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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물인 자녀 시편 127:1~5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
  

‥‥‥‥ 말씀 : 시편 127:1~5

5월은 가정의 달이며, 오늘은 어린이주일로 지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복의 근원이 됩니다.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은 자녀와 땅의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자녀의 축복은 자신이 살아 있던 당대에 이루어졌습니다.

본문 시편 127편 3절에서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상급이며,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젊은 자의 자식은 장수의 수중에 있는 화살과 같고, 그 화살이 전통에 가득한 자는 성문에서 원수와 만날 때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자식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만 부모에게도 영광이 되고, 든든함이 되며 힘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식이 정말 부모에게 힘이 되고, 영광이 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엘리 제사장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엘리가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의 제단에 제물로 바치는 고기를 먼저 먹고, 성전을 돕는 여인들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이 두 아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 엘리 집안은 영원히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을 보면, 밝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 때문에 자기가 살던 궁에서 피해서 도망치는 신세가 됩니다. 아들을 피해서 살 길을 찾아 도망가는 신세가 아버지인 다윗의 신세였습니다. 엘리나 다윗을 보면 자식은 영광이라기보다는 원수와 같은 존재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듯 합니다. 엘리는 제사장이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식은 자신의 마음과 같이 하지 못했습니다. 엘리와 다윗을 보면서 부모가 믿음이 있다고 해서 자식들이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자녀를 어떻게 신앙 안에서 잘 키울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식을 키우면서 가장 신경쓰는 것 중의 하나는 교육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사교육비로 엄청나게 많은 돈이 지출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자녀를 키우면서 중요한 교육은 다른 교육이 아닌 신앙교육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가르쳐하는 것은 자신이 어디에서부터 온 존재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중요한 핵심인 것입니다. 그럴 때 자녀들은 세상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의 징표입니다. 오늘 3부 예배 때 우리의 아이들이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는 아이를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입니다. 아이를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행위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영어교육으로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아이들에게 중요한 교육이 무엇일까 우리는 고민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이들이 태어나면 가장 먼저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 아이들에게 성년의식을 베풀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성년의 기준은 나이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앙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작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모든 문제의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자라난 우리의 아이들이 이 땅과 세계에서 존귀한 자들이 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 자녀들이 잘되는 중요한 비결이 있습니다. 창세기 27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 이삭이 눈이 어두워서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삭은 더 나이가 먹기 전에 큰 아들 에서를 축복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에서에게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에서가 짐승을 잡으러 간 사이에 동생 야곱이 염소 털로 목과 손에 붙이고 아버지에게 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야곱에게 아들아, 내게 가까이 와서 내 입에 입을 맞춰라.” 말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스킨십에서 비롯됩니다. 피부와 피부가 서로 부딪쳐야 합니다. 그리고는 이삭은 야곱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 27:28~29). 마가복음 10장에서 여러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예수님이 만져주시기를 바라고 데리고 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것을 막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안고 축복해 주십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식의 아버지는 여러분밖에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축복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여러분의 자녀를 축복할 수 없습니다. 자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이삭이 자기 아들 야곱에게 축복하듯이 축복하시는 아버지, 어머니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우리의 자녀를 신앙의 분위기에서 키워야 합니다. 가정의 분위기를 신앙적인 분위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집안의 자랑은 예수님이어야 하고, 집안의 가훈은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 어머니인 마리아는 초라했습니다. 초라한 그 모습은 예수님을 여관에서가 아닌 말구유에서 태어나게 했습니다. 초라한 행색이었지만, 그분들에게서 예수님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예수님이 성전에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려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찾는 어머니를 향해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느냐고 말합니다. 초라한 부모였지만, 예수님은 잘 자라났을 뿐만 아니라 성전을 사모하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나는 어릴 때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예배당에 다니면서 경건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성전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라게 될 때 건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해 가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