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답다는 것
딛 2:11-14
어느 호텔인가는 개와 함께 투숙할 수 있도록 허락한답니다. 개와 함께 투숙하게 허락한 이유를 호텔 방마다 안내문으로 써 붙여놓았답니다. 안내문 내용이 이렇습니다.
우리가 개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침대에서 담배를 피워 시트를 태우는 개를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건을 훔쳐 가는 개나 술에 취하여 난동을 부리는 개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손님의 개가 손님을 보증한다면 언제라도 환영합니다.“
이 안내문을 살펴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먼저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개만도 못할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다음으로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다름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 우리가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답지 못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보며 삽니다. 그런 사람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인데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보며 삽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하나님의 영광도 가리어집니다.
우리가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하고 하나님께도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옛날 그리스에 디오게네스라는 특이한 철학자가 살았습니다. 이 사람은 대낮에 등불을 켜 들고 아테네 거리를 다녔다고 전해집니다. 사람들이 왜 대낮에 등불을 켜고 다니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이 사뭇 진지했답니다. “이 캄캄한 세상에 혹시 사람다운 사람이 있는가 찾아보기 위해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예수님께서 이 디오게네스처럼 오늘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있는지 찾고 계시지는 않는지... 오늘 예수님께서도 대낮에 등불을 켜고 다니시지는 않는지...
그러면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제자인 디도에게 그리스도인답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그리스도인답다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신중함
우선 그리스도인답다는 것은 신중함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신중함이란 원어성경의 ‘소프로노스’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은 ‘분별하는 마음과 자제력이 있는 침착한 상태’를 뜻합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이 말을 ‘self control’ 즉 ‘자제’라고 번역을 했고, 우리 말 다른 번역에서는 ‘근신’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신중함은 자제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신중함 곧 자제력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해당되는 그리스도인의 소중한 특성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답다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서 남다른 신중함 곧 자제력을 가진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겪는 대부분의 불행은 자제력 부족에서 비롯됩니다. 우선 자기감정이나 욕망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할 때 갖가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요사이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되는 ‘분노조절장애’를 들 수 있습니다.
연말부터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대한항공 땅콩회항사건도 따지고 보면 이 분노조절장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조현아 부사장은 승무원이 자기에게 땅콩을 봉지 째 서비스 한 것을 부사장인 자기를 무시한 것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그 분노를 잘 조절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승무원에게 폭언을 하고 폭행도 저질렀을 뿐 아니라 급기야 비행기도 회항시키고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다움을 잃는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이 신중함 곧 자제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부끄러운 말씀이지만 저도 아직 신중함이 많이 부족합니다. 불쑥 화를 낼 때가 있습니다. 아내와의 대화중에서도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고 화를 내곤 합니다. 특히 당회 장로님들과 대화중에서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곤 합니다. 그래서 돌아서서 참 많이 미안해하고 또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깨닫고 정진하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중함 곧 자제력을 잃어버리면 마음속에 일어나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어떤 분들은 사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지 못해서 충동구매를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먹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지 못해서 다이어트에 실패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성적인 욕망을 억누르지 못해서 음란의 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잠 16:32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한 마디로 신중함 곧 자제력을 갖춘 사람은 그 누구보다 위대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과 싸우는 용사가 되기 전에 자신과 싸우는 신중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성을 빼앗으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 마음을 정복하려는 자제력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고전 9:27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평생 그토록 놀라운 사역의 열매를 거두었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자신을 쳐서 복종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놀라운 사역의 열매를 거두었어도 신중함을 갖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이 다 물거품이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놀라운 사역의 열매를 거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감정조절을 못해서 실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움과 시기와 질투 그리고 분노와 같은 감정조절에 실패하면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놀라운 사역의 열매를 거둔 사람들 가운데 마음속에 일어나는 욕망을 조절하지 못해서 실패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주의 종들 가운데 성적 욕망, 명예욕, 소유욕을 조절하지 못해서 마지막에 실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도움으로 보다 신중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들끓고 있는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욕망들을 잘 제어해야 하겠습니다.
2. 의로움
다음으로 그리스도인답다는 것은 의로움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의로움이란 원어성경의 ‘디카이오스’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은 ‘올바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이 말을 righteousness로 번역했습니다. 정해진 규범이나 법을 지키며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도 ‘의’라는 것은 율법을 잘 지키며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의로움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해당되는 그리스도인의 소중한 품성입니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 때 정해진 규범과 법을 잘 지키며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공동체의 덕을 해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우스개 유머가 있습니다. 어느 집에 불이 났습니다. 불길이 치솟아 다 타버릴 지경입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이 불은 금새 옆집으로 옮겨 붙을 상황입니다. 소방관이 출동했습니다. 어느 집부터 물을 뿌려야 할까요? 이 소방관은 어느 집부터 불을 끌까요?
