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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세! (눅 23:47~49)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세! (눅 23:47~49)

 

오늘 본문은 단 세 절로 짤막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냥 지나쳐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우리는 이 가운데서 영적 진리를 풍성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성령님이 우리를 영적 진리의 깊은 자리로 인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첫 절에 백부장이 나옵니다. 가운데 절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가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는 예수님을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여자들이 나옵니다. 

이들 모두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현장에서 목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때 이들이 보여준 반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반응을 통해서,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에 참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진정으로 회개합시다.

아울러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합시다. 그리고 이제는 단호하게 우리의 육체를 그 정욕과 탐심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도록 합시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백부장의 반응(47절).


눅23:47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마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여기에 나오는 백부장은 로마의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일백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있는 장교였습니다. 마27:54 말씀처럼, 그가 맡은 임무는 예수님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예수님은 죄수로 사로잡히셨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은 총독 빌라도의 명령에 따라,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서 예수님을 체포해왔을 것입니다. 그런 후 그는 유대인들이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을 고발하는 소리를 다 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는 빌라도와 예수님 사이에 있던 대화도 들었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예수님을 놓아 줄 경우, 유대인들이 민란을 일으킬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유대인들이 요구하는 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백부장과 그의 부하들은 예수님을 채찍질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그 대신 낡은 홍포를 입혔습니다. 그리고는 가시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웠습니다. 또한 그들은 갈대를 예수님의 오른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런 후에 그들은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말하자면 그들은 마치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처럼 짐짓 꾸며놓고서, 갖가지 방법으로 예수님을 희롱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일어서면서 예수님에게 침을 뱉었습니다. 곧 이어 그들은 예수님의 오른손에 있는 갈대를 빼앗아, 그것으로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의 머리를 쳤습니다. 이와 같이 온갖 희롱을 다 한 후, 그들은 예수님에게 입힌 홍포를 벗기고 예수님의 옷을 도로 입혔습니다.  

그런 후에 그들은 예수님을 끌고서 골고다로 갔습니다. 그들은 그 곳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누었습니다. 그런 후 그들은 거기 앉아 지키며, 예수님이 숨을 거두실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한 행악자에게 구원을 약속하시는 말씀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낮 열두 시쯤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지 세 시간쯤 지났을 때입니다. 갑자기 대낮에 해가 빛을 잃었습니다. 그러더니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그 어둠은 예수님이 숨을 거두실 때까지, 세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크게 외치셨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숨지셨습니다. 이와 함께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졌습니다. 또한 지진이 일어나서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습니다. 무덤들도 열렸습니다.

마27:54 말씀을 보면,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했다고 기록합니다. 이 때 그들이 심히 두려워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그것은 지진이나 어둠과 같은 자연적인 현상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러했더라면, 그들은 얼른 그 자리를 피해서 도망쳤을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은 그 곳에 일어난 초자연적인 현상, 곧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심히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백부장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물론 그의 부하 군병들도 다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때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진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연히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를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예수님은 정녕 의인이신 데,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이신 데, 자기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27:54 말씀과 같이, 그들의 입에서는 이와 같은 고백이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이는 아마도, 이는 어쩌면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예수님께 구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그는 이 말을 하고서, 예수님에게서 구원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백부장과 그의 군병들도 그들의 신앙 고백으로 구원받았다고 보아도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겠습니까? 예수님은 숨을 거두시기 전,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바로 이 말씀을 듣고서,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렇습니다. 혈육으로는, 사람의 힘으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알게 해 주셔야 합니다. 고전12:3 말씀과 같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시라 할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백부장과 그의 군병들을 사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이 때 성령님이 그들 가운데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자신들의 입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성삼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나는 너무도 큰 죄를 범했어. 그러므로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나를 크게 벌하실 꺼야.” 행여 이런 생각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십자가에 달린 강도도, 또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백부장과 그의 군병들도 다 사함을 받았습니다.

롬5:20 말씀처럼, 죄가 더한 곳에 은혜는 더욱 넘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우리의 죄보다 훨씬 더 크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우리의 추하고도 흉악한 죄들을 모두 사하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에게 나아갑시다. 죄인 중에 괴수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용서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를 든든히 붙듭시다. 그리하면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가 범한 더러운 죄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씻어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구경하러 모인 무리의 반응(48절).


