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富), 어떻게 볼 것인가
잠 11:24-25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는 역설적입니다. 참 많은 부분에서 세상이 가르치는 것과는 상반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이 역설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처형하는 형틀입니다. 죄인들이 죽는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십자가를 구원의 통로라고 가르칩니다. 십자가가 사는 자리라고 가르칩니다. 역설의 극치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역시 대부분 역설입니다. 산상보훈을 보면 예수님께서 복에 대해 가르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부자가 복이 있다는 세상의 가르침과 사람들의 상식을 뒤집는 말씀입니다. 애통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 복이 있다는 세상의 가르침과 사람들의 상식을 뒤집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예수님께서 아예 역설을 이용해서 가르치시기도 하셨습니다. ‘높아지려거든 낮아지라’, ‘얻고자 하면 버리라’, ‘살고자 하면 죽으라’, ‘이기고자 하면 져주라.’ 그야말로 역설입니다. 세상의 가르침과 상반됩니다. 사람들의 상식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23-24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기독교의 역설적인 가르침이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기독교의 가르침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역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 가르침을 ‘아멘’으로 받습니다. 그럴 때 그들은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역설적인 가르침을 아멘으로 받고 살았던 사도 바울은 고후 6:8-10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역설적인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때로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어리석은 바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보시기에 좋았더라.” 바로 그런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이런 역설적인 가르침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재물, 돈, 다시 말해서 부(富)에 대한 말씀입니다. 역시 세상의 가르침과는 다른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상식과는 어긋나는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입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 지리라”
가진 재산을 아낌없이 구제할 때 오히려 부자가 될 수 있고, 인색하게 아끼고 저축한다고 해도 가난하게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구제하고 남을 도와주는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해 아끼고 모으는 사람은 가난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설입니다. 아끼고 저축할 때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세상의 가르침과는 상반되는 말씀입니다. 모아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사람들의 상식과는 어긋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이 말씀을 묵상해 보면 부에 대한 역설적인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가르침과 다른, 사람들의 상식과는 다른 부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닫고 부에 대해 그리스도인다운 이해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부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는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24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쉽게 풀어보면 이런 말입니다. “베풀고 나누며 사는 데도 부를 모으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부자가 되려고 쓸 때 쓰지 않고, 베풀 때 베풀지 않고, 나눌 때 나누지 않으며 사는 사람들과 달리 쓸 때 쓰고, 베풀 때 베풀고, 나눌 때 나누는데도 부자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부를 은사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가르침을 보면 부는 노력의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큰 부자는 남다른 노력을 한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한 편으로 일리가 있습니다. 부자치고 게으른 사람이 없습니다. 부자치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자만 부지런한 것은 아닙니다. 부자만 돈 벌려고 노력하는 것 아닙니다. 오늘도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부자는 극소수입니다.
현재 세계 최고의 부자는 빌 게이츠입니다. 이분이 최고의 부자가 된 과정을 보면 큰 부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분은 남달리 시대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이 있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의 시대가 열릴 것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래서 PC에 들어갈 운용체계를 개발했고,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회사를 설립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을 사업적 준비를 했습니다. 마침 미국 정부는 이 PC를 미래를 위한 혁신 기술로 보고 적극적으로 정책적 지원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의 반응입니다. 미국인들은 물론이고 전세계가 PC의 등장에 열광적으로 환호했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빌 게이츠의 사업은 상상을 초월한 성공을 거두게 되었고, 그는 졸지에 세계 최고의 부자 반열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경제학자들은 빌게이츠의 성공을 예로 들면서 큰 부자가 되기 위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천부적인 사업 감각이고, 둘은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고, 그리고 셋은 시대적인 유행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세 가지 모두는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천부적 사업 감각이 그렇습니다. 자기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타고 나는 것입니다.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도 그렇습니다. 때를 잘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시대적 유행은 더 그렇습니다.
