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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고수가 되는 비결 눅 11:1-13

기도의 고수가 되는 비결

 

눅 11:1-13

 

   일반적으로 한 분야에서 어떤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고수’(高手)라고 하고, 아직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을 ‘하수’(下手)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바둑의 경우 고수들은 판 전체를 보면서 몇 수 앞을 내다보며 한 수 한 수를 두어나갑니다. 이에 비해 하수들은 당장 눈앞에 사활과 집을 차지하는 일에만 신경을 쓰며 한 수 한 수를 두어갑니다.

   또한 축구의 경우 고수들은 경기의 흐름을 읽고 공이 어디로 올 지를 예측합니다. 그리고 그 길목에 서서 공을 잡고 멋진 플레이를 펼칩니다. 이에 비해 하수들은 그저 공이 있는 곳만 열심히 따라다닙니다. 그러다가 경기 내내 제대로 공도 잡아보지 못합니다.

   기도에도 고수가 있고 또한 하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기도의 고수들은 기도를 열심히 하면서도 기도를 즐깁니다. 그리고 기도가 무엇인지,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 그리고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잘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도 잘 받습니다.

   이에 비해 기도의 하수들은 기도가 힘이 듭니다. 기도 자리에 나오는 것부터 힘이 듭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려고 기도의 자리에 나와도 막상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또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도 제대로 받는 경우가 드뭅니다.

   우리가 기도의 고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매일의 삶 속에서 체험하게 되고, 예수 믿는 것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의 고수가 될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모범이신 예수님께 지도를 받으면 됩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주님께 가르침을 받으면 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예수님께서 기도를 드리셨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러 가셨다가 기도를 마치시고 자기들 곁으로 돌아오셨다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이 볼 때 예수님은 자기들이 도저히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기도에 헌신하는 삶을 사신 분이었습니다. 평상시에 습관처럼 기도하시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철야하시며 기도하시고, 그리고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는 생명을 걸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눈에는 예수님은 기도의 고수 중의 최고수였던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한 가지 청을 드렸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당시에 유대교 지도자들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아마도 요한도 그렇게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쳤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청했습니다.

   그 청을 받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에 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그 내용이 놀랍습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놀라운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유대교 지도자들이나 요한이 가르쳤던 것과는 너무 다른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기도의 최고수가 가르쳐주신 기도의 비결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기도의 고수가 되기 위해 배워야 할 기도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1. 우선순위

   본문 2-4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이 가르침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소위 ‘주기도문’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나오는 본문과는 내용상에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마태복음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는 기도의 비결은 그대로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도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도의 우선순위입니다. 기도할 때 먼저 기도할 것과 나중에 기도할 것을 구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위한 기도를 먼저 드리고 그리고 나서 나를 위한 기도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마 6:33을 보면 예수님께서 더욱 분명하게 기도의 우선순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기도할 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의 필요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더 극단적으로 풀이해 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만 하면 우리의 필요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도하지 않아도 다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의 하수들이 흔히 범하는 잘못은 기도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입니다. 먼저 자기의 필요에 대해 집중적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심한 경우 자기의 필요에 대해서만 기도하고 기도를 끝냅니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이 더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생활이 복되지 못한 것입니다.

 

  옛날 생각이 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 형님이 군에 입대를 하셨습니다. 어느 날 간만에 아버님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버님께서 돋보기를 쓰고 계셔서 제게 그 편지를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내용이 이랬습니다.

  “아버님 전상서! 기체후 일향만강하옵시며”라고 상투적인 인사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의 사업을 염려하고 있고, 어머님이 해소 때문에 고생하고 계셨는데 건강은 어떠시냐고 물었습니다. 또한 아버님이 공들여 집 텃밭에 키우신 닭들은 무고한지 또 물었습니다. 그리고 편지 끝 무렵에 한 줄 의미심장한 내용이 덧붙여졌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급히 쓸 일이 생겨서... 돈 얼마만 보내주실 수 있을런지요”

  아버님은 친구 분들께 이 편지를 보여주시면서 자랑하셨습니다. “그래 남자는 군대를 가야 돼 이 녀석 군대 가서 철이 드는 모양이야” 기뻐하시면서 돈을 부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그 속이 들여다보였습니다. 형님이 휴가 나왔을 때 어떻게 그렇게 편지를 쓸 생각을 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형님 말씀이 군대에 편지 고수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수들이 그 비결을 전수해 준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저도 군에 가보니 그런 고수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저도 그런 고수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무엇을 청할 때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우선순위를 잘 지키면 힘든 문제도 잘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선순위를 잘 지키지 못하면 쉬운 문제도 잘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순위를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를 먼저 그리고 나서 나의 간구를 드려보십시오. 그러면 기도의 고수가 될 수 있습니다.

