 언제나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했고,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아도 하나님은 보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이런 임재의식이 그를 경건하게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창 39장에 보면 요셉의 용모가 아름답고 빼어났다고 말합니다. 그의 외모가 뛰어났기 때문인지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음탕한 여자였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한동안 요셉에게 눈짓을 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했습니다. 그 때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요청을 거절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하나님을 의식했던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청하였으나 요셉이 그녀의 말을 듣지 아니한 것만 아니라 함께 있지도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요셉이 일을 하려고 집에 들었는데 집 안에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고 보디발의 아내만 있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잡습니다. 그리고 동침하기를 청합니다. 이 때 요셉이 자기의 옷을 보디발의 아내의 손에 버려두고 집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도덕성이 높아서가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불꽃같은 눈동자로 자기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했기 때문에 그는 감히 보디발의 아내와 동침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을 보고 계셨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혹시 그 사실을 잊는다 해도 하나님은 그 순간에도 함께 하시고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설교 하는 이 시간에 제가 설교를 하면서 제 등 뒤에 있는 십자가를 의식하지 못해도 십자가는 제 등 뒤에 있는 것 보다 더 확실한 사실입니다.
요나는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에만 계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니느웨로 가지 않고 욥바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탑니다. 그리고 배 밑창으로 들어갑니다. 아마도 자기가 예루살렘을 떠나면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풍랑을 만나고 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회개한 후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합니다. 요나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 언제나 곁에 계시며, 자신을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 한국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이중적인 생활 때문입니다. 교회에 가면 경건한 그리스도인 같은데 세상에 나가면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경건을 말하지만 실제의 삶은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이중적인 생활에 실망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교인들이 그런 생활을 할까요? 그 이유는 임재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요즘은 범인을 잡는데 CCTV가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됩니다. 몇 일전 뉴스에서 보니까 우리나라 국민들은 하루에 평균 83번 CCTV에 찍힌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사생활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루에 83번이나 우리의 모습을 잡아내는 CCTV보다 우리를 더 가까이서 더 정확하게 보고 계십니다. 심지어 우리의 생각까지 다 아시고 우리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다 듣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받으며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시 31:19에 보니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는 수준이 보통사람하고 달랐던 것입니다. 그는 임재의식이 뛰어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셉의 성공비결인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생활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로부터 꿈 해몽의 특별한 은사를 받았습니다. 요셉은 은사를 자기가 사용하지만 그 은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꿈을 해석할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던 것입니다.
창 40장에 보면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두 죄수를 만나게 됩니다. 한 사람은 왕의 술을 맡은 관원장 이었고 또 한 사람은 왕의 떡을 굽는 관원장 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두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해석을 하지 못하고 답답해하고 있을 때 요셉이 자신에게 꿈을 말해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은사로 꿈을 풀면서도 그 꿈의 해석을 하나님께로 돌렸던 것입니다.
창 41장에 보며 애굽의 바로 왕이 한 날에 두 번이나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의 뜻을 알지 못하여 답답해합니다. 그 때 요셉의 꿈 해석대로 술맡은 관원장에 복직된 사람이 왕에게 요셉을 추천합니다. 그래서 왕 앞에 선 요셉이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그는 왕 앞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나서 왕의 꿈을 듣고 해석을 하면서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고백합니다.
요셉은 자기가 잘하는 일이라고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을 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생애가 복된 비결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말했던 것입니다.
마이크는 사람의 목소리를 증폭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만약에 마이크가 그 구실을 못한다면 고물상에 가야합니다. 예배당 밖에 공기청정기가 있습니다. 그 기계는 본래 예배당 안에 있었는데 지금은 예배당 밖에서 고물상에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공기청정기로서의 기능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고 다른 것만 추구한다면 어떻게 복된 인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면 하나님은 요셉의 인생을 복되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인생을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저는 박주영선수를 좋아합니다. 그가 축구를 잘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하는 골 세르머니가 마음에 들기 때문입니다. 박주영선수는 골을 넣으면 항상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합니다. 그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세르머니를 하는 것은 골을 넣게 해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박주영선수는 골을 넣을 때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사 43:7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분명한 이유를 말합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왜 만드셨다고 말씀합니까? ‘내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만드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명심하고 사십시오. 그래야 요셉처럼 복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는 신앙생활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는 생활이 요셉의 인생이 복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인 것입니다.
창 45장에 보면 요셉의 형들이 요셉 앞에 섭니다. 전에는 형들이 요셉을 잡아서 노예상인들에게 팔았는데 이제는 총리 요셉 앞에 선 것입니다. 누가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습니까? 아무도 예상 못했던 상황입니다.
총리가 요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형들은 당황스럽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뜻밖의 말을 합니다. 창 45:7,8입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자신이 애굽에 내려온 것이 형들이 자기를 팔아서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하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창 50장에서도 비슷한 고백을 합니다. 야곱이 죽은 후에 형들에게 다시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전에는 아버지가 계셨으니 자신들을 살려주었는데 이제는 아버지도 안 계시니 요셉이 자신들을 어떻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아버지가 하지도 않은 유언을 들먹이면서 자신들의 허물을 용서해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에 대해 요셉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요셉은 이번에도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욥기를 보면 욥은 자식을 잃고 모든 재산을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고백을 합니다. 욥 1:21입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의 신앙도 요셉의 신앙처럼 범사에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런 신앙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을 자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일도 만나지만 어려운 일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셨음을 믿으시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도하셨던 그 길이 쉬운 길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엘림과 같은 오아시스로만 인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마라의 쓴물로도 인도하셨고, 아말렉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으로도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난 좋은 환경도 어려운 환경도 모두다 하나님의 인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이 좋고, 하나님의 간섭이 눈에 보이면 하나님을 찬양했고, 길이 좋지 않고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지 않으면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살펴보면 마치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믿음이 좋아지는 것 같다가 조금만 힘든 일이 생기면 신앙이 떨어지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행복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요셉의 복된 신앙생활의 비결이었습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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