답은 엉뚱합니다. ‘돈을 준 집부터 불을 끈다’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풍자하여 만든 우스개입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흔히 일어나곤 합니다. 곳곳에서 편법과 불법이 난무합니다. 인사 청문회를 할 때면 대상자들이 진땀을 흘립니다. 병역 비리, 부동산 투기, 탈세 등등. 고위 공직자들 가운데 인사 청문회를 아무런 문제없이 통과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이 들 지경입니다.
분명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의롭지 못합니다. 이런 의롭지 못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암 5:2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한 마디로 의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한 사업가가 모범적인 경영인 상을 받았습니다.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10살 때의 겪었던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한 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호수는 가을철 한 철에만 농어 낚시가 허용되었습니다. 농어 낚시가 허용되기 전날 저녁에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밤이 늦었는데 아들의 낚시에 큰 농어가 낚였습니다.
아버지는 시계를 보았습니다. 밤 10시 30분이었습니다. 물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자기들은 밤새 낚시를 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그 농어는 풀어주고 다른 고기를 잡도록 하자” “아들이 떼를 썼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큰 고기를 잡은 것은 처음이에요. 그러면 그냥 이렇게 12시까지 낚시대를 잡고 있을께요.” 아버지는 단호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농어를 풀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그날의 체험을 통해 의롭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고 황수관 박사의 ‘신바람 건강학’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분은 성경의 가르침을 건강 강의에 담아서 놀라운 지혜로 풀어냈습니다.
한 번은 이렇게 강의를 했습니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돈으로 마련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누가 밥 사준다고 해서 생각 없이 얻어먹지 마세요. 어떤 돈으로 사는 밥인지 알아보고 먹어야지요. 노름해서 딴 돈으로 한턱내는 음식 먹으면 몸에 해롭습니다. 도적질한 돈으로 차린 진수성찬은 독입니다. 김치 한 보시기에 밥 한 그릇을 먹더라도 그 음식을 마련한 돈이 정직하고 의로운 돈이라면 가장 좋은 약이 됩니다. 어떤 음식이 몸에 좋은가를 살피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음식을 마련한 돈이 어떤 돈인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놀라운 통찰입니다.
잠 10“9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의롭게 행하는 사람이 평안케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황수관 박사의 말이 맞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도움으로 더욱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나와 내 이웃들을 평안한 길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3. 경건함
또 하나 그리스도인답다는 것은 경건함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경건함이란 원어성경의 ‘유세보스’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말은 근본 의미는 ‘존경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경건함이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장로교의 창시자인 깔뱅은 경건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하며 주로써 두려워하고 경외할 뿐 아니라 그분의 의로움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거역하는 것을 죽음보다도 더 무서워하는 신실한 감정이다.” 한 마디로 그 마음에 하나님으로 가득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 경건함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에 해당하는 그리스도인의 소중한 성품입니다. 하나님을 온 삶으로 사랑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자기 교회에 여전도회를 잘 섬기는 회장 권사님이 있답니다. 이분이 부동산 열풍이 불 때 친구를 따라 아파트를 보러 발이 부르트도록 다녔답니다. 그러면도 돈도 많이 벌고 교회 헌금도 많이 하더랍니다.
심지어 주일 오후에도 아파트를 보러 이곳저곳을 다녔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주일 여전도회 헌신예배를 드리게 됐는데 이 분이 예배 인도를 맡았답니다. 이 날도 아파트를 보러다니다 예배시간이 다 돼서야 급히 교회로 뛰어왔답니다. 허겁지겁 예배 인도를 위해 강대상으로 올라갔답니다. 예배 부름을 낭독하고 찬송을 부르게 되었는데 글쎄 이분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이제 우리 모두 찬송가 102‘동’을 부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있는 지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 마음속에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은 채 살아갑니다.
약 4: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우리가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힘쓰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고 바로 경건한 삶을 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 고전 가운데 로렌스 형제가 쓴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연습]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 가운데서 로렌스 형제는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생활 중에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늘 자각하며 살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시지 않는다. 때때로 하나님을 잠시 생각하고, 경배하며, 그분의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를 하며, 당신의 슬픔을 그분께 내려놓고, 슬픔 가운데서도 당신에게 주시며 이미 주신 은총들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산다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힘든 일이 아님을 알 것이다. 하나님은 되도록 자주 당신이 하나님과 함께 당신의 슬픔을 위로하기를 원하신다. 당신이 식사할 때든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라도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라. 잠깐잠깐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다. 당신은 크게 외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보다 더 가까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요한 웨슬리는 자신이 경건한 지를 확인하기 위해 자신에게 다음 7가지를 물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1. 항상 기도하는가?
2. 매순간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가?
3. 모든 경우에 감사하는가 ?
4. 욕심내는 것은 없는가?
5. 두려워하는 일은 없는가?
6. 내 중심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가?
7. 무슨 말이나 일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가?
우리가 성령의 도움으로 더욱 하나님 앞에 서려고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경건함 더욱 충만하게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다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답다는 것은 우리 안에 자신과의 관계에서 신중함 곧 자제력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의로움과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경건함을 갖추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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