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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 5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1:27-12:5

14. 1. 5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1:27-12:5


I. 배경: 바벨탑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 앞에 예배당이 건축되고 있었습니다.

어린 제가 목수 아저씨께 물었습니다. “아저씨, 이 큰 집에 누가 살아요?”

목수아저씨 대답이 “하나님이 사신단다.”

어린 제 마음속에 우아! 하나님은 굉장히 부자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하나님의 집이 곧 내 집인 것을 알게 되고, 내 집에서 놀 듯 교회당에서 놀면서 자랐습니다.


교회당이 저희 집 앞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저를 찾아오신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을 만난, 예수님을 만난, 교회를 만난 그 사건이 여러분 인생에 결정적인 사건이 되셨는지요. 나 한사람이 바뀌면 나로 인해 내 가정, 내 가문, 교회, 민족이 바뀌어질 수 있습니다.

2014년 신년 캠페인은 나의 가정, 기독교 명가문 만들기입니다.

세상이 어려울 때 걱정하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가 위기를 만났을 때 불평하는 것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 마다 비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대안이 되어야 되겠다. 내가 복이 되어야 되겠다 하는 사람은 많치 않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가 복의 근원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신 사람입니다.


오늘 나의 가정 기독교 명가문 만들기 모델로 성경의 아브라함을 선택했습니다. 금년 우리 한소망 모든 가족이 우리교회에, 가정에, 목장에, 사역터, 일터에, 나아가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은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라는 말로 문을 엽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지구상에서 그리스도인, 천주교인, 유대교인, 이슬람교인까지 약37억명이 한결같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용어를 빌리면 아브라함은 과연 “복의 근원” “복덩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늘 본문 창세기 12장 아브라함 이야기는 바로 앞에 있는 사건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 나올까요? 12장 바로 앞엔 11장이 나옵니다.

바벨탑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탑은 어떤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까요? 6장부터 10장까지 노아 홍수를 배경으로 합니다.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들은 다시 노아 홍수 이전의 죄악된 생활로 되돌아 가고 있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악이 조직화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벨탑입니다.


벨탑을 쌓아 하나님을 성소에 가두어 두고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하는 전능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이 길이 바로 인간이 성숙해 지는 길이라믿었습니다. 이때부터 이 지구는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의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주인이라는 인본주의는 그럴듯한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공격하는 악한 사상이 모두 여기서 나왔습니다.


오늘 하나님없는 인간의 성숙성을 주장하는 바벨탑은 그 높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헬레니즘과 19세기 르네상스를 거쳐 급기야 무신론 운동인

리챠드 도킨슨의「The God Delusion」“만들어진 神”에게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들은 지구에서 하나님 없는 인간, 성경이 없는 도덕, 교회가 없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천국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만들어낸 망상이다”(호킹)

“하나님은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망상이다. 인간은 그 하나님을 죽일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 우리 입맛에 맞는 신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하나님은 죽었다. 네 인생을 맘껏 즐겨라”(도킨슨)

“이 땅에서 기독교인과 교회가 사라질때까지 교회를 비판하고 때려부수겠다”

 (기독교 엔티들)

- 이 모든 것들이 반기독교운동, 바벨탑 운동입니다.


지금 세계는 지구촌 도처에서 성경이 말씀한 그 마지막 때의 모습이 정신적으로, 사상적으로, 정치적으로, 환경적으로 너무나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II. 구속드라마의 시작


그러나 성경을 보십시요.

바벨탑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무너뜨렸습니다. 하나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악이 기승을 부리고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하나님이 승리하십니다. 하나님이 돌리는 역사의 맷돌은 비록 천천히 돌아가지만 정확하게 돌아갑니다. 역사는 반드시 선하신 하나님의 계획대로 움직입니다.

왜요? 이 우주는 하나님이 만드시고 하나님이 운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1장 9절 바벨탑을 무너뜨린 다음절에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부르시는 장면이 기록됩니다. 승리의 드라마, 구속의 드라마가 시작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쫓아내고 바벨탑에서 인간을 흩어버린 하나님께서 다시 당신의 백성을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모으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이 부분에서 우리의 눈길을 머물게 하는

한 귀절이 있습니다.

