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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 8. 예수의 이름 사도행전4:1-20

13. 12. 8.                    예수의 이름         사도행전4:1-20

I. 예수 내 구주


연예인들을 좋아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연예인들의 이름을 가지고 노는

언어유희가 있습니다. 일종의 넌센스 퀴즈 같은 건데요.


·어부들이 제일 싫어하는 연예인은? 배철수

·잠이 제일 많은 연예인은? 이미자

·스캔들 즉 사연이 없어 작가들이 싫어하는 연예인은? 노사연

·야구투수들이 싫어하는 연예인은? 강타

·시험 때마다 백지를 내 0점만 받는 연예인? 백지영

·최지우네집 개이름? 지우개

·가수 “비”가 싫어하는 남자 가수? 태양


실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지요. 이름에는 재미가 있기 전에 의미가 있습니다. 군대훈련소에서 힘든 훈련, 특히 높은 곳에서 밧줄을 타고 뛰어내리는 시간에 부르고 싶은 이름을 크게 외치며 뛰어내리게 합니다.

대개 애인의 이름을 부르지요. 가끔은 어머니를 외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소월은 “초혼”이란 시에서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를 노래했습니다. 국권을 잃어버린 대한민국 내나라 조국의 이름을 그토록 애처롭게 찾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예수의 이름”입니다. 우리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즐겨 부를 예수 - 그 이름입니다. 우리가 가장 간절하게 부를 이름이 예수 – 그 이름니다. 예수의 이름은 우리권세요 능력이요 힘이요 구원의 보증입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죤 뉴턴이 늙어 치매에 걸렸습니다.

고상했던 그 지식은 고사하고 자기이름 조차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의사가 그래도 생나는 이름이 있으면 불러 보라고 하자 “Jesus, My Savior!” “예수, 내 구주!”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근사한 일입니까?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예수, 내 구주!

훗날 이 세상의 모든 이름을 잊어도 영원히 우리가 기억하고 불러야 할 이름은

“예수 내 구주”입니다.


II. 예수 – 구원의 능력


빌게이츠는 「생각의 속도」라는 책에서 정보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는 정보가 힘이요 돈이요 재산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교회의 힘은 무엇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 그 이름입니다.

일찍이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준다.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 이 말씀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예수 이름의 능력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교회는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을 다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줄 수 없는 것, 진정 귀한 것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줄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힘을 가지지 못해도 세상이 가지지 못한 힘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신령한 힘, 예수의 이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인간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영원의 문제, 영생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 그 이름의 능력이요,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 이름으로 예배하고, 예수 이름으로 살고, 예수 이름 때문에 죽을 수 있는 것, 바로 그것이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모든 힘은 다 유한합니다. 정보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세월이 흐르면 바뀌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 이름의 능력, 성령의 능력은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한다는 뜻입니다. 천하인간을 구원할 이름이 바로 예수, 오직 그 이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 누구도 이 심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알지 못했던 이들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자리를 성경에서는 지옥이라고 말합니다. 흔히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현대인들은 지옥이라는 단어를 마치 신화나 전설에서나 등장하는 유치한 소리로 간주해 버리고, 지옥이라는 말조차 비웃고 무관심으로 일축해 버립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시한다고 해서, 그들이 부인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냥꾼에게 쫓기는 꿩 한 마리가 대가리를 풀숲에 쳐박고 “사냥군 없다. 사냥꾼 못봤다!” 소리친다고 해서 사냥꾼이 없어지는 게 아니듯이 말입니다.


“세상 끝날 천사가 와서 의인 중에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사랑의 하나님이 왜 지옥을 만드셨을까요? 그 풍성하고 좋은 세상 천국에 우리를 다 인도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사랑이라 말씀하신 바로 그 성경이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비라고 말씀한 동일한 성경이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하신 분이 의로우신 분이 죄와 함께 거할 수 없는 것이죠.


이 시간 혹시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 “교회에 오면 듣기 좋은 소리, 재미있는 얘기, 위로가 되는 말을 해줄 줄 알았는데, 기분 나쁘게 죄, 지옥 소리만 하고 있구만!” 이렇게 생각하고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그러나 목사는 영혼의 의사입니다. 이 강단은 영혼의 수술대입니다. 수술을 해야만 살릴 수 있는 환자에게는 싫어도 매스를 대야만 합니다. 칼을 대어 찢어 상처를 꿰매고 약을 발라야 하는 곳에 자꾸 반창고만 붙이면 그 사람은 결국 죽고 말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이 실재하듯이 지옥도 실재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선한 사람도,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아무리 깨끗하고 의로운 사람도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일전에 장로님들과 설악산에 갔다가 케이블카를 타보았습니다.

