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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눅24:1-6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시다.

눅24:1-6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시다.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님 부활축제에 동참하여 승리의 노래 부르며 예배하는 하늘비전가족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복이 함께 하시기를 부활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국 교회와 부활절은 의미가 깊습니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가 제물포 항에 첫 발을 내딛은 날이 그해 부활절인 4월 5일이었습니다. 이 땅에 선교사로 제물포항 부두에 처음 발을 내딛은 아펜젤러는 경건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했다고 그의 일기 속에 남겼습니다. “주님,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죽음의 철창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을 얽어맨 마귀의 결박을 끊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유와 빛을 허락해 주옵소서.”

그로부터 130년째인 4월 5일 부활절 이아침에 아펜젤러 선교사의 심정으로 교회는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부활절 예배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 냉철한 머리로 전하는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1. 무덤이 아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자랑합시다.

 

이 세상에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 갔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존경할만한 인물을 가리켜 우리는 위인이라고 부릅니다. 특별히 예수님과 공자, 마호메트, 석가를 인류 역사상 최고의 위인이라 하여 4대 성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서 인(仁)을 중심으로 한 유교를 창시하고 72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BC 479년 4월, 많은 제자들 앞에서 죽음을 극복할 수 없다는 시를 읊으며 삶을 마쳤습니다. 그의 무덤은 고향인 산둥 성 취후에 있으며, 그 옆에는 500평이 넘는 공묘라는 웅장한 사당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무덤을 찾아가 아직까지 죽어 있는 그를 경배하고 있습니다.

 

회교의 창시자는 마호메트입니다. 그는 AD 570년에 태어나 동굴에서 명상하다 자칭 알라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이슬람교를 창시하였습니다. 그는 62세 때인 632년 6월 8일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어 부인인 아이샤가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마호메트의 무덤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에 있는데 해마다 수백만 명의 순례 객들이 그의 무덤을 방문해 죽어 있는 그를 경배하고 있습니다.

 

불교를 세운 석가모니는 BC 563년에 히말라야산맥 남쪽에 있는 작은 왕국인 카필라국의 룸비니에서 석가족 정반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원래의 이름은 고다마 싯달타이고, 석가모니란 이름은 석가족의 성인이라는 뜻입니다. 석가모니는 29살에 출가하여 50년간을 수행하며 제자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남긴 후, 80세 때 인도 구시나가르의 길가에 있던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에 누워 제자인 아난다가 지켜보는 가운데 “누구를 추종하지 말고 스스로를 등불로 삼으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석가의 유해가 화장된 터 위에는 석가를 기념한 높이 46m의 벽돌 탑이 우뚝 서 있습니다. 화장(火葬) 후 석가의 몸에서 나온 사리들은(진신사리) 8등분되어 8개국에 보내져 탑을 세웠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석가의 진신사리가 들어왔는데 최초로 사리가 봉안된 5개의 절을 가리켜 ‘5대 보궁’(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전각을 적멸보궁이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을 나눠서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양산 통도사, 강원도 오대산 중대에 있는 상원사, 설악산봉정암, 태백산정암사, 사자산법흥사 적멸보궁이 바로 성지로 꼽히는 5대 보궁이다.)이라고 합니다. 탑이 세워진 원래의 목적은 바로 석가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한 것으로, 쉽게 말하자면 ‘석가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석가는 인간의 근본적 문제인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었으며, 또한 그 무덤을 수많은 곳에 남겨 놓으므로 자신이 구원자가 될 수가 없음을 널리 증거 한 셈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공자나 마호메트나 석가와는 다릅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고 돌아가셨지만, 삼일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 40일 동안 계시다 감람원이라는 동산에서 많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름 타고 천사들과 함께 승천하셨습니다.

 

죽은 자는 그의 무덤이 말해 주고, 산 자는 살아났기에 비어 있는 빈 무덤이 말해 주는 법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죽어 있는 예수님을 경배한다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살아나셨기에, 부활하셨기에 무덤에 예수님이 안 계십니다. 그래서 빈 무덤입니다. 구원자가 죽어 지금까지 무덤에 그대로 있다면 그가 과연 누구를 구원하겠습니까?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데 어느 누구를 구원하겠습니까? 잘 생각 해 보십시오, 교회는 무덤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죽으셨다가 그 죄 값을 다 지불했다는 것을 확증하시기 위해 무덤을 여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나오신 예수님을,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이 우리 성도의 자랑이고 교회의 자랑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이시며 자랑인 것입니다. 나를 위해 오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시고 죽으셨다가 나를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습니다. 이 시간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시고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시기에 위해 오신 예수님,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 나의 죄 값을 다 지불했다 확증하시기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이 시간 마음에 영접하고 믿습니다."

