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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61023]여호와를 경외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된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된다.

34:1-10

(20161023일 주일)

 

하나님의 은혜로 26명의 선교팀이 캄보디아 선교를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모두 행복하게 사역하고 기쁨으로 들어왔습니다.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겨자씨와 같은 저희들의 사역을 통해서 캄보디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줄 믿습니다.

이 시는 믿음의 능력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이 시는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였으나 상황에 눌리지 않고 상황을 초월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 하셨으나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미워하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고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서 도망을 다녔습니다.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더 이상 이스라엘 땅에서 살지 못하고 블레셋의 도시 가드로 갔습니다. 그리고 가드를 다스리고 있던 아기스 왕에게 망명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이 누군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자기들의 영웅이었던 골리앗을 물맷돌로 쓰러뜨렸고,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다윗을 칭송했다는 소식이 이미 가드에까지 알려져 있었습니다. 신하들이 그 사실을 아기스 왕에게 말하자, 아기스 왕 앞에 있던 다윗의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다윗은 가드 왕이 혹시 자기를 죽일까 매우 두려워서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습니다. 그들 앞에서 미친 체하며 궁궐 대문짝에 아무렇게나 낙서를 하며 침을 수염에 질질 흘리는 미치광이 흉내를 냈습니다. 블레셋의 신하들조차도 두려워할 정도로 용맹스럽던 다윗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미치광이로 변해버린 다윗을 본 아기스 왕은 그를 궁궐에서 쫓아내버렸습니다. 다윗은 그 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시를 지었습니다. 그때 지은 시가 본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다윗은 결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간 사울 왕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시의 내용은 우울하거나 절망적인 내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확신과 소망이 충만한 시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그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다윗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맛보는 복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8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다윗이 맛 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받는 복이 무엇이기에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찬송하며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높이고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고 하는 것일까요?

오늘 설교는 여호와를 경외하면 어떻게 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여호와를 경외하면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본 시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의 2가지 자랑거리를 말해줍니다.

 

1) 하나님이 자랑거리입니다.

2절에 보면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라고 말합니다.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면 하나님이 자랑거리가 됩니다. 교회에 나오면서 은혜를 받기 전에는 성경을 숨겨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난 후에는 성경을 들고 다니고, 은혜 받기 전에는 교회 다닌다는 소리를 못했던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난 후에는 교회 다닌다고 당당하게 밝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어서 그런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1절에 보면 자신은 항상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말합니다. 3절에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과 함께 하나님을 높이자고 합니다. 그가 높이기를 원했던 하나님은 광대하신 하나님입니다.

캄보디아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점이 있었습니다. 캄보디아는 헛된 우상으로 가득했습니다. 저희는 2곳의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하나는 이번에 함께 했던 최정섭 선교사님이 섬기시는 끄로째제일감리교회였고, 또 하나는 씨엡립 선상마을에 있는 갈릴리선상교회였습니다. 저희는 끄로째제일감리교회에서 마을잔치를 베풀었고, 선교사님은 오신 손님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선상교회에서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67일간 엄청난 거리를 여행했는데 그 2개의 교회 외에는 다른 교회를 보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찾아볼 수 없는 캄보디아에 절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집집마다, 식당마다, 호텔마다 신단을 차려놓고 헛된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캄보디아가 발전하려면 가장 급한 것이 우상을 척결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상은 신이 아닙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우상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135:18에 보면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우상이 헛된 것처럼 우상을 만드는 사람과 우상을 의지하는 사람도 그렇게 헛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하나님을 자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능력으로 지금도 우주 만물을 운행하시는 분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고난 받게 하시므로 우리를 구원해주신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신 분으로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는 자랑거리입니다.

 

2) 자신에게 자랑거리가 생깁니다.

5절에 보니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주를 경외하는 사람은 광채를 내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않습니다.

왜 주를 경외하는 사람은 얼굴에서 광채가 날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빛이 임하여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기 때문입니다. 60:1을 보겠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하나님은 빛이신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빛이 그 사람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우리에게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첫째, 존재의 변화입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였는데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영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

둘째, 신분의 변화입니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지옥백성에서 천국백성으로, 마귀의 집에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변화됩니다.

셋째, 생활의 변화입니다. 술 먹고 운전하는 것은 살인행위입니다. 아무리 좋은 차도 만취한 사람이 운전하면 살인도구입니다. 반면에 모범운전자가 운전하면 편리한 생활의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인생의 운전대는 하나님이 잡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생활은 바르고, 유쾌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인생의 운전대는 마귀가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짓되고, 악하고,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나 자신이 변화되고 변화되므로 자신에게도 자랑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2.여호와를 경외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특권 중에 하나가 기도응답의 특권이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4절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6절입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15절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7절입니다.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나와 대화해 주신 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기도가 놀라운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해봅시다.

첫째,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인데 하나님과의 대화는 신분의 차이를 극복한 대회이기에 놀랍습니다. 대화라는 것이 어느 정도 신분차이만 나도 어려운 것입니다. 높은 쪽에서 원하면 가능하지만 낮은 쪽에서만 원해서는 불가능 합니다.