11장 30절 말씀입니다.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는 말씀입니다. 자손을 번성케 하여 온 땅에 아브라함의 자손들로 가득채우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신데 그 가문에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브라함이 가장 무력할 때 「복의 근원」이 될 자격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하나은 그를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을 불러 비범한 기독교 명가문으로 만들어 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아침에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기독교 명가문으로 부르고 계신다.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은 무조건적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복 주심은 언제나 무조건적이십니다.

시내산에서 받은 모세의 율법은 “너희가 ....하면 ...한 복을 주겠다”고 하는 조건부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이 사건은 무조건적입니다.


하나님이 쓰는 사람, 하나님이 쓰는 가문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못 생겨도 쓰십니다. 공부 못해도 쓰십니다. 병들어도 쓰십니다. 가난해도 쓰십니다. 어떤 기준도 조건도 없습니다.


가끔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묻습니다.

한소망교회 부흥과 성장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제가 당황하지요. 그러나 요즘은 정확한 정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망설이지 않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한소망교회 비전채플엔 오병이어 조형물이 매달려 있습니다.

보리떡 같은 우리를 하나님이 쓰셔서, 바닷가에 버려졌던 물고기 한 마리를 하나님께서 쓰셔서, 주님이 붙드셨을 때에 오천명을 먹인 기적의 사건처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복음의 능력으로!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좋은 환경도 넉넉한 자원도 따뜻한 도움의 손길도 없는 빈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세우시고 이곳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이 교회를 명품교회로 하나님께서 새롭게 만들기 원하십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분 한분의 가정을 여러분 성도 한분 한분을 명품 신앙인, 명품 가문으로 만들어 쓰시길 원합니다.


III. 교회: 민족의 복덩어리


이 캠페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나라를 복된 제사장 나라로 만드시는 운동입니다. 죽은자 같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불러 「복의 근원」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120년전 버려진 땅 버림받은 이 백성을 불러 「복의 근원」 백성 삼아주셨습니다. 120년전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전쟁터였습니다.

그날 한민족은 일제강점기로 빨려들고 있었습니다.


세계 열강들이 한국을 버릴때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당신의 백성으로 사셨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한국 땅을 떠날 때 성령님이 이 땅을 찾아 오셨습니다.

고난의 시기.

독교 복음은 절망하는 백성들의 희망이었습니다. 우매한 백성의 등불이었습니다. 교회는 싸울 힘없는 민초들을 대신해 앞장 서 싸워주는 정의의 싸움꾼이었습니다.

과연 교회는 이 민족, 이 백성의 복의 근원, 복덩어리였습니다.


지나온 한 세기를 돌이켜 보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강성한 나라가 된 것인가?

우리가 잘 한 것은 예수 잘 믿은 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지하 자원이 넉넉한 것도 아닙니다. 기도 열심히 한 것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 민족에게 복을 많이 주셨습니다.

신앙이 민족의 자산이었고 기도가 나라의 자원이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교회는 이 민족의 복덩어리요 희망입니다.

- 교회가 살면 나라가 삽니다.

- 교회가 건강해 지면 나라가 건강해 집니다.

- 교회가 부흥되면 나라경제가 부흥됩니다.

- 교회가 하나되면 통일은 옵니다.

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요 나라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이 사실을 알기에 한소망교회 비전채플 머릿돌엔 한소망교회의 비전을

이렇게 새기고 있습니다.

“한소망교회를 주님의 심장속에 있는 바로 그 교회로 세워

 한국교회 한 민족을 섬기고 열방에 예수님의 복음과 비전을 나누기 위하여

 우리는 여기 비전채플을 세우노라”


2014년 다시 한번 이 비전으로 날아오르십시다.

주여, 다시! 두 날개로 비상하게 하소서!

한 주간동안 상했던 심령이 이 곳에 오면 하나님을 만나게 하여 주시옵시고 소그룹에 영광의 부흥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IV. 7가지 축복


오늘 본문 2절 3절은 아브라함의 비전 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

 하신지라”(창12:2-3)


이것은 아브라함의 비전 선언문 일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의 비전 선언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축복에 관한 일방적이고 변치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 말로 “복”이라고 번역된 바라크라는 단어가 성경에 총 310회 쯤 나오는 단어인데 그 중 창세기에만 88번, 4분의 1이상 창세기에 나옵니다.

만물의 시작을 알리는 창세기는 복의 시작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짤막한 본문 2절 3절 속에 복의 근원들에게 주시는 7가지 복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12:2)입니다.

