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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도전하라 마가복음 10:46~52

변화에 도전하라
  

▒▒ 성경 : 마가복음 10:46~52

사람들은 몇 번 실패하면 또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실패라는 것들이 우리 발목을 잡기 때문에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성경 말씀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는 말씀입니다.

장님으로 태어난 참혹한 운명의 바디매오는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일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의술로는 도저히 장님을 눈뜨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장님이 되면 장님이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일생을 살아야 되는 것이 그 당시의 관례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이 주는 신선한 충격은 이 장님 바디매오가 눈을 뜨겠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더 이상 넝마를 뒤집어쓰고 남에게 손을 벌리면서 구걸하는 생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눈 뜨고 싶다. 변화하고 싶다. 대개 사람들이 몇 번 실패하면 더 시도하지 않는데 장님 바디매오는 눈을 뜨고 싶다는 강한 의지와 실천이 대단합니다. 이 변화에 도전하는 바디매오의 모습을 주목하시길 바라며 여러분들도 변화에 도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크리스챤은 변화된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크리스챤 되기 전에는 고기잡는 어부였지만 크리스챤 된 뒤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틀림없이 사도 베드로는 변화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예수님 믿기 전에는 바리새인이고, 예수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핍박자였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뒤에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크리스챤 하면 다 변화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여러분들 나를 크리스챤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변화되지 않았다면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크리스챤은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크리스챤이라고 할 때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 믿어도 절대로 변화되지 않는다.” 그것은 가짜입니다. 예수 믿으면 변화가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오늘 바디매오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말씀은 마가복음 10장 51절에 예수님께서 바디매오를 불러 “바디매오야, 내가 너에게 뭘 해주면 좋겠느냐?” 바디매오는 주저함이 없이 “내가 눈 뜨기를 바랍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저는 더 이상 넝마를 입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 벌리면서 동전 한 닢, 두 닢 받아가면서 사는 이런 인생은 이제 끝내고 싶습니다.” 대답했습니다.

바디매오는 그냥 운명대로 살 수도 있었지만 바디매오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 보기를 원합니다.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분명한 자기의 소원을 예수님께 말씀드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꿈과 비전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 꿈과 비전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귀한 일들, 이런 꿈과 비전은 시시한 꿈이 아닙니다. 요셉이 애굽 나라의 총리 대신이 된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전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꿈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날마다 주님께 가까이 가도록 우리는 노력해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한번 주일 예배 드리지만 “목사님, 내가 오늘 이 시간부터는 주일 한번이 뭡니까? 주일 저녁 예배도 드리고, 수요예배도 드리고, 변화되는 놀라운 일들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발전시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은 우리를 날마다 변화시키려고 이 시간도 우리 안에서 성령님은 역사하고 계시고, 우리가 변화될 수 있도록 성령님은 우리 안에 꿈과 비전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변화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뭐냐? 우리는 행동해야 됩니다. 그것은 모험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결단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아마 소경 바디매오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눈뜨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변화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좌절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소망을 가지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간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때야말로 기회다.’ 생각하고 바디매오는 소리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것이 바로 변화의 역사입니다. 가만히 있어서는 절대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할 때 우리는 살아있게 됩니다. “이 모양 이 꼴이 좋습니다.” 그러면 죽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변화를 위해서 달려나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변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어디에서 생기느냐? 소경 바디매오는 바보가 아닙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저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란 사실을 들었고 믿었습니다. 누가복음 4장 소경 된 자를 눈뜨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은혜의 해를 선포하려고 오신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나사렛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나아간 것입니다.

우리가 앞을 향해 나가는 중요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 혼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기에 우리는 이 자리에 머물지 않고 앞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변화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영광스럽고, 존귀하고, 행복한 존재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이 시간도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2007-09-09 10:3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