내가 박근혜 대통령하고 대화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하고 대화하고 싶다고 대화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의 불가능합니다.

둘째, 대화의 시간과 장소도 놀랍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언제나 어디서나 가능합니다. 새벽에도 가능하고 한 밤 중에도 가능합니다. 교회에서도 가능하지만 화장실에서도 가능합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어디서나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박근혜 대통령보다 오바마 대통령 보다 높은 분이신데,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어디서나 가능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놀라운 특징입니다.

우리가 대통령하고 어렵게 만났다 하더라도 몇 분이나 대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몇 분 혹은 몇 초 길어야 몇 시간 정도입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대화를 중단해야 합니다. 대통령은 바쁜 일정 때문에 나에게 많은 시간을 내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나에게 얼마든지 시간을 내주십니다. 이번에도 자동차에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끄로째에서 씨엡립에 갈 때는 8시간 30분 넘게 차를 탓는데 계속 이동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내주시는 분입니다.

셋째, 절차면에서도 놀랍습니다. 대통령하고 대화를 하려면 얼마나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할까? 잘 모르겠지만 청와대에 면담신청을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면담신청을 해도 거의 99.999%는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면담신청이 받아드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면담신청이 받아졌어도 정해진 시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몇 달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대화는 절차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기만 하면 아무런 절차 없이 하나님하고 부르면 바로 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넷째, 대화의 내용도 놀랍습니다. 대통령하고는 너무 작은 문제를 말할 수 없습니다. 면담신청을 해서 내 몸에 미열이 나는데 감기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한다면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문제도 말씀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은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번 기도여행을 위해서 자동차와 운전자 그리고 마이크를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셔서 편하게 기도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에게 부탁할 수 있는 문제는 제한적입니다. 비가 오지 않는데 비가 오게 해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는 그런 문제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은 무제한 적인 것입니다. 기도는 놀라운 것입니다.

 

3.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환난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6절에 보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신다고 약속하신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세상을 살다보면 생각지 못했던 아픔을 당하기도 합니다. 답답한 일도 많이 만납니다. 그 때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 주십니다. 주의 백성을 환란에서 건져 주시며 그의 발을 견고한 곳에 세워주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환란에서 건져주셨습니다. 다윗이 당했던 횐란이 많은데 그 때마다 다윗은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적당한 때에 환란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싸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은 사울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울은 왕이었고 다윗은 일개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쫓아다녔고 다윗은 사울을 피해서 도망 다녔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다윗을 높이셨고 사울은 죽이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로 환란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환란을 당할 때 그 사람의 신앙의 진수가 드러납니다. 조금만 문제가 발생해도 마치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사라져 버리고,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신앙을 어떻게 진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밤이 깊으면 별은 더 빛나게 되어 있습니다. 낮에는 빛을 발하지 못했던 별이 밤이 깊으면 더 찬란하게 빛나는 것처럼 환란 중에 신앙의 진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을 환란에서 건지시겠다고 하셨는데 4절에서는 두려움에서 건지시겠다고 약속하셨고, 7절에 보면 천사를 통해서 건져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9절에서는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건지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말씀하신 것이고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믿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은 내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믿어야 합니다.

 

4.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윗은 9절에서 담대하게 외칩니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이 사용한 비유를 보십시오. 얼마나 확신에 차있습니까? 10절입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도다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몇 가지 의미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첫째, 환경적인 면은 어렵더라도 내적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남편과 결혼을 했는데 남편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어요. 나는 당신만 있으면 만족해요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은 어려움 중에도 만족함이 있습니다.

둘째, 인간의 눈으로 부족하지만 하나님 보실 때는 가장 적당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들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훈련소 같은 환경을 주십니다. 그런 환경이 우리의 눈에는 부족함이 많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 환경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기에 가장 적당한 환경입니다.

셋째, 환경적인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 시편을 기록할 때에는 아직 모든 것이 채워진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반드시 환경적인 변화도 올 것을 믿었습니다. 후에 그의 믿음대로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다윗을 왕으로 세워주셨고, 영광스러운 왕국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도 아름답게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저는 이 시편을 읽으면서 현명한 다윗이 왜 하필이면 이스라엘의 가장 적대국이던 블레셋으로 피신했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자신이 골리앗을 죽였던 사건이 오래 된 일이라 가드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지, 아니면 자신이 가면 적국의 장군이 귀순한 것으로 여겨서 블레셋 사람들이 환영하리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다윗이 생각했던 것처럼 되지 않았고 도리어 그들에게 붙잡혀 죽을 뻔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 앞에 서 굴욕을 당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수염은 명예와 존경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장로를 자켄이라고 하는데 그 말은 원래 수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침을 흘려 수염을 더럽히는 것은 자신의 명예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선택을 한 다윗은 결국 자신의 생명을 건질 수는 있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명예와 품위를 잃어버렸습니다.

이 위기를 간신히 극복한 후에 다윗은 사람에게 피하려 했던 자신의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한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자랑거리가 생기고, 기도에 응답받고, 환란에서 구원되고,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경외합시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글쓴이 : 마경훈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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