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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행20:17-24 사명으로 삽시다. ②

행20:17-24  사명으로 삽시다. ②

 

고 최태섭 장로의 간증입니다. 197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통치를 하고 있을 때 일입니다. 당시 수도 교회는 김상근 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계셨는데, 김 목사님은 유신정권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인물로 활동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이 최태섭 장로님을 불렀습니다. “김상근 목사를 교회에서 내 보내시오. 만일 못한다면 한국유리를 접수하겠소”하며 양자택일을 요구했습니다. 최 장로님은 한 달의 말미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말미를 얻은 최 장로님은 목회자를 보필하라고 세워주신 장로의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 아니면 그 사명을 버리고 사업체인 한국유리를 택할 것인가? 고민하며 깊이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습니다. 약속된 한 달이 되어 최 장로님은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수도 교회 장로입니다. 우리교회 목사님은 유신철폐를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계시고, 저의 사명은 목사님을 잘 받들어 그 분이 불편 없이 목회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는 일인데, 어찌 나의 안녕을 위해서 목사님을 나가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한국유리를 포기하겠습니다.” 최 장로님은 재산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선택했습니다. 장로님의 이 강직한 사명감에 박대통령도 포기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명으로 살 때 삶에 의미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고 행복합니다. 성도가 사명 잃어버리면 머리 깎인 삼손의 모습처럼 불행해집니다. 삼손은 나실인이었습니다. 구별된 자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나실인에게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다는 표시가 머리에 있습니다.(민6:7) 그래서 머리카락을 자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실인 삼손은 들릴라의 끈질긴 유혹으로 결국 머리카락이 잘리게 되지요. 어떻게 되었습니까? 힘을 잃고 두 눈이 뽑히고 부끄러운 인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처럼 성도가 사명을 잃어버리면 힘과 능을 잃게 되고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사명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되 세상과 구별된 소금과 빛입니다. 그런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면 쓸모없게 되어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 속에서 작은 빛이라도 비추어야 합니다. 밝히지 못한 빛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마5장) 성도가 사명 잃어버리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참 기쁨이 없습니다. 가져도 누려도 채워지지 않고 공허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도 믿지 않는 분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공적인 일을 하면서 느끼는 맛은 차원이 다르더라. 안 해 본 사람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자식들에게 자신을 위해 95% 살고 5%만이라도 사회에 봉사하며 살라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일, 즉 봉사를 하면서 느끼는 맛이 무엇입니까? 기쁨, 보람, 행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차원이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봉사하면 자신이 행복하다고 봉사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사명으로 산다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겠습니까? 거기다가 우리 사명 다 감당하고 주님 앞에 섰을 때 상과 면류관, 칭찬까지 받을 줄 믿습니다.

 

사명(2068)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 가오

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나는 사랑하겠소

세상을 구원한 십자가 나도 따라 가오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나를 사랑한 당신

이 작은 나를 받아 주오 나도 사랑하오

 

오늘은 사도 바울의 ‘사명’을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오직 사명으로 살았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힘듦이 와도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갔습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 두 마리처럼 좌도 우도 보지 않고 걸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세 번째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항구 도시 밀레도에서 에베소 지방 장로들을 청하여 그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는 내용입니다. 읽고 듣기만 해도 은혜가 됩니다. 사명 때문에 산 사람의 생은 언제나 힘이 있고 감동적입니다. 그래서 듣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가슴에 불을 질러 줍니다. 그의 말의 일부분입니다.

“보라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2-24)

 

여러분, 그의 사명은 어디서 왔습니까?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24) 입니다. 사명은 주께로부터 옵니다. 그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입니다. 그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제 1,2,3차 전도여행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문제는 그 길에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바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후에 행 21장에서 그의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권합니다.(4) 또한 바울이 묶여 로마로 끌려 갈 것이라는 아가보 선지자의 예언, 성령이 말씀하심을(11) 들은 가이사랴 신도들과 바울과 동행한 모두 이들이 울면서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 간곡하게 사정합니다. 사도 바울의 반응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13)

 

