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막 8:11~13)
요8:12 말씀처럼,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어둠에 다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생명의 빛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빛 가운데로 행하다가, 장차 빛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지 아니하는 사람은 생명의 빛을 받지를 못합니다. 따라서 그 사람은 계속해서 어둠에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는 바깥 어두운 데 내어 쫓겨서, 거기서 영원토록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빛과 어둠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결정됩니다. 엡5:8 말씀과 같이, 예수님 밖에 있으면 어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있으면 빛입니다. 그러니까 어둠에서 벗어나 빛이 되는 방법은 오직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길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리새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면서, 예수님을 배척하며 예수님을 대적했습니다. 막3:6 말씀처럼, 이미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힐난하며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너무도 완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버리셨습니다. 그들을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으로 오셨건만,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생명의 빛을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어두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계속해서 어둠에 다니다가, 바깥 어두운 곳에 영원히 던져짐을 당해야 했습니다.
반면에 오늘 본문 바로 뒤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들도 본시는 어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둠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생명의 빛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비추시는 생명의 빛을 우리 모두 기쁨으로 받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 살다가, 빛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어둠은 어둠과 어울립니다(11절).
어둠은 빛을 미워합니다. 어둠은 빛을 대적하기 위해서, 또 다른 어둠과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어울립니다.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평소에는 원수같이 지내던 사이라도 얼마든지 한 편이 될 수 있습니다.
막8: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한 동안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데리시고, 갈릴리를 떠나 이방 땅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방 땅에 있으면서, 예수님은 유대인들만의 구주가 아니라 이방인들을 포함한 온 세상의 구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기 때문에, 그 이후 그들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도 그들이 맺은 열매의 일부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 절인 막8:10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마15:39 말씀과 같이, 그 곳은 마가단 지경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 곳은 갈릴리의 게네사렛 땅에서 조금 남쪽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다시금 유대인들이 사는 지방으로 되돌아오신 것입니다. 그 소식은 곧 그 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것입니다. 그러자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된 대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로 나왔습니다.
그들이 나온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그들은 예수님을 힐난했습니다. 물론 이 때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비난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마치 광야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넘어뜨리려 했던 것처럼, 그들도 예수님을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악의를 품고서, 예수님을 대적하러 나왔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둠이었습니다. 어둠인 그들은 빛이신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나와서, 예수님을 힐난했습니다. 괜스레 트집을 잡으며 비난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바리새인들만 예수님에게 나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마16:1 말씀에 의하면, 이 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이것은 무척이나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행23:7~8에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으면서, 자기는 부활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사이에 다툼이 생겨, 공회가 양편으로 나누어졌습니다. 이유는 그들의 신학적 입장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부활도 있고, 천사도 있고, 영도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신학적인 입장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서로 간에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에 따라 정결을 유지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당연히 그들은 자기들의 땅에서 이방인들을 내쫓아버리기를 바랐습니다.
이와는 달리 사두개인들은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성전에서 제물로 드려질 짐승을 팔며, 또한 성전세로 바쳐질 돈을 바꾸는 일 등을 통해서 많은 이득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두개인들은 로마인들의 권력을 등에 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로마에 의해 세움을 받은 헤롯 왕가와도 손을 잡았습니다. 이와 같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서로 간에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서로를 원수같이 여기면서, 서로 미워하며, 서로 다투며, 서로 대적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만큼은 그들이 같은 목적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빛을 대적하기 위하여, 어둠과 어둠이 함께 뭉친 것입니다.
마16:1에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앞에 정관사가 하나만 붙어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서로 섞여서 완전히 하나로 뭉쳐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어둠은 어둠과 어울립니다. 이것이 바로 어둠이 보여주는 첫 번째 특징입니다.
이 시간 우리들도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처럼, 끼리끼리 모여서 하나님의 종과 예수님의 교회를 힐난하는 어둠의 자리에 앉지를 마십시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비추시는 생명의 빛을 환하게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어둠은 점점 더 깊어집니다(11~12절).
어둠은 빛을 미워하며, 어둠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어둠은 어둠과 어울립니다. 그러다 보니 그 어둠은 점점 더 깊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둠은 점점 더 깊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어둠이 보여주는 두 번째 특징입니다.
막8: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에게 표적을 구했습니다. 구약성경 사사기 6장을 보면, 기드온도 표적을 구했습니다. 또한 열왕기하 20장에서는 유다 왕 히스기야도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표적을 구할 수는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의도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서, 예수님에게 표적을 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에게 표적을 구했던 것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넘어뜨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하게 보여줄 결정적인 증거를 자기들에게 보이라고 예수님에게 요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그들은 생트집을 잡았던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수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각종 병이 든 사람들을 다 고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들도 내쫓으셨습니다. 떡과 물고기를 창조하셔서, 큰 무리를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죽은 자도 다시 살리셨습니다.
