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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9. 11 영역 1/십계명절대로 우상을 섬기지 말라

16. 9. 11                                           영역 1/십계명

 

절대로 우상을 섬기지 말라

 

출 20:4-6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이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을 10가지로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이 10가지 계명은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1-4계명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해당하는 계명들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5-10계명으로 사람과의 관계에 해당하는 계명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에 해당하는 계명 4가지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계명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본이 되는 계명이고, 나머지 2-4계명은 1계명을 지키는 구체적인 실천에 해당하는 계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1계명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는 계명이고, 2-4계명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계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제 2계명입니다. 그러니까 이 계명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기 위해서 첫 번째로 지켜야 할 구체적인 실천계명입니다.

   오늘 본문의  2계명을 요약하면 ‘절대로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우상에게 절하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

   본문 4절을 보면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한 마디로 말하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상이란 무엇일까요? 두 가지로 정의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좁은 의미의 정의입니다. 좁은 의미로 우상이란 신으로 섬기기 위해 인간이 만든 신상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새긴 우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간단히 말하면 사람들이 신이라고 고안해 만든 신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제우스신과 같은 신들을 상상으로 만들고 또 그 모습을 신상으로 만들어 세워놓은 것을 말합니다. 또는 원래의 모습을 변형시켜 신격화해서 만들어 놓은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애굽의 나일 신, 개구리신, 물고기신과 같은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어떤 형상’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을 그대로 상으로 만들어 신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태양이나 달이나 별과 같은 천체와 각종 동물들을 신상으로 만든 것을 말합니다.

   정리해 보면 좁은 의미로 우상이란 눈에 보이게 만든 신상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대신 하나님으로 섬기기 위해 만든 눈에 보이는 신상을 말합니다.

   다음으로 넓은 의미의 정의입니다. 넓은 의미로 우상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여 하나님을 대신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우상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매달리고 의지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그것이 당신의 하나님이다. 오직 마음의 신뢰와 믿음이 하나님도 만들고 우상도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티모시 켈러라는 분은 우상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 우리의 마음과 공상의 세계를 하나님보다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 하나님이 줄 수 있는 것을 주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이다”

   그러니까 넓은 의미로 우상이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들을 말합니다. 우리 마음을 사로잡고 있거나 우리 마음이 기대고 의지하고 있는 것들을 말합니다.

   어떤 경우에 사람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 북한의 경우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이 세 사람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누구 없이는 못산다고 하면서 그 누구에게 마음을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이럴 때 사람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 돈, 권력, 명예 같은 것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에서 인생의 목적을 찾고, 그것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또 그것에 온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면 그것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 신념이나 사상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좌파나 우파 사상이나 이데올로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는 사람, 사랑을 위해 이 한 목숨 바치겠다는 사람 이들에게 이데올로기나 사랑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은 알든지 모르든지 자기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어떤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그것에게 온통 빼앗아 버렸고 자기가 그것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 그 어떤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 하나님 노릇을 하는 그 어떤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안에 우상이 있지는 않습니까? 좁은 의미의 우상은 없더라도 넓은 의미의 우상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어떤 우상도 있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왜 우상을 만들게 되었을까요? 우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다른 피조물들은 우상을 만들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만들 수도 없습니다. 오직 사람만 우상을 만들 생각을 하고 또 실제로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닮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소통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 의지하며 살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타락해서 이 하나님의 형상이 망가져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마치 더듬이가 잘린 개미가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이 망가져서 하나님께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 없이 홀로 인생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을 자기 스스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마치 망망대해를 그저 작은 나룻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습니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나가기가 힘이 듭니다. 암초를 피해가기가 힘이 듭니다. 태풍이나 해일과 같은 거대한 천재지변을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자기 힘으로 노 저어 나가다가도 어려운 일을 당하면 무엇인가 의지할 것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던 사람들이 점을 보러 간다든지, 무당을 찾는다든지, 종교에 귀의하려고 합니다. 때로는 힘 있는 사람의 도움을 찾으려고 하거나 때로는 어떤 사상이나 어떤 예술 작품을 붙잡고 힘을 얻거나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영화를 촬영을 시작할 때 흔히 제작발표회라는 것을 합니다. 영화에 참여하는 배우들, 스태프, 제작사 사람들, 그리고 영화 관계자들이나 기자들을 초청해서 영화 시작을 알리는 행사를 말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제작발표회 때 고사를 지냅니다. 돼지머리를 가운데 놓고 시루떡에 마른 북어를 꽂고 막걸리를 따르고서는 절을 합니다. 배우들, 제작진들, 스텝들 모두가 다 돼지 잎에 돈을 끼워놓고는 넙죽 절을 합니다.

  영화 촬영 하는 도중에 사고 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비는 것입니다. 영화가 대박이 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불안한 상황을 맞거나 인생의 위기를 맞을 때 무엇인가 의지할 것을 찾습니다. 누구에겐가 빌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듭니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의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우상을 만들고 또 만듭니다.