성경에도 큰 부자들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을 받고 가나안으로 나이 75세에 이민을 갔습니다. 가나안에서 사는 동안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 쫓겨서 그야말로 혈혈단신으로 그저 개나리 봇짐하나 들고 멀리 하란으로 갔습니다. 20년 만에 큰 부자가 돼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욥은 사탄의 시험을 받아 하루 아침에 가진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믿음으로 사탄의 시험을 잘 통과하고 난 후 과거보다도 갑절이나 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들어다 보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부자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저들이 부자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이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본인이 노력은 해야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만 부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는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도하게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돈을 모으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쓰지 않고 아낀다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왜 돈을 모으려고 할까요? 돈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으면 먹을 것, 입을 것, 기거할 공간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으면 병들었을 때,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으면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더 많이 가지고 싶어 합니다. 돈이 많으면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돈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돈만 있으면 뭐든다 다 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뭐니 뭐니 해도 money가 최고’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을 모으라고 가르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돈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돈을 버는 일에 인생 전체를 걸고 살아갑니다. 돈을 모으기 위해 먹을 것도 먹지 않고, 쓸 것도 쓰지 않고 악착 같이 살아갑니다. 그러는 중에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립니다. 먼저 사람들을 잃어버립니다. 이웃과 척을 집니다. 친구들을 등집니다. 심지어 가족까지 멀어집니다.
눅 1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자를 비유로 들어 말씀하신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한 부자가 있습니다. 그 해에도 농사가 풍년입니다. 이미 곳간이 가득 차 있는데 또 풍작입니다. 이 사람이 고민 끝에 곳간을 더 짓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의 소출을 또 그곳에 가득 쌓아두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부자는 만족해하며 이제 쉬면서 즐거워하자고 말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이 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는 부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온통 생각이 부를 쌓는 일에만 가 있었습니다. 그 부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생각조차 해 보지 못했습니다. 만일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면 그렇게 쌓아놓은 부는 도대체 누구의 것일까요?
스웨덴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발렌베리 그룹을 들 수 있습니다. 이 그룹은 스웨덴 전체 GDP의 3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5대에 걸쳐 150년 동안 그룹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웨덴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습니다.
그 이유는 창업자 안드레 발렌베리의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가르침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분은 자손들에게 돈은 쓰기 위해 버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정당한 수고를 하지 않으면 용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그룹은 그 흔한 세금포탈이나 상속과 증여의 문제를 단 한 번도 일으킨 일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는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어야 합니다. 돈은 모으기 위해 버는 것이 아니고 쓰기 위해 버는 것입니다. 돈을 남달리 많이 벌었다면 남달리 많이 써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벌 때 한 편으로는 어떻게 쓸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부는 복이 아니고 사명이다.
본문 2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하나님께서 주신 부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사람은 자기도 부족함이 없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부가 복이라고 가르칩니다. 남달리 돈이 많은 사람은 큰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상속을 받았든지 어떻게 큰돈을 벌게 됐든지 그것은 다 자기의 복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은 그 돈으로 부를 누리며 살아도 된다고 가르칩니다.
실제로 부자들은 돈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그 돈을 자기만을 위해 써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치하며 떵떵거리고 돈 자랑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존경받지 못합니다.
마 2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주인이 외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재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이 돈을 잘 관리하라고 맡기고 간 것입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종들을 불러 그 돈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결산을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 맡았던 종은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맡았던 종은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맡았던 종은 한 푼도 남기지 못하고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주인이 다섯 달란트 남긴 종과 두 달란트 남긴 종에게 똑 같이 칭찬했습니다.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반면에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온 종은 크게 책망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으라”
우리가 이 비유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부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지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누리고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신 이 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잘 관리하라고 맡기신 사명이라는 점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기부문화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을 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참 좋은 일입니다.
이 일에 선두주자는 단연코 가수 션과 배우 정혜영 부부입니다. 며칠 전 홀트 아동복지회에 또 1억을 기부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이 부부는 지금까지 매년 1억씩 8년째 이 기관에 기부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분들은 이 기관 뿐 아니라 여러 곳에 기부를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40억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2년 전인가요 션씨가 우리교회에 오셔서 집회를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이분에게는 아이가 네 명이나 됩니다. 자기 아이들 키우기도 벅찰 텐데 전 세계 800명의 아이들을 돕고 있었습니다. 부모님들도 넉넉한 편이 아니셔서 용돈을 지원해 드려야 할 형편이랍니다. 더욱 놀란 것은 당시 자기들은 집이 없고 전세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하게 알게 됐습니다. 이 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부를 결코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부를 사명으로 생각하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부를 단지 복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칫 그 부를 내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리기 위해 써도 된다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부를 사명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부는 내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놓으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부를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이 부를 잘 사용하여 장차 하나님 앞에 내 놓을 것을 준비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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