아브라함은 훌륭한 가문 출신도 아니고 많은 것을 가진 위인도 아니었습니다. 여기 “큰”(까돌)이란 표현은 크다, 많다, 위대하다, 중요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영향력이 탁월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 복을 주어서 그 가정을 명문가문으로 만들어서 공동체를 살리고 나라와 국가와 민족, 세계 열방을 큰 나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둘째, “네게 복을 주어”(12:2)입니다.

복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미완료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한번 복을 주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모든 영역속에서 항상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영적인 복을 주십니다. 성품이 아버지의 마음을 닮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환경의 변화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환경을 변화시키고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육체적인 복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복된 사람을 보내주셔서 관계의 복을 통하여 공동체의 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비전과 꿈을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셋째는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12:2)입니다.

세 번째 복은 이름 즉 명예를 존귀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의 이름은 천국에서도 영원히 불려질 이름입니다.

나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존귀하게 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넷째는 “너는 복이 될지라”(12:2)입니다.

복을 받았으면 복을 나눠 주는 사람이 되라는 명령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어로 나타났는데 네 번째 복에서는

“너는 복이 되어라” - 아브라함이 주어가 되어 타인에게 복이 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원문에는 복의근원이란 근원이란 말이 없습니다.

개역번역에서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그랬지만, 개역개정판에서는 복이될지라라고 바로 잡았습니다.


다섯째는 3절로 넘어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입니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는 아브라함이 복을 받는 것이고 네 번째부터 마지막 일곱 번째까지는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어떻게 세상이 아브라함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복의 근원된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변에 주의 종들, 특별히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 또 여러분 교우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복의 근원인줄 알고 그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 3명 4명 5명되는 식구들 가운데 복의 근원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아들이 복의 근원인지, 아내가 복의 근원인지, 우리 가정에 주신 남편, 아버지가 복의 근원인지 여러분 서로가 서로를 축복하면 여러분의 가문이 기독교 명가문으로 바뀌어진다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12:3)입니다.

우리 말로는 똑같이 “저주”라고 번역이 되어 있지만 먼저 사람들이 복의 근원을 저주하는 저주(칼랄)은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분별없이 비난하고 멸시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반면 하나님이 인간을 저주하는 저주(아라르)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신적 저주를 말합니다.


또한 바로 앞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수로 사용된 반면 여기 “너를 저주하는 자”단수로 사용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동일한 복을 주시지만 너를 저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저주하는 그 마음, 그 태도, 그 분량에 따라서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적으로 분별하여 하나님이 갚아 주신다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내 자식을 부당하게 괴롭히면 화가 나듯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십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12:3)는 말씀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인류전체가 복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내가 복의 근원이다. 나는 복이다. 어떻게 명가문을 만들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금년 한해동안 예수 그리스도와 가까워 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친밀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가정을 위하여 만들어 놓으신 그 계획에 눈이 열려지시기를 바랍니다. 단순히 세상적으로 명가문이 아니라 신앙적인 명가문 그래서 기독교 명가문만들기입니다.


여기 “모든 족속”은 일차적으로 자손들을 의미하고(신6:4-9), 이차적으로는 나로 말미암아 내 주변에 있는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마28:19-20)


주님의 지상명령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구약의 지상명령은 내 자손에 그 자손이 명가문으로 이어져가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명가문으로 뿐만 아니라 신약의 명가문은 그 영향력이 이웃을 향하여 번져가는 세계열방까지 번져가는 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V. 복의 근원


우리의 사명선언문은 분명해 졌습니다.

「나는 복의 근원이다. 나는 축복의 통로다.」

나는 복을 받아 반드시 창대하게 된다.

내가 복을 받아 우리 가문은 명가문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나 때문에 우리 가정이 잘되게 될 것이고 우리 가정 때문에 교회가 잘 되게 될 것이고 우리 공동체가 세상을 향하여 뻗어가는 영향력있는 공동체로 새로워지게 될 것이다. 이게 우리의 사명선언문입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복을 받습니다. 우리 교회가 복을 받습니다.

너무나 신나는 말이요 또 한편 너무나 두려운 말입니다.


항상 우리는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 나는 축복의 전달자이다.

- 나는 축복의 발원지이다.

- 나는 축복의 잔도사이다.

- 나는 축복의 유통자이다.

