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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에서 강함으로 로마서 8:26~30

약함에서 강함으로
  

▒▒▒ 성경 : 로마서 8:26~30


이 시간 하나님의 도우심과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채고 브엘세바를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패배자처럼 혼자 가는 길에 그는 루스라는 들판에서 하늘을 이불 삼고 돌을 베개 삼고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후 야곱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자기가 베고 누웠던 돌 위에 기름을 붓고 거기에 제단을 쌓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도우심,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 것은 자기 자신이 연약하다고 느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두려워할 때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많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역사를 눈으로 본 것은 여리고성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무기력할 때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8장 26~30절은 말씀합니다. “성령이 너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이 말씀은 바로 그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은 연약할 때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연약할 때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 우리를 대신해서 성령께서 하나님께 기도해 주신다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성령의 간구를 들어주시며, 우리에게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의 약함이 강함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이러한 성부, 성자, 성령의 역사 중에서 우리가 연약할 때 어떻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가를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필립스라는 영국의 신학자는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때를 “자기 자신을 포기하려고 하는 그 순간이 성령의 역사를 분명히 체험하는 순간이다.”라고 말합니다. 신학자 올렛 할래스비는 기도라는 책에서 “사람이 무기력하고 자신이 연약할 때 가장 기도하기 적합한 때다.”라고 말합니다. 참다운 기도는 자기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무기력함, 연약함, 그 속에서 부르짖는 기도야말로 참 기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도우십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와 함께 탄식하면서 도와주신다고 말씀합니다. 도와주신다는 이 말의 헬라어는 스타그노모이스입니다. 이 말은 암탉이 알을 품는다 라는 뜻입니다. 닭이 알을 품듯이 성령이 우리를 품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아픔을 안고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탄식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고민과, 슬픔과, 아픔을 안고 같이 탄식하시며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출애굽기 3장 7절에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보고 간역자로 인해서 내게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눈으로 보았고, 귀로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우고를 아셨습니다. 알았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야다’입니다. 사실은 이 야다 라는 단어는 우리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동사는 부부 사이에 쓰는 단어입니다. 남편이 부인을 알고 부인이 남편을 알듯이 아는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아셨다는 것은 그들의 모든 것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성령 또한 누구에게도 말 못할 안타까운 마음과, 괴로운 마음을 다 알고 탄식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까요? 성령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기도드려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성령의 마음을 아시므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십니다. 만약에 A라는 집안의 어른한테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자신이 없을 때는 본인이 직접 가기 보다는 누군가를 통해서 가는 것이 더 좋습니다. A라는 어른이 신임하는 분을 통하면 A라는 어르신이 도와줍니다. 성령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기도해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뜻을 아시므로 우리를 도와주시고 축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실까요?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은 배를 타고 로마를 향합니다. 바울은 가는 길에 유리굴라 를 만납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살 소망을 잃어버렸다고 아우성쳤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이 일어나서 말합니다. “사람들이여, 여러분의 생명은 한 명도 손상이 없을 것입니다. 이 배는 파손당하지만 여러분 생명은 한 명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제 밤에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사도 바울아 너는 가이사 앞에 설 것이고, 너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을 내가 네 손에 맡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알려 주셨습니다. 성령은 연약하고 무기력해서 ‘이것으로 끝이 아닌가’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29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맏아들이 되게 하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맏아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스라엘은 아들이 몇 명이 되는지 상관없이 아버지 재산 중에 2/3를 무조건 맏아들에게 줍니다. 그리고 나머지 3/1로 아들이 나누어 갖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맏아들은 축복의 자리입니다. 성령은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아기를 낳지 못하는 한나를 축복하셔서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여리고성을 앞에 두고 걱정하는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 바다로 막혀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처지에 놓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30절은 “먼저 저희를 정하시고, 부르시고 부르신 너희를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한 너희를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영광스럽게 만어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연약한 것을 깨닫고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셔서 연약한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