요3:1~2 말씀을 보면,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예수님에게 와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들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러한 니고데모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임을 이미 인정했습니다. 따라서 사실 그들은 예수님에게 더 이상의 표적을 구할 필요가 전연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지금까지 행하신 수많은 표적들을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 아니라, 그저 땅에서 일어나는 표적일 뿐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마12:24을 보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고 귀신을 쫓아낸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알세불은 사탄의 별명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예수님이 사탄의 힘을 빌어서 땅에서 일어나는 표적들을 행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었습니다. 막3:29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영원한 죄에 빠진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막8: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심히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너무도 완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면서, 그들을 향하여 이와 같이 물으셨습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이 때 예수님은 “어찌하여 너희가 표적을 구하느냐?”고 묻지를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단지 그 세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을 뿐입니다.
요1:5 말씀처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또한 요1:11 말씀처럼, 빛이신 예수님이 자기 땅에 오셨지만 자기 백성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조차도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막8:38을 보면,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음란한 여인이 그의 남편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그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르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또한 막9:19을 보면,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그 많은 표적들을 보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총체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마16:2~3을 보면, 예수님은 여기서 이와 같은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기상학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해야 할 영적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세례 요한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메시야가 그들 가운데 오셨건만, 그들은 메시야를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의 의미도, 또한 예수님의 가르치심도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시대의 표적을 전연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마23:16에서 예수님이 질책하신 것처럼, 그들은 눈 먼 인도자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순전하게 전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는 시국강연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을 가르치는 곳도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눈 먼 인도자라는 질책을 예수님에게서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매우 강한 어조로 말씀을 이어나가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 또한 믿음이 없는 세대에 더 이상의 표적을 주지 아니하시겠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충분한 표적을 주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옥에 갇혔을 때, 그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그들은 예수님에게 그가 메시야이신가를 밝히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눅7:22에서 예수님은 이와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러한 것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밝히 보여주는 표적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분명한 표적들을 보면서도, 그 세대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또 다른 표적을 주신들, 과연 그들이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분명한 답변을 주셨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서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부자가 애원했습니다. “나사로를 내 형제들에게 보내어,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러나 눅16:31에 기록된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이미 충분한 표적들을 행하셨습니다. 그 표적들을 보고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예수님이 다른 표적을 주신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세대에 더 이상 표적을 주지 아니하시겠다고 단언하셨습니다.
마16:4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 주실 표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요나의 표적이었습니다. 요나가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나온 것처럼, 예수님도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요나의 표적, 곧 부활의 표적을 행하셨을 때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다 돌이키고서, 예수님을 믿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마28:12~13 말씀처럼, 그들은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거짓말을 하도록 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의 어둠은 점점 더 깊어만 갈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둠이 보여주는 두 번째 특징입니다. 어둠은 빛을 거부하기 때문에, 그 어둠은 점점 더 깊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둠의 마지막은 어떻게 됩니까?
셋째로, 어둠은 버림을 받습니다(13절).
어둠의 첫 번째 특징은 무엇입니까? 어둠은 어둠과 어울리는 것입니다. 어둠의 두 번째 특징은 무엇입니까? 어둠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어둠의 마지막 세 번째 특징은 어둠이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습니다.
막8: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여기의 그들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을 힐난하며,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여기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은 어둠이었습니다. 그들은 빛이신 예수님을 끝끝내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더 이상 그들에게 빛을 비추지 아니하시고, 그들에게서 빛을 거두어버리셨습니다.
로마서 1장에 자주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예수님은 그들을 어둠에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그들을 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때부터 예수님은 그들을 신랄하게 정죄하시며, 그들을 엄하게 심판하시는 말씀만을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큰 경고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주시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여,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빛을 계속해서 거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떠나 버리십니다.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예수님이 떠나가시면, 우리의 생명은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거부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처럼, 우리도 바깥 어두운데 내어쫓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어두운데서 영원토록 슬피 울며 이를 갈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본시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서, 돌이켜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둠에서 벗어나서 빛이 되었습니다.
또한 행6:7 말씀을 보면,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 당시 제사장들 가운데는 사두개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돌이켜 예수님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어둠에서 벗어나 빛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지 맙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어둠에서 벗어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는 일에 정성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다시금 오늘 본문으로 되돌아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오르셨습니다. 물론 그 배에는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막8:22 말씀대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바다 건너편 벳새다로 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우리도 어디든지 예수님을 따릅시다. 그리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빛을 받아서, 날마다 빛 가운데로 걸어갑시다. 아울러 우리의 빛 된 삶을 통해서, 날마다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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