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유영모목사

13. 12. 25. 낮은 곳에 오신 예수 누가복음2:1-14

13. 12. 25.              낮은 곳에 오신 예수    누가복음2:1-14

I. 낮은 곳에


1년에 한번씩 지나가는 성탄절이 아니라 이번 성탄절은 여러분 한분 한분이 주인공이 되어져서 모두다 주님을 모셔 들이는 큰 복이 있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분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여러 가지 갈등과 아픔이 있는 분들에게

또 그분은 기쁨의 왕이십니다. 근심과 염려과 걱정이 있는 모든 분들 가운데

오늘 기쁨의 왕으로 평화의 왕으로 우리 가운데 임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즘 어린이들이 성탄절이 되었는데 예수님은 기다리지 않고 싼타만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학교 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싼타보다 예수님이 좋은 이유를 여러 가지로 정리해 가르쳐 보았답니다.


① 싼타는 북극에 계시지만 예수님은 우리 마음속에 계신단다.

② 싼타는 1년에 꼭 한번만 오지만 예수는 항상 우리 안에 계신단다.

③ 싼타는 양말 하나에 사탕(선물)만 주고 가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것을 주신단다. 젤리와 사탕은 이빨만 썩는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을 선물을 주신대.

④ 싼타는 굴뚝을 타고 오시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으을 타고 오신단다.

⑤ 싼타는 와서 우리 이름도 몰라. 그래서 얘 꼬마야~ 그렇게 부른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야, 마리아야, 우리 한사람 한사람 모든 사람의 이름을 다 아셔.

⑥ 예수님이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 너희들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 시간에 여러분 가운데 오신단다.


여러분, “성탄절”하면 어떤 그림이 여러분의 머릿속에 지나갑니까?

화려한 백화점의 불빛, 많은 상품들, 빛나는 크리스마스 츄리, 썰매타고 오는 싼타, 친구들과의 화려한 파티. 아니면 길거리에 비틀거리는 사람들, 무엇이 여러분의 머릿속에 지나갑니까? 이 모든 것은 마귀가 성탄절을 파괴하는 작전입니다.

첫 번째 성탄절 마귀는 군사들을 동원해서 그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 마귀가 꾀가 많아서 성탄절을 없애기 위한 온갖 몸부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 성탄절의 메시지는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인류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재벌 안방, 왕궁 침실에 오신 것이 아니라 낮고 천한 곳에 오셨습니다. 왜요? 이 세상 사람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가장 낮은 사람들도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낮고 천한 곳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낮은 곳에 오신 예수」입니다.


한 노총각이 결혼 중매 싸이트에 접속해서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 조건을 입력하세요. 그래서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간단하게 세 가지만 입력했습니다.

① 얼굴이 이쁘고 몸매가 좋아야 한다.

②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어야 되고 모아놓은 재산이 많아야 된다.

③ 성품이 좋아야 된다.  간단하지요.

질문이 떴습니다. 당신에게 간단하게 네 가지만 떴습니다.

① 당신의 키는 얼마나 됩니까? 얼굴은 잘 생겼습니까?

당신은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까? 모아 놓은 재산이 많습니까?

③ 성품이 착합니까?

④ 당신의 학력, 사회적 위치는 탁월하십니까?

이 노총각이 No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삐익 하고 이런 단어가 왔습니다.

「루저들 접속금지.」


루저가 뭔지 몰라서 얼른 인터넷을 찾아 보았더랍니다.

실패자, 패배자란 뜻이랍니다.

성공자, 정복자를 의미하는 위너의 반대말 이지요.


예수님은 위너들, 승리자들 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루저들, 실패자들, 낮은 자들, 외로운 자들 곁에 오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그곳이 「낮은 곳」예수님을 모시는 자리입니다.


II.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성경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신구약 성경에 예수님에 관한 이름이 70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입에 친근하고 익숙한 이름이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라고 하는 이름입니다. 구약에서는 한번도 기록되지 않았는데 신약에서는 무려 30번정도 기록된 단어입니다.


나사렛. 유명한 도시가 아닙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친구 나다니엘.

즉 바둘로매에게 찾아가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그가 누군데? 나사렛에서 오신 예수님이야. 그분이 그리스도야.

그랬더니 나다니엘 뭐라고 얘기합니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니?

그만큼 천한 것이 나사렛입니다.


나사렛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섞여 살던 곳입니다.

천대 받던 곳 멸시 받던 땅,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달동네, 빈민촌, 변두리 지역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 그곳에 예수님이 오셨다고 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살던 예루살렘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정복의 도시, 위너들의 모여 살던 로마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대석학, 철학자들이 모인 자리 아테네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을 듣기 즐거워 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분은 돌아가실 때에도 그 명패에 “나사렛 예수”라 씌어져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이후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을 때

너희들이 나사렛 예수를 찾는 구나. 그분이 나사렛 예수이셨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사울이란 청년이 언덕을 넘어 가고 있을때에 하늘에서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누구십니까? 나는 나사렛 예수다.