산을 오르는 그 길고 긴 줄이 아주 튼튼하고 완벽합니다. 그런데 만약 줄 가운데 단 0.1mm라도 녹이 슬고 썩어 있다면 과연 그 케이블카가 사히 산을 오르내릴 수 있을까요? 케이블카는 졸지에 추락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99% 온전하지만 0.001% 단절되면 우리의 영혼은 지옥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 그 이름의 능력을 아십니까?

예수의 이름은 우리의 죄 짐을 해결해 주고 지옥 형벌을 면케해 줍니다.


인간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단 한마디만 들어야 한다면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들어야 한다면 역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지난 여름 사랑하는 내 어머니를 천국으로 보내드리는 마지막 시간에 자식 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예수님에 관한 찬송을 많이 불러드리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그것이 가장 위대한 선물, 위대한 효도였습니다. 예수 이름을 들려드리는 것입니다.


일찍이 설교가 버나드는 말했습니다. “예수의 이름 속에 있는 그 비밀을 깨달은 자의 입 속에는 꿀송이처럼 달콤함이 있다. 예수님의 이름을 듣는 귀는 복되도다. 예수님의 이름을 품은 심령들은 그 영혼이 천국으로 이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에 마당을 지나서 성소에서 주님과 함께 놉니다. 그리고 지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예수님의 이름에 관한 찬송을 많이 부릅니다.


♪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소서

   보좌로 주여 임하사 찬양을 받아주소서

   주님을 찬양하오니 주님을 경배하오니

   왕이신 예수여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예수님의 이름의 그 귀하고 귀한 이름을 높여 찬송하면 내 기도하는 그 공간에 가득한 예수님의 임재를 느낌니다. 이 놀라운 예수의 이름은 인간의 머리나 혹은 땅에서 비롯된 이름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명하시고 친히 그 뜻을 풀이해 주신, 즉 하늘로부터 내려온 이름입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태1:21)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 주님께서 받으시기에 가장 적합한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아들을 잘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이 예수의 이름을 들고 나가면 하나님은 기쁨으로 우리를 영접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예수의 이름 앞에 두려워 떨게 됩니다.

천국문이 열려지지 않으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천국문은 예수님의 이름이란 열쇠로 열려지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16:23)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예수님의 이름은 기도가 끝났다는 신호가 아니라 모든 기도의 중간 시시때때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천국문이 열려지고 하늘에서 임하는 주님의 응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III. 예수 - 전도의 능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사도행전 3장의 사건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기 위해서 올라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입구에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지체 장애인 한 사람이 있었어요. 한 40되어 보이는 남자인데, 들어가는 사람, 나오는 사람들에게 날마다 손을 내밀어서 구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따라 성령께서 베드로의 마음을 감동했습니다. ‘너 저 사람을 고쳐주라.’ 성령의 음성이 들렸어요. 가다가 그 장애인 앞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쳐다보았습니다. 걷지 못하는 이 사람은 자기에게 뭔가 동전이라도 한 닢 줄 줄 알고 쳐다봅니다.


그때 베드로가 사도행전 3장 6절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그러나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한 가지가 있는데 이것 내가 너에게 주겠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가 네게 주노니 너 그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살았는데 의사 출신이었던 누가가 기록하기를 발과 발목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 다리를 움직이면서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걸 보고 베드로가 손을 잡고 벌떡 일으켰습니다. 40년 동안 한 번도 일어나 보지 못한 장애인, 다리가 말라붙은 이 장애인이 벌떡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고 법석을 떠니까 그 예루살렘 성전에 드나들던 사람들이 구름 떼와 같이 그 주변에 모여 앉은뱅이를 고친 베드로와 요한을 무슨 신을 보는 것처럼 신기해 가지고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 권세가 어디에서 나왔느뇨.  3장 15절- 16절에 보면

“너희가 ...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라.”(행3:15-16)

여기 예수의 이름이란 말이 한 절에 두 번이나 나옵니다.


이렇게 예수 이름으로 이 사람이 나았다고 소리지르고 베드로가 증거합니다.

이 일로 감옥에 들어가지요. 하룻밤을 잔 그 다음날 재판석에 끌려 나옵니다.

재판을 담당한 대제사장이 묻습니다. 도대체 갈릴리의 어부 출신 너희들이 누구 권세를 가지고,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느냐?


사도행전 4장 7절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10절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4:7,10)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서.

너희들이 알지 않느냐. 언제나 이 자리에 앉아 있던 장애인이란 사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일어섰느니라. 걸었느니라. 뛰었느니라.

너희들 앞에 서 있느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할렐루야.


오늘도 이 땅에 넘어져 있는 사람 있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마음에 낙심된 사람있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업과 여러분의 가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이 2천년동안 기독교의 모태가 되었던

오직 예수! 오늘 본문 사도행전 4장 12절이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세상에 많은 위인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많은 재벌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수많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이름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초대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교회들의 능력은 예수 이름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입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여기서 기도하는 모든 내용이 영광스런 주님의 보좌에 상달되어 집니다.

