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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장식 잠언 4:20~23

내부 장식
  

▒▒▒ 성경 : 잠언 4:20~23



어떤 목사님께서 기독교 서적을 사기 위해 서점에 갔습니다. 기독교 섹션에 ‘내부장식의 기술’ 이라는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연히 서점 직원의 실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챤이란 마음에 장식을 해야 되는 것 아니냐” 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본문 잠언 4장 23절에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을 잘 지키라” 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생명의 근원이 우리 마음에서 남." 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기도로 시작했던 마음은 어느새 아침 도로 위에서는 짜증과 분노로 바뀝니다. 오늘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야지 다짐했던 마음은, 지하철 안에서 발이 밟히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한마디 쏘아 붙입니다. 언제 내 선한 마음이 도둑질 당하고, 잘못된 마음이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바뀌어버립니다. 로마서는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5~6) 말씀합니다.

내부 장식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거듭나야 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영생에 관한 물음을 갖고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거듭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성령의 생각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가 씻겨지고, 그 안에 성령이 우리의 마음 밭을 경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질서가 잡히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경건생활에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경건생활은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권한이며, 믿는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이기도 합니다. 먼저 경건에 대한 바른 정의가 필요합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경건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경건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을 책망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거룩함의 모양으로 보면 그들을 따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 같다 고 말하셨습니다. 그들의 겉은 화려해 보였지만, 그들의 안은 시체처럼 썩어있었던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성서에서 말씀하시는 경건한 생활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으로 우리를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되 마음을 모아 집중해서 들어야 합니다. 악한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시인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 밭이 옥토가 되어갈 것입니다. 둘째는 받은 것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감사가 빠진 예배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예배입니다. 예배로 하나님을 높여드리며,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 때, 우리의 마음에 생명과 평안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둔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경건생활에 힘쓰는 사람은 예배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경건의 첫 발자국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백부장 고넬료가 나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웃을 구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높여드리는 행위입니다. 높은 분이 있기에 우리는 그 분을 우러러보며 살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십니다. 그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보며 우리의 매무새를 다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경건 생활에 힘쓰는 사람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는 집을 보아도 집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그 집의 모양새가 달라집니다. 또한 그 집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서 그 집의 안과 밖은 달라집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내 마음을 다스리느냐, 어떻게 마음을 가꾸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이 달라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방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무덤 가운데 서서 자기 몸을 찢으며 괴성을 지르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귀신이 그를 지배하고 있어서, 그 모양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군대 귀신 들린 자에게 다가가십니다. 그리고 “귀신아 나가라.” 말씀하시자, 귀신이 그의 몸에서 나갔습니다. 그는 달라졌습니다. 옷을 단정하게 입고, 머리를 깎고, 예수님 옆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 사람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삶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도 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며 살아갈 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복잡하고 많은 것들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은 점점 변화되어 옥토로 변해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정원사 되시는 예수님께 여러분의 마음을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육신의 생각에서 영의 생각으로,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을 갖춘 성숙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