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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좋은 것을 남겨 두었다 요한복음 2:1~11

지금까지 좋은 것을 남겨 두었다
  

▒▒ 성경 : 요한복음 2:1~11


예수님께서 가나에 혼인잔치가 가셨습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의 어머니도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아들 예수께 와서 말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 예수님이 말합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어머니는 하인들에게 예수님의 명령에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빈 돌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그리고 가서 잔치맡은 이에게 떠다 주었습니다. 그 잔치 맡은 사람이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에 좋은 것을 내놓고 그 다음에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것을 남겨 두었도다.”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누군가를 대접할 때, 우리는 나중보다 처음에 좋은 것을 내놓습니다. 좋은 음식은 먼저 내놓지 나중에 내놓지 않습니다.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술로 먼저 대접한 후에, 취한 뒤에 그보다 좋지 못한 술을 내어 놓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차이를 알지 못합니다. 이미 배불렀고, 이미 기분좋게 취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이고, 세상살이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이 계신 이 가나의 혼인잔치는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남겨 두었도다.” 감탄과 감격하는 모습에서 처음이 아닌 나중이 더 좋고, 맛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기준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지금 2008년도 2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보면, 예수님께서는 2월, 3월, 4월, 앞으로 남은 날들을 지금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리라 믿습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에 대한 것입니다. 첫째는 죄의 유혹이 처음에는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잠언 9장 17절에 “도둑질 한 물이 달고 훔쳐 먹는 빵이 더 맛있다.” 말씀합니다. 죄의 유혹이 이처럼 달콤합니다. 하지만 죄의 결과는 18절에 이어서 “그러나 음녀가 지옥에 떨어지듯이 바로 그렇게 하는 자는 지옥에 내려가느니라.” 말씀과 같습니다.

죄는 우리를 기쁨으로, 좋은 것으로, 즐거운 것으로 유혹합니다. 그런데 죄의 유혹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아담과 이브도 사탄으로부터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유혹을 받습니다. 유혹에 넘어간 그들은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를 따 먹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따 먹은 후 그들은 서로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죄는 처음에는 달콤하고 좋은 것으로 유혹해 오지만, 죄의 결과는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죄의 유혹 앞에서 두 번째로, 우리는 악을 미워하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시편 73편에서 성가대의 지휘자인 아삽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어떻게 악인은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의인은 하는 일마다 안 되는 것입니까? 어떻게 악인은 죽을 때도 편안하게 죽고 의인은 그렇지 않는 것입니까? 아삽은 이것 때문에 스스로 자기 신앙이 미끄러질 뻔했다고 고백할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삽은 하나님을 찾으며 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악인은 결국 파멸할 것이고, 지옥에 내려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눈앞에 악이 잘 된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악이 잘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죄의 유혹 앞에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악이 주는 기쁨은 찰나의 기쁨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죄의 유혹과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겨자씨의 비유를 한번 봅시다. 겨자씨는 심겨질 때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씨입니다. 그런데 그 씨가 땅에 심겨져서 자라게 되면 커다란 나무가 됩니다. 새들의 보금자리가 됩니다. 누에고치나 번데기도 볼품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자라나게 되면 아름다운 나비가 됩니다. 로마서 8장 19절에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을 기다리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면 죄악의 노예로부터 해방되어 영광의 자유에 이르게 되느니라.” 모든 피조물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서 더 좋은 주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주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는 욕심이 있습니다. 욕심은 하나님의 때보다 우리의 때를 주장하게 됩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우리는 간혹 과속을 하게 됩니다. 과속은 남보다 빨리 가려하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행동입니다. 과속하는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욕심입니다. 그래서 과속은 운전하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불안과 위험을 안겨다 줍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욕심이 하나님보다 더 앞설 때가 있습니다. 그 욕심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우리를 위험으로 몰고 간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손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게 됩니다. 후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을 주셨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얻은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계보를 잇지 못합니다. 지금 눈앞에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과속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제 철에 핀 꽃이 더 아름답습니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여러분, 절대로 과속하지 마시고 인내하고 기다리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좋은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