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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찬의 깊은 뜻! (고전 11:23-26)

성찬의 깊은 뜻! (고전 11:23-26)

 

요6:35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 사람의 육체는 떡을 먹어야 삽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삽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영생합니다.

아울러 요6:55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수님의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 사람의 육체는 물을 마셔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은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으면 영생합니다.

이렇듯 사람이 영생하려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아울러 참된 음료이신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음으로 표현하는 행위가 바로 주의 만찬, 곧 성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찬에서는 떡을 먹습니다. 이 때의 떡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합니다. 떡을 먹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성찬에서는 잔을 마십니다. 이 때의 잔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잔을 마시는 것은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성찬에서 떡을 먹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했음을 뜻합니다. 또한 성찬에서 잔을 마시는 것은 예수님의 피로 씻음 받았음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며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성찬의 깊은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한 까닭이 있었습니다. 고전11:29~30 말씀과 같이, 고린도 교회 안에서 성찬을 소홀히 여기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자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성찬의 깊은 뜻을 마음에 새기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경솔하게 성찬을 대하지 말고, 온 마음을 다해 경건한 자세로 성찬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성찬의 유래입니다(23절).


고전11: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과거형입니다. 바울은 이미 고린도 교회에게 성찬의 깊은 뜻을 전한 바 있었습니다. 지금의 가르침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가 성찬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해서, 성찬을 소홀히 여겼다고 핑계할 수는 없었습니다.

“주께 받은 것이니.” 바울은 자기의 생각이나 자신의 의견을 고린도 교회에게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것을 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서 받은 것을 그대로 고린도 교회에게 전했습니다.

갈1:12 말씀과 같이, 바울은 직접 예수님의 계시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바울이 다른 사도들에게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바울은 오늘 본문 24절과 25절에서, 그가 받은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금 고린도 교회에게 전합니다.

이렇듯 성찬은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예식이 결코 아닙니다. 성찬의 기원은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찬을 제정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세례와 마찬가지로, 성찬은 예수님이 친히 세우신 거룩한 예식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성찬이 제정된 때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듭니다. 그 때의 엄숙한 광경을 깊이 묵상한다면,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의 심정은 저절로 엄숙해질 것입니다.

“떡을 가지사.” 마26:17 말씀과 같이, 본시 이 때의 떡은 유월절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때의 떡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잡히시던 밤에,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드셨습니다.

바로 이 때 예수님은 성찬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예수님은 잡히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고전5:7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사백 년 동안이나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구원을 기념하며 지키던 절기였습니다.

그들은 쓴 나물을 먹으며, 애굽에서 당하던 고통을 기억했습니다. 또한 양의 고기를 먹으며, 하나님이 보내신 죽음의 사자가 그들의 집 문에 칠해진 양의 피를 보고서 그냥 넘어간 일을 회상했습니다. 또한 무교병을 먹으며, 급히 애굽에서 나오던 일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유월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만찬을 성찬으로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 그리스도인들은 유월절 만찬을 들지 않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이 드신 유월절 만찬은 말 그대로 최후의 만찬이 되었습니다.

유월절을 맞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살이하던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애굽 땅에서 나와,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들이 받은 구원은 육체적이며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구원은 영적이면서도 영원한 것입니다. 구원의 실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에서 자유를 받아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찬을 행하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성찬의 유래를 살펴보았습니다. 성찬을 제정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성찬이 제정된 때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종결하시고,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성찬을 새롭게 제정하셨습니다.

성찬을 소홀히 여기지 맙시다. 그것은 예수님을 경멸하는 행위입니다. 그러기에 고린도 교회에서 성찬을 무시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오늘 있을 성찬에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성찬의 이유입니다(24~25절).


고전11: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축사”라는 말은 축복과 감사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마26:26 말씀을 보면, 같은 경우에 “축복하시고”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또한 눅22:19 말씀을 보면, 같은 경우에 “감사 기도 하시고”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예수님은 떡을 가지사 축복하셨습니다. 따라서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에게는 하늘의 신령한 복이 임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떡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셨습니다. 따라서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떡을 가지사 축사하신 후, 그 떡을 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로써 고전10:17 말씀과 같이, 그들은 다 한 떡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은 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므로, 서로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곧이어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떡에 관하여 하신 말씀은 두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문장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입니다. 그리고 둘째 문장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입니다. 차례대로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먼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입니다. 예수님은 떼신 떡을 가리켜 예수님의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시 유월절에서 먹는 떡은 출애굽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찬에서 먹는 떡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답고 은혜로운 두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것은 “너희를 위하는”이라는 두 단어입니다. 왜 예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까?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로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왜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많은 고난을 받으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오로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성찬에서 먹는 떡이 오로지 우리를 위하는, 오로지 나를 위하는 예수님의 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곧이어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입니다. 바로 여기에 성찬의 이유가 있습니다. 왜 우리가 성찬을 행합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성찬을 행하여 예수님을 기념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면, 예수님의 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하지 않으면,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의 다른 명을 순종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며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나를 기념하라.” 무슨 뜻입니까? 그저 형식적으로 성찬에 참여하면서, 예수님을 가볍게 생각해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컨대 몸은 성찬에 참여하더라도, 마음이 예수님에게서 멀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기념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음이 예수님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마음에 예수님이 살아 역사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찬의 깊은 뜻을 마음에 새기면서, 우리 모두 예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깊이 젖어들기를 바랍니다.