지금 하나님곁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예수라고 불려지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문제가 있을 때에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떠나갈 지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병마는 떠나갈지어다. 질병은 떠나갈 지어다. 여러분들의 가슴속에 아픈 상처가 있을 때 불안과 염려와 우울증은 떠나갈 지어다.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악한 마귀 사탄이 여러분들을 찾아올 때에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병마, 마귀는 물러갈지어다.

악한 영들은 떠나갈지어다.

여러분 나사렛 예수그리스도란 이름 속에 놀라운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그분은 왕의 아들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재벌의 아들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아버지 요셉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요셉은 직업이 무엇이었습니까? 목수입니다.

존경받는 직업이 아닙니다. 돈벌이가 되는 직업이 아닙니다.

그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아서 가업을 꾸려가시던 분이 계십니다.

더구나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요셉은 혼기 놓치고 어렵사리 약혼자를 구하는 가난한 노총각입니다. 요셉. 어린나이에 별세할만큼 병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는 바로 그 가정에 오셨습니다.


혼기 놓치고 가난하게 살던 노총각에게 시집온 마리아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여러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여인이었습니다.

아마 요즘 태어났다면 견적이 꽤 나올만한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나 뮤지컬에 보면 마리아는 대게 미인으로 나타나지요. 그래서 마리아는 미인이었나보다 우리는 착각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도 미인을 좋아하나. 아닙니다. 마리아는 그럴만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머릿속에 마리아가 미란다 커 같은 인물이 지나가거나 올리비아 하세 같은 인물이 지나가면 지우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그린 것 뿐입니다.

그의 인물 때문에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신앙, 그분의 순종 때문에 선택을 받은 것 뿐입니다.


신혼초 제가 와이셔츠 가게를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가게를 열어놓고 사람들을 찾아다닙니다. 공장을 찾아다닙니다.

사람들의 목 사이즈를 재고 어깨와 팔 길이를 재서 남대문 공장에 갖다 줍니다. 그것을 찾아다 주곤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서 써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멀쩡한 옷을 다시 맞춰 달라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옷을 집어 던지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객님이 당황한 것이 아니라 제가 매우 당황했습니다.

가끔 가게문을 열어놓고 오는 손님을 기다려 보았습니다.

하루종일 가게문을 열어 놓아도 한명도 오지 않을 때 그 지루한 고뇌를 저는 어느정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장사꾼들의 고통을 다 알고 계십니다.

책상, 가구, 어린이 장난감 몇 개 만들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지루한 고뇌를 알고 계셨던 것이지요. 부셔진 탁자, 의자 하나를 고쳐주어야 그날 빵 한 조각을 사서 집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가정의 변기통을 고쳐주고, 어린아이들의 부셔진 장난감을 고쳐주고 이 마을 저 마을 찾아다닌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 그분이 누구십니까? 그분은 태초에 만왕의 왕이시고 온 우주를 친히 빚어서 만드신 분이십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를 지으신 교회 주인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내가 너희들이 있을 곳을 나는 준비한다. 너희들이 영원히 쓸 천국을 다 지은 다음에 너희들을 데리러 올거야. 그분은 우리가 영원히 살 천국을 지어 만드시던 분이었습니다.


쓸모없는 나무 조각을 주워 작품을 만드신 분이셨습니다. 쓸모없는 인간들을 주워 모아 하나님의 자녀로 빚어 만드신 분이십니다.

에베소서 2장10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여기 “만드신 바” 이 말은 목수의 일을 상상하고도 넉넉히 남음이 있는 말입니다.

옹이진 김집사, 구부러진 이 집사, 벌레먹은 박 집사.

하나님께서는 우리 예수님은 다 고치셔서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로 빚어 만들어 주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의 마음을 빚어 만드시고 영혼을 새롭게 빚어 만드시고 우리의 가문을 새롭게 빚어 만드셔서 오늘 모두가 하나님의 천국된 가문을 만들어 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 가끔 로마 군인들이 찾아왔습니다. 여보게 십자가 하나 만들어.

십자가를 크게 만들어 주고 나면 돈을 제대로 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짐을 지고 돌아가실 때에 돌에 맞아 죽지 않았습니다.

칼에 맞아 죽지 않았습니다. 나무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자신이 늘 만지던 망치가 로마 군인들의 손에 들려졌던 것입니다.

자기 집에 이곳저곳 늘 굴러다니던 그 못이 그분의 손과 발을 찔렀습니다.

