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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기석목사

내 눈길 닿는 곳 어디나

내 눈길 닿는 곳 어디나
눅18:9-14
(2000/9/24)


성전에서
두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위해 성전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태도는 판이합니다. 한 사람은 어깨를 펴고 주저함 없이 당당하게 걷습니다. 그리고 서슴없이 성전의 맨 앞에 나가 섭니다. 거기가 자기에게 가장 어울리는 자리라는 듯이 말입니다. 그는 고개를 추켜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두 손을 들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거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
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이 훌륭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는 바리새인입니다. 그는 매우 도덕적이고, 종교적입니다. 죄와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가 '다른 사람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자부합니다. 그의 절제된 삶에 대해 우리는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613개의 율법 규정을 지키기 위해 그는 늘 자기를 살피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의롭습니다.

그런데 성전에 올라갔던 다른 한 사람은 사뭇 주저하는 태도로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걷습니다. 그는 성전에 들어가서도 가장 구석진 곳을 찾습니다. 그는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미어지는 가슴을 퉁퉁 치며 억눌린 듯한 목소리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사람은 대표적인 참회시인 시편 51편을 암송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죄를 아파하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빌 수밖에 없는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는 세리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 로마인의 앞잡이 말입니다. 그는 동족들간의 친밀한 사귐에서 배제된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 말종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그는 성전의 앞자리에 나갈 수도 없고, 재판의 증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신명기는 거짓말쟁이는 증인이 될 수 없다고 했는데(신19:16-21), 세리는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혔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마디로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소식을 듣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간 것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리새인과 세리를 머리 속에 그려보십시오. 바리새인은 왠지 사람을 주눅들게 합니다. 그런 이와 함께 있는 것이 유쾌한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세리와 그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세리보다야 그가 훨씬 나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평가는 정반대입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바리새인의 어떤 점이 문제일까요?


경건의 위험
무엇보다도 그는 자기가 경건하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습니다. '나는 깨끗한 사람이다', '나는 의롭다' 하는 자부심이 문제입니다. "나는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는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경건한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경건을 자랑거리로 삼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 있지만 사실은 사람을 향해 돌아서 있습니다. 그는 가끔 죄를 짓더라도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사는 사람만 못합니다. 경건함이 그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경건함을 자랑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멋대로 등급을 매기고, 표찰을 붙이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기도 중에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물론 자기가 세리처럼 살지 않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속에 담긴 멸시의 감정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는 세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고 있어요. 그는 자기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을 멸시할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사람들에게 점수를 매깁니다. "저 사람은 80점, 저 사람은 60점, 저 사람은 40점." 그들은 자기들이 설정해 놓은 점수에 못 미치는 사람들과는 상종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들의 시선은 메두사의 눈을 닮았습니다. 메두사는 희랍신화에 나오는 괴물인데, 자기의 눈과 마주치는 모든 사람을 돌로 만들어 버립니다.


장래 희망: 사람
우리는 어떻습니까? 마찬가지 아닌가요? 저는 저의 시선과 마주쳐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누군가를 멸시의 감정으로 바라보지 않았다고 말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참 사람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신다는 데, 우리는 사람들을 외적인 조건에 따라 마음에 등급을 매길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덜 되어서 그렇겠지요?

어느 고등학생이 장래 희망란에 '사람'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사람다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후에 선생님이 그를 불렀습니다. 다짜고짜 선생님은 "네가 시방 농담 따먹기 하자는 거야 뭐야. 장래희망을 쓰랬더니 뭐 '사람'?" 이쯤에서 그 학생이 사태의 긴박성을 알아차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눈치없는 그 학생은 "진짠데요" 하고 대꾸를 하고 말았습니다. 순간 선생님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 같더니 갑자기 자기 뺨에서 불꽃이 일더랍니다. 그는 후줄근히 맞고 학생처실을 나서며 말했어요. '그래도 사람인데….'


내 눈길 닿는 곳 어디나
저는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승현님의 [내 눈길 닿는 곳 어디나]라는 노래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노랫말로 하나님께 기도를 바쳤습니다.

내 눈길 닿는 곳 어디나 해맑은 빛이 흐르고
내 가슴 지나는 바람 모두 따스한 향기 머금게 하소서
내 손길 있는 곳 어디나 따뜻한 손 마주잡고
내 발길 가는 곳 어디에나 어지런 물결 그치게 하소서
고단한 하늘 저 마루 아래 검게 드리운 어둠도
흐느끼는 강물 시린 바람조차
빛 흐르게 하소서 향기롭게 하소서

이 노랫말은 기원으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 노랫말이 우리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길, 손길, 발길이야말로 우리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그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신답니다. 우리가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이웃을 보면 주님도 우리를 그렇게 대해 주십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때마다 우리를 통해 주님이 손을 내미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주님의 사자가 되어 그에게 가야 합니다.


마중물이 된 사람
예수님을 가리켜 '마중물'이 된 사람이라고 노래한 이가 있습니다. 기억나시지요? 펌프 물을 길으려 할 때 먼저 한 바가지를 붓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면 묵직한 물의 무게가 손 끝에 느껴지면서 시원한 샘물이 흘러나왔지요. 예수님은 죄책과 절망으로 자기 속에 깊이 숨어버린 사람들에게 오셔서 먼저 손을 내미셨고, 먼저 눈물 흘리셨고, 먼저 용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서 오랫 동안 잊고 있던 사랑과 용서와 감사의 생수를 흘러나오게 하셨습니다. 세리도 창녀도 주님의 사랑에서 배제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이 말씀을 두렵게 기억합니다.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오늘의 정치 상황을 바라보면 짜증이 납니다. 저마다 자기만 옳다고 합니다.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양보와 타협과 이해의 노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의 허물을 들추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없는 말도 만들어 냅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가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의 정치 상황에서 현대판 바리새주의를 봅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옛날 바리새인들은 깨끗하게 살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인들은 깨끗하게 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도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합니다.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를 참담하게 만듭니다. 자기 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집니다. 자기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을 보고 싶습니다. 그들만이 평화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소망의 표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해맑은 사랑의 빛이 흐르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이 머무는 곳마다 생명의 향기가 배어나게 되기를 빕니다.
우리의 손길이 머무는 곳마다 따뜻한 평화가 자리잡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어지러운 세상의 소용돌이가 잠잠하게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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