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강용규목사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출애굽기 33장 17절-23절)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출애굽기 33장 17절-23절)
  

출애굽기 33장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으로 올라가는 길에 우상을 만들고 거기에 절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진멸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안올라가시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에 대해서 모세의 입장은 분명했습니다. 15절에서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보내지 마옵소서” 즉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는 곳이 아무리 좋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할지라도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아주 중요한 것을 하나님께 요청하고 있습니다. 18절에서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의 영광은 주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자녀의 소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독생자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85장 1절을 보면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33장 1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아무나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예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때 살인자 사울이 하나님의 종이며 순교자 바울로 바뀌고, 우리에게는 기쁨으로 충만케 됩니다. 또 회복의 역사,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어떻게 해야 우리의 예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예배가 되는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예배입니다.
구약 에스더서에 보면 페르시야왕 아하수로에 왕이 나옵니다. 이 왕이 궁내 대신, 백성들과 함께 7일동안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왕은 어여쁘게 생긴 왕후 와스디를 자랑하고 싶어서 왕후에게 잔치 자리에 나오라고 했는데 왕후 와스디는 왕의 명령에 불순종해서 잔치 자리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왕은 와스디를 폐위하고 새롭게 왕비를 구하는데 나라 구석 구석에 왕이 왕비를 구한다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전국에서 많은 여인들이 왕비가 되겠다고 모였습니다. 바로 여기에에스더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에스더 2장 12절을 보면 왕을 잠간 만나기 위해 후보들이 6달 동안 몰약기름을 쓰고, 여섯달은 향품과 다른 물품을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 1년 동안 감깐 동안 왕을 뵙기 위해서 준비한 것입니다. 왕이 에스더를 더욱 사랑해서 드디어 수많은 후보자 중에 에스더가 왕후가 됩니다. 에스더 2장 15절에서 알 수 있듯이 에스더는 왕궁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기를 유지하려고 눈길을 주거나 윙크를 했을 것 같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에스더는 왕 외에 다른 남자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일년 동안 향유를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에스더는 왕의 인정을 구했습니다. 즉 에스더는 왕에게만 그녀의 눈길을 집중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도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되어야 합니다. 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 눈길을 끌려고 행동하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예배가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된 에배를 드릴 때만이 아하수로에 왕이 에스더를 선택해서 영광의 자리에 앉혔듯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해서 우리도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성도,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바로 그런 성도, 교회를 발견하시면 그 성도에게, 교회에서 그 천국의 열쇠를 맡기실 것이고, 하늘의 귀한 것으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 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는 예배가 아니라 내 마음이 깨어지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릴 때, 보통 일상생활 때처럼 별 특별한 일이 없이 그저 평안과 마음의 평정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 하는 예배는 우리의 평정심이 깨어지는 예배인 것입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지시고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갈보리 산에서의 예배는 평정심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예배 현장을 살피면 평정심과는 다르게 소동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예배를 드릴 때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낮인데 마치 술 취한 사람들처럼 저들은 평정심을 잃은체로 교회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체험한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예배는 그저 조용하고 자신의 마음이 평정만을 찾는 예배가 아닙니다. 평정심이 깨어지는, 상한마음, 회개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소리지르며 통회하고 자복하는 예배입니다. 성령의 충만 속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기쁨으로 가득하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예배인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예배를 드리시기를 원한다면 그저 내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는 예배가 아니라 내 마음이 깨어져 자복하고 회개가 나오는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예배는 내가 엎드려지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자 이사야는 그 자리에 엎드려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앞에 완전히 엎드려 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3절에서 5절을 보면 주님의 임재 앞에 사울이 땅에 엎드려지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는 예배는 예배드리는 우리가 겸손하게 땅에 엎드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자기 자랑으로 도취된 자의 예배와 기도를 받지 않으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 하는 예배가 산 예배요, 우리가 변화되는 예배요, 축복의 예배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예배, 내 마음을 깨고 회개하는 예배, 엎드려지는 겸손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서 초대교회처럼 성령 충만, 신유역사, 부흥이 일어나고, 이사야처럼 사명 받고, 에스더처럼 축복받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5-12-14 10:5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