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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소망 (요한복음 1장 40절-42절)

예수님의 소망 (요한복음 1장 40절-42절)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는 분명하게 대답하실 줄로 압니다. 성서는 예수님 스스로도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니라”(눅19: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니라”(요10:10). 이처럼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죄악 속에 빠져서 영원히 멸망 받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속의 사역을 성실히 잘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보면 “저런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삭개오, 죄 많은 여인,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강도-까지도 구원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복음성가 중에 “세상에서 방황할 때”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죄인도 구속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체험을 한 성도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구속의 능력을 믿을 줄로 압니다.
복음서를 보면 절망적인 상황에서 구원받은 사람-사기꾼, 창녀들이 이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으로 변화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진실한 성도로 변화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어떤 방법을 쓰시기에 절망스럽고, 흉악한 죄인이 구원을 받으며, 더 나아가서 그 사람이 변화되어서 사회에서 존경받고 하나님의 진실한 성도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은 인간을 구속하시고 변화시키시는 예수님의 구원의 방법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소망을 갖고 인간을 바라보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따르면 예수님과 인간 사이에 원수처럼 흩어진 관계에 있을 때에도 예수님은 인간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절망스러운 존재로 여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리와 바리새인들, 베데스다 연못가에 모인 환자들, 중풍병자들, 이미 죽어서 무덤에 누인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 율법학자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보면서 이들에게서 소망이 없다고 보고 이들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들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하시면서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예수님의 소망적 태도가 맹목적이며 무식해서 아무 것이나 소망을 갖는 무지적 소망이냐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자기 자녀들이 전혀 공부하지 않고, 비행청소년으로 지내는데 부모는 그 아이가 서울대학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망을 갖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지적 소망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아이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갖는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인간, 개개인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아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사람의 마음속을 분명히 읽으시고 계시기 때문에 인간에게 소망을 가지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소망은 맹목적이고 무지적인 소망이 아니라 우리 인간 속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시고 품으신 소망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이 품으신 소망이 바로 구속의 능력으로 나타나십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에 대한 찬란한 소망으로 충만하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 있는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회복 가능성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즉 환자가 ‘나는 회복할 수 있다’라는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환자가 회복된다는 소망을 잃어버리면 그 환자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의사는 환자에게 소망의 불을 붙여주려고 시도합니다. 소망은 약처럼 치료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매우 담대하게 증거하기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8: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소망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이 구원받은 첫째 조건은 소망입니다. 그 소망은 내가 어떠한 처지에 있더라도 내가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어떠한 사람에게도 소망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속에 구원받을 수 있다는 소망을 불붙여 놓으시려고 수고하신 것입니다.

셋째,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 대해서 철저하게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42절을 보면 “예수께서 보시고”라고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깊은 속을 들여다보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시선은 베드로의 성품의 뿌리까지 꿰뚫어보시는 응시였고, 그의 영혼 깊은 곳까지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의 급한 다혈질의 성격, 충동적, 불완전한 성격 등을 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시몬에 대해 철저하게 아시고 나서 예수님은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반석이 되어서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불안한 것을 없애주시고 비난과 수치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소망을 들은 시몬이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구원받고 훌륭한 사도가 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영광스럽고 찬란한 소망의 말씀이 시몬이 예수님을 따르고 베드로가 되는 길에 용기 있게 나서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겉모습을 보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속을 꿰뚫어보십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행사를 보시고 우리에 대해서 영광스럽고 훌륭한 소망을 품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주님 앞에서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영광스러운 자가 되리라!는 소망을 품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소망을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소망을 내 마음에 품으시고, 예수님을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흠없고, 책망 없는 자로,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될 것을 믿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005-12-14 1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