여기서 우리가 오해해서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결박과 환난이 있다고 미리 알게 하셨지, 성령께서 가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사명이 불타도 가지 말라하면 가지 않아야 하고 아무리 결박과 환난이 있다 해도 가라하면 가야 하는 것이 사명자의 자세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사명을 생명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사명이 그 사람을 귀하게 만들어주고, 가치 있게 만들어줍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잡혀 매를 맞고 심문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하여 로마로 호송됩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주어진 시간에 기회 있는 대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순교를 하게 됩니다. 사명으로 사는 것은 이렇게 한 차원 높은 삶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본이 되는 삶이고 기독교 역사와 성경에 기록된 아름다운 삶을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사명은 무엇일까? 나의 사명을 찾아 기도하며 사명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1954)의 자서전 『이것이 사명이다』에서 그녀는 ‘4가지 사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미국의 실업가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1839~1937)“돈 버는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나는 돈을 더 많이 벌어서, 그 돈을 양심에 따라 이웃을 위해 쓰는 것이 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유달리 돈을 잘 버는 것은 은사이고 그 돈을 벌어 쓰는 것은 사명이라는 말입니다. 부자는 복을 받았다는 차원을 뛰어 넘어 사명으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반드시 자기 집 담장을 넘어가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이 남보다 더 건강 한다면, 장수 한다면, 무언가 잘 한다면 은혜와 복으로 받고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사명으로 깨달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잘 활용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남보다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셋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베토벤의 위대한 교향곡들은 그가 귀머거리가 된 이후에 완성이 되었습니다. 제2의 성경이라고 불리는 ‘철로 역정’을 지은 존 번연, 그는 눈썹에 곰팡이가 필 정도로 음침한 감옥 속에서 그 약함 가운데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최초의 독일어 성경, 독일어 번역 성경은 1517년에 마틴 루터가 공민권(참정권)을 박탈당한 채 원수의 눈을 피해서 연약함 가운데 발트부르크성에서 번역해 낸 작품입니다. 일생 동안 7000편 이상의 주옥같은 찬송시를 썼던 화니 제인 크로스비,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약한 가운데 위대한 찬송시를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기독교가 자랑하는 불후의 명작 ‘기독교 강요’ 그것은 바로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을 가진 존 칼빈이 연약함 가운데서 쓴 위대한 작품입니다. 모두 약함과 아픔 속에서 거룩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우리 약함과 아픔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사명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아픔 때문에 진주가 만들어지듯 아픔과 눈물 때문에 보화와 같은 인생이 재창조 되는 것입니다. 어네스트 허밍웨이의 말처럼 "때로 인생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그 상처를 치료하면 우리는 더욱 더 강해진다." 아픔과 눈물이 상처로 남지 않기 위해, 강하고 아름답게 되기 위해 여러분의 아픔과 눈물을 사명으로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분은 자식으로 인한 아픔이 있으면 그 때문에 해야 할 사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배우지 못한 아픔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을 배우게 해 주는 사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난의 아픔이 있는 사람은 나눌려는 사명이 속에서 꿈틀거립니다. 가정의 아픔 때문에 깨어질 가정을 막아주는 사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픔을 품고 진주를 만들어 내는 사명이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은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아픔 때문에 때론 울지만 마지막에 웃을 줄 믿습니다. 주 안에서는 아픔도 눈물도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아울려져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선으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아픔과 눈물이 내일의 사명임을 잘 기억하시고 끌어안고 기도함으로 이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넷째, ‘남보다 부담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명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명을 우리 가슴에 심어주실 때 그것은 거룩한 부담감으로 나타납니다. 거룩한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형편을 들었을 때 그는 거룩한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비보를 듣고 눈물로 회개하고 금식하며 기도했지만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큰일은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이었습니다. 왕의 술 맡은 관원장으로서 왕을 모셔야 했고, 성벽 재건을 위한 많은 인력과 물질은 자신의 능력 밖이었습니다. 하고는 싶은데 능력이 안 될 때 거룩한 부담이 생깁니다. 여러분, 이런 부담감 느껴 보셨습니까? 이 거룩한 부담 앞에 피하고 도망가는 선택을 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참 가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편하자고 피하지만 정말 편할까요? 여러분, 피하지 마시고 느헤미야처럼 거룩한 부담을 끌어안고 먼저 기도하십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4개월쯤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왕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성벽을 재건하게 역사해 주었습니다. 능력 밖이다 생각되면 기도부터 하는 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자립하지 못한 교회를 섬기는데 거룩한 부담감이 생길 때, 먼저, 짐이 아닌 사명으로 생각해야 하고 다음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분명 길을 열어 주실 줄 믿습니다.

 

좀 더 생각해 보면,

 

그 때 그 때 맡겨준 일이 사명입니다.

사명으로 알고 성실하게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관심이 있고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재능과 은사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재능과 은사에 맞게 임무를 맡깁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신의 재능과 세상의 필요가 교차되는 그곳에 당신의 사명이 있다.” 말했습니다. 주신 재능과 은사로 일을 하면 잘하고 쉽고 자연스럽고 가장 효과적입니다. 내 몸에 잘 맞고 어울리는 옷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직업이나 사업을 할 때도, 교회에서 봉사를 할 때도 받은 자신의 재능과 은사를 사명으로 알고 섬기는 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개개인의 사명은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전파입니다. 이 사명은 주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또한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성도라면 이 사명을 모두 잘 감당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성도로서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세워나가는 것 역시 사명으로 알고 잘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구상에 바람처럼 나타나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할 수만 있으면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명을 발견하고 기도하며 사명으로 사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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