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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됨을 힘써 지키라-엡 4:1~6

하나됨을 힘써 지키라-엡 4:1~6
  
  


제목 없음

한 공작새 부부가 예쁜 외동딸 공작새를 곱게 키워 숲으로 시집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시집을 간 딸이 얼마 되지 않아 잔뜩 풀이 죽은 채 친정으로 날아왔습니다. 어미 공작새는 걱정이 되어 사연을 묻자 딸이 하소연했습니다. “엄마! 숲의 새들이 다 저를 따돌려요. 도무지 외로워 견딜 수가 없어요. 남편도 이해 못해요. 그러니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노련한 엄마 공작새는 무엇인가 짐작하고 물었습니다. “, 숲에서 아무 때나 꽁지를 활짝 펴서 다른 새들 앞에서 뽐내었지? 내 말이 맞지?” 딸은 엄마가 자기의 행동을 알고 있자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엄마, 우리 꼬리는 하나님의 선물인데 조금 펼치면 어때요? 다른 새들에게 그것을 펼쳐 보여주는 것이 뭐가 그리 잘못되었나요?” 그때 엄마가 말했습니다. “얘야! 하나님이 주신 것은 남을 부끄럽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야! 한 번은 숲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엿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친구를 점잖게 타이르더구나! ‘여보게, 자네의 대화 가운데서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좀 빼게. 영국의 골퍼들 사이에서는 젠틀맨 골프 상식이라는 말이 있다네. 그것은 주위에 한 사람이라도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 골프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올리지 않는다는 걸세얘야,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니?” 딸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날아갔습니다. 그 뒤 친정으로 날아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숲속에 있는 다른 새들과 잘 어울려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하나 되지 못하고 다툼은 자기 영혼의 손목을 칼로 긋는 것입니다. 남과 다투는 것은 내 영혼과 다투는 것이고, 남과 멀어지는 것은 내 양심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남을 울리면 그 울음소리가 칼이 되어 내 영혼의 동맥을 끊습니다. 어울림은 행복을 부르는 삶입니다. 울림은 나를 주변인으로 만들지만 어울림은 나를 중심인으로 만듭니다. 울림이 아니라 어울림만이 하나 되는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위로하고, 격려해주어야 할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갈등이 생깁니까? 왜 마음의 상처가 생길 때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은혜로 불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잘난 것처럼 나를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내세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 대하여 말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만 생각하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서로 사랑할 때 비로소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르심을 받은 자의 합당한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이요, 예수의 피로 맺어진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너희는 하나가 되라고 명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하나된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 됨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함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된 것을 깨뜨리려는 악한 세력이 존재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됨을 위하여 힘써 지켜야 할 덕목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덕목들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첫째로 겸손하여야

알렉스 헤일리(Alex P. Haley)는 작가의 꿈을 품고 날마다 열 시간 넘게 글을 써 여러 편의 작품을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매번 거절 편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39세 때 흑인 지도자 말콤 엑스를 만나 그의 자서전을 출판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났습니다. 이후 헤일리는 할머니에게서 전해들은 가족사를 책으로 만들기 위해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소설 뿌리를 출판해 최고의 작가가 되었습니다. 소설은 31개 국어로 번역되었고 8백만 부 이상이나 팔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사무실에는 명성에 걸맞지 않는 거북이 한 마리가 높은 담장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그림이 걸려있었습니다. 궁금히 여긴 사람들이 곧잘 그에게 물었습니다. “저 그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가 쓴 작품에 대해 스스로 자화자찬하며 교만한 마음이 생길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담장 꼭대기에 올라간 거북이 그림을 쳐다보곤 합니다. 저 거북이가 꼭대기에 올라간 것은 누군가의 도움 때문입니다. 마찬 가지로 제가 이렇게 유명한 작가가 된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이 그림을 걸어놓았습니다. 스스로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언제나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은 자에게 은혜를 더 주시고,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손을 들 때 하나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본문 2절입니다. “모든 겸손과덕 가운데 최고의 덕은 겸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됨을 깨달은 사람만이, 그리고 죄인인 자신을 아들마저도 아끼지 않으시며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만이,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낮아진 사람만이 진정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겸손이 사랑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만이 서로 하나 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겸손이 결여될 때 사랑은 빛을 잃게 되며, 겸손이 함께 할 때 사랑은 더욱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는 자기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자기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자기 고집을 세우지 아니합니다. 묵묵히 봉사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합니다. 바울도 처음에는 교만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를 만난 후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교만함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겸손의 은혜를 받아 하나 됨에 힘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온유하여야

