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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성탄 요일 4:9-11


 
사랑의 성탄
 
요일 4:9-11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의 단편소설 가운데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서로 깊이 사랑하는 짐과 델라라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두 사람은 서로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가난해서 남들처럼 선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인 짐은 생각 끝에 아내의 긴 머리에 꽂을 머리핀을 사기로 마음먹고 갖고 있던 시계를 팔기로 했습니다. 아내 델라는 남편에게 시계 줄을 선물하기로 하고 자신의 긴 머리를 잘라 팔았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시장으로 나가 선물을 샀습니다. 서로를 기쁘게 할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짐은 머리핀을 들고 아내의 머리에 꽂아 주려고 했으나 아내의 머리는 이미 짧게 깎여 있었습니다. 델라 역시 시계 줄을 들고 있었으나 남편에겐 이미 그 시계가 없었습니다. 준비된 선물은 쓸모없게 됐지만 둘은 곧 부둥켜안고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서로의 깊은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선물이 되려면 그 안에 ‘사랑’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마음을 다하여 표현된 사랑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우선 하나님께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들을 선물로 주시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보여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또 요 3:16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아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보내주셨는데 그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선물’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도 그 안에 마음을 다한 사랑을 담뿍 담은 사랑의 선물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성탄을 ‘사랑의 성탄’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이 세상에서 흔히 회자되고 또 경험되는 그런 사랑과는 다른 사랑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성탄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랑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보다 깊은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1. 선행적 사랑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신 근원적인 원인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탄의 근원적인 원인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선행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결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었을 때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것도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보내시면서 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모를 때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몰라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을 때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있을 때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죄 때문에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을 때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우리 마음대로 우리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을 때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사랑을 받을 수 없을 때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됐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곧 아가페(Agape)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랑과 관계없이 먼저 일방적으로 사랑해 주신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우리를 사랑하셨을까요? 한 마디로 긍휼 때문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짓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 방황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인생의 짐에 짓눌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불쌍하기 때문입니다.
 
  전통가구명장으로 유명한 임진호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에게는 중증지체장애인이 된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사고를 당해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그저 방안에 누워서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너무도 불쌍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볼 수 있는 창밖을 아름답게 꾸며주기 위해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나무 두 그루를 심었습니다. 아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서는 조금씩 조금씩 정원을 늘려가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3만평이나 되는 거대한 수목원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이런 정성어린 사랑에 힘입어서 아들은 7년 만에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입으로 컴퓨터를 조작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림과 서예를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한민국 미술 대전에서 2번이나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기까지 했습니다.
  이 아들 임형재씨는 수상 소감을 간단하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사랑 때문에”...
 
   그렇습니다. 임진호씨가 아들 임형재씨가 불쌍해서 각고의 노력으로 수목원을 이룬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불쌍해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남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과분하게 복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임을 잊지 마십시오.
 
2. 이타적 사랑
   본문 1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목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목적이 바로 우리를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나님께서 얻게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하나님께 우리에게 아들을 내어주시면서 대가로 요구하시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보통 밑지는 장사가 아닙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바보라도 보통 바보가 아닙니다.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우리는 아가페(Agape)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스웨덴의 신학자 니그렌(Anders Nygren)이라는 분은 사랑의 신학자로 유명합니다. 이분이 쓴 [아가페와 에로스]라고 하는 책은 사랑의 본질을 잘 설명해 주는 책으로 유명합니다.
   이 책에서 이분은 아가페와 에로스의 차이를 몇 가지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차이는 동기의 차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사랑하는 동기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아가페는 사랑하는 동기가 상대방에게 있지만 에로스는 사랑하는 동기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가페는 너를 위해서 사랑하지만 에로스는 나를 위해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에로스는 ‘주고 받음’(give & take)이 있습니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어야 성립이 됩니다. 받는 것이 더 많을 때 그 사랑은 왕성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아가페는 ‘주는 것’(give)만 있습니다. 받는 것은 그 동기에 고려되지 않습니다.
 
