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유영모목사

2013.11.17. 그 땅에서 그 해에 백 배나 복을 주셨다

2013.11.17.   그 땅에서 그 해에 백 배나 복을 주셨다

(추수감사주일)                           창세기 26:1-22


I. 위기의 순간


한 남편이 아내와 부부싸움을 하고 서재에 들어가 인터넷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책 한권을 발견했습니다.

「아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는 책이었습니다.

더더구나 그 책의 저자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널리 알려진 필립 얀시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아주머니가 되고 나면 그 안에 하나님이 없어서 저렇게 사나와 졌구나. 책을 얼른 구입했습니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기대감에 부풀어서 뜯어 보았지요.

「아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는 책인줄 알고 뜯었더니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2000년대초 야베스의 기도가 발간된 그 무렵 나온 책으로 이 두 권이 베스트셀러를 다투던 책입니다.


메마른 사막같은 인생길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고난이 많은 거친 인생길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가?

라는 내용을 다룬 책입니다.


여러분들은 거친 흉년의 때에 영적인 위기를 만났을 때에 어려운 세상을 달려오시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승리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인생길에 고난이 찾아올 때에 또 해서는 안 되는 실수에 빠져들 때에 은혜 받지 못하면 사람은 무너진다고 합니다.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지 못하면 무너져 버린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위로를 받으면 고난은 우리의 믿음의 그릇을 네 배나 더 키우는 기회가 된다는 연구보고서가 있습니다.


인생이 힘들 때 그 문제에 짓눌려 살거나 파묻혀 살려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오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십시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만 아닙니다. 믿음의 세계에서는 울면 하늘의 문이 열려지고 울면 가슴에 상처가 녹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으면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그래요. 그러나 눈물에는 웃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치유의 권능이 있다고 합니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으면 내 몸에 약한 장기 하나가 대신 운다지요. 그게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겁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그 땅에서 그 해에 백배나 복을 주셨다」라는 내용입니다.

그 땅에서 - 실패하고 쫓겨난 땅에서 말입니다.

그 해에 - 크게 실수하고 넘어진 그 시간에 말입니다.

오히려 몽둥이나 책망 대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 “그 땅, 그 해”는 이삭이 이방 땅에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자기 목숨이나 부지해 보겠다던 바로 그 해였습니다. 이 실수는 가문의 저주처럼 아버지 아브라함이 실수하고 범죄했던 동일한 실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실패의 땅에서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시시하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백배나 복을 주셨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아들 둘이 있었습니다.

한 아들은 역시나 술주정뱅이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여 술주정뱅이가 되었습니까?”

“아니 보고 배운 게 이것 밖에 없는데 내가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다른 한 아들은 금주 운동가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 길을 가게 되었습니까?”

“아니 우리 아버지가 술에 빠져 사셨는데 내가 이 길을 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소중한 내 자녀들이 내가 만난 동일한 유혹과 위기를 만났을 때

내가 걸어갔던 그 길을, 내가 했던 그 결단을, 내가 취했던 그 행동을

그대로 따라 주기를 원하고 자신만만하게 아버지처럼 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넌지요.


내 아버지는 바로 이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하고 승리했다. 인생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내 어머니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눈물로 기도하고 이 고난의 터널을 헤쳐 나오더라. 나도 반드시 내 아버지 어머니처럼 승리하리라. 그리고 자식들이 일어설 수 있다면 여러분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은 것이지요.


II. 흉년의 때에


이삭이 만난 그 위기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 26장 1절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라고 기록합니다.

여기 위기는 흉년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은 비가 모자라 걸핏하면 흉년들기 십상이었습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은 흉년이 많은 인생살이입니다. 우리 인생의 땅은 언제나 실패가 있습니다.