   이렇게 볼 때 사람들의 마음에 우상공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꾸 새로운 우상들을 만들어냅니다. 무엇인가 의지할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우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엄히 명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말며, 우상을 섬기지 말라

   본문 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두 가지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말고,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첫째,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

   여기서 절한다는 말로 원어 ‘샤하’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몸을 ‘엎드리다’, ‘존경하다’라는 뜻입니다. 레 26:1에는 이 말을 ‘경배한다’라고 번역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우상에게 절한다는 것은 사람이 만든 우상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그것을 경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엄히 금하는 것입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신사로 [야스쿠니 신사]가 있습니다. 이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1869년에 지어졌습니다. 그 후 1900년대부터는 이곳에서 전쟁에 나가 싸우다 죽은 일본군을 신으로 모셔놓고 참배하고 있습니다. 특히 1978년부터는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가장 책임이 큰 전범 14명을 이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모셔놓고 참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신으로 모셔놓고 참배하고 있고, 특히 전쟁을 일으켜 평화를 깨뜨리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의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전쟁의 주범을 신으로 참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총리와 내각의 각료를 비롯하여 일본의 주요 인사들이 때마다 이곳에서 참배를 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이 야스쿠니 신사는 단지 현충원과 같은 곳이 아닙니다. 전몰자들을 우상화해서 신으로 섬기는 곳입니다. 이것은 단지 국가 유공자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과 다릅니다. 신으로 섬기고 국가의 안위를 빌고 심지어 개인의 복과 안녕을 이곳에서 비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바로 우상숭배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곳에서도 우상숭배가 자행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로마 카토릭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로마의 바틴칸 대성당은 베드로의 무덤 위에 지어졌습니다. 실제로 베드로 대성당 지하에 베드로의 무덤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베드로의 무덤 입구에 청동으로 만든 베드로 상이 서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오른쪽 발등이 닳아서 빛이 납니다. 사람들이 베드로 무덤을 드나들면서 이 청동상의 오른쪽 발등을 붙잡고 기도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이 발등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전해져서 신자나 관광객들이나 너나없이 이 성당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많은 성당에서는 마리아 상을 세워놓고 그 앞에 촛불을 밝히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성당에서는 마리아 상이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특별한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처럼 알려져서 줄을 서서 그 마리아 상에서 기도하려고 장사진을 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의 자리에서 조차 이런 우상숭배가 자행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상을 만들어 놓았다고 그것이 우상은 아닙니다. 베드로나 성경의 인물을 동상처럼 만들어놓았다고 그것이 우상은 아닙니다. 저 브라질 리우의 산 위에 세워진 거대한 예수상이 우상은 아닙니다. 그 상들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고 절하게 될 때 그 상들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고 엄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우상을 섬기지 말라

   여기에서 섬긴다는 말은 원어로 ‘타아베뎀’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 말의 뜻은 ‘종이 된다’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마음으로 지배를 당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상을 섬긴다는 말은 마음으로 우상을 자기의 주인으로 삼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 무엇인가에 그 마음이 사로잡혀있거나 지배를 당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을 하나의 나라라기보다는 종교집단이라고 부릅니다. 김일성 우상화 때문입니다. 북한 곳곳에 김일성 부자의 동상을 세워놓았습니다. 의무적으로 그 앞에서 참배하게 만듭니다. 집집마다 김일성 부자의 사진을 걸어놓았습니다. 관공서 같은 공공건물이나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집단농장이나 사업체에 빼놓지 않고 사진을 걸어놓았습니다. 이곳의 주인이요 그곳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자가 김일성 부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람들 옷에 김일성 부자의 뺏지를 달고 다니게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김일성 부자의 사람들 그들의 청지기요 종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세뇌와 우상화로 인해서 북한 동포들은 김일성 부자를 볼 때 실제로 감격하여 눈물을 흘립니다. 북한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이런 세뇌를 당했기 때문에 김일성이라는 존재가 그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저 북한사람들과는 같지 않아도 이런 저런 것에 그 마음이 지배당한 채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나 인기 같은 것에 또 어떤 사람은 돈과 권력 같은 것에, 또 어떤 사람은 사랑과 자식 같은 것에 그 마음이 지배를 당한 채 살아갑니다. 살아가면서 온통 그 생각뿐입니다. 그것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우상에게 절하지 못하게 하시고 우상을 섬기지 못하게 하실까요? 간단합니다. 우상에게 절하거나 우상을 섬기는 일은 곧 하나님을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Either or’의 문제이지, ‘Both and’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의 문제이지, 이것도 하거 저것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섬기든지 우상을 섬기든지 해야지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상에게 절하든지 우상을 섬기게 되면 그 자체로 하나님을 버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우상에게 절하거나 우상을 섬긴다면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곧바로 속이는 일이요 거짓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상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다 만들어진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당장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우상에게 절하거나 우상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일이고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어서 그 죄를 갚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타락하고 죄악이 가득한 사람의 마음은 우상공장과 같습니다. 계속 우상을 만들고 우상에게 절하거나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믿는 우리에게도 이런 경향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내 안에 우상이 생겼는지 살펴야 합니다. 내가 우상에게 절하거나 우상을 섬기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우상을 철저히 척결하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