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의 세대
다니엘서 6:4
(2016년 5월 15일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다니엘 세대에 대해서 시리즈로 설교중입니다. 다니엘 세대는 거룩한 세대, 성령의 세대, 충성의 세대, 기도하는 세대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충성의 세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단 6:10을 보겠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이 말씀에 보면 다니엘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잘 아시겠지만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다리오 왕이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했습니다.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는데 다니엘이 그 중에 가장 우두머리였습니다. 이에 시기한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워낙 진실하고 성실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기에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다니엘의 적들이 다니엘을 쓰러뜨리기 위하여 악법을 만들어냅니다.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 법입니다. 다리오 왕은 총리들과 고관들의 꾀에 속아서 금령을 세우도록 허락하고 그 내용이 담긴 조서에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니엘은 전에 하던 대로 열린 창문 앞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세 번씩 기도를 합니다. 다니엘은 자기가 기도를 하면 사자 굴에 들어가야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 결과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셔서 다니엘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다니엘은 충성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충성했고, 국가에 충성했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선택의 기로에 설 때는 그는 국가나 자기에게 맡겨진 일보다 하나님을 선택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충성을 했던 사람입니다.
본문에서는 다니엘을 충성되다고 했는데 이 말은 히브리어로 ‘아만’ 이라는 말입니다. 그 뜻은 ‘신뢰하다. 믿다’라는 뜻입니다. 충성을 헬라어로는 헬라어로는 ‘피스토스’라고 합니다. 이 말 역시 ‘신실하다, 믿음직하다, 신뢰할 만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충성스러운 사람은 믿음직스러운 사람입니다. 성경에서는 신실하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개역개정성경으로 히 3:5을 보겠습니다.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모세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개역성경으로 히 3:5을 보겠습니다.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같은 단어인데 개역개정성경에서는 신실하였다고 번역했고, 개역성경에서는 충성하였다고 번역했습니다. 충성스러운 사람은 믿음직한 사람입니다. 신실한 사람입니다.
부부가 사랑하며 오랜 세월을 살다보면 서로 닮아갑니다. 왜냐하면 늘 같은 환경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서로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살기 때문에 외모가 닮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얼마나 닮았는가를 통해서 두 사람이 얼마나 결혼생활에 충실했는지를 짐작하기도 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다보면 예수님을 닮아 가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야 할 부분이 많은데 그 중에 하나가 충성입니다. 히 3:6을 개역성경으로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충성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사람들은 충성스러운 신앙생활을 합니다.
오늘 설교는 충성에 대해서 좀 폭 넓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 충성
사람들은 자신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로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 6:20을 보겠습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7:23도 보겠습니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값 주고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강문호 목사님께서 파나이섬에서 선교하고 있는 동생 강요한 선교사님을 방문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선교사님들을 대형 버스에 모시고 자신은 승용차로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 버스에서 나오는 매연이 무척 심해서 강요한 선교사 운전기사인 현지인에게 버스를 추월, 앞장서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인 강선교사가 뒤따라오라고 하였다면서 결코 앞장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강목사님이 자신이 주인의 형이라고 말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주인이 말한 대로 뒤에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차가 멈추었을 때 동생에게 이런 사정을 말하자 동생은 웃으면서 이 기사는 자기 말 외에는 누구 말도 안 듣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이면 화단에 물을 주라고 하였더니 비가 오는 날에도 물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강요한 선교사님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주님과 세상이 동시에 충성을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에게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김영배라는 분 간증입니다. 이 분이 고려대 국제정치 대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의 전통 중에 하나가 술에서 술로 교수와 학생 간에, 선후배 간에 접대를 하는 것이 있답니다. 그런데 이분이 교수의 술잔을 거절하였다가 교수와 원수가 되었답니다. 그 교수가 “내가 20년간 교수 생활하면서 나의 술잔을 거절한 경우는 너 혼자 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교수의 술잔을 거절하니 박사과정에 다니는 선배가 손을 보더랍니다. “나도 장로의 아들인데 술을 받는데, 네 놈이 뭘 모르는구나. 우리 학교의 매서운 맛을 봐야 한다”며 멱살을 쥐고 흔들며 협박을 하더랍니다. 그런데 2년 후 이 사람이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 등 7개 학교에 동시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때 결정적인 기여를 한 교수님이 술을 권하던 교수님이었답니다. 그 교수님이 추천서에 “이 학생은 나의 술잔을 유일하게 거절한 용기 있는 학생으로 뭐든지 잘 할 수 있는 학생입니다”라고 소개를 했답니다. 그래서 김영배씨는 석사, 박사 과정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까지 지원 받는 케이스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경쟁률이 무려 6000대 1이었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을 선택해야 할 때 세상을 선택하면 지금은 좋은 것 같으나 나중이 문제가 커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면 지금은 곤란한 것 같으나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기를 바랍니다.