병든 자들이 있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십시오. 병든 자가 낫게 될 것입니다.

남편을 방황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자식들을 혼란 속에 빠뜨리고 있습니까?

가정을 깨뜨리는 악한 영들이 여러분의 가정을 괴롭히고 있습니까?

예수님 이름으로 명하십시오. 악령들이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지식으로? 우리가 무슨 지식이 있습니까?

내 경건과 도덕적인 능력과 선행의 본을 가지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얼마나 더 깨끗합니까?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마귀를 물리치고, 비신자를 묶고 있는 악령들의 결박을 풀고 멀어졌던 발걸음들을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예수 믿은 지 1초 후부터 여러분에게 그런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 믿은 바로 그 순간부터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할 권세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기죽지 마십시오. 어깨를 늘어뜨리지 마십시오. 좌절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세상을 정복하는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호랑이 어미에게 새끼 호랑이가 있었습니다.

새끼라서 그랬는지 밖에 나가서 매일 토끼한테 얻어터지고 옵니다.

밖에 나가서 늑대한테 물어 뜯겨서 징징 짜고 옵니다.

“엄마 엄마, 늑대가 나 물었어. 토끼가 나 때렸어.”

“엄마 나 호랑이 맞지?” “호랑이고 말고.”

그 다음날 가서 얻어터지고 옵니다.

이리한테 물리고 오고, 노루한테 짓밟히고 옵니다.

“엄마 엄마, 나 호랑이 맞지.” “그럼 호랑이지.”

그 다음날 또 얻어 터져서 징징 짜고 옵니다.

“엄마 나 진짜 진짜 호랑이 맞지.” “그래 이 개새끼야~”


용서하십시오. 오늘 하나님의 자녀들이 늑대 한 마리에 토기한테 조롱거리가 되고 짓밟히고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집니다. 여러분 예수 이름의 권세가 세상을 정복하는 악을 이기는 권세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할렐루야.


병든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선포하십시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병마는 물러갈지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건강할지어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미국 교회의 한 통계에 따르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치고 질병을 치료하는데 선포할 줄 모르는 그리스도인이 92%가 되더라.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1년이 지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지하게 한 번도 전하지 않는 사람이 98%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습니까?

예수님 이름의 권세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예수님 이름으로 능력으로 이 세상을 얼마만큼 정복하고 살아가십니까?


성사초 – 성탄절에 사랑하는 사람 초대하기는 사탄에게 빼앗겼던 영토회복 운동입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신자를 전도하는 능력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사탄에게 빼앗겼던 잃어버린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능력을 회복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를 버릴는지도 모릅니다. 복음전도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그런데 복음전하는 이 일을 남의 일처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란 말인가? 정말 저 사람들이 죄악의 문제를 해결 받고 영원한 나라를 위하여 달려가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때론 제 가슴이 답답해져 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급해 하실 때는 멍하니 구경만 하다가 내가 급할 땐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이 안타까워 할 때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내가 조금만 안타까운 일을 맞게 되면 쩔쩔매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이 얼마나 못난 그리스도인들입니까?

하나님이 급해하는 사역에 여러분들도 급해 보시면 어떨는지요. 하나님이 안타까워하는 문제를 여러분들도 가슴에 끌어안고 안타까워하시면 어떨는지요.


IV. 그 이름의 능력을 주신 이유?


예수 - 그 이름이 구원의 능력, 전도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 이름을 주신 이유는 분명해 집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전해서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상에 복음을 전하여 치유하라는 것입니다. 이웃들에게 예수를 전하여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 능력이 내게 나타나지 않습니까?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수양회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를 체험합니다.

그런데 왜 그것이 능력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사용하면 업그레이드되어집니다. 사용하면 더 큰 능력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우리 집에 전력이 들어와 있습니다.

스위치 하나를 켜면 방안이 환하게 밝혀집니다.

여러분 플러그 하나를 꽂으면 많은 전열기구들을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스위치를 올리면 그 어마어마한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내 기도에 플러그를 연결시키면 하늘의 능력이, 수많은 성경의 약속이 내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문제는 떠나갑니다. 하늘의 복음 임합니다. 성령은 임재합니다.

온갖 악령들은 사라집니다. 무거운 짐들은 굴러 떨어집니다.

하늘의 새로운 성품들이 우리에게 있게 됩니다. 악을 이기는 권세가 우리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찾아와 기도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교회에 모여서 찬양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얼마나 행복해 하시며 바라보고 계십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불신 세계에, 사탄에게 빼앗겨 주님 앞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구원받지 못한 미래의 성도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누가복음 15장이 우리에게 선포하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 삼위일체 하나님이 총력을 기울여 최선을 다하시는 사역이 있다면 그것은 잃은 영혼은 구원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걸고 해야 되는 일이 있다면 이 일입니다. 교회가 이 일에 능력을 잃어버리면 교회는 은사를 잃어버립니다.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무력한 교회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은 영혼들을 살려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한 심령들을 치료하시기를 바랍니다.