- 나는 축복의 통로이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두려운 신분입니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나 혼자 잘되고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복의 근원이 되어 내 이웃, 내 공동체, 내 민족을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이 시대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한소망교회로 말미암아 한국교회가 복된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시시때때로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 내가 받은 복으로 누가 얼마나 복을 받았는가?

- 내가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으므로 말미암아 누가 구원을 받았는가?

- 내가 받는 복을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나누어 주었는가?

- 우리 가문이 명가문이 되어서 우리가 얼마나 복을 받았는가?

- 나로 인하여 내 일터, 내 사역지, 나와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복을 받았는가?


복덩어리는 그가 움직이는 대로 복이 따라 다닙니다.

복덩어리는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복덩어리는 함부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복덩어리는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함부로 살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내가 말한대로 복을 받습니다.

누군가 내가 거룩한 손을 들어 축복한 대로 복을 받습니다.

내가 그 복된 길을 걸어가면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앞장 서 걸음을 인도하고 내 손을 잡고 동행하고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정체의식입니다.


그러나 복덩어리들이 저주의 길을 가면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막으십니다. 발을 꺾어서라도 막으십니다. 손을 비틀어서라도 막으십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지금 세상이 복덩어리인 한국교회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어떻게 대하느냐 여하에 따라 복과 저주가 갈라집니다. 한국교회가 바로 서지 못해 욕을 먹으면 이래저래 이 나라는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계 어디를 살펴보아도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사람, 교회를 소중히 여기는 민족,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들, 저주받은 나라들을 가보면 교회를 폐쇄한 나라들, 핍박한 나라들입니다. 복음을 거부한 나라들입니다.

기억하세요.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이 버리십니다.


아더 원수는 6.25를 수습하고 한국을 떠나는 자리에서 이런 연설을 했습니다. “한국 국민 여러분, 여러분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제의 문제가 아닙니다. 군사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앞엔 신학적인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신앙 부흥이 민족의 부흥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교회가 잘 되는 것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 역사의 문제입니다.

교회가 복을 받아야 나라가 복을 받습니다.

교회가 건강해야 나라가 부강해 집니다.

기독교 가문들이 이 시대에 바로 서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로운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복 덩어리 10사람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문제는 곧 복 덩어리의 문제입니다.

이 나라의 문제는 곧 교회의 문제요 신앙의 문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문제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내가 내가 복덩리라는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아니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의식을 잃어버리고 아무렇게나 살아가느냐. 세상 사람들하고 동일한 가치관을 가지고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동일한 말을 하고 살아가느냐의 문제입니다. 나의 가문을 기독교 명가문으로 만들겠다는 이 약속은 교회를 세우고 나라를 세우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미국에 가면 메사추세츠 주에 뉴 샴푸톤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35,000명쯤 사는 작은 도시인데 거기는 특산물이나 관광 상품이 없니다. 조그마한 오두막집 하나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집 앞의 간판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집은 미국 역사를 새로 만들어 낸 위대한 집이다.”

그 간판 밑에 그 집을 통하여 미국을 살려낸 많은 인물들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전 오두막을 짓고 남편 조나단과 그 아내 사라가 가정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이들 부부는 이름없는 가문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12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후 4대 5대에 걸쳐서 후손이 늘어가는 중에 그 가문을 통하여 부통령이 1명, 13명의 대학총장, 3명의 주지사, 3명의 시장, 149명의 변호사, 48명의 판.검사, 116명의 선교사와 목사, 75명의 사업가, 25명의 발명가, 66명의 교수, 82명의 차관급 공무원, 68명의 의사가 배출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명가문일뿐만 아니라 그들은 한결같이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 많은 유익을 남긴 신앙인들이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그 가문을 연구해 보았습니다.

무엇이 이 가문을 이토록 빛나는 가문으로 만들었는가?

조나단과 사라는 12명의 자녀에게 아름다운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해라.

둘째, 모든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니 하나님께 기도해라.

셋째, 네가 복을 받고 받은 복은 반드시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라. 오늘의 용어로 말하면 기독교 명가문이 되겠다는 약속이지요.


사랑하는 한소망교회 가족 여러분!

이미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아브라함으로 부르셨습니다.

신앙의 명가문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2014년 우리 한소망교회가, 한소망의 모든 가정들이 기독교 명가문으로 거듭나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