 

2. 간절함

   본문 5-8을 보면 예수님께서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한 친구가 있는데 한 밤 중에 찾아와서는 떡 세 덩이를 빌려달라고 청했습니다. 자기 친구들이 여행 중에 찾아왔는데 자기 집에는 먹거리가 떨어져서 대접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거절하고 싶고 또 거절해도 뭐라 할 상황은 아니지만 이 친구가 너무도 간절하게 청했기 때문에 들어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친구의 청을 들어준 것은 그 간청함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친구의 간절함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의 비결 가운데 또 하나는 기도할 때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간절함이란 무엇일까요? 아마도 성경에 가장 간절한 기도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왕상 18:42-43의 엘리야의 기도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엘리야가 갈멜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 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엘리야가 이스라엘에 비가 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우선 기도의 자세가 간절합니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넣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끈질김에도 간절함이 배어있습니다. 기도 후 확인해 보고, 또 기도하고 다시 확인해 보고, 이렇게 하기를 일곱 번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웬만큼 기도하는 사람들도 상황이 절박하면 이렇게 간절히 기도합니다. 자녀들이 대입시험을 치를 때 부모들은 누구나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부모님이 암수술을 받을 때 자녀들은 누구나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다급한 문제가 생겼을 때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이런 엘리야의 기도를 간절한 기도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엘리야의 다른 기도를 간절한 기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야고보 사도는 어떤 기도를 간절한 기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약 5:17-18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앞에서 간절한 기도라고 생각했던 그 기도를 그저 평범한 기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신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한 기도를 간절히 기도한 기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기도했기에 간절한 기도라고 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성경에 그 기도는 소개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왕상 17:1에 엘리야기 간절하게 기도한 후에 아합에게 선포한 내용만 소개되고 있습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받고 앞으로 이스라엘 땅에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났고 우상숭배가 극심한 것 때문에 너무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급기야 가뭄이 들어서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정신 차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기도를 간절한 기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간절한 기도란 그 안에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담긴 기도를 말합니다.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고 그것을 안타까워하며 드린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의 하수들이 범하는 또 하나의 잘못은 기도에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만 담아서 기도합니다. 그 기도에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라고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이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안타깝게 여기시는 것을 나도 안타깝게 여겨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간절하게 기도해 보십시오. 여러분도 기도의 고수가 될 수 있습니다.

 

3. 성령 안에서

   오늘 본문 9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한 마디로 말하면 믿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주실 줄로 믿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찾아낼 것으로 믿고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릴 것으로 믿고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도의 고수가 되는 비결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일까요? 한 마디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믿고 기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고수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기도한 대로 그대로 응답받은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자기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 또 기도해 봅니다. 그래서 속으로 “혹시나 하고 기도하지만 역시나”하고 물러섭니다.

   이런 잘못된 기도의 경험들이 쌓여가면서 점점 기도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믿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중요한 말씀을 덧붙여주셨습니다. 13절을 보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아버지가 구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듯이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혼자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롬 8:26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기도하는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무엇을 도와주실까요? 우선 우리가 기도할 때 믿고 기도하도록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이 내가 기도한 것과 다르게 나타날 때 그것을 잘 깨닫도록 도와주십니다.

   예를 들어 응답이 더딜 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게 해 주십니다. 응답이 거절될 때 왜 거절됐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기도한 것과 다르게 응답될 때 그것이 내게 더 좋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믿음 가운데 계속 기도하게 해 주십니다.

   엡 6:1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우리가 기도할 때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성령 안에서 기도해 보십시오. 성령께서 우리의 믿음을 굳세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도 기도의 고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에도 고수가 있습니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듯이 고수들은 저마다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의 고수들이 가져야 할 비결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기도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는 것,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 그리고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다 기도의 고수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