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을 고치신 예수님! (막 8:22~26)
요9:5에서 예수님이 친히 밝히신 바와 같이,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그렇지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빛이신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자연히 그들의 어둠은 점점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영원히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 앞에 있는 막8:13 말씀대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떠나셨습니다. 그들이 끝끝내 예수님을 거부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을 버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배에 오르셔서, 바다 건너편 벳새다로 가셨습니다.
그 배 안에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도 영적으로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점점 더 밝은 빛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더니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생명의 빛을 받아서,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벳새다에 이르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벳새다에서 한 맹인을 고치신 내용입니다. 이 내용이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를 않습니다. 오직 마가복음만이 유일하게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오늘 본문에는 아주 특이한 사실이 한 가지 나옵니다. 예수님은 어떤 병자든지 단번에 그리고 온전하게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맹인의 경우, 예수님은 특이하게도 두 단계로 나누어서 점진적으로 그를 고치셨습니다.
이와 같은 특이한 사실이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는 영적으로 눈 먼 맹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빛이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비추시는 환한 빛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있는 어둠이 순식간에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계속해서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들은 점점 더 밝은 빛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마침내 생명의 빛을 온전하게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맹인은 점차 그리고 온전히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점점 밝은 빛 가운데로 나아가 생명의 빛을 온전히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이제는 우리도 그 동안 멀리하던 어둠의 일들을 온전히 벗어버립시다.
이제는 빛의 갑옷을 입고, 힘써 어둠을 물리칩시다. 이제는 빛이신 예수님의 군병으로, 어둠의 권세인 마귀를 온전히 무찌릅시다. 그리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온 누리에 밝히 드러냅시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벳새다에 이르신 예수님(22절).
막8: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서쪽에 있는 달마누다 지방에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떠나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갈릴리 호수 북동쪽에 있는 벳새다로 향하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떡 가져오기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식사 때 먹을 떡 때문에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아시고, 예수님은 그들의 관심을 육적인 일에서 영적인 일로 옮겨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사두개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외식주의와 사두개인들의 자유주의와 헤롯의 세속주의에 영향을 받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여덟 가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인내하시면서, 차근차근 그들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마침내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를 밝히 깨달았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태운 배가 벳새다에 당도했습니다. 벳새다는 갈릴리 호수 북동쪽에 위치한 어촌 마을이었습니다. 벳새다는 요단 강을 사이에 두고서, 예수님의 본 동네라 불리던 가버나움과 서로 마주 대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이 곳 벳새다에서 그의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치시기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벳새다에 이르셨을 때,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다.
벳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명성과 예수님의 권능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얼마 전 예수님은 바로 그 곳에서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 중에 있는 병자들도 고쳐주셨습니다.
따라서 벳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병이라도 고치시고, 또한 어떠한 장애라도 성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이미 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맹인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에게 무엇을 구했습니까? 예수님이 그에게 손을 대시기를 구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그에게 손을 대시면, 그가 눈을 떠서 밝히 보게 되리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요9:1~2에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실 때였습니다. 그 길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그러니까 그 당시 사람들은 사람이 병들거나 몸에 장애가 생기면, 그것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벌을 받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병자나 장애자를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그들과 접촉하기를 꺼렸습니다.
바리새인들도 병자나 장애자의 몸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사두개인들도 그들에게 손을 대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랍비들도 그들에게 손을 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병든 자나 장애가 있는 자의 몸에 기꺼이 자신의 손을 대셨습니다.
예컨대 막1:31을 보면, 예수님은 열병으로 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손잡아 일으키셨습니다. 또한 막1:41을 보면, 예수님은 나병환자의 몸에도 손을 대셨습니다. 또한 막5:41을 보면,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도 그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히4:15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항상 우리를 어루만져 주십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우리도 만져 주셔서, 우리에게도 나음이 있고 회복이 있고 위로가 있을 줄 믿습니다.
둘째로, 맹인을 고치신 예수님(23~25절).
예수님은 여러 맹인들을 고치셨습니다. 때로는 말씀만으로, 때로는 눈을 만져주심으로, 때로는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심으로 고치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단 한번도 같은 방법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그만큼 각 개인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막8:23 (1)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2)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3) 눈에 침을 뱉으시며 (4) 그에게 안수하시고 (5)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은 특이하게도 이 때의 맹인만큼은 두 단 계로 나누어서 점진적으로 고치셨습니다. 여기에 먼저 첫 단계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첫 단계를 다섯 과정으로 세분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맹인의 손을 붙잡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구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이 맹인에게 손을 대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간구에 응답하셔서, 맹인의 손을 붙잡아주셨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의 긍휼은 무한하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그 맹인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모여서 소란 떠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맹인이 보다 편안한 상태에서, 예수님에게 마음을 집중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맹인의 눈에 침을 뱉으셨습니다. 당시에는 사람의 침을 이용해서 치료하는 법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자신의 손가락에 침을 뱉어, 그의 눈에 바르셨을 것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그의 눈을 고쳐주시겠다는 뜻을 표하셨습니다.