날개 꺾여 넘어져 있는 이웃들을 건져내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가스펠 가수들 가운데 “피터 빌혼”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성가 가운데 “날개 상한 새는 날 수 없다”는 노래가 있습니다.

형무소를 방문해서 날개 상한 새는 날 수 없다는 노래를 불렀을 때에

소년원에 갇혀있던 소년이 달려와서 눈물을 글썽이며

“정말 선생님 날개를 상한 새는 날 수가 없습니까?” 물었습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피터는 가서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서 다시 그 형무소를 방문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상한 날개는 치유되어진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된 그 날개는, 꺾여진 날개는 다시 힘을 얻어서 저 푸른 창공을 날개 될 것이다.

그리고 20년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고급 장교 대령의 계급장을 단 사람이 피터 빌혼에게 왔습니다.

“선생님, 20년전 형무소를 찾아왔을 때 그 날개 꺾인 노래 때문에 안타까움에 울먹이던 소년을 기억하십니까?

다시 선생님이 찾아와 주셔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꺾여진 날개는 회복되고 치료되고 저 푸른 창공을 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노래를 듣고 기뻐 춤추던 소년을 기억하십니까? 바로 그 소년이 저입니다.“라고 얘기하더랍니다.


묻습니다. 어떤 날개가 꺾여져 있습니까?

믿음의 날개가 꺾여 졌습니까? 기도의 날개가 꺾여 졌습니까?

사랑의 날개가 꺾여 졌습니까? 세상에 물질 얻는 재물 얻는 능의 날개가 꺾여 졌습니까?

가정에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천국을 건설하는 그 능력의 날개가 꺾여 졌습니까?

이 시간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복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고목나무로 세상을 울리던 장욱조 목사님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우리 모든 인생은 고목나무가 아니라 생명나무가 되어서

꽃피우고 열매 맺고 향기를 토할 수 있다고 노래합니다.


V. 예수 - 그 이름의 능력을 업 그레이드 시켜라


벌써 오래전 세계적인 천재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가 세계를 접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간의 DNA를 변경, 컴퓨터를 앞지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호킹 교수는 (2001.9.1.) 독일 잡지 포쿠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컴퓨터 지능이 발달해 세계를 접수할 위험은 실제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컴퓨터 성능은 매달 두 배로 개선되는 등 발전이 빠르기 때문에 속도가 느린 인간 DNA를 바꾸지 않으면 컴퓨터에 반드시 뒤쳐질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이에 대해 위험하고 순진한 발상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만 주목해 볼 교훈이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 영적 전쟁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은 급속도로 사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사회는 날로 혼란스러워져만 가고 있습니다. 신천지 이단들의 포교 전략은 날로 진화하고 악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욱 게을러져 가고 있습니다.

사탄이 교회를 접수하고 악이 세상을 지배하기 에 지금 우리는 영적능력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할 때 입니다. 신앙의 DNA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성령의 능력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야 할 때입니다.


지금 교회들은 위축되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자신감을 잃어버렸습니다. 성령의 능력의 잃어버린 교회들, 예수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할 줄 모르는 교회들, 주님께서 한국교회를 어찌하실런가요?


일찍이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고 전도의 능력을 잃고 있었던 영국 땅에서 윌리암 부츠 대장이 외쳤던 절규가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의 눈을 열어 지옥에서 고통 중에 신음하는 우리 가족, 우리 이웃들의 비참함을 한번만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천국의 영광을 한번만 보여주십시오.

하나님! 우리 성도들의 눈을 열어 사탄의 간교한 작전을 한번만 보여 주시고 택한 백성들을 구원코자 하는 하나님의 가슴을 한번만 보여 주십시오.”


저도 이 시간 윌리암 부츠 대장의 절규를 이 땅에 외치고 싶습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내 가족이 내 자식이 내 이웃이 형제가 내 이웃들이,

지옥에서 당할 그 비참함을 한번만 우리에게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 천국의 영광을 한번만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 한국교회를 바라보시며 얼마나 안타까워하시는지, 한국교회를 향하여 얼마나 안쓰러워하시는지, 당신의 마음을 한번만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 예수 이름의 능력이 나타나게 해 주십시오.

성령을 제한하지 않는 교회로 한국교회가 다시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넘어진 교회들 마다 일어나길 원합니다.

기도의 불꽃이 타오르기를 원합니다.

부흥의 불꽃이 새로워지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능력, 예수 이름의 권세의 능력을 우리에게 새롭게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 교회는 일어서리라.

예수의 이름으로 한국교회 다시 일어서리라.

예수의 이름으로 이 민족 다시 일어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