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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광일목사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9~10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9~10
이름 김광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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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없음

2008817일 국민일보의 매일 성경을 읽읍시다에 나온 내용입니다. 미국 보스턴의 스트로사라는 청년이 거부 바턴을 찾아갔습니다. “제가 워싱턴에 소매상을 하나 차리려고 하는데 2천불을 빌려 주십시오.”바턴은 담보물을 주면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스트로사에게는 담보로 내놓을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규정상 담보물 없이는 돈을 빌려줄 수 없었지만 버튼은 청년에게 믿음이 갔습니다. 그래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에게 투자하는 마음으로 무담보로 2천불을 빌려 주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지 10년 후 세계적인 대공황이 왔습니다. 바턴의 사업도 도산되어 빚을 갚지 않으면 도저히 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듣게 된 스트로사가 바턴을 찾아왔습니다.“얼마나 부채를 지셨습니까?”“75천달라요.”“이번에는 제가 그 금액을 드리겠습니다. 전에 빌려주신 돈으로 저는 사업을 잘 꾸려 나가서 부자가 되었습니다.”“아니 그때 그 돈은 벌써 다 갚았는데 뭘 또 준다는 것입니까? 내가 빌려준 2천불은 당신이 다 갚지 않았습니까?” 이 말에 스트로사는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빌려주신 돈은 모두 갚아드렸지만 도와 주셨던 그 은혜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때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돕는 것이 저의 의무입니다.”하며 거액을 도와주었습니다. 덕분에 바턴은 재기할 수 있었고 이 두 사람은 모두 사업에 크게 성공했다고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우리가 갚을 수 없는 큰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칭찬도 은혜요, 책망도 은혜입니다. 성공도 은혜요, 실패도 은혜입니다. 건강도 은혜요, 심지어 질병도 은혜로 여기고 은혜의 현실성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은혜 아래 내가 있었고, 그 은혜 아래 내가 있고, 그 은혜 아래 내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즉 과거도 은혜요, 현재도 은혜요, 미래도 은혜라는 것을 믿는 은혜중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10절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현재 은혜를 구하는 자가 아닙니다. 이미 은혜를 받은 자였습니다. 그 리고 그 받은 은혜에 감격해서 살아가는 자입니다.

바울은 은혜라는 단어를 세 번 사용했습니다. 은혜의 사전적인 정의는 남에게서 받는 고마운 혜택이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구원을 주신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구원받을 자격이 있어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받은 은혜입니다. 칼 바르트는 은혜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며, 본질적으로 공로 없이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 받은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은혜 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로 그 은혜를 깨달아야

신완선 교수의 저서 '파이팅 파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레티 그랜트(Letty Grant)라는 여인은 전신마비 장애인이었습니다. 죽지 못해 살고 있었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힘들어 자살도 생각해 보았지만, 어린 딸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좌절하며 살던 그녀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발가락 한 개를 가지고 전화국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교환수로 취직시켜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녀는 16년 동안 전화국 교환수로 근무했습니다. 딸을 대학에 보내고 나서 은퇴를 했습니다. 은퇴하는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참 좋으신 하나님.” 남들이 볼 때 원망할 수밖에 없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여인의 입에서 어떻게 이런 고백이 나올 수 있습니까? 은혜를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 커서 우리가 다 깨달을 수 없습니다. 다만 깨달은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더 알게 되고, 더 감사하게 되고, 기쁨이 더해집니다. 깨달은 만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본문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미련한 자는 깨달음이 없습니다.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감사함이 없고 감사가 없기 때문에 봉사와 희생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은혜에 대한 깨달음이 있을 때 믿음이 생겨나고, 순종이 이루어지고, 헌신이 뒤따르게 됩니다.

불평과 불만의 삶을 살아간다면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짜증이 난다면 아직 은혜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를 알면 놀라워집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가지지 않은 것만 보며 불평하지만 은혜를 깨닫는 사람은 가진 것이 비록 적다해도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 삶에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합니다. 그 은혜를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깨닫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은혜인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바울처럼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로 깨닫고 고백하며 기쁨과 헌신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그 은혜로 낮아져야

미항공우주국(NASA) 항공연구부문 최고책임자인 신재원 박사는 2008NASA 본부와 10개 산하 센터를 통틀어 20명으로 한정된 최고위층에서도, 최고 책임자 자리에 동양계로는 최초로 올랐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30여년의 경력을 쌓고 은퇴하기 직전에 오른다는 자리에 40대 후반의 젊은 나이로 오른 것입니다. 주변에서는 그의빼어난 전문성’‘조직과 사람을 관리하는 능력’‘금전적 잡음이 없는 관리 능력등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지만 신 박사가 꼽는 성공 요인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늘 교만해지지 않도록 자신을 치는 겸손을 연습했다는 것입니다. “도무지 될 수 없는 자리를 주시니까, 내가 뭘 잘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왔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전적 주권으로 주신 자리이고, 저에게는 너무나 선명하게 다가오는 은혜라는 신 박사는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알고 더 낮아지려고 매일 아침 이렇게 기도한다고 간증합니다. “하나님, 저를 땅에 납작 엎드리게 하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해주옵소서.”받은 바 은혜로 더 낮아지는 모습이 아닙니까?

