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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도호 14:9

여호와의 도

 

호 14:9

 

   호세아서는 하나님께서 선지자 호세아에게 이해하기 힘든 명령을 하시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호 1:2을 보면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선지자에게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와 결혼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니까 요즘 표현으로 바꾸어 보면 이제 막 목사 안수를 받고 본격적으로 목회 현장에 뛰어든 젊은 목사에게 몸을 팔던 접대부와 결혼하라는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목사가 어찌 그런 여성을 아내로 맞을 수 있겠습니까? 목회 할 때 어느 교회가 그런 여성을 목사 사모로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너무도 무리한 명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하는 마음, 안타까워하는 마음, 그리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호세아로 하여금 느껴보게 하시려고 이런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호 2:19-20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와 같이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신부로 맞아 장가들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호 1:2 후반부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이 신랑인 여호와를 버리고 외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에게 배반당한 신랑처럼 지금 하나님의 마음이 배신의 아픔으로 크게 상처를 받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호세아에게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삶 속에서 느껴보도록 신랑으로서 음란한 여자를 신부로 맞아 장가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고멜’이라는 음란한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르엘’이라는 아들, ‘로루하마’라는 딸, 그리고 ‘로암미’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고멜은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다른 남자 품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호세아는 그제 서야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고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호 3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더 놀라운 명령을 하셨습니다.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의 품으로 가버린 그 여자를 찾아가서 데리고 와서 다시 부부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가정을 버리고 아이까지 다 내팽겨 치고 도망쳐 버린 여인을 찾아가서 데리고 와서 다시 가정을 이루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과연 이럴 수 있을까요?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따라 떠나 버린 여인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가정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자기가 낳은 아이들을 매몰차게 버리고 도망쳐버린 여인을 찾아가 다시 데리고 와서 함께 살 수 있을까요? 이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그러나 호세아는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호 3:2을 보면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가지고 그 여인을 찾아갑니다. 이것은 당시 여종 한 사람의 몸 값 30 세겔 정도의 값어치입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고멜은 따라간 남자의 아내가 된 것이 아니고, 창녀나 종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 주고 창녀나 종이 돼 버린 자기 아내를 찾아온 것입니다.

   호세아는 이 일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뜨겁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 모든 일을 겪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체험한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슴 뜨겁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호세아서의 결론적 당부의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여호와의 도’를 지키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도’란 무엇일까요? 문자적으로는 ‘여호와께서 여신 길이’라는 뜻입니다. 풀이를 해 보면 ‘여호와의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길이요, 여호와께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 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여호와의 도라는 말씀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모세 오경인 신명기에도 나오고, 성문서인 시편이나 잠언에도 여러 차례 나옵니다. 심지어 신약에도 비슷한 표현으로 여러 차례 나옵니다. 그렇지만 저마다 각각 다른 문맥에서 이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여호와의 도라는 말은 호세아서의 문맥에서 그 뜻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호세아 선지자는 지금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호세아 선지자가 말하는 여호와의 도는 한 마디로 ‘신부의 길’이요 ‘아내의 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부인 하나님의 백성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도가 여호와의 아내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1. 여호와를 알아가는 길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저들이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도 저들이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사실 호세아는 자기가 음란한 아내 고멜과 살면서 겪은 삶의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된 하나님은 한 마디로 사랑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자기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자기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호세아가 볼 때 그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호 6:3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붙는 마음으로 이렇게 호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릅니다. 아직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주제 가운데 하나가 ‘조강지처’에 대한 것입니다. 작년 연말에 끝난 MBC 드라마 제목이 ‘위대한 조강지처’입니다. 그리고 몇년 전 SBS 방송이 방영한 드라마 제목이 ‘조강지처클럽’입니다.

  내용이 한 결 같습니다. 아내의 소중함을 모르고 바람을 피우거나 출세한 뒤 더 좋은 조건의 여자를 마음에 품는 남편들의 이야기입니다. 결국 조강지처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남편들이 몰락하게 되고,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저들이 공통적으로 후회하며 하는 말이 “내가 왜 몰랐던고! 아내의 사랑과 아내의 소중함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 이야기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 품에 있을 때 아버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잘 몰랐습니다. 아버지 품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잘 몰랐습니다. 아버지 품을 떠나보니 그제 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후회하고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호세아서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꼴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신들을 사랑하시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불붙는 마음으로 호소합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도를 따르려면 우선 여호와를 아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모르고는 여호와의 길을 걸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모르고는 여호와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더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2. 여호와만을 섬기는 길