갑자기 질병이 찾아옵니다. 고난과 고통이 엄습해 옵니다. 이게 인생 땅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흉년을 이기는 방법이 간단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방법이 있고 또 양식을 구해 와서 연명하는 방법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에 흉년이 들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큰 위기를 만납니다. 그런데 이삭이 가문의 저주처럼 똑같이 행동을 합니다. 동일한 방법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때 본문 2절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내가 지시한 땅에 거하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흉년을 만납니다. 순종의 땅에도 위기는 있을 수 있습니다. 약속의 땅에도 고난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고난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고난을 승리의 기회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들, 신앙인들입니다. 많은 경우 고난의 자리가 하나님이 계신 자리 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손해 보는 자리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걸어가야 될 의로운 길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중장부를 만들지 않았더니, 윗선에서 요구하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더니, 걸핏하면 마련되는 술좌석에 자주 가지 않았더니 승진의 기회가 늦어지더라. 이게 과연 실패일까요? 이때 그 자리, 신앙의 자리를 지키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 과연 실패한 인생일까요?


독일 메리켈 총리의 아버지는 서독에서 목회를 하던 목사였습니다.

동독의 목회자들이 공산정권의 핍박을 피하여 서독으로 서독으로 물밀듯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이때 메리켈 총리의 아버지 목사님은 오히려 서독에서 목회를 하다가 동독으로 들어갑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곳으로 밀려 내려오면 동독의 시민들은 누가 보살핀단 말인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동독으로 들어가 목회를 합니다. 그리고 통일이 되어집니다. 그 목사님의 딸이 메리켈 총리가 되는 겁니다. 세계적 위기 속에서 독일을 건강하게 지켜낸 장부가 된 것입니다. 3선에 당선됩니다. 역사상 최장 여성수상의 자리를 유지하게 되겠지요.


아브라함, 이삭보다도 현대 신앙인들은 더 큰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아브라함이나 이삭처럼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먹기 위하여,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서, 더 많은 것을 탐하려 애굽으로 죄악의 땅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며 핑계를 댑니다.

하나님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돈을 벌면 십일조 멋있게 할 거예요.

돈 벌면 제가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조금만 눈감아 주세요.

멋지게 선교하고 봉사하고 헌신할 거예요.


그런 헌신 가져가세요. 정말 그게 사실이었습니까?

정직한 헌신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속이고 온전하리라 생각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속임을 당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당치 아니하시느니라.


III. 이 땅에 머물라


인생 위기의 순간 인생 흉년의 때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어지는 3절 말씀입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이 땅에 머물라” “이 땅에 거류하라” - 이 땅이 어떤 땅입니까?

믿음의 땅입니다. 세상의 지축이 흔들거려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흔들거려서는 아니 되느니라. 내가 당하는 고난과 시련과 실수와 실패가 크면 클수록 기도의 자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되느니라. 너는 기도의 땅을 지켜야 하느니라. 인생의 문제가 크면 클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서 하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말씀의 땅에 머물러야 하느니라.


이어지는 말씀에서 4가지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26:3-4)


①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② 내가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③ 그 자손을 번성하게 하리라.

④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창세기 1장부터 25장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는 복이 나오지 않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제일 먼저 하나님이 함께 하는 복이 26장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약속을 부둥켜안고 고난을 이겨낸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무개와 함께 하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 하셨더라.


그 이후 요셉은 꿈을 꿉니다.

꿈꾼 꿈의 내용으로 형의시기를 받지요. 꿈을 찢기 위해서 채색 옷을 찢습니다. 물 없는 우물 속에 집어던져 묻어버리려고 합니다. 미디안 장사꾼에게 팔아버렸습니다. 동생을 판 것이 아니라 동생의 꿈을 팔았던 것이지요. 종살이로 물설낯설고 언어가 선 땅에서 온갖 고생을 합니다. 태풍처럼 몰려오는 유혹을 겼다는 사실 때문에 억울한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온갖 고생을 다 감당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내려 가다 보면 요셉의 생애 가운데 별명처럼 따라 다니는, 형용사처럼 따라 다니는 유일한 한 마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더라”


고난을 이기는 자의 복은 당대에 그치지 아니하고 자손에 자손 그 대를 이어 가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인생의 위기 가운데 신앙 잃어버리면 자식이 받을 복을 자식이 누릴 복을 그 아비와 어미가 깨뜨리는 것입니다. 흉년이 들었다고 신앙의 자리를 떠나버리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면 자식이 먹을 씨앗을 부모가 삶아 먹는 것입니다. 종자를 삶아 먹은 부모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여기 자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자손은 단수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예수의 가문, 믿음의 가문에 대와 대를 이어갈 것이라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인생의 먼 훗날 뒤돌아보며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복을 받는 것은 내 아버지가 당당하게 믿음을 지켰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평안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내 어머니의 기도가 내 인생에 축적되고 쌓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내 부모가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을 섬겼더니 잘나지 못한 내가 복을 받는 구나.”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이 부족한 종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나의 간증이요 이것은 나의 찬송일세~


IV. 실수했는데?


이삭은 하나님의 준엄한 말씀 앞에 반쪽짜리 순종을 합니다.