본문 9절입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지니라.” 나의 나됨을 아는 바울의 고백입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신을,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이며,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 못할 자라고 고백하는 그의 모습은 은혜 받은 자의 낮아짐 그 자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알수록 겸손해 집니다. 바울은 은혜 받고 난 후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배설물로 여기고 다 버렸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낮아지는 마음과 낮아지는 인격과 낮아지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자기 자랑에 능하고, 자기 의를 앞세우고, 자기를 높이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어디까지 이르렀던지, 그것이 부요함이든, 지식의 뛰어남이든, 좋은 환경에 있든, 명예와 권세의 자리에 있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낮아질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고백하며 겸손함으로 더 낮아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그 은혜로 수고해야

기독교 작가로 알려진 A. J. 크로닌(Archibald Joseph Cronin)박사가 광산촌에서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간호사가 도시에서 일하던 큰 병원에서 오해를 받고 그가 근무하는 병원으로 찾아왔는데 실력도 있고, 나무랄 데 없이 상냥하고 일을 잘 하는 간호사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병원일은 고되고 월급이 적었습니다. 전에 받은 월급과 비교도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항상 밝은 얼굴로 근무하였습니다. 크로닌 박사가 물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일할 것 같지 않는데 헌신적으로 일하는구려. 일한만큼의 대가도 받지 못하는 광산촌에서 일하는 게 속상하지 않나요? 좋지 않은 환경인데 어찌 그리 기쁘게 일할 수 있어요?”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대답합니다. “월급이 적기 때문에 더 기쁘게 일할 수 있어요. 정당한 월급을 받고 일하면 고용인이 됩니다. 하지만 월급과 상관없이 일하기 때문에 기쁘답니다. 돈에 팔린 사람이 아니거든요. 하고 싶은 걸 즐겁게 하니까 무척 행복하답니다. 그리고 제가 받은 은혜로 수고하는 가치는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실 것입니다. 제 인생의 가치를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니 바랄게 없습니다.”

본문 10절입니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여기서 수고라는 헬라어는 코피아오로서 탈진한 정도로 노력하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은혜를 깨달을수록 더욱 더 수고했습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생명까지 내어 놓고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수고를 완결시키는 동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수고를 통하여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죽음과 희생의 수고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집니다. 그리고 수고한 만큼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아롱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아는 자만이 더 수고할 수 있습니다. 그 수고야말로 하늘의 영원한 상급이 될 것입니다.

인생은 돈을 위하든, 권세를 위하든, 쾌락을 위하든, 목적을 정해놓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떤 목적보다 하나님을 위한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7-8절에서 그의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고 죽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 죽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은혜 받은 자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크로스비(Fanny J. Crosby)는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으로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등을 비롯해 9,000여 편에 달하는 찬송시를 쓴 여류작가입니다. 그녀는 어려서 가정부의 불찰로 소경이 되었지만 할머니가 들려주는 성경이야기를 들으면서 신령한 찬양시를 많이 썼습니다. 크로스비가 아홉 살 때 드렸던 기도의 내용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나에게 시력을 허락해 주신다 해도 나는 안 받으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밝은 눈을 주실 터인데 세상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주님의 얼굴을 보렵니다. 그리고 나는 내 눈을 멀게 한 그 사람을 만난다면 그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불평과 원망 대신 감사와 자족의 생활을 통해 은혜 받은 자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은혜는 능력입니다. 변화케 하는 힘입니다. 사람을 바꾸어 놓는 힘입니다. 사상을 바꾸고 가치관을 바꾸고 인생관을 바꾸고 운명까지 바꾸는 것이 은혜입니다. 변하지 않는 옛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더 이상 하나님 앞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모름지기 은혜로 된 자라면 옛 모습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방해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매사가 짜증스럽고 마지못해서 한다면 은혜로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속히 은혜의 자리로 돌아와 바울처럼 고백해야 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어진 은혜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임을 더 깨달아야 합니다. 그 은혜로 더 낮아져야 합니다. 그 은혜로 더 수고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