넷째, 예수님은 그에게 안수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5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그의 눈에 다시 안수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때 예수님은 양손을 그의 두 눈에 대신 것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그의 두 눈을 고쳐주시겠다는 뜻을 재차 표하신 것입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그에게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이 몰라서 물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맹인이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그의 시력을 얻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이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막8: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예수님의 질문을 듣고서, 맹인은 무엇이 보이는지 쳐다보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은혜로 그가 시력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무엇이 보이는지 확인하려고 쳐다보았습니다.
그가 쳐다보았을 때, 우선 그의 눈에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의 눈앞에 계신 예수님이 보였을 테고, 또한 주변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움직이는 것도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보인다고 예수님에게 대답했습니다.
곧이어 그는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본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맹인이었지만, 나무와 사람 사이에 있는 유사점과 차이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컨대 나무와 사람은 똑같이 수직으로 서있습니다. 그러나 나무와는 달리, 사람은 걸어 다닙니다.
그러니까 그가 본 것은 나무가 아니라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튼 이제 그는 어느 정도의 시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눈의 초점이 정확하게 맞추어지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치유의 두 번째 단계를 행하셨습니다.
막8: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1)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2) 나아서 (3)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예수님은 그의 눈에 다시 안수하셨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이 두 번 안수하셔서 병이나 장애를 고치신 적은 이번 경우가 유일합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자신의 양손을 그의 두 눈에 갖다 대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결과가 세 가지로 설명됩니다.
첫째, 그가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이전에 그는 단순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여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눈의 초점이 흐릿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눈의 초점을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습니다.
둘째, 그의 두 눈이 나았습니다. 이제 그의 두 눈은 완전하게 고쳐졌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새로운 두 눈을 창조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두 눈은 오른쪽도 2.0, 그리고 왼쪽도 2.0 이상의 완벽한 시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셋째, 그는 모든 것을 밝히 보았습니다. 이제 그는 가까운 것도 또한 먼 것도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서있는 것도 또한 걸어 다니는 것도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을 걸어 다니는 나무와 같이 보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예수님은 두 단계로 나누어서 점진적으로 맹인을 고치셨습니다. 이 사실이 상징하는 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점진적으로 어둠에서 벗어나 빛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온전한 생명의 빛을 얻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뒤에 있는 막8:29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베드로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에게 자신들의 신앙을 이와 같이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그들은 영적 어둠에서 벗어나서, 밝은 빛 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 어둠에서 온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습니다. 그러다가 베드로는 예수님에게서 크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막9:31에서 예수님은 또다시 그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막9:32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다가는 예수님에게서 크게 야단 맞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온전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그리스도의 능력은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당하셔야 할 고난은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로잡히실 때, 그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뿔뿔이 도망쳤습니다. 그 후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을 찾아주셨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예수님을 위하여 기꺼이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의 영적 수준은 어떠합니까? 위로, 치유, 축복의 말씀만을 듣기 좋아합니까? 그렇다면 아직은 영적 시력이 온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직은 기껏해야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우리를 다시금 어루만져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이제는 모든 것을 밝히 보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십자가와 부활을 동시에 밝히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이 되기 바랍니다.
셋째로, 벳새다를 심판하신 예수님(26절).
막8: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맹인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이제 그는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에게 당부하시기를,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적을 행하신 후, 종종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예컨대 막1:44에서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신 후에, 또는 막5:43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신 후에, 또는 막7:36에서 귀머거리를 고치신 후에, 예수님은 그와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는 예수님이 그에게 행하신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막8:30과 막9:9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도 같은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또한 그의 제자들에게 그와 같은 경고를 하셨습니까? 아직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기 이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령 그들이 나아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알리더라도,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작 병 고치시는 자, 또는 이적을 행하시는 자 정도로만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바라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따라서 복음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포함되어야 했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있고 난 후, 예수님은 완전히 다르게 명하셨습니다. 그 때에는 복음의 내용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막16:15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분명히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이적 때문에 몰려오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그의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벳새다를 심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마11:21~22을 보면, 예수님은 지옥에서 벳새다 사람들이 당할 고통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당할 고통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이방 도시였습니다. 그 곳에는 이방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벳새다는 유대인들이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이 곳에는 회당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벳새다가 두로와 시돈보다도 더 큰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은 벳새다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있는 병자들도 다 고쳐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벳새다에서 놀라우신 권능들을 행하셨지만, 벳새다 사람들은 회개하며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마15:21~22 말씀처럼,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을 때입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예수님에게 나아와 그의 딸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의 믿음을 시험하신 후,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그의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러니 심판 날에 벳새다가 당할 고통이 두로와 시돈보다 더 큰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벳새다에서 맹인을 고쳐주셨지만, 그에게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벳새다를 떠나셨습니다.
벳새다에서 예수님은 맹인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맹인의 두 눈에 자신의 손을 대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맹인을 온전하게 고쳐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무한하신 긍휼을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데리시고 벳새다를 떠나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벳새다에 내리신 심판의 심각성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긴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한 맹인을 고쳐주셨습니다. 맹인이 고침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은혜였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눈을 계속해서 만져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불쌍히 여기시며, 우리의 심령을 계속해서 어루만져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있는 어둠을 물리치시며, 우리를 점점 더 밝은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생명의 빛을 온전히 얻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늘 빛 가운데로 행합시다. 또한 심판의 심각성을 생각하며, 이제는 모든 어둠의 일들을 온전히 벗어버립시다. 오직 우리의 빛 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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