애굽으로 가지 말라 말씀하셨기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가나안으로 돌아가지도 않습니다.

그랄 땅에 머물며 기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양다리 걸치고 사는 신앙인들은 언제나 유혹에 시달립니다.

항상 이런 사람은 세상에 군침을 흘리고 하나님 주신 은혜에도 갈증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결국 마귀도 자기 사람인 줄로 알고 당깁니다.

하나님도 소중한 자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당기지요.

가랑이가 찢어지는 겁니다.


그랄 땅에는 언제나 유혹과 시험이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 항상 타협하면서 그러면서도 매일 창고곡간을 살핍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언제쯤 채워지려나. 이름만 걸쳐놓은 직분자로 살면서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을 팔아가며 멋지게 한번 도와달라고 애원해 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회주의자들을 싫어합니다.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십니까?

그분이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십니까?

그분이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믿으십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구세주, 주님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깨끗하게 믿으십시다. 확실하게 믿기로 결단하십시다.

죽어도 예수 안에서 죽고 살아도 하나님 안에서 살기로 결단하십시다.


이삭은 회색지대, 그랄 땅에 머물다가 아내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아내를 누이라 거짓말하며 목숨을 부지해 보겠다 했습니다.

사나이 대장부로서 평생 수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인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오늘 본문 “하나님의 은혜”, 복음의 역사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어집니다.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불쌍한 리브가를 살려냅니다.

하나님이 몽둥이를 높이 치켜들고 네 이놈~ 네 죄를 알렸다. 죽도록 패고 세대 더 패도 못마땅할 터인데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것도 농사를 별로 지어보지 못한 이삭이 농사를 지어서 100배의 수확을 얻습니다. 그랄 사람들은 기껏해야 30배, 60배 수확을 거둘 때에 농사법을 모르는 100배의 수확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총이 여기에 있습니다.


구원 얻을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복 받을만한 선행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만한 덕이 쌓여져 있지 못합니다.

저주 받아 마땅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어 주십니다. 영생을 선물로 주십니다.

의가 없는 나를 의롭다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죄짓고 실패하고 넘어져 있는 나를 붙들어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갚지 못하고 살아온 인생인데 또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택한 백성이 못나서 실수할지라도 안타까워하며 하나님은 눈물로 보호하십니다. 마귀가 공격할까봐 피 흘려 주님 보혈의 피로 우리를 덮어주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성공하고 잘 사는 것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 노력으로 오늘날 내가 복을 받고 이 은혜를 누리고 평강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투자했던 내 재산이 보호되고 번성되었던 것은 내가 지혜로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못난 이삭을 지켜 수많은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십니다.

흉년 피하고 연명이나 해볼까 하고 갔는데 백배나 수확을 얻습니다.

또 주십니다. 거부가 되어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삭이 농사 기술이 좋아 그랄 사람들보다도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지혜로워서, 내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을 무슨 공로가 있어이런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눈이 열려지면 항상 감사하며 살 수 있습니다.

만사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을.

내 속에 불평이 남아 있고, 무엇을 감사하란 말이냐?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남아 있으면 내 인생에 대한 자학과 저주가 내 속에 남아있다면 믿음의 눈이 닫혀져서 그렇습니다.

축복의 눈이 막혀서 그렇습니다.


V. 복이 따라 온다


이삭은 마침내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복을 받아서 사람들을 섬기고 평생 평안한 가운데 살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천국에 갔더라. 이렇게 인생이 끝나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그런 인생 없습니다.


또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삭의 축복을 그랄 사람들이 시기하여 모함합니다. 쫓아냅니다.