   호세아서를 보면 호세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말 간곡하게 당부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께로 돌아갑시다’라는 것입니다. 호 6:1에서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호 14:1에서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곳에서 여러 차례 간곡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이미 자기가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호소한 일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자식들을 버리고, 가정을 내 팽겨 치고 다른 사내 품으로 떠나버린 고멜을 찾아가서 호소했습니다. ‘다 용서할 테니 돌아오라’, ‘몸값까지 내가 다 지불할 테니 돌아오라’ 그 때 그 안타까운 마음을 기억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갑시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외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인 하나님을 버려두고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것은 분명히 외도입니다. 아내로서 걸어서는 안 될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재혼전문 결혼정보회사 [온리 유]가 재혼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조사한 일이 있습니다. “배우자의 외도를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입니다. 남자들에게 1위는 ‘더 이상 다른 욕구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사랑해 주는 것’이라고 답했고, 반면에 여자들에게 1위는 ‘바람을 피우면 끝장이야’라고 평소에 위협해 두는 것이라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남녀 공히 2위는 ‘바람피울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다’이고, 3위는 ‘평소에 철저히 감시한다’라는 것입니다.

 

   사실 부부 관계에도 외도가 문제입니다. 부부가 한 평생 해로하려면 피차 외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외도하지 않도록 도와야 합니다. 서로 깊이 사랑하며 살아야 하고 외도할 경우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부부관계에서는 아내의 도, 남편의 도가 외도하지 않은 것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바람피우지 않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이고 관계를 지탱해 가는 일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의 도의 기본 중의 기본이 영적인 외도를 하지 않는 일입니다. 영적으로 바람피우지 않은 것입니다.

 

  지난 2013년 미국 기독교계의 시민단체인 [세계결혼 조우]는 미국 내의 최장수 부부로 81년을 해로한 당시 103살 된 남편 존 베타르와 98세 된 아내 앤 베타르 부부를 선정해서 발표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81년을 부부로 살아온 비결을 “늘 함께 하려고 노력해 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남편 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화목한 결혼생활의 비결은 언제나 아내의 말을 따르는 것"이라고 귀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평생 하나님만을 섬기려면 늘 하나님 곁에 있으려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늘 교회를 떠나지 말고, 예배 현장을 떠나지 말고, 기도 자리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해야 합니다.

 

3. 여호와 앞에 정직한 길

   오늘 본문에서 호세아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신부로서 걸어가는 아내의 길을 정직한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직하다’는 말은 원어를 보면 ‘야솨르’라는 말입니다. 곧고 올바른 상태를 말합니다. 거짓이 없고 진실하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한 말 다르고 뒤에서 하는 행동이 다른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언제는 이렇게 행동했다가 또 언제는 저렇게 행동하는 식으로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떤 상황 속에서도 늘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 언론 보도에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보도된 일이 있습니다. 아기가 정직한 사람과 정직하지 못한 사람을 분별한다는 것입니다. 캐나다 콩코디아 대학 심리학과의 관찰연구팀은 아기들은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분별하고 자기가 정직하다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섰을 때만 흉내를 낸다고 주장했습니다.

  연구팀은 아기의 분별력을 시험하기 위해 13개월에서 16개월 사이의 아기 60명을 대상으로 박스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포장만 멋있게 한 박스에는 아무것도 담지 않았고, 또 다른 박스에는 아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담아 뒀습니다. 아기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실험에 참여했습니다. 한 그룹은 계속해서 좋은 장난감을 보여줬고, 다른 한 그룹은 빈 상자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아기들을 속였습니다. 그러면서 아기가 이들의 행동을 따라하는지를 살폈습니다.

  결과는 정직하게 아기들을 대한 그룹에서는 대부분의 아기들이 사람들의 행동을 따라했습니다. 그러나 아기들을 속인 그룹에서는 절반도 안 되는 아이들만 사람들의 행동에 반응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기들도 사람들의 정직을 분별합니다. 하물며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시는 하나님께서는 어떠실까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한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고 누가 보든 안 보든,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하나님만 바라보고 묵묵하게 실천해 가야 합니다. 슬플 때도 기쁠 때도, 형통할 때도 일이 꼬일 때도, 건강할 때도 병들었을 때도 늘 한 결 같이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지난 1월 19일 교역자들과 동계등반을 했습니다. 원래 계방산에 오르려 했는데 혹한경보가 발령되어 입장을 통제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타기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지난 며칠 동안 산에 눈이 많이 왔고 추위 때문에 사람들이 산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산에 여러 곳에서 길이 눈에 묻혔습니다. 여러 차례 길을 잃을 뻔 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정신을 집중해서 길을 찾았습니다. 다행스럽게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산을 내려오면서 인생을 사는 동안 이렇게 길을 잃을 위기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길을 잃지 않고 그 길을 완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생각했습니다.

 

   호세아는 우리에게 여호와의 도를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신부로서 아내의 길을 완주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기 위해 더욱 여호와를 힘써 알아야 하겠습니다. 더욱 여호와만 섬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앞에 정직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