고전11: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식후에.” “식사 후에.” 눅22:20을 보면, “저녁 먹은 후에”라고 표현했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저녁 식사는 본시 유월절 만찬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떡을 떼신 것은 유월절 만찬 도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잔을 가지신 것은 유월절 만찬을 다 드신 후였습니다.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먼저 예수님은 떡을 가지사 축사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잔을 가지시고 축사하셨습니다. 따라서 성찬에서 잔을 마시는 자들은 복될 것입니다. 아울러 성찬에서 잔을 마실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곧이어 예수님은 잔에 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역시 두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문장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입니다. 그리고 둘째 문장은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입니다. 차례대로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본시 유월절을 지키면서 마시던 잔은 무엇을 상징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어린 양의 피였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성찬에서 마시는 잔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예수님의 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언약은 옛 언약과 대조되는 말입니다. 옛 언약 곧 구약시대에는 언약을 맺을 때, 짐승의 피를 뿌렸습니다. 오늘날 계약서에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하는 것과 같은 식의 절차였습니다.

예컨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그들에게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그들의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문에 칠해져 있는 어린 양의 피를 보시고서, 그들의 집은 그냥 넘어가셨습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내셨습니다. 

이와 같이 옛 언약을 세울 때는 반드시 짐승의 피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승을 잡아 피를 뿌립니다. 그와 같이 해서 옛 언약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옛 언약을 세울 때는 그 때마다 매번 짐승의 피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옛 언약 곧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짐승을 잡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 곧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짐승을 잡아 언약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히9:28 말씀처럼, 예수님은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 결과 새 언약 곧 신약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단번에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를 영원히 사함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이것을 행하여.” 예수님은 성찬을 행하라고 친히 명하셨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찬을 행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명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성찬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성찬은 내가 원한다고 하고, 내가 원치 않는다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찬은 의무입니다. 성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불순종의 죄입니다.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성찬은 두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떡을 먹는 것과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마26:29 말씀과 같이, 잔 안에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발효가 되었으면 포도주일 것이고, 발효가 되지 않았으면 포도즙일 것입니다.

아무튼 잔에 들어 있는 것, 곧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와 같이 명하셨습니다.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이상 우리는 둘째 대지에서 성찬의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찬을 행하여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명에 순종해서 성찬을 행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주신 예수님, 또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신 예수님을 기념합니다.

성찬에서 먹는 떡은 예수님의 몸이요 예수님의 살입니다. 성찬에서 마시는 잔은 예수님의 피요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면서, 보다 경건한 자세로 성찬에 임합시다. 그리하면 우리의 마음은 절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성찬의 목적입니다(26절).


성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물론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성찬을 통하여 더 많은 은혜, 더 큰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성찬의 궁극적인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고전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그러니까 성찬을 행할 때마다 라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성찬을 몇 번 행하라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정에 따라서, 성찬을 행하는 횟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찬에 임하는 자세입니다. 성찬을 가볍게 여기면, 아무리 자주 성찬을 행할지라도 의미가 없습니다. 고전11:17 말씀과 같이, 그런 모임은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롭습니다. 왜냐하면 성찬을 경홀히 여긴 결과,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 때문입니다.

고전11:30 말씀과 같이, 고린도 교회에는 성찬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병약한 자들과 중병에 걸린 자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잠자는 자, 곧 죽임을 당한 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몸과 피를 분별함도 없이, 성찬의 떡을 먹으며 성찬의 잔을 마시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징계가 입합니다. 고전11:29 말씀과 같이, 이는 예수님의 몸을 무시하는 죄를 먹고, 또한 예수님의 피를 업신여기는 죄를 마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찬의 깊은 뜻을 생각하며, 경건하고 진지한 자세로 성찬에 임하는 자들에게는 신령한 복이 풍성하게 임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떡을 가지사 축사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와 같이 잔도 가지사 축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이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바로 여기에 성찬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이는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이 자신을 위하여가 아니라, 타인을 위하여 해야 할 사명입니다.

출12:26~27에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명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 때 자녀들이 부모에게 물어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 예식이 무슨 뜻입니까?” 그러면 부모는 자녀들에게 유월절의 의미를 가르쳐주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행할 때, 우리의 자녀나 우리의 이웃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볼 수가 있습니다. “이 예식이 무슨 뜻입니까?” 그러면 우리는 그들에게 성찬의 깊은 뜻을 알려주고 전해주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신 지 삼 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영접하시러 곧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명에 순종해서, 성찬을 행하며 예수님을 기념합니다. 우리가 먹는 떡은 예수님의 몸이며, 우리가 마시는 잔은 예수님의 피입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성찬의 뜻을 묻는 자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 모든 내용을 줄여서 간단하게 표현했습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긴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성찬은 예수님이 친히 세우신 예식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찬을 행하여 예수님을 기념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성찬을 행할 때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합니다.

오늘 성찬에서 우리가 먹는 떡은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시는 잔은 예수님이 그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입니다. 경건한 마음과 진지한 자세로 성찬에 임합시다. 그리해서 오늘의 성찬을 통하여, 더 깊은 은혜의 자리에 이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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