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이희대(李羲大) 박사는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미국 국립 암 연구소에서 암전문의로 있다가 강남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소장이 되어 특히 유방암 수술과 치료에 앞장섰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암을 고쳐 주다가 암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2003년도에 직장암에 걸렸는데 간과 골반 뼈까지 전이된 상태였습니다. 대장 절제와 암수술을 10차례나 받았고 항암치료를 수없이 받았습니다. 이 박사는 투병 중에 있으면서도 암 환자들을 치료하고 수술하였습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하지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하늘이 노랬다고 말합니다. 암 전문의가 암에 걸렸으니 그것도 다른 곳에 전이가 된 4기 환자라니 믿어지지 않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내가 뭘 잘못 했다고 나한테 이런 시험을 주시는가?” 라며 방황도 했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는 가운데 서서히 암이라는 시험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입에서 “암은 차라리 축복이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암에 걸리고 나서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암에 걸리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암과 싸우는 가운데 예전보다 훨씬 체력도 좋아지고 바른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암에 걸리고 난 후 가족이 더 사랑스럽고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같은 일을 하면 힘들고 짜증이 났는데 암에 걸린 후 부터는 사소한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최선을 다하니 좋은 결과가 나오고 보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암은 축복’이라는 것이 이희대 박사의 지론입니다. 그의 저서‘희대의 소망’에 나오는 글입니다. “나는 사망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삶을 살도록 도우시는 예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책을 썼다. 인생의 말기는 없다. 생명의 5기가 있을 뿐이다. 암 4기와 같은 절망과 고통 속에 있는 분들에게 생명의 5기를 살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나는 비록 암 4기로 투병했고 열 번이나 재발했지만, 고난 뒤에 오는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기 전에 고난을 주신다. 하나님은 비빔밥을 주신다. 고난과 축복을 섞어 주신다. 고난은 축복을 예비하는 것이다. 나는 모든 일에 감사한다. 열 번 재발한 것도, 간과 뼈에만 암세포가 재발한 것도 감사한다. 한쪽 다리를 쓸 수 없는 절름발이가 되었어도 감사한다. 혼자 힘으로는 바지도 입을 수 없지만 그래도 감사한다. 다리에 통증이 와서 잠을 못 자고 가만히 앉아서 간신히 눈을 붙여도 감사한다. 환자들을 만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서 감사한다. ‘제 혈액형은 C형입니다. 하나님께만 의지하는 크리스천 형입니다.’ 하나님이 선의 길, 평안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심을 믿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었던 암과의 투병을 즐기던 그는 암에 걸린 후 10년을 살다가 2013년 5월 16일 소천하였습니다. , 그는 당시 암 환자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던 의사 1위였습니다. 이희대 박사, 그분이야 말로 자신에게 찾아온 암이라는 시험을 잘 극복한 인물이었습니다. 시험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믿음을 연단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Test)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실족케 하는 사단으로부터 오는 시험(Temptation)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입니다. 시험을 극복하여 수치가 되지 말고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시련을 당하지만 간증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시험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자랑이 될 수도 있고, 수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모름지기 성도들은 시험이 자랑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시험을 당하거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기쁘게 여기라 초대 교회사에 빈민구제와 사랑을 실천하여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식스투스(Sixtus)감독은 발레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수석 집사 라우렌티우스(Laurentius)가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말합니다. “아버지여, 어찌하여 저를 데려가지 않습니까?” 그러자 식스투스 감독이 대답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며칠 후면 나의 뒤를 따르게 되리라.” 며칠 후, 로마 시장은 라우렌티우스에게 교회 재산을 국가에 상납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는 재산을 정리하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구실을 내세워 상납일을 미루고 교회의 재산을 팔아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그들을 모이게 하였습니다. 약속한 날, 시장이 교회를 찾아와 재산을 요구하자 교회 문을 열었습니다. 그곳에는 수백 명의 소경, 벙어리, 걸인, 병자, 고아, 과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가리키며 “교회의 재산이 여기에 있습니다”말했습니다. 결국 식스투스의 신앙을 본받은 라우렌티우스도 황제 앞에서 숯불로 달구어지는 고통 끝에 기꺼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왜 시험을 기쁘게 감당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영광과 존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서 ‘기쁨’은 원어로 ‘카라’인데 신부를 취하는 신랑의 기쁨이요, 신랑을 바라보는 신랑의 친구들의 기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기쁨의 모습은 잔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험을 당하거든 잔치를 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히’라는 말은 ‘어떤 것이든지, 전적으로’의 뜻입니다. 즉 시험을 만났을 때, 비록 자신의 부족이나 실수로 인한 것이든, 다른 사람이나 환경으로 인한 것이든, 사탄이 주는 것이든, 이유를 알 수 없는 시험이든, 그 모든 상황에 대해 전적으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시험을 당하면 우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시험을 기뻐하는 것이 쉽습니까? 다른 사람이 준 시험, 심지어 사탄이 주는 시험을 기뻐하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본문은 그 시험이 무슨 연유로, 혹은 누구로부터 온 것이든 전적으로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시험을 당했을 때 기뻐하면 시험은 믿음의 시련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시련은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줍니다. 시험을 만났을 때 시험을 기뻐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고, 부족한 자가 성숙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시험을 만났다고 생각하면 잔치를 여시기 바랍니다. 