2. 재물로 충성
눅 16:11입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이 말씀은 한 청지기에 관한 말씀을 하신 후에 주신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은 사람이 돈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을 보고 신령한 것을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보면 ‘재물에 충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재물에 충성’이라는 말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재물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재물을 충성스럽게 관리하라는 말입니다.
재물을 잘 관리하는 것을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안 됩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돈을 잘 관리하는 것은 빚지지 않는 것이고, 돈을 잘 모으는 것이고, 재테크를 잘해서 가진 재물을 불리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적인 재정 관리는 물질의 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물질의 종이 된 사람들은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못합니다. 주일을 지키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보다 돈 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유익을 따라 움직입니다.
재물에 충성하는 사람은 재물의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돈을 쓰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누가 교회에 무슨 물건을 해놓았다고 떠들썩하게 광고하고 그러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들도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가 강대상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강대상을 문복창 집사님 부부했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얼마나 재물로 충성하는지는 정확하게 모릅니다만 이번 일은 하나님께 충성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강대상 위에 있는 유리가 깨졌습니다. 부인되는 김은숙 집사님이 그걸 보고 난 후에 강대상을 그 가정에서 하라는 성령의 음성을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유리만 바꿔도 되는 일이기 때문에 저는 설교 중에 강대상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했고, 제 기억으로는 김은숙 집사님에게도 그렇게 말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가정에서 강대상 헌금으로 200만원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또 강대상 헌금으로 100만원을 올렸습니다. 제가 김은숙 집사님에게 물었는지 문 집사님에게 물었는지 모르겠는데 “왜 또 100만원을 했습니까?”라고 하니 “성령님께서 말씀하셔서요”라고 대답을 들었습니다. 강대상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은 목사의 생각이었습니다만, 집사님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200만원을 했고, 그 200만원으로도 강대상을 충분히 살 수 있었습니다. 강대상을 돈에 맞춰서 구입을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100만원을 더 하라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다시 순종해서 또 100만원을 헌금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이 재물로 주님에게 충성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인도가 있을 때 주님의 인도를 따라서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재물로 주님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대상이 교회에 들어오는 날 남편 집사님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집사님이 공사 자재를 사는데 원래 사려고 했던 회사에서 사지 않고 다른 회사에서 동일한 공사자재의 견적을 받았는데 원래 사려고 했던 곳보다 300만원이나 싸게 받았습니다. 정확하게 강대상 헌금을 한 금액만큼 하나님께서 채워주셨습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천 배, 만 배로 부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재물로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3. 남의 것에 충성
눅 16:12입니다.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이 말씀을 쉽게 설명을 하겠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은 남의 회사에 들어가서 일 하는 것입니다. 남의 회사이지만 거기서 충성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당신의 사업을 주실 것입니다. 남의 것에 충성하면 너희 것을 주신다는 말씀이 이해가 됩니까?