왜요? 예수는 목수로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나무에 달린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 모든 인간들이 죄를 지어서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아야 되는데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내가 담당해야 될 모든 질고와 고통과 저주를 모두 담당했다는 말입니다.


III. 짐승의 밥통에


본문의 저자 누가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예수님의 탄생얘기는 참 엽기적입니다.

빈민촌 나사렛 마을, 이방인의 틈바구니 속에서, 혼기 놓친 목수아버지

그 노총각에게나 시집갈 수밖에 없는 평범한 어머니

더구나 그분은 말 밥통,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로마황제가 제국안에 있는 모든 백성은 자기 고향에 가서 호적을 신고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운송업계, 숙박업계, 요식업계까지 대박이 나던 때였습니다. 돈 있는 사람들조차 웃돈을 줘도 잘 곳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조그마한 베들레헴 마을 호텔이 있었겠습니까?

가난한 요셉이 얻어 잘 만한 방은 없었습니다.

고향이라고 찾아갔지만 한번도 와 본적이 없는 곳입니다.

얼굴을 알만한 분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부득이하게 부탁할 만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가 문화 류가입니다.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이 제 고향이지요. 우리 조상은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축할 때 대부분 비용을 뒤에서 대던 대부였습니다. 모든 군량비, 왕궁 건축 비용을 혼자서 다 담당하던 어르신입니다. 조상대대로 “차”씨 집안사람에서 내려왔는데 왕건이 그 어르신 이름을 “류차달”이라 이름을 지어주고 류씨의 조상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태조 왕건의 첫째 부인이 바로 류차달 어른의 딸이었습니다.

그래서 태조 왕건의 장인이 우리 류씨 가문의 조상입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자기 고향에 가서 호적을 신고하라고 그랬을 때 나는 어디로 갔을까요? 바로 황해도 신천에 가야 됩니다. 그런데 알만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내가 한번도 가본 곳이 없는 곳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베들레헴에 착한 농부 한 사람이 있어서 만삭이 된 마리아에게 방 한칸을 주었던 것입니다. 마굿간을 빌려주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은 베들레헴 말구유간 그곳이 바로 예수님에게는 산부인과병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짐승의 밥통에서 태어나신 예수, 벌레같은 인간, 짐승같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밥으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생명의 양식으로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양식이다. 나는 밥이다. 나는 말 밥통에 태어난 밥이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너도나도 짐승처럼 비천해졌습니다.

이런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짚단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곳, 가축들, 소와 말이 똥을 싸고 눕는 그곳, 그 짐승의 여물, 죽을 먹는 밥통에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소의 여물 취급을 받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IV. 목사들에게 기쁜 소식이


예수 오심의 사건속에서 누가가 전해주는 또다른 통찰이 본문 8절이하에 기록되어져있습니다.

예수 탄생의 소식이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입니다.


목자라고 하면 우리 머릿속에

푸른 들판에 하얀 옷을 입은 예수님께서 깨끗한 양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있는 그림이 머릿속에 지나가시지요.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이 노래를 우리가 상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양치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난 주간에 목자들과 함께 크라운 재정세미나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틀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미나를 하는데 오후시간쯤 되니까 졸리더라구요. 세미나를 인도하던 강사님이 노래를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 내가 비몽사몽간에 찬송을 부르는데

2절은 예쁜 새들 노래하는 아침과  /  3절 못된 짐승 나를 해치 못하고

이게 뒤집어 진 겁니다.

예쁜 짐승 노래하는 아침과  /  못된 새들 나를 헤치 못하고


짐승들의 소리가 들리는 그곳이었습니다.

새들도 사납기 그지없는 팔레스타인 들판이었습니다.

당시 목자들 자신의 양떼를 돌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인의 양을 치는 고용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낮에는 뙤약볕에 얼굴은 그슬려 있었고 손은 거칠기 짝이 없었습니다.

밤엔 양을 지키기 위해 불침번을 서가며 모자란 잠을 새우잠으로 떼우니 늘 피곤에 지쳐있었습니다. 소위 3D 업종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사회적, 경제적 하층민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시골고향을 떠났습니다. 부모곁을 떠났습니다. 직장을 구하자니 변변한 기술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얻은 직장이 바로 목동, 양치기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고 싶지만 자유롭게 성전이나 회당에 나가서 예배들 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한번 기회를 얻어 회당에 앉아 있으면 옆 사람이 코를 킁킁 거립니다. 어디서 이상한 냄새 나지 않아. 온 몸에 옷에 양 똥 냄새가 찌들어 있기 때문에 내 곁에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이게 목동의 삶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양치기들 가운데는 생활에 시달리다 주인 몰래 양털이나 젖을 암시장에 내다 팔곤했습니다. 이들 때문에 모든 양치기들은 부정직한 사람으로 매도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하층민 중에서도 가련한 목자들에게 예수 탄생의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그것도 하늘의 천사들의 음성, 합창과 함께 말입니다.

