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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제목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본문 / 베드로전서 47~11

 

7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이세상에서 얼마나 오래 살고, 건강하게 잘 사느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지혜롭고 바르게 살아서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지혜롭고 바르게 살 수가 있을까요?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사셨을까?’ 생각하면서 예수님처럼 살려고 할 때, 그 사람의 삶은 가장 지혜롭고 바른 삶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은 분명히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그날이 몇 년 뒤 일지, 몇 시간 뒤일지 모르지만, 마지막 날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7)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왜 무엇보다도 기도를 먼저 강조했을까요? 그것은 베드로 자신이 기도하지 않아 큰 실수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깨어서 기도하라’,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잤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닭 울기 전에 나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말할 것이다.’라는 예언도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기도하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실수를 세 번씩이나 범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이 일이 있은 후에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말한 베드로가 주님을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베드로는 그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지 않았기에 그런 엄청난 실수를 한 것입니다. 깨어 기도했다면, 베드로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잤기에 이런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권면 하는 것입니다.

* 기도가 없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직분을 막론하고 기도가 없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얼마나 악하고 유혹과 시험이 많습니까! 신앙생활 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런 세상을 살면서 기도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 기도가 없는 사람은 십자가를 질 수가 없습니다.

* 기도가 없는 사람은 핍박이 오면, 도망갑니다.

* 기도가 없는 사람은 환란과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 기도가 없는 사람은 유혹을 물리칠 힘이 없습니다.

* 기도가 없는 사람은 누구나 베드로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과거에 기도 많이 하셨습니까? 과거에 기도 많이 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의 기도, 바로 이 시간에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닭이 우는소리를 들을 때마다 정신을 번쩍 차리고 즉시 기도했다고 합니다. 닭 우는소리가 들릴 때마다 옛날에 잘못한 일을 생각하고 깨어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베드로는 새벽마다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새벽마다 기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왜 시험에 빠지고, 실수하고, 넘어집니까? 그것은 기도 없이 살기 때문입니다. 왜 마음이 약해집니까? 왜 마음이 울적해 집니까? 왜 짜증이 자꾸 납니까? 왜 근심 걱정에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기도 없이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권면 하셨던 것처럼 베드로는 모든 성도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권면 한 것입니다.

 

2.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8)고 했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삽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처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사랑은 아무리 해도 후회함이 없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해줍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에도 기쁨이 넘칩니다. 사랑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평강이 있고, 행복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기 때문에 사랑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얼마 남지 아니한 시간을 서로 미워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시기, 질투하며 살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만 하면서 살기에도 시간은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서로가 주고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면 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지 마시고 사랑을 주십시오. 사랑을 나누어 줄 때, 이 세상에서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려면, 먼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남편을 사랑하리라’, ‘아내를 사랑하리라’, ‘자녀를 사랑하리라이렇게 사랑하기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기로 결정하면 사랑의 언어가 나오고, 사랑의 행위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본문 8절을 보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잠언 1012절을 보면,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허다한 죄를 덮어줍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려 줍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이 세상에 죄와 허물이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남의 허물을 말하는 사람들도 허물이 많습니다.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더 허물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꾸만 남의 죄와 허물을 말하다 보면, 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덕을 잃으면 사랑도 메마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고 좋은 점만 말해 주면,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이 많을수록 살기 좋은 세상이 됩니다.

오늘 본문 8절에서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한 것은, 그 사람의 죄와 허물이 안 보일 때까지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범한 죄가 있고,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허물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3. 서로 대접하라(9)고 했습니다.

대접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대접한다는 말은 본문대로 번역하면 영접한다는 말도 됩니다. 우리가 서로 영접하고 대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대접하되 원망 없이 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교회 장로님 가운데 훌륭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사, 오십 년 전의 일입니다. 그 당시에 이층으로 된 큰 집에 사는 부자였습니다. 장로님 내외분은 손님 대접을 너무 잘했습니다. 시골에서 오신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들이 서울에 오시면 이 장로님 댁에서 머물다가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시골교회 전도사 한 분이 온 가족을 다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집도 없고, 돈도 없는 전도사님 가족은 그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습니다. 삼 개월 동안을 그 집에서 있었습니다. 어린 자녀들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집을 어지럽혀도 절대로 원망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장로님을 축복하시는데, 자녀들이 축복을 받고 그 후손들이 축복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존경스러운 장로님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대접을 잘하되 원망 없이 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남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망은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책임을 남에게 돌리기보다는 나 자신이 져야 합니다. 비록 다른 사람이 잘못했어도 그 책임까지 내가 지려고 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이런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기쁨과 화평과 행복이 존재합니다. 천국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4. 서로 봉사하라(10)고 했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10)

1)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청지기는 남의 집에서 일을 해주는 사람입니다. 청지기가 비록 대궐 같은 집에 살고, 재산이 많아도 청지기의 것이 아닙니다. 주인의 것입니다. 주인의 집에서 모든 것을 관리하면서 누리는 것이지 자기의 것은 아닙니다. 그 집의 물질도 시간도 건강도 모두 다 주인의 것입니다. 절대로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서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내 것이 아닌 줄 알고 주인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그런 청지기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을 가지고 주님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청지기입니다. 내 것은 없습니다. 내 목숨까지도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은 곧 오십니다. 주님이 오시면, 모든 사람이 주님 앞에 서서 보고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것 가지고 이렇게 살았습니다.’, ‘주님이 주신 것을 이렇게 남겼습니다.’ 이런 보고를 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청지기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2) ‘은사를 받은 대로 서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혜도, 건강도, 물질도, 모두가 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입니다. 하나님이 지식을 주셨으면, 그 지식을 가지고 봉사하십시오. 나이가 들면 기억력도 사라지고, 정신력도 약해집니다. 그러니 총명한 정신이 있을 때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건강도 은사입니다. 건강할 때, 충성하십시오. 건강을 잃어버리고 나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많은 재물을 주셨다고 하면 그것도 은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시기 바랍니다. 재물을 다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 후회해서는 안 됩니다. 재산이 내 손에 있을 때가 바로 기회인 줄 알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 왔다고 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만 가까워 왔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숨도 언제 떠날지 모릅니다. 나이가 많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젊은 사람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이 세상을 떠나야 됩니다. 우리의 마지막이 언제 올지 우리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이 오기 전에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다 쓰고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은사를 그냥 썩히면 안 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땅에 묻어 두면 안 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입지 않는 옷이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교회로 다 가져 오십시오. 그래서 외국인 근로자들이나 새터민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제가 기도하다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필요한 것 외에는 다 남에게 나누어주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난날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필요할 것들을 하나님이 다 채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 그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을 또 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집안에 쌓아둘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죽은 다음에 남은 재산이 많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다 쓰고 죽어야 합니다. 설사 다 쓰지 못하고 죽는다면 유서라도 써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우리의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살아 있는 동안 미리 다 쓰는 것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붙잡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졌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많다고 예수님이 칭찬하거나 면류관을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책망만 들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베풀면서 살았느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라고 했습니다.

봉사자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말로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합니까? 그러나 말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이 하십시오. 봉사를 하려고 하면 내 것을 가지고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물질을 가지고 봉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이때,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대로 실천하여 남은 생애를 지혜롭고 바르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