얼마 전 마천1동 교동협의회에서 이슬람 세미나를 했습니다. 강사로 오신 분은 제 동기이신 유해석 선교사이셨습니다. 제가 유해석 선교사님의 강의를 평가한다면 ‘명품 강의’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꼭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유선교사님은 강의가 끝 난후에 마천세계로교회 장로님 아들을 위하여 기도를 해주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날이 목사 안수식이라고 담임목사님이 부탁을 했기 때문입니다. 유선교사님은 그 젊은 사역자에게 안수를 한 후에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드는 것입니다.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 충성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좋은 사역지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서 유선교사님 자신이 부교역자일 때 최선을 다하여 충성했더니 그 교회들이 자신을 담임목사로 청빙하더라는 말도 했습니다. 핵심은 남의 것에 충성하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당신의 것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부교역자는 남의 교회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그가 부교역자로서 최선을 다해서 담임목사님을 돕고 사역에 충성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일을 주실 때 부교역자 시절의 충성을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젊은이가 같은 날 같은 회사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젊은이는 승진을 했고 한 젊은이는 승진하지 못했습니다. 승진을 하지 못한 젊은이는 사장의 불공평한 대우에 불만이 생겼습니다. 하루는 사장을 찾아갔습니다. 젊은이의 불만을 들은 사장은 대답대신 시장에 나가 지금 어떤 물건이 주로 거래되고 있는지 알아 오라고 했습니다. 얼마 뒤 젊은이가 돌아와 보고했습니다. “농사꾼들이 감자를 팔고 있었습니다.” 사장은 “양이 얼마나 되던가, 가격은 얼만가?”하고 재차 물었습니다. 이어지는 사장의 대답에 젊은이는 “그런 것까지 알아오라고 하시지 않으셨는데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사장은 불만을 품은 젊은이 앞에서 먼저 승진한 직원을 불러 똑같은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는 잠시 뒤 돌아와 “오늘은 감자 마흔 포대가 거래되고 있으며 가격은 한 포대에 만 원이었습니다. 제가 감자 하나를 사왔는데, 보십시오. 품질에 비해 가격이 무척 저렴합니다. 지금 사 두시면 큰 이익이 될 겁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사장에게 불만을 품었던 젊은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종살이를 하면서 충성했습니다. 자기가 충성해서 보디발의 집이 부자가 된다고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종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옥살이를 하면서도 그곳에서 총무 일을 맡기니 충성했습니다. 자기가 그 일을 열심히 한다고 자기가 특실에서 생활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에게 유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요셉은 남의 일을 하면서도 나의 일처럼 충성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의 충성하는 성품을 쓰셨습니다.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히브리 민족과 애굽을 7년 대흉년으로부터 구원하는 위대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직장생활을 내일처럼 하시기를 바랍니다. 남의 일이어도 내게 주어진 일이라면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4. 작은 일에 충성
눅 19:17을 보겠습니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이 말씀에 보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한 사람이 열 고을의 권세를 차지합니다. 이 말씀은 이런 내용입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가면서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그 돈으로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불렀습니다. 먼저 한 종이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당신이 주신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습니다.” 주인은 그 종에게 잘하였다고 말했습니다. 그 종을 착한 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주인은 주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게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시고 큰 일을 맡기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맡은 일이 작은 일이라고 소홀히 하면 주님은 절대 큰 일을 맡기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작은 일이어도 성실하십시오. 열심히 하십시오. 그 일에 충성하십시오. 때가 되면 주님은 반드시 큰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미국에서 발사되었던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가 불과 몇 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했습니다. 탑승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고의 원인은 직경 0.7㎝의‘오-링(O-ring)’이라는 작은 부품의 결함 때문이었습니다. 작다고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작은 일도 소중한 것입니다.
평북 정주에 한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가난해서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특히 이 청년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 아침 주인의 요강을 깨끗하게 닦아놓곤 했습니다. 주인이 아무리 봐도 총명함이나 성실함으로 볼 때 머슴살이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학비를 대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잘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정주로 돌아와서 오산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청년이 기독교 독립운동가요 민족 지도자이셨던 조만식 장로님입니다. 조만식 선생은 제자들에게 성공의 비결을 물을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답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 나에게 주어진 일이 하찮은 일이라고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일에서도 우리의 충성을 원하십니다.
몇 평짜리 밭을 관리할 줄 모르는 농부가 수 만평짜리 농장을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몇 마리의 양떼를 돌보지 못하는 목자가 수 백 마리의 양떼를 돌볼 수 없습니다. 직장에서 맡겨진 작은 일도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큰 사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작은 일에 충성하십시오. 주님은 큰 것을 맡기실 것입니다.
5. 맡은 일에 충성
고전 4:2을 봅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주어지면 그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 일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성실한 사람들입니다. 김연아를 보십시오. 손연재를 보십시오.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성실히 연습하는지 모릅니다. 놀고먹으면서 세계적인 사람이 된 사람은 없습니다. 세계적인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충성하는 사람들입니다.