존 칼빈(John Calvin)은 스트라스버어그에 가기 위해 제네바에 들렸습니다. 그 때 종교 개혁을 시작하기 전부터 알던 윌리암 파렐이 찾아와 당신이 필요하니 스트라스버어그로 갈 것 없이 여기서 손잡고 일하자고 강권하였습니다. 칼빈은 조용히 앉아서 책을 쓰기를 원했습니다. 활동하는 자리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파렐이 강권할 때에 칼빈은 혹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생각이 나서 겸손하게 순복하였습니다. 3년 동안 제네바에서 양심적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제네바 시민들은 불평을 품기 시작하고 결국 시의회에서 칼빈과 파렐을 추방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공손히 당신들이 그러면 우리가 떠나겠습니다하고 그 곳을 떠나서 스트라스버어그로 갔습니다. 3년 후 다시 제발 오라고 간청할 때 또 온유한 마음으로 그저 당신이 원하면 가지요하고 다시 제네바로 왔습니다. 칼빈은 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강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이면 순종하려는 온유한 그리스도의 성품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본문 2절입니다. “온 로 하고...” 온유는 절제된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감정을 발산하지 않으며 언어와 행동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능력도 있고, 열심도 있지만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를 몰라서 보기에 불안합니다. 이는 온유가 부족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참된 온유는 권리가 있지만 권리를 행사하기 위하여 악을 행하지 않는 인격을 말합니다. 경우대로라면 당당한 권리이지만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참된 온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질고를 지셨습니다. 여기에 온유함이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우리가 종종 하나님의 섭리에 불만을 가지는 것은 마음이 온유하지 못해서입니다. 자기의 권리를 지키려는 마음이 강할수록 화를 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온유를 배워야 합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온유의 덕만이 공동체를 하나 되게 만듭니다. 마땅한 권리임에도 하나 됨을 위하여 양보하며 온유함으로 하나 됨에 힘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인내하여야

폐결핵과 척추병으로 폐인이 되어 버린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에게 미쓰오라는 3살 연하의 남자가 찾아 왔습니다. 그녀는 낯선 남자에게 노래를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미쓰오는 찬송으로 그녀의 영혼을 절망에서 희망으로 이끌어 냈습니다. 다 죽어가는 그녀에게 내가 3일만이라도 당신과 살수 있다면 나는 당신과 결혼하겠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훗날, “나는 13년 동안 병석에서 건강을 잃었지만 하나님과 남편과 작품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순애보는 계속 이어져 40년을 해로하였고, 미우라 아야코는 77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빙점이라는 소설을 통해 빙점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빙점은 인내의 참음의 한계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빙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자기 속에 있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고 내면화한 사람들이 한계에 다다르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는 빙점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빙점은 본성의 참음과 관련 있습니다. 본성으로 버텨야 하는데 본성에 한계가 올 때 절망이 옵니다. 그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마음이 굳어집니다. 마음이 굳어지면 두려운 것이 없고 소중히 사랑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억누르고 있었던 악한 본성들이 쓴 물처럼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 없이 본성으로만 참는 것은 항상 위험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본성만의 인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은혜로 인한 인내가 우리에게 더욱 더 필요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오래 참음으로...” 인내의 덕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참는 성품, 분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는 성품, 상처를 입고 마음이 아파도 참는 성품이 인내의 덕목입니다. 부득이 해서 억지로 참는 것은 그 가치가 적습니다. 참는 다는 것은 믿음이 있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만이 인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해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조급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인내의 덕을 가지기 바랍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성품이 아니겠습니까?

예수께서도 십자가의 고난까지 참으셨습니다.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속상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 할지라도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오래 참고 인내할 수 있기 바랍니다. 오래 참지 못해서 부끄러운 일을 저지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이 앞서가는 것을 참지 못하고 내가 앞서 가려고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사람이어 합니다. 이것이 부르심에 맞게 사는 성도요, 하나 됨을 힘써 지키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시험이 올 때도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래 참음으로 하나 되는 일에 힘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독일인들은 전쟁에 졌다는 절망적 생각과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맡기면서 서로 정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 되지 못하고 나라는 분열되어 갔습니다. 이 때 칼 바르트(Karl Barth)는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는 독일인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저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안에서 한 형제요, 한 자매된 자들입니다. 서로 정죄하지 맙시다. 좀 더 따뜻하게 서로의 손을 꼭 쥐어줍시다. 그리고 함께 일어나십시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반드시 새로운 조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는 하나 됨을 외쳤습니다. 모두 그 말에 동감했습니다. 서로 정죄하는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함께 손에 손을 쥔 힘을 더 쥐었습니다. 따뜻하게 서로의 손을 잡고 일어났습니다. 쓰러진 조국을 건설하며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전도와 선교와 교육과 봉사의 사명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일어나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서로 분열되는 일을 할 것이 아니라 하나 됨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능히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어 우리가 할 일을 주관하시며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성도는 모름지기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너도 부족하고 나도 부족하고 우리 모두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가 되도록 불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그 마음을 품고 서로의 부족을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나가야 합니다. 부디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서로 용납하여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불러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