마귀의 음성을 듣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어떠한 시험도 넉넉히 이길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인내를 이루라 중국판 목민심서라고 불리는 욱리자(郁離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정나라 변방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3년 동안 어렵게 우산 만드는 법을 익혔지만 큰 가뭄이 들어 우산을 사는 사람이 없자 바로 우산 만드는 일을 포기하고 양수기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3년 동안 어렵게 기술을 익혔지만 이번에는 연일 비가 내려 다시 우산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무렵 사방에 도적 떼가 일어나 군복과 무기가 모자라게 되자 그는 또 무기가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그는 인내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의 심지가 수시로 흔들리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평범한 일도 지속적으로 전념하면 놀라운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작곡가 지아르디니(Felice de Giardini)는 바이올린을 배우려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는 젊은이에게 “24시간씩 20년”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지속적으로 하면 곰도 춤을 추게 됩니다. 인내의 힘을 기르려면 성급하게 포기하려는 순간을 이겨야 합니다. 인내의 힘은 포기하지 않고 성취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문제의 해결은 인내하는 과정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란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참고 또 참는 것입니다. 여기의 ‘이루라’는 말은 ‘가지라’는 뜻입니다. 즉 인내를 소유하라는 말입니다. 또한‘온전히’라는 말이 붙습니다. ‘온전히’는 ‘완성된, 완전한’의 뜻입니다.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온전함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시험을 당하면 호들갑을 떨거나, 책임을 전가하거나, 혹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성숙한 모습으로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인내를 통하여 온전하고 깊은 성숙에 이르러야 합니다. 아직도 미숙하고 유치한 신앙의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까? 이는 참지 못해서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 에 인내하지 못하면 성숙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당하거든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성숙의 자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시험 앞에 조급하여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인내로 극복하여야 합니다. 인내하지 못하면 자신뿐 아니라 교회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인내 없이는 꽃도 만발할 수 없고 열매도 충실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인내로 시험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시험을 당할 때 인내로 온전함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지혜를 구하라 추(鄹)는 산동성 곡부 근처로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이 다스리던 고을입니다. 공자(孔子)가 노나라 주공의 태묘에 제사를 지낼 때 매사를 일일이 물어서 행하므로, 어떤 사람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잔뜩 비꼬는 투로 말했습니다. “누가 추읍(鄹邑) 사람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하더냐? 태묘에 들어와서는 일일이 물어서 행하는 것을!” 공자가 이를 듣고 말하기를, “알면서도 묻는 것이 예이니라”하였습니다. 가장 귀한 지혜는, 가장 좋은 방법, 가장 효율적인 방법, 가장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구하는 자세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노예 해방의 명운을 건 남북전쟁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의 고백입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지혜나, 주위 사람들의 지혜도 그와 같은 사태에 대처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여겼다.” 가장 귀한 지혜는, 모든 상황, 모든 문제 가운데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여기서 ‘구하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이지만 그 뜻이 놀랍습니다. 의미는 ‘자신의 몫으로 어떤 것을 요구하다’로서 공적인 요구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빌려준 물건이나 위탁해 준 것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때 쓰인 단어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불쾌하게 느낄 정도로 요구하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성도가 시험을 당하거든, 스스로 자초한 경우이던, 다른 사람이나 환경으로 인한 경우이던, 사탄의 공격으로 인한 경우이던, 모든 경우에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구하여야 합니다. 정당하게 자신의 몫을 요구하는 사람처럼, 채권자가 빌려준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때처럼, 상대방이 불쾌하게 느낄 정도로 구해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그 시험에 대해, 혹은 시험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 하나님께 당당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시험이 마이너스가 되지 않고 플러스가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스스로 시험을 이길만한 지혜가 없기에 마땅히 하나님께 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받을 때 어떤 시험이라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시험을 당하면 안정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세상과 하나님 사이를 방황하는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이때 시험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오히려 시험을 자랑으로 만드는 지혜를 주십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구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시험을 이기신 것처럼 어떤 시련이 와도 시험을 자랑거리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리차드 칼슨(Richard Carlson)의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Don't Sweat the Small Stuff with Your Family)’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소한 일에, 하찮은 일에 너무 마음을 쓰기에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말하기를 모든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에게 있다고 합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불행과 근심, 심지어 스트레스라고 하는 것도 자기내부에 연유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자신에 대한 문제와 진실에 대한 것을 바로 찾을 때 걱정하는 문제가 아무 것도 아닌 문제로 풀릴 수가 있습니다. 문제의 해결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기에 자신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됨은 오직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현재 내가 있노라 말합니다. 은혜 안에 있는 자기정체를 확인하고 감사한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순투성입니다. 참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온전하게 만드십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이 온전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시험도 이기고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시험이 많은 세상입니다. 시험 때문에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습니까? 그러나 시험을 당하거든 기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인내로 온전함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우리는 부족하나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길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부디 여러 가지 시험에서 넉넉히 이겨 당하는 시험을 수치가 아니라 자랑거리로 만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