학생은 공부에 성실해야 합니다. 직장인은 직장생활에 성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사회생활에서 맡은 일이든 교회에서 맡은 일이든 최선을 다하십시오. 맡겨진 일에 충성된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6. 하나님의 집에 충성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 충성했습니다. 민 12:7을 보겠습니다.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히 3:2을 보면 주님의 충성의 정도를 모세의 충성과 같은 충성으로 말씀합니다. 개역성경 히 3:2입니다.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집은 어디를 말합니까? 교회를 말합니다. 딤전 3:15을 보겠습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교회를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지하실 교회라고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그린벨트에 있는 교회라고 우습게보면 안 됩니다. 올바른 신앙고백을 가진 교회는 크기와 상관없이 모두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이 미 항공우주국(NASA)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대통령이 로비를 지날 때 지저분해진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는 한 청소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청소부는 콧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바닥을 닦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지금껏 내가 본 청소부 중에서 가장 훌륭한 청소부입니다.” 그러자 그 청소부는 대통령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각하, 저는 일개 청소부가 아닙니다. 저는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바닥을 닦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크고 작은 일을 합니다. 교회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미 항공우주국에서 일하는 청소부보다는 더 큰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입니다. 청소가 되었든 무슨 일이 되었든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비전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확신을 갖고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교회 일에 충성하기를 축원합니다.
7. 죽도록 충성
계 2:10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제가 몇 년 전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경은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는데 저는 착한 목사라 여러분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는 못하겠습니다. 물론 우리가 신앙을 버려야 한다는 위협을 당하는 경우에는 주님을 부인하는 것보다 차라리 순교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죽지 말고 코피만 흘려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교회 일하다가 코피만이라도 흘려주세요. 제가 그렇게 이야기 한 후 얼마 지나서 식당에서 조현옥 집사님이 “목사님, 저 코피 흘렸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볼 때 미안하지만 그 코피는 주의 일을 하다가 흘린 코피는 아닌 것 같았어요.
여러분! 그런 시대가 안 오기를 바라지만 앞으로 혹시 믿음 생활 때문에 세상적인 성공을 포기해야 하고, 세상적인 안락을 포기해야 한다면 담대하게 포기하기를 바랍니다. 혹시 신앙을 지키다가는 순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담대하게 죽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믿음이 좋아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중간 성적이 1등이고, 현재까지의 기록이 세계신기록이라고 하더라도 끝까지 달리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생명 걸고 충성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적당한 충성을 합니다. 목숨이 아니라 약간의 건강, 약간의 물질만 손해를 봐도 충성하지 않고 하던 일을 팽개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나 집 안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주님의 일을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죽도록 충성해야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영국 런던의 켄터베리 교회에 니콜라이 집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17세부터 사찰집사가 되어 교회 청소와 심부름 같은 잡다한 일과 함께 매일 5분 동안 종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 집사님이 얼마나 정확하게 종을 쳤는지 런던 시민들은 니콜라이 집사님이 치는 종소리에 시계를 맞추었다고 합니다. 그는 두 아들을 신앙으로 잘 양육시켜서 두 아들이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교수가 된 두 아들이 “아버지, 이제 일 그만 하세요.”라고 말렸지만, 니콜라이집사님은 그 때마다 “아니야, 나는 끝까지 이 일을 해야 해.”라고 말하며, 75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무려 5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종을 쳤다고 합니다. 그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날 때, 가족들이 그의 임종을 보려고 모였습니다. 그런데 종을 칠 시간이 되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비틀거리며 종탑 아래로 가서 종을 치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리고 2분 정도 종을 치다가 쓰러져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야말로 죽도록 충성을 한 것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소식을 듣고 감동을 받아 그의 시신을 황실 묘지에 안장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장례식 날에는 런던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유흥업소가 자진해서 하루 동안 영업을 쉬는 바람에, 그 날이 자연스럽게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니콜라이 집사님은 죽도록 충성한 분입니다. 신앙생활에는 리콜라이 집사님 같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죽도록 충성, 변함없이 충성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8. 성령으로 충성
갈 5:22-23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사과나무를 심으면 사과가 열리듯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의 열매가 열립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7번째 나오는 것이 충성입니다.
무거운 물건을 들고 싶다고 다 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물건을 둘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충성하고 싶다고 충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충성할 수 있는 힘을 성령님이 주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그러면 충성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는 운전수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안전합니다. 운전수와 상관없이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자동차는 아주 위험한 자동차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내 인생의 운전수가 되셔서 성령님이 원하시는 인생을 살 때 복되고 행복합니다. 그럴 때 성경이 요구하는 충성이 가능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다니엘 세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거룩한 세대, 성령의 세대, 충성의 세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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