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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에 충실하신 예수님! (막 9:9~13)

성경에 충실하신 예수님! (막 9:9~13)

 

요10:35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성경은 폐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도 폐하여짐이 없이 그대로 다 응하여집니다.

오늘 본문 12절에서, 예수님은 “기록하기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 13절에서도, 예수님은 “기록된 바와 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디에 기록되었다는 뜻입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가 절대적임을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가 절대적이기에, 예수님은 언제나 성경에 충실하셨습니다. 그 단적인 실례를 한 가지만 들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이 세 번에 걸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광경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시기 위하여 단 한번도 임의로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마4:4과 7절 그리고 10절을 보면, 예수님은 세 번 모두 “기록되었으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성경에 절대적인 권위를 두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성경에 충실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성경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복음의 본질입니다(9~10절).


막9: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 곳에서 그들 세 사람은 아주 신비스러운 체험을 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 곧 낙원에 이끌려 갔던 것에 버금갈 만큼 매우 황홀한 체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해 같이 빛났습니다. 예수님의 옷도 광채가 나며, 빛과 같이 매우 희어졌습니다. 말하자면 이 때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로서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 때 문득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합친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니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죽으심을 그들에게 증언했던 것입니다.

때는 초막절이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엉겁결에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의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지 말고, 그 곳에 머물며 영광을 누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습니다. 홀연히 빛난 구름이 일어나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덮었습니다. 그 구름 속에서 하나님은 친히 그의 음성으로 예수님을 증언하시면서,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본 것을 다른 제자들에게도 알려주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예수님은 이같이 경고하셨습니다.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막1:43~44에서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신 후에도,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또한 막5:43에서 예수님은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신 후에도, 그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많이 경계하셨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이적을 행하신 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종종 경고하셨습니다. 막8:29~30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후에도, 예수님은 똑같이 경고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 후에도, 똑같은 경고를 하셨습니다.   

제사장 사가랴를 생각해보십시오.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가, 그는 한 동안 벙어리로 지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잉태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이 때 제자들도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그러한 경고를 하셨습니까? 그 당시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정치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모든 대적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구원하시리라고 여겼습니다.

이미 많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꾀하다가, 로마에 의해서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얼른 오셔서, 이스라엘 땅에서 로마군도 또한 분봉 왕들도 다 내쫓아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그릇된 시도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이적을 베푸셨을 때입니다. 요6:15 말씀처럼,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세워, 나라의 독립을 얻어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만일 제자들이 나아가서 이와 같이 증언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모세와 엘리야가 증언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빛난 구름 속에서 하나님이 증언하시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다시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때에는 그들이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로마를 정복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를 정복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면,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밝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때까지는 그들이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사람들은 십자가와 부활이 그리스도의 본질적 사역임을 확연히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 비로소 제자들에게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복음의 본질은 십자가와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없이는 죄 사함이나, 구원이나, 천국에서 영생을 누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병이 낫습니다. 문제도 해결이 됩니다.” 우리는 입을 열어 그런 말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의 본질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와 부활이 없이는 그런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막9: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세 제자는 예수님이 경고하신 말씀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눅9:36 말씀처럼, 그들은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 그들은 그 본 것을 확실하게 증언했습니다. 

야고보는 일찍 목 베임을 당했기 때문에, 아쉽게도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벧후1:16~18에서, 그 때 그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생생하게 증언했습니다. 요한도 요1:4에서, 그 때 그가 본 예수님의 영광을 밝히 증언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산에서 내려오는 제자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면, 구태여 예수님이 죽으셔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는 것이 무엇일까 하면서 서로 문의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은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하셔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로서 죽임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습니다. 변화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초막을 짓고 거기에 머무르기를 원했습니다. 

막9:31에서 또다시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막9:32 말씀처럼,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했습니다. 베드로처럼 야단을 맞으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예수님의 죽으심을 믿고 싶지도 않았으니까요.

막10:33~34에서 예수님은 다시 한번 더 자신이 죽임을 당하셔야 할 것을 밝히셨습니다. 그러자 바로 곧이어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나아와, 자기들을 예수님의 영광 중에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이렇듯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들도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 제자들도 산에서 내려오면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이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서 서로 물어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고난이 없는 영광만을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장래의 영광을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을 믿음으로 이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성경의 권위입니다(11~12절).


