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경 : 로마서 15:12~13
오늘은 어버이주일임과 동시에 성령강림주일이기도 합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두 아들은 다르게 자랐습니다. 큰 아들은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아버지를 꼭 닮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반면 둘째 아들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같은 환경과 처지에서도 서로 다르게 성장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슬픔을 당한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갑작스레 배우자가 세상을 떠난다든가, 자녀가 세상을 떠난다든가 등 견디기 어려운 슬픔을 겪는 성도님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 슬픔에 대처하는 모습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어떤 분은 슬픔을 털어내고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그 쓰라린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 슬픔 가운데 지내며 우울증을 보이는 성도님들도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삶에 대한 희망이 있었습니다. 수용소 안에서 지내면서도 그들은 삶이 지니는 그 의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에른스트 블로흐라는 독일 철학자는 “인간의 꿈과 희망은 인간이 견디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인내하고, 끈기를 가지고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망은 우리를 살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소망은 우리가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든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먼저 희망에 대해서 여러분과 같이 생각해 보려 합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희망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 말하는 것처럼 미래에 대한 바람을 말합니다. 지금은 창고를 빌려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얼마 뒤에는 자신의 공장이 커져서 좋은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 내어 세계 곳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공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는 꿈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미래의 일만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 원하는 갈망도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갈망, 즉 지금 병든 환자의 갈망은 아픔이 빨리 없어져서 완쾌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소망은 미래의 일이기도 하면서 현재의 일이기도 합니다. 바램이면서 동시에 갈망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소망과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소망이 같은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꿈을 가진 사람, 그리고 그 꿈을 이룬 사람 요셉이 나옵니다. 요셉의 꿈은 자신의 꿈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요셉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킨 위대한 해방자이며 구원자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는 꿈을 꾸게 된 것은 하나님이 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않기로 했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뒤, 바울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사실은 기독교인의 소망은 우리 스스로 우리 안에서 발전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는 소망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본문 로마서 15장 12~13절에서 “소망의 하나님께서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며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너희에게 넘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어떻게 이루시는가 보겠습니다. 요셉은 야무진 꿈을 꾸었습니다. 볏단 11개가 자기에게 절하고, 해와 달과 열 한별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그 꿈 때문에 엄청난 값을 치루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이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성령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도록, 그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되고, 믿음의 조상이 되며, 복의 근원이 된다.”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삶은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사라의 나이 90세에 자식을 얻고자 하는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자신의 삶의 소망이 된 후에도 온갖 고초를 겪었습니다. 수모와 태장과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바다의 위험 등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하나님이 주신 소망인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는 일을 이루어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그 일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 중에 하나는 82장입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생명 되신 주, 늘 불러도 우리가 아쉬운 마음뿐이네.”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든지 낙망하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찬송가 93장 4절은 “나의 힘이 되시고 나의 소망이 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쓰러지고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할 때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시고 소망을 붙잡고 나아가게 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십니다. 오늘 성령님이 주시는 소망을 가지고, 성령님이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 주시는 분임을 믿으며 내 자신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그 소망을 품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꿈은 이웃 사람들에게 전파됩니다. 아브라함의 꿈이 오늘 우리에게 전파되듯이 말입니다. 무식한 베드로지만,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듯이 우리도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가지게 되면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가진 꿈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도록 우리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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