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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히11:24-27 사명으로 삽시다. ①

히11:24-27 사명으로 삽시다. ①

 

지난 주 월요일에 진도전남병원을 다녀왔습니다. 노회 목사님과 사모님이 교통사고로 입원 치료중이어서입니다. 진도군 지산면에 있는 길은 교회를 시무하시는 목사님이십니다. 교인이 두 분이 계시는데 한 분은 81세 할머니이고 다른 한 분은 96세 할머니입니다. 81세 할머니는 자식들 집에 계시다가 오시면 일 년에 한두 번 교회 나오시고 96세 할머니는 지금도 정정하셔서 잘 나오신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틀린 소리도 아닙니다. 96세 할머니는 하나님께서 “너라도 열심히 교회를 섬겨라”라는 사명 때문에 지금껏 장수하신 것 같고요, 목사님에게는 “나이 드신 96세 할머니가 어디 가서 예배드리겠느냐 그를 위해서라도 힘내어 교회 문 닫지 말고 목회하라”는 사명을 주셔서 힘들어도 지금껏 사명으로 목회하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중에 나만 할 줄 아는 것, 내가 잘 하는 것, 내게 더 있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교회 섬기라고 사명으로 주신 것으로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자립하지 않는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은 다 복을 받아 잘 사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 사명으로 알고 부요와 풍요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나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옵소서”

섬기는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해 이제부터는 사명으로 알고 물질의 복을 다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부터는 몇 주간 ‘사명’에 대해 정리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명심보감 성심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늘은 녹(자기 복)이 없는 사람을 태어나게 하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자라게 하지 않는다.” 풀 한포기도 존재의 목적이 있고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도 다 태어난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명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복음가수 조윤숙 집사의 간증을 읽어보면 죽으려고 어두워질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길가 시멘트 포장 갈라진 틈에서도 연명하고 있는 잡초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 죽어있는 잡초입니다. 왜냐하면 지난 다니는 사람들의 의해 밟히고 달리는 자동차에 밟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잡초를 보면서 너무 자신의 인생하고 똑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더 자세히 보니 작은 새순이 파란색도 아니고 노르스름하게 뾰족하게 그 안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아, 살아있기 때문에 너무 너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그 잡초는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에게 희망과 깨달음을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잡초의 존재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가르치실 때 들판의 꽃과 날아다니는 공중의 새를 생각하라 하셨습니다. 들판의 꽃과 공중 나는 새는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로서 걱정, 염려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또 다른 존재의 이유이자 사명인 것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바다에 나갔다가 파도에 의해 물속으로 들어가 큰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파도치는 물속에서는 어디가 물위인지, 물속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신없이 헤엄을 치고 가는 방향이 물 위쪽이 아닌 물속 쪽이라면 얼마나 위험하겠습니까, 물속에서 헤매고 있는데 물속으로 태양 빛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쪽으로 헤엄쳐 나와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태양이 존재하는 또 다른 이유를 알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여러분, 잡초도, 들풀도, 공중의 새도, 태양도 모두 존재의 이유가 있고 맡겨준 임무가 있습니다. 이것들보다 더 소중한 사람인 우리 개개인에게 주어진 사명이 없겠습니까? 맡겨진 사명을 잘 깨닫고 이제부터 그 사명 중심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 그의 ‘사명’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세

 

애굽에서 태어난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하수(나일강)에 버려져야 할 운명에 처해져 있었습니다. 애굽 왕 바로의 명입니다. 그의 부모가 아들의 준수함을 보고(출2:2),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히11:23),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워(행7:20) 석 달을 숨겼고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게 되자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그 곳에 담아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하수에 나왔다가 갈대상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공주는 히브리 아이인 줄 알면서도 불쌍히 여겨 데려다가 아들로 삼았습니다. 하수에서 ‘건져내었다.’해서 그의 이름을 ‘모세’라 지었습니다.

 

40년이 지난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치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감추었습니다. 그 다음 날, 히브리 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니 그 사람이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말하는 소리를 듣고 모세는 일이 탄로 난 것을 알고 미디안 광야로 몸을 피하였습니다. 그는 거기서 아들을 둘 낳고 평범하게 40년을 살아갑니다.

 

여러분, 모세의 이 장면에 성경은 ‘사명’을 넣어서 풀고 있습니다.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의 원통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죽이니라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행7:23-25)

 

모세는 자기 사명을 알았습니다. 사명 때문에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깨닫지 못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히11:24-27)

 

모세는 자신의 사명을 확신했기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사명 때문에 애굽을 떠나 미디안 광야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긴 세월을 참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80세에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애굽에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보냅니다. 그는 나머지 40년을 불태우며 사명으로 삽니다. 출애굽과 광야 40년 세월이 고생스러웠지만 가장 멋있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모세를 모세 되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모세에게서 이 사명을 빼 버린다면 그의 삶은 어떻게 그려질까요? 그는 사명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사명을 빼 버린다면 이 땅에 태어난 걸로 만족하고 하수에 던져져 죽었을 것입니다. 사명 때문에 범인으로 살지 않고 초인으로 살았습니다. 사명으로 살았기에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신34:10-12)

 

사명 때문에 그의 발자취를 녹으면 사라지는 눈 위에 남기지 않고 역사 위에, 성경 위에 남긴 줄 믿습니다. 모세가 모세가 된 것은 사명 때문인 줄 믿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을 보면 사람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원리에 따라 사는 것 같습니다. 첫째, 유익의 원리입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늘 추구를 합니다. 유익을 주면 직장을 옮기기도 하고 유익하다면 무엇이든 먹으려 합니다. 둘째, 편리의 원리입니다. 편리한 것을 추구합니다. “조금 더 편하게 조금 더 편하게”가 오늘 시대의 구호입니다. 편리하면 잘 팔립니다. 셋째는 쾌락의 원리입니다. 기쁨을 추구하는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있는 곳에 사람은 모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런 원리만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 또한 단순히 이런 원리로만 인생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무엇보다 중요시한 것은 사명의 원리입니다. 사명이면 유익이 되지 않아도 가고 사명이면 편리하지 않아도 선택했습니다. 사명이면 기쁨이 없고 고통이 따라도 그 길을 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내게 주신 사명을 깨달고 그 사명 중심으로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립하지 못한 교회의 한 일원으로, 멤버로서 사명을 가지고 교회를 세워나가는데 총력을 쏟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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