막9: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이 때 산에서 내려오는 제자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로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서기관들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서기관들은 장로들의 전통에 의거하여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근거해서 그러한 말을 했습니다. 예컨대 말3:1 말씀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오시기전 그의 길을 준비할 사자가 먼저 보내심을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사40:3 말씀을 보면, 그 사자를 가리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말4:5 말씀은 그 사자가 선지자 엘리야임을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함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기관들의 의도는 뻔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엘리야가 오지 않았으니까.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이에 따라 서기관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 막8:28 말씀처럼, 그런 사람들은 기껏 예수님을 엘리야로 간주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해야 할 엘리야라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전 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대화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연히 이 때 그들의 마음에는 엘리야를 들먹거리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서기관들의 말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들은 종종 서기관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보다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 그런데 아직은 엘리야가 오지 않았다. 그러니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이번 기회에 서기관들의 주장에 대해서 예수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막9: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막3:22 말씀처럼, 그들은 예수님에게 바알세불 곧 귀신의 왕 사탄이 지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그들의 말을 그대로 인정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말4:6 말씀처럼, 엘리야가 그리스도보다 앞서 와서 회복의 역사를 일으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함이 옳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의 증언도 들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이 친히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시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신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심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 가지 문제만 남습니다. 그리스도보다 앞서 와야 할 엘리야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기관들의 말을 인용해서, 예수님에게 엘리야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그대로 기록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엘리야가 먼저 온 것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잠시 보류하셨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또 다른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번에는 먼저 와야 할 엘리야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12절 하반부입니다.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성경은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가 받을 고난과 멸시를 기록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이사야 53장입니다. 실제로 사53:3은 멸시라는 단어를, 사53:4은 고난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사53:5은 그리스도가 받을 멸시와 고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로서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엘리야는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했습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는 절대적입니다. 그런데도 행여 우리는 성경을 시시하게 여기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사람의 말 듣기를 더 좋아하지 않습니까? 이는 잘못된 태도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성경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성경의 성취입니다(13절).


막9: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서기관들은 아직도 엘리야가 오지 않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서기관들의 주장과는 달리, 예수님은 이미 엘리야가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외치는 자의 소리가 먼저 와서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선지자 말라기는 엘리야가 그리스도보다 앞서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들의 입에 이와 같은 말씀을 담아주신 분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엘리야가 그리스도보다 먼저 와서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며 모든 것을 회복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엘리야가 이미 왔노라고 친히 선포하셨습니다.

일찍이 예수님은 마11:14에서, 오리라 한 엘리야가 바로 세례 요한인 것을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마17:12 말씀처럼, 엘리야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제자들조차도 아직까지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이미 온 엘리야를 알아보지를 못했습니까? 다시 말해서 왜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엘리야임을 깨닫지 못했습니까? 사람들은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가 그 모습 그대로 다시금 하늘에서 내려올 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요1:21을 보면,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세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내서 물었습니다. “네가 엘리야나?” 세례 요한의 대답은 “나는 아니라”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세례 요한은 하늘에서 다시 내려온 엘리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세례 요한이 엘리야가 될 수 있었습니까? 누가복음 1장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에게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그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임을 밝히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부르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천사는 태어날 세례 요한에 대해서 이와 같이 일러주었습니다. 눅1:17 말씀입니다.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이는 말4:5~6에 기록된 말씀과 동일합니다. 그러니까 천사 가브리엘이 전한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엘리야가 그리스도보다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리라고 기록된 성경이 바로 세례 요한에 의해서 그대로 응하여 질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과연 막1:6 말씀처럼,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복장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막1:2~3 말씀처럼, 그는 그리스도보다 앞서 보내심을 받고 그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막1:4~5 말씀처럼,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전파함으로 모든 것을 회복했습니다.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그리스도 앞에 먼저 왔습니다. 그리고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함으로 모든 것을 회복하며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가 그대로 응하여졌습니다.

다시금 오늘 본문으로 되돌아옵니다. 오늘 본문 13절 하반부 말씀입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왕상19:1~10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호하셔서, 그를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리셨습니다. 엘리야로 온 세례 요한도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습니다. 그러더니 분봉 왕 헤롯과 그의 아내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의 목을 베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마17:13은 이와 같이 기록합니다.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과연 엘리야인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밝히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왔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람들은 그리스도보다 먼저 온 엘리야를 함부로 대우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버린 바 되시고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셩경에 기록된 그대로 모든 것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오실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일점 일획도 폐하여지지 않고, 그대로 다 성취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성경을 사랑하며 성경에 충실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칭찬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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