김 집사가 시화공단에 들어가 공장 짓고 성공한다 싶더니, 공단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 인간 우리 고객 다 끌어가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뽑아가네.

소리 지르며 공장에 불을 지릅니다. 사무실 집기를 집어던지고 쫓아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오늘 현대어 번역으로 하면 바로 그런 얘기입니다.


이삭이 농사를 지었습니다. 우물을 팠더니 이삭의 우물에는 물이 콸콸 쏟아집니다. 그랄 사람들의 우물은 바싹바싹 말라갑니다. 왜 남의 땅에 와서 우물을 파고 그러냐고. 우물을 뺏는 겁니다. 양보하고 도망가서 우물을 팠더니 양보하고 온 우물은 마르는데 이삭의 우물은 또 물이 콸콸 쏟아집니다. 또 와서 시비를 겁니다. 쫓아다니다 쫓아다니다 안되니까 우리 땅에서 아예 나가라고 몽둥이 들고 쫓았습니다. 멀고 먼 길 가서 우물을 팠더니 이제는 쫓아오지 못할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땅은 그랄 사람들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 우물이 얼마나 컸던지, 르호봇 - 큰 우물, 다시는 쫓아오지 않는구나.

다시는 빼앗아 갈 수 없는 우물이구나. 다시는 다툴 수 없는 우물이구나.

그래서 르호봇이라고 불렀다고 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삭은 도망가는 줄 알았습니다.

이삭은 쫓겨 가는 줄 알았습니다.

이삭은 양보하고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도망 다닌 그 길을 지도상에 점을 찍어가다 보면

이삭은 그랄 땅에 머물렀는데 도망가는 그 여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가나안 땅으로 점점 더 가까이 가나안으로 몰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병원에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하고 무서운 고통 가운데 실패 가운데 눈물 흘리며 사는 고통을 끌어안고 살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서 내 인생 뒤돌아보면

내가 도망 다닌 줄 알았는데, 고생하여 내가 울었던 시간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내 영혼을 천국으로 천국으로 점점 가까이 가까이 인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고백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삭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것입니다.

네가 손해 본 것, 믿음을 지키다 손해 본 것, 내가 갚는다. 할렐루야.


명절에 불신가족들과 지대다가 네가 손해 본 것, 자존심 상한 것 내가 갚아 준다. 할렐루야.

남편이 예수를 믿지 않고 시집식구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데 그곳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선교사로 간 것 아니었습니까? 싸우지 마세요. 원주민들하고 싸우지 마세요. 여러분 선교사입니다.

인간의 간사함과 잔꾀로 성공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므로 하나님이 지켜 주시므로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여시고 복을 주시므로 성공하고 승리하고 부자가 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창26:22)


이삭이 가는 곳이 복된 땅이 되었습니다.

이삭이 농사하는 땅이 옥토가 되었습니다.

이삭이 밟는 땅이 복된 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손이 되면 그곳이 복이 되길 원합니다.

여러분이 회사를 옮기면 그곳이 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가 가는 곳이 복이 따라 오더라. 할렐루야.


오늘 본문이 흐른 다음에 짤막한 시간 후에 기록된 성경 말씀을 보시겠습니까?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창26:26-28)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삭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고난의 땅을 지켜내면, 믿음의 땅에 머물면, 기도의 땅에서 승리하면,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나님 말씀하셨는데

이삭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쫓아냈던 원수들이 자신을 괴롭혔던 원수들이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함을 우리가 확실히 보았노라. 할렐루야.


우리의 원수들이 간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들이 나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경외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찾아와서 그들이 고백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노라.


29절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삭의 신앙 고백이 아니라 원수들의 고백입니다.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자신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너는 복을 받은 자니라” 할렐루야.

이 정도는 되어야 축복의 사람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고난 가운데 있으신 분이 계십니까?

많은 문제를 끌어안고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신 분이 계십니까?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끌어안고 눈물지으며 달려 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왜 내게는 이런 고난이 떠나지 않느냐고 원망하며 달려 나오신 분이 계십니까?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을 기억하십니까?(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찌라도 당신만은 일어 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