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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마 3:1~12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마 3:1~12
  
  


해마다 겨울이 되면 그리스도인들이 성탄절을 지키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하누카(Hanukia)라는 절기를 지킵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그리스도인들이 성탄절을 지키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하누카(Hanukia)라는 절기를 지킵니다. 주전 168년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 tiochus Epiphanes IV)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에서 제우스신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관리와 군사들을 마을로 파송하여 유대인들로 하여금 우상에게 절하게 하고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을 크게 분노시켰습니다. 안티오쿠스가 파송한 관리는 모디인에서 제사장 마타티아스(Mattathias)에게 이방 제사를 집례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타티아스는 명령을 거부하고 관리를 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카비우스 형제들과 연합하여 안티오쿠스 왕의 군대를 전멸시켰습니다. 그 후 마카비우스는 점차 세력을 얻어 주전 164년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습니다. 성전은 이방제사로 더럽혀졌고, 성전의 기명들은 분실되거나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마카비우스는 성전을 정결케 하고 촛대(Menorah)에 불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성전에 사용할 정결한 감람유(Olive Oil)는 하루를 밝힐 양 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기름으로는 보충할 수 없고 오직 감람유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루치 감람유인데 8일동안 불이 꺼지지 않은 것입니다. 정결한 감람유를 준비할 수 있도록 8일동안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하누카를 빛의 절기(Feast of Lamps)로 묘사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기스르월 1225일부터 8일 동안 촛불을 밝히면서 성전 회복을 기뻐하였습니다. 집집마다 창가에 촛대를 세우고 하루에 하나씩 더해가면서 불을 밝혔는데 마지막 날에 모든 촛대에 불을 밝히면서 어둠을 물리치고 빛된 삶을 살리라고 다짐하였습니다. 그 후 해마다 대림절이 되면 촛불을 밝히며 주의 길을 준비하는 풍습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403절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포로 귀환 시대에 포로들을 해방시켜 끌고 오시는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가 예언된 메시야임을 선포하며 주의 길을 준비하라고 외칩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포로귀환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으나 메시야의 오심으로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고대에는 왕의 행차가 있을 때 앞서 전령을 보내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전령들은 앞서가면서 왕의 행차를 미리 알리고, 길이 험하거나 방해물이 있으면 제거하고 평탄케 하는 임무를 수행함으로 왕의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왕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도록 보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목숨을 바칠 만큼 주의 길을 준비하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도 분명히 하였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당신이 누구냐?’ 고 물었을 때 세례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자신은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자임을 선언했습니다.

성탄을 앞두고 세례요한의 모습을 통해 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본문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의 뜻은 과연 무엇입니까? 어떻게 주의 오시는 길을 준비해야 합니까?
 

첫째로 겸손하여야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레오날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의 모습이 방송되었습니다.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되자 누군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수많은 악기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번스타인은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2 바이올린입니다1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과 똑같은 열의를 가지고 제2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플루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1연주자는 많지만 그와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 주는 제2연주자는 너무나 적습니다. 아무도 제2연주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아름다운 음악은 영원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주인공만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쫓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을 낮추고 오로지 예수만 높이며 그의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하였느니라세례 요한은 자신을 가리켜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모세가 약속했던 선지자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직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합니다. 즉 자신은 길이 아니라 길을 예비하는 자요, 말씀이 아니라 말씀을 외치는 소리라고 낮추었습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는 죄를 씻기는 물 자체라 하면서 자신과 예수를 구별합니다. 자신이 세례를 주면서도 예수의 성령세례에 대하여 가르쳤고 능력과 신분 면에서도 예수는 자기와 비교할 수 없는 분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자신은 그의 신발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자라고 낮춥니다. 도리어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겸손히 고백합니다. 모든 영광을 예수께 돌리고 자신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겸손한 헌신을 통하여 예수는 메시야 공적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겸손히 자신을 낮춤으로 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회개하여야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Khmer Rouge) 정권시절, 사람들을 학살한 주범들이 킬링필드 법정에 섰습니다. 그들은 사회주의 성취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자신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러나 카잉 구엑 에아브(Kaing Guek Eav)는 학살의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카잉은 크메르 루즈가 쿠데타에 성공하자 프놈펜의 투올 슬랭(S-21) 교도소의 소장을 맡아 고문과 학살을 주도하면서 12,000명을 고문하고 강제 수용소로 보냈습니다. 그때 킬링필드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1979년 크메르 루즈 정권이 무너지자 카잉은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프쾀이란 시골에 피신해 있으면서 수학과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중, 이웃에 살던 농부를 따라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거듭남을 체험한 카잉은 독실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피해 다니면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결국 그의 정체가 밝혀졌지만 그는 대학살을 주도한 자임을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입증하며 재판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죄를 참회하며 기도했습니다. 법정에서 그는 고백했습니다. 고문과 살인은 모두 저의 책임입니다. 늦었지만 희생자들에게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 학살 명령은 어느 한사람만이 한 것이 아닙니다. 중앙위원회에 있던 우리 모두 그 결정에 동참했고 책임을 져야합니다.” 많은 사람을 죽여 킬링필드를 만든 주범이라 할지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킬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지만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오심을 준비하려면 먼저 회개하는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8절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오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영적 각성이 필요합니다. 회개를 뜻하는 메타노이아돌이킴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단순히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인 삶의 변화, 마음의 변화를 뜻합니다. 유대인들의 가슴 속에는 메시아 도래에 대한 열망이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켰습니다. 말로만 아니라 삶을 통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습관들과 죄의 문제들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잘못된 자리와 습관으로부터 돌이켜야 합니다. 이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도 아니고 거룩한 일에 전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 열매가 맺혀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두벌 옷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삶들과 나누고, 먹을 것이 넉넉한 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나누라고 요구합니다. 세리들과 군병들도 권력을 남용하지 말고 계명을 지키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이 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자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을 나누고 자기를 내어주는 회개의 실천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로 증거하여야