눅23:48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여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무리가 나옵니다. 그들은 참으로 변덕스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감정은 극에서 극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감정은 너무나도 기복이 심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였습니다. 그들은 겉옷을 벗거나, 나뭇가지를 베어서 길에 폈습니다. 그리고는 환희에 찬 소리로 크게 외쳤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그러던 그들이 빌라도의 뜰에서는 너무나도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극한 분노에 사로잡혀서, 성난 군중으로 돌변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빌라도를 향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더니 오늘 본문에서 그들의 감정은 또다시 바뀌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낮에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지진으로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인간적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때 그 자리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과 같이, 그들은 그 된 일들을 보면서 다 자신들의 가슴을 쳤습니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깊은 죄책감도 들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두려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빌라도 앞에서 말하기를, 예수님의 피를 그들과 그들 자손에게 돌리라고 소리소리 질렀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감정이 어우러져, 그들은 자신들의 가슴을 쳤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전부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48절 끝 부분처럼, 그들은 그저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지도 않았고, 예수님에게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제는 구경거리가 다 끝났습니다. 태양도 다시금 빛을 얻어, 온 땅에 임했던 어둠도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땅도 진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가슴을 치기만 했을 뿐, 그냥 그대로 자기들의 일상적인 삶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고후7:10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이 구별되고 있습니다. 백부장과 그의 군병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구경하러 모인 무리는 세상 근심만 했을 뿐입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룹니다. 세상 근심은 자신을 죽일 뿐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근심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가룟 유다가 그러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까? 물론 나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고 생각하며, 마음 아파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애통하는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나의 가슴을 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또다시 분주한 세상살이로 되돌아가지는 않습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만 염려하면서,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지는 않습니까?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룰 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구경하러 모인 무리는 다 가슴을 치면서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잠시 그 후에 되어진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후, 오순절 날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분명 그 자리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가슴을 치며 돌아갔던 사람들도 상당수가 섞여있었을 것입니다. 행2:23 말씀과 같이, 그 때 베드로는 그들을 향하여 이와 같이 외쳤습니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느니라.”

그 말에 그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물었습니다. 행2:38과 행2:40에서 베드로는 이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그러자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 날에 믿는 자의 수가 삼천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그들은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경만 하다가, 세상살이로 되돌아가는 모습이 되지 맙시다. 이 시간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반드시 이루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의 반응(49절).


눅23:49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마27:56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오늘 본문에서 마지막 세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예수님을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여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자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장사하는 일에 쓰임을 받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나 니고데모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을 아는 자들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갈릴리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여자들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인물들은 갈릴리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여자들입니다.

마27:56 말씀을 보면,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 가운데 특별하게 세 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맨 먼저 나오는 여자는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라는 뜻입니다. 막달라는 갈릴리 호수 서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해변 마을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독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 번째 여성, 곧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누구의 어머니라고 불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세 번째 여성, 세배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곧 세배대의 아내처럼, 누구의 아내라고 불리지도 않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여자는 독신으로 지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여자는 결혼해서 아내의 역할과 어머니의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독신으로 지내는 여자들도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고, 또한 가족을 가진 여자들도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들 여자들은 갈릴리로부터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때는 유월절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의 가족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왔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물질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쓸 것을 공궤하면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을 맞이해서,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서 갈릴리를 떠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서 베레아로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서 여리고로, 또한 베다니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런 후에 그들은 변함없이 예수님을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앞까지 왔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 말씀대로, 그들이 처음에는 다 멀리 서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백부장과 그의 군인들이 예수님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들은 점점 더 담대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예수님을 지키는 군인들도, 예수님을 조롱하는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향한 그들의 애틋한 사랑을 결코 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밑으로 가까이 갔을 때입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은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그의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맡기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듯 갈릴리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여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충성스럽게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 후 그들은 예수님의 무덤까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들의 충성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맨 먼저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갈릴리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여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어쩌면 그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을 아는 자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밝히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단 한 사람, 곧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서는 아무도 그 자리에 없었던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사로잡히실 때, 그들은 순식간에 감람나무 숲 속으로 자신들의 몸을 날려 숨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그 길로 잠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에 그들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와 같이 변화된 사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아마도 빙그레 웃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사도들의 변화된 모습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상은 예수님을 대적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우리도 비겁하게 숨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온전하게 변화 받은 것처럼, 우리도 온전하게 변화 받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성찬에 참여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경만 하다가 돌아가는 모습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은혜에 깊이 감사합시다.

아울러 우리의 더러운 죄를 진정으로 회개합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로우신 손을 붙들고, 날마다 예수님을 따라 의로운 길을 걸어갑시다. 그러면서 갈릴리로부터 예수님을 따라온 여자들처럼, 우리도 천국 가는 그 날까지 변함없이 충성스럽게 예수님을 따릅시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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