만약 혼자 들었다면 너무 힘이 들어 내가 환청이 생겼나? 그랬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 앞에 휘황찬란 햇빛보다 더 빛나는 황홀한 빛이 비취더니

하늘에 천사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해 준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너희는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적이다”(눅2:10-12) 표준새번역.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아무도 대우해 주지 않을 때에, 주인에게 월말보고를 하는 날이면 매를 맞기도 하고 꾸중을 듣기도 하는 천대를 받는 직업인들이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자신을 만나 주다니, 구세주가 왕자의 이름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말 밥통에 낡은 포대기에 쌓여 누워있습니다. 천하에 불쌍한 자기자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메시야 구세주를 만나러 왔더니 자기보다 더 불쌍하게 그곳에 누워있는 것입니다. 갈기갈기 떨어져가는 포대기에 쌓여져서, 짐승들이 꼬리를 치며 매에매에 소리를 지릅니다. 아기는 깜짝깜짝 놀라면서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곳에서 아기에게 찬바람이 들어갈까봐 짚더미를 덮고 아기를 감싸주고 있는 것입니다. 메시야, 구세주가 그렇게 찾아오더니 천사들의 합창이 아니라고 한다면 아무도 구세주라고 믿어지지 않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이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이분이 구세주이십니다. 이분이 우리 메시야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 성탄절에 호화스런 가족여행이나 떠나는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신분이 너무 고고해져서 낮은데 내려갈수 없는 사람들 곁에 오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구원얻은 특권에 갇혀서 마음이 높아져 버린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지금 커다란 고통 가운데 계신 분이 계십니까? 내가 당하는 고통은 아무도 몰라. 나만이 당하는 고통이라고 외로워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은 그것보다도 더 아픈 자리에 임재해 계십니다. 이 시간에 여러분을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가난에 찌들고 어려운 형편속에 오신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이 어떤 가난에 찌들어 있는 삶을 산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그보다 더 가난한 자리에 임하여 계십니다.

여러분의 어려운 형편을 이해하시고 고쳐주시고 회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온갖 멸시와 천대로 상해진 여러분 보다더 낮은 곳에 와 계십니다.

당신의 고통을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고통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이 계신 그 자리 오늘 예수님이 찾아 오실 것입니다.


V. 동방의 점술가들에게


혹 어떤 분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동방의 박사들이 오지 않았느냐고.

동방의 왕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느냐고.


동방의 박사들이 누구일까요?

팔레스타인 동쪽 어느나라의 점성가들이었습니다. 우주과학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고귀한 신분의 소유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유대인들이 볼 때 미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참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종교에 찌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혹시 교회오신 분들 가운데 다른 종교에 귀의되어 있다가 오늘 어떻게 친구 손에 끌려오신 분이 계십니까? 우리 예수님께서는 바로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그분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구원얻은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천국의 자녀들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권력가들이 몰려있는 아우구스티누스 곁에 헤롯대왕 곁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종교적인 귀족가들 제사장 마을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지식 높은 율법학자들 가운데 오시지 않았습니다.

대재벌 가문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왜요? 

이 세상에서 이리 저리 밀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실패자, 패배자로 낙인된 루저들에게 기쁜소식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변변한 직장 하나 얻지 못해 3D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은 친구로 찾아 오셨습니다. 혼기 놓친 가난한 노총각, 그런 사람이나 만나야 결혼을 할 수 있는 마리아 곁에 예수님은 찾아 오신 것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나를 구원하여 하늘까지 인도해 주시는 영광스런 자녀로 삼으시기 위하여 가장 낮은 곳에 오셔서 우리를 가장 높은 곳으로 인도하여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소가 여물을 뜯고 채 치우지 못한 짐승의 똥들이 쌓여있는 말 밥통, 거기 낡은 포대기를 깔고 누워있는 아기, 그가 구세주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에게도 친근한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다시는 소생할 수 없을 것을 것이라고 세상에서 손가락질하는 악한 사람들도 이 시간 예수를 만나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내어놓을 조건이 없는 이 세상의 가장 작은 곳 낮은 곳에 살던 사람들 가운데 구세주로 찾아 오셨습니다.

물론 잘나고 똑똑하고 여유있는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낮추시면 여러분의 마음이 말구유가 되어서 오늘 예수님이 탄생하여 임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가장 높은 곳에서도 우린 예수님을 만나고 그보다 엄청나게 높은 곳으로 그분들을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 세상에 어떤 염려와 걱정과 근심과 공포 불안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그곳에 오셔서 여러분의 구세주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기쁜 성탄입니다.

모든 사람들 가운데 기쁜 성탄절입니다.

오늘 이 기쁨의 주인공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평화의 주인공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주인공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