  지난 10월 14일자 미국의 시사월간지 [더 아틀란틱(The Atlantic)]은 에모리 대학의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도했습니다. 그 내용은 “결혼식 비용이 클수록 이혼률이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진은 미국 내 3,000여 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그 조사 결과의 구체적 내용을 보면, 결혼식 비용으로 2만 달러(약 2,100만원) 이상을 소비한 부부의 이혼율은 5,000~1만 달러(530~1,000만원)을 쓴 부부에 비해 1.6배나 높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결혼식에 1만 달러 이하의 저렴한 돈을 들인 부부의 이혼율은 평균 이혼율의 절반 정도였습니다. 가격이 2,000달러(214만원)를 상회하는 반지를 구입한 부부는 500달러(53만원)짜리 반지를 산 부부에 비해 이혼율이 1.3배나 높았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요? 결혼의 동기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나를 위해 결혼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결혼해서 내가 행복해 지고, 결혼해서 내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결혼해서 내가 남부럽지 않게 살고... 그런데 정작 결혼한 뒤에 자기가 생각했던 것만큼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을 경우 손해 본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자기는 100을 주었는데 정작 자기가 얻은 것은 50이 안 된다면 계속 결혼생활을 유지할 동기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투자한 사람일수록 이혼률이 높게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아무런 조건도 내세우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특별한 것입니다.
 
3. 희생적 사랑
   오늘 본문 10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로 대접 받으시고 영광을 누리시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저 유람 삼아 이 세상에 다니러 오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제물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를 대신해서 죽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철저하게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포기하시는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인간이 되시는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는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는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요 15:13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예수님께서 가장 숭고한 사랑은 친구를 위해 죽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실제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6.25한국전쟁 이후 전해오는 실화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만삭된 임산부가 전쟁 도중 출산을 위해 집을 찾다가 그만 길거리에서 진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통에 가진 것이 없고 가까이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겨우 어느 다리 밑에 자리를 잡고 혼자서 아기를 분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추위가 밀려들자 이 어머니는 아기를 품에 안았습니다. 아기가 추워 울자 하나씩 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벗은 자기 옷으로 아기를 감싸고 품에 안았습니다. 안타깝게도 해산 직후 허약해 진 몸에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는 그만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동사하고 말았습니다.
  마침 미군 병사가 차를 타고 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다리 위에서 기름이 떨어져 차를 세워두고 부대로 연락을 취한 후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리 밑에서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병사가 내려가 보니 엄마는 거의 벌거벗은 채로 죽어있었고 엄마 품에는 엄마 옷으로 감싸진 채 울고 있는 아기가 있었습니다. 이 병사는 다리 위에서 기름이 떨어진 것도 다 하나님께서 이아기를 살리라는 뜻이라 생각하고 아기를 데려다가 양자로 키웠습니다.
  세월이 지나 아기가 다 자라 성인이 됐습니다. 이 사람은 늘 자기 출생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자기가 묻어 준 그 여인의 무덤 앞에서 자초지종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이 아들이 갑자기 자기 옷을 하나씩 다 벗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옷으로 어머니 무덤을 덮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통곡하며 이렇게 울부짖었답니다.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어요 나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가 그런 희생을 치르셨군요. 어머니의 그 큰 사랑을 생각하며 벌거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하나 밖에 없는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보내신 날입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희생적 사랑이 나타난 날입니다. 성탄절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기 위해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예수님의 그 크신 희생적 사랑이 나타난 날입니다. 우리가 그 크신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고 그 사랑을 생각하며 그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이 성탄주일입니다. 이 성탄주일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랑’입니다.
   도저히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왜 나를 사랑하셨는지를 물으며 그 크신 사랑을 깊이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아무 것도 바라시지 않고 오직 우리들만을 위하신 그 크신 사랑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물으며 그 크신 사랑을 깊이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주신 그 놀라운 사랑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희생하며 살아야 할지를 물으며 그 크신 사랑을 깊이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