 

 

2.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다시 시작합시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한 순간에 실패한 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히고 십자가에 죽게 되자 모두 흩어졌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자기 목숨을 위해 예수님을 부인하며 맹세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낙심하고 의기소침하고 위축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자기들도 잡히면 죽는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공포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래도 자기와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목숨을 위해 도망을 간 제자들을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특별히 실의에 빠져 있는 베드로, 예수님을 부인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사흘 동안 가슴 아파 몸부림치고 있는 그 베드로에게 빨리 가서 그를 만나주시기를 원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마28:7)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마28:10)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거듭 두 번씩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왜 갈릴리일까요? 3년 전에 제자들을 처음 만나 시작한 곳입니다. 거기서 다시 출발하자. 원점에서 다시 한 번 시작하자는 희망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출발해 보자고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실패했다고 너무 주저앉지 말고, 나를 배반하고 도망쳤다고 자책하며 절망하지 말고 일어나 회복하라, 재기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부활하신 것을 확인하고 확신 갖고 다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희망적입니까? 얼마나 은혜가 됩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회복의 은혜입니다. 재기의 복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좌절, 실의, 절망, 침체에서 다시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부활 신앙으로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가 종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지는 해를 향해 결어가는 자가 아니라, 뜨는 해를 향해 일어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황혼인생이 아닌, 여명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종점 인생이 아닌 출발 인생입니다.

 

“가장 위대한 승리자는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자입니다.” 잠언도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다시 일어나면 승리자가 된다 말씀합니다. 넘어진 숫자보다 한 번만 더 일어나면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쓰러진 숫자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난 것만 기억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과거에 실패한 것 오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내가 지금 성공한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들은 단순히 그의 성공 때문에 존경하기보다는, 그가 실패를 어떻게 딛고 일어섰느냐에 따라 경의를 표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다 일어났습니다. 절망에서 일어났습니다. 낙심에서 일어났습니다. 38년 된 병자도 예수 만나고 일어났습니다. 다리 저는 사람도 일어났고, 죽은 지 나흘 된 상태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일어났습니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 이것이 바로 부활의 은총이요 부활이 주는 소망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사기가 저하된 저들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실망한 그들에게 소망을 품게 하셨습니다. 슬픔에 젖어 있던 그들에게 기쁨을 심어 주셨습니다. 좌절한 그들에게 재기와 회복의 힘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고뇌에 찬 그들에게는 감격에 찬 소식이었습니다. 불안으로 시달리던 그들에게 평안을 안겨 주셨습니다. 의욕을 상실한 그들에게는 새 소망의 뉴스였습니다. 절망에 부딪혔던 그들에게 기쁨의 메시지였습니다. 죄 아래 있고 지옥형벌을 피할 수 없는 죄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이 준 복음이며 능력인 것입니다.

 

* 광야 * 김수희

1.

거치른 광야에 홀로 남겨져 그림자 숨기며 살았어도

절망할 수 없었던 따뜻한 이유는 (주님)당신이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포장에 내 모습 가리워져 가난한 이름만 남았어도

다시 일어나서 미소 짓는 이유는 (희망)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2.

검푸른 산으로 혼자 헤치며 침묵의 용기로 날 지킨 건

동행할 수 있었던 뜨거운 가슴에 (주님)당신이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포장에 내 모습 가리워져 가난한 이름만 남았어도

눈물 닦고 나서 행복한 그 이유는 (부활)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부활절에 나의 구원자로 믿으시고, 신앙을 쉬었던 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체와 침체, 신앙의 퇴보에 빠져 있는 분들도 첫사랑을 회복하시고, 기도와 사명도 찾고 예배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픔과 상처투성인 분들과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게 살아가신 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 만나 위로와 치유를 받으시고 마음의 쉼과 평안과 기쁨으로 채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년 부활절에 희망과 새 힘과 용기를 얻어 모든 분야에서 회복과 재기의 은총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목포하늘비전교회
글쓴이 :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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