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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박영일목사

[스크랩] 6. 21 주일 낮 설교 * 염려하지 말라

눅12:22-31  염려하지 말라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너무 큰 산 같은 문제로 인해 혹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키다 못해 잔뜩 꼬여버린 문제들 때문에, 잠 못 이루고 한숨으로 뒤척여본 적이 다 있을 겁니다. 이런 인생들에게 우리 주님 말씀하십니다. “염려하지 말라”


혹 ‘건강염려증후군’이라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는데도 여기저기 아픈 느낌이 들고(혹은 실제로 아프고) 병들었다고 생각하는 증상을 통틀어 표현하는 병명이 바로 ‘건강염려 증후군’입니다. 자신이 위중한 병에 걸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는 일종의 정신장애입니다. 원인은 대부분 심리적인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도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 명하십니다. 왜일까요?


첫째, 염려가 우리 몸을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광명시 한 병원 원장은 걱정이 얼마나 큰 병인지를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의사 되겠다는 꿈을 안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대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내과를 전공하기 위해서는 120명 중에서 15등 안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드디어 그는 내과를 전공하고 인턴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인턴생활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환자를 돌보아야 하고, 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몸은 피곤하여 점점 지쳐갔고, 스트레스만 쌓여갔습니다. ‘과연 내가 이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의사가 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시작된 걱정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을 사로잡았고, 불안함과 초조함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의사가 되겠다는 신념도 흔들렸습니다. 의사가 되면 과연 자기 인생이 행복할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걱정에 포로가 되니 그는 결국 ‘불안신경증세’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공포 속에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자신은 의사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병원에는 일주일이나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문득 주일학교에서 배운 하나님이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성경대로 기도하기 시작했고, 마음속의 걱정과 싸웠습니다. 그러자 어떤 어려운 환경도 모두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는 병원에 다시 출근을 했습니다. 이제는 항상 주머니에 성경을 넣고 다니면서, 부질없는 걱정이 슬그머니 들어올 때마다 그 말씀을 읽으며 싸웠습니다. 그러면 곧 불안한 마음이 나가고 평안이 마음에 가득 찼습니다. 그는 레지던트 과정까지 무사히 마치고, 미국의 뉴욕주립대학 암연구소에서 공부하여 암 전문의사가 되었습니다.


잠언 17:22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잠언 15장 13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기쁨이 건강을 주는 보약이요. 근심이 건강을 해치는 독약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염려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고 누누이 말씀하십니다.


둘째는 염려는 우리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허쉘 포드(Hershel Ford) 목사님의 “물새와 참새의 대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물새가 참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 인간들을 좀 바라보게. 허둥지둥 대며 돈 때문에 아우성치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저 불쌍한 꼴들을 보게나.’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참새가 물새더러 하는 말이 「그래, 아마 사람들에게는 우리를 돌봐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모양이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슴 아픈 예화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소리를 새들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뭡니까? 이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공중의 새들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이신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너희는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내 피 값으로 산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우리는 까마귀나 들풀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까마귀와 들풀에게 물어보십시오. 걱정하는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걱정,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는 우리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옷과 같습니다.


셋째로 염려는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염려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25)

염려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보탬도 안 됩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무슨 말입니까?

염려하면 목숨만 상하고 몸만 상한다는 겁니다. 염려하면 제 명대로 못산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영육 간에 백해무익 합니다.


한 아버지가 노처녀 딸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결혼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맞선을 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니 부모 마음은 애가 탔습니다. 늘 말버릇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딸만 시집가면 걱정이 없겠어.” 그런데 어느 날 이 노처녀 딸이 결혼을 하겠다며 사윗감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아버지는 일사천리로 결혼을 진행시켰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축하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제 걱정이 없어졌으니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하지만 아버지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아닙니다. 늦은 나이에 시집을 갔으니 자식을 제대로 낳을지 걱정이네요.” 그 딸은 시집을 가자마자 건강한 아이를 낳아 아버지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이제는 그 아버지의 근심이 없겠거니 생각했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 아버지는 또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이 철부지 딸이 자식이나 잘 기를지….” 이래저래 걱정에 빠진 아버지는 행복할 틈이 없었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걱정을 시작한 것이지만, 사실 이런 걱정은 쓸데없는 우려일 뿐입니다. 눅21:34절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눅21:34)  여러분이 생활하시면서 어떤 것에 대해 염려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둔해진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영적으로 둔해지고 마음이 둔하여지면 신앙이 병듭니다. 신앙이 병들면 결국 삶이 피곤해지고 피폐해지고 말라지는 것입니다. 염려의 본질은 물어뜯는다, 숨통을 죈다는 뜻입니다. 마치 사냥개가 사냥감의 목을 물고 흔들어서 점점 죽이듯이, 걱정은 우리의 삶을 흔들어 놓은 후 우리를 서서히 죽게 만듭니다. 그래서 염려를 ‘느린 형태의 자살’이라고 말합니다. 반드시 걱정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외과의사 알렉시스 카렐 박사는 “근심과 싸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의 많은 병이 염려 때문에 생긴 염려병이라고 합니다. 걱정과 염려는 위장병, 류마티스 관절염, 심장병, 고혈압 등의 원인 일뿐 아니라, 암까지 일으킨다고 합니다. 걱정과 근심은 생명을 좀먹는 독약입니다. 이와 같이 염려는 유익은커녕 해를 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성도들을 향해 염려하지 말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넷째로,  염려는 불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가꾸시거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돌보시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반드시 우리를 돌보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28) 이 말씀을 뒤집어 생각해 보세요. 염려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는 비결은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지 못한 불신앙입니다. 

“주여 믿음의 은사를 주시옵소서!”


어떻게 하면 백해무익한 염려와 근심을 우리의 마음속에서 몰아낼 수 있을까요? 어떻게 마음의 염려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바울과 베드로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베드로전서 5장 7절에서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스펄젼(Spurgeon)목사님은 말하기를 ‘그대 자신으로 보면 몸을 가루가 되게 하는 듯한 무거운 짐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저울 위의 작은 티끌과도 같은 것이다. 참새를 기르시는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배려하신다는 데 그대는 아직도 염려하는가? 영을 그에게 맡긴 그대가 몸을 맡기지 않는다 말인가? 그는 이때까지 그대의 무거운 짐을 지는 일을 한 번도 거부하지도 않고 남겨 놓은 일도 없다. 그러면 영혼아! 그대의 염려를 버리고 은혜 깊으신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로 맡깁시다. 믿음으로 맡깁시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염려 대신 감사를 하고

염려 대신 기도로 이기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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