이화여대 총장을 지냈던 김활란(金活蘭)박사는 죽어가면서까지 교육자로서 또한 전도자로서 일생을 마쳤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아버지 집으로 간다. 울지 마라. 장례식을 하지 마라. 환송예배로 드려 달라.” 죽음을 마치 개선장군이 천국에 입성하는 것처럼 받아들였습니다. 환송예배에서 제자 모윤숙 시인은 시를 읊었습니다. “여기 외로운 백합꽃 하나가 떨어졌다. 천년에 필까 말까한 그 백합 향기 너무나 그윽하기에 저희들은 그 향기를 기다립니다. 여기 꾀꼬리 울음소리 그쳤다. 그 꾀꼬리 울음소리 너무나 청아하기에 이화의 동산에서 제자들이 흐느껴 웁니다. 여기 아름다운 천사 하나가 우리에게서 멀리 멀리 하늘로 날아갔다. 그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었던 천사였습니다. 부활의 아침 그 백합 그 꾀꼬리 그 천사를 만날 수 있는 기약이 있기에 우리는 당신을 기꺼이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녀는 금란 묘지에 묻혔습니다. 묘비에 좋아했던 성경 한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녀가 일생을 헌신하며 살았던 까닭은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와 같이 주를 영화롭게 하는 일에만 촛점이 모아졌기 때문입니다. 임종 때 많은 교수들이 주변을 둘러쌌습니다. 숨이 넘어가던 그녀가 갑자기 일어나서 외칩니다.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나면서 보라! 저기 신랑 예수께서 백마를 타고 나를 데리러 오신다.” 그 장면이 너무나 엄숙하고 거룩하고 찬란했기에 불신앙의 교수들과 이성적으로 믿던 교수들이 영적 세계의 현상을 보고 예수 믿는 역사가 일어났었다고 그녀의 자서전은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세례요한은 뒤에 오시는 예수를 증거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며 그리스도의 오실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는 빛이 아니고 빛에 대하여 증거하는 자였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오시는 메시아를 향하여 마음을 열도록 준비시켰습니다. 세례 요한은 무리들에게 예수를 능력이 많으신 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자신의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말과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을 예수께로 인도하던 세례 요한처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는 증거자로서의 삶이 바로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지미 카터(Jimmy Carter) 미국 전 대통령은 백악관 생활을 하던 중에도 주일 예배에 철저했던 신앙인이었습니다. 대통령 퇴임 후에는 애틀랜타에 카터센터를 설립하고 지구상에서 야기되는 모든 분쟁의 해결사로서 조정 역할에 진력을 하였습니다. 세계 평화와 인권을 위해 노력한 공로가 인정되어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국제 해비타트에서 펼치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의 일환인 지미카터 특별건축사업(JCWP)을 해오고 있으며, 2001년 한국을 방문하여 사랑의 집짓기에 참여하였습니다. 타임지에 대통령직을 그만 두고 난 뒤의 카터를 소개하는 가운데 이런 기사가 있었습니다. “카터! 그는 백악관을 디딤돌로 사용했던 유일한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카터에게는 백악관이 삶의 목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권력이 목표가 아니고 대통령이 목표가 아니라 백악관을 디딤돌로 사용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일을 위해 평생을 산 위대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며 염려하는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가치 있는 일에 삶을 투자하시겠습니까?

금번 성탄에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 겸손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명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세례요한처럼 주의 길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 우리의 마음에 오시는 예수를 준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지 않겠습니까?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주의 길을 준비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