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화가 에밀 리노프(Emile Renouf)의 ‘돕는 손(The Helping Hand)’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에밀 리노프(Emile Renouf)의 ‘돕는 손(The Helping Hand)’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파도가 심한 망망대해에 한척의 배가 그려져 있습니다. 작은 배 한척, 두 사람밖에 탈 수 없는 조그마한 배 한척, 그 배에 늙은 어부와 어린 소녀가 앉아있는 그림입니다. 커다란 노가 있고 할아버지와 소녀가 나란히 앉아 노를 함께 잡고 저어가는 그림입니다. 소녀는 바다도 무섭지 않고 세상도 무섭지 않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할아버지 얼굴을 쳐다보면서 열심히 노를 젓습니다. 소녀가 밝은 얼굴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열심히 노를 젓고 있지만 젓는 척 하는 것이고 할아버지가 노를 젓는 겁니다. 할아버지가 힘찬 손으로 능숙하게 노를 젓고 있고 소녀는 손을 할아버지의 손 위에 올려놓은 것뿐입니다. 그러나 할아버지 손위에 함께 손을 얹고 같이 노를 젓는 모습이 할아버지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돕는 손, ‘The Helping Hand’ 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입니다. 실제로 노를 젓는 할아버지에게 소녀가 무슨 힘이 되겠습니까? 모든 것을 맡기는 그 모습이 할아버지에게 힘이요 기쁨인 것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우리가 한다거나, 해본다고 해보았자 별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큰 손과 우리의 작은 손이 합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하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삶과 계획까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자기 날개 짓으로 날아가는 새는 쉬 지치고 말지만 멀리 날아가는 새는 바람에 맡기고 날아갑니다. 신앙생활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맡기느냐가 바로 성숙한 신앙의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야말로 바른 신앙의 모습입니다. 본문은 다윗이 인생 말년에 기록한 시입니다. 다윗이 주변의 상황을 바라보니 악한 자들이 세력을 키워 푸른 나무처럼 번창하고 있었습니다. 악인이 잘되고 의롭고 경건한 자가 시련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의롭게 사는 것, 선하게 사는 것, 정직하게 사는 것이 손해인 것처럼 보여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살아가면서 어떤 처지에 놓인다 해도, 어떤 일이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이 있다 해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신앙의 성숙한 단계는 길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주십니다. 하나님이 맡아 행하시면 누구도 당해내지 못할 것이기에 해결되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여기의 ‘맡기라’는 히브리어로 ‘갈랄’인데 ‘옮기다, 굴리다, 내어 던진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하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자유하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의 ‘길’은 삶의 여정뿐 아니라, 여정에 영향을 미치는 계획이나 행동이나 결과들을 가리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운명이라고 하지만 신앙인은 이것들이 모두 여호와께 있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맞추어 살면 그에 따른 혜택을 돌려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혜택은 복된 결과의 보장, 유익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시기하지 말아야 플로랜스에서 온 참사관들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던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에게 플로랜스의 대형 홀을 장식할 그림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당시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던 젊은 무명 화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소문을 듣고 그에게도 역시 그림을 부탁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작품은 천부적인 재능과 명성에 걸맞을 만큼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았을 때 플로랜스의 참사관들은 그만 입을 벌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그림 속에는 무의식적으로 표현된 불가사의한 매력과 영혼의 정열로 그린 흔적이 깃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젊은 화가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 소식은 레오나르도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이제 늙었어.” 레오나르도는 끓어오르는 시기와 미켈란젤로 때문에 자신의 명성이 실추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생애 동안 자신의 천재성을 더 이상 살리지 못하고 우울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악인의 번영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의 성공을 보고 계속적으로 분한 마음을 키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부러워하며 시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이 잘 되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하고 금방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불평과 시기심은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우리에게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불평하며 시기할 때 무너지고 맙니다. 시기심을 갖고 질투할 때 가능성들이 모두 닫힙니다. 시기심이 보여주는 심리학적인 태도는 자존감이 낮다는 것입니다. 열등감이 가득할 때 시기와 불평이 나오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시기심이 많아지면 다른 사람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더 이상 불평과 시기가 우리를 지배하게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불평이 지배하고 시기심이 지배하지 않도록 만사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둘째로 의뢰하며 행해야 매달 고아원을 방문해서 고아들에게 선물을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상이 공개되기를 원치 않아서 그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문이 퍼지자 신문기자가 흥미를 가지고 취재하였습니다. 그는 일용직 근로자였고 집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고아들을 도울 수 있습니까?”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사랑을 주는데 필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가슴의 온도이니까요. 사랑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은 마음속에 어떤 난로를 넣고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선은 가슴의 온도만을 높여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의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것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여기의 ‘의뢰’란 의지하고 부탁하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계획과 결과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자신의 지혜나 다른 사람의 능력이나 세상의 제도나 권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능력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기대와 능력 이상으로 풍성하게 이루어 주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의뢰하는 자를 실망시키거나 아프게 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은 선을 행하며 살게 됩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여호와를 의뢰하는 외형적 열매입니다. 여호와께 간구하며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악의 풍조에 휩쓸리지 말고 말씀대로 실천하여야 합니다.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들은 불평 대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모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믿음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기다리며 살아야 책을 출판하는 것이 소원인 목사가 있습니다. 원고를 써서 출판사마다 보냈지만 아무도 호응해 주지 않았습니다. 퇴짜를 맞고 돌아온 원고뭉치는 쌓였습니다. 실망에 빠진 그는 원고뭉치들을 휴지통에 던졌습니다. 놀라서 말리는 아내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까짓 원고 다 갖다 버려요! 원고를 쓰느라고 괜히 시간만 낭비했잖아” 다음 날 아내는 원고 뭉치를 들고 다른 출판사를 찾아갔습니다. 출판사 사장은 원고라기에는 너무 크고 투박한 갈색포장의 꾸러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갈색포장지를 풀자 휴지통에 버렸던 원고뭉치가 나왔습니다.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것 같았던 그 원고가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 목사의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책이 출간되자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부가 팔렸습니다. 아내마저 포기했다면 유명한 저서는 아마 출판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곧 있으면 때가 찾아오는데 잠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포기할 때가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것에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때가 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참고 기다리는 사람의 소원을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본문 7절입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여 악한 꾀를 이루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자포자기나 절망이 아니라 적극적 노력을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당면한 문제 해결은 하나님을 통해서 가능하기에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들은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의 적절한 때에 해결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한 것을 마련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만약 사울을 죽였다면 억울함을 풀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다윗의 의로운 삶이 드러났습니다. 사울을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심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맡기고 기다리는 자들에게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빛나게 해 주십니다. 어릴 때는 같은 나무 같지만 때가 되면 나무는 꽃과 열매로 그 존재를 드러냅니다. 곡식과 가라지가 싹이 날 때 구분이 안 되지만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입증하지 않아도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평가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체험할 것이요, 선악 간에 심판을 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공평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적극적 사고를 바탕으로 ‘카네기 교육’을 창시한 교육학자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의 어렸을 때 일입니다. 한번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시장에 갔는데 큰 바구니에 빨간 앵두가 수북하게 쌓여져 있었습니다. 앵두가 먹고 싶어 그 앞에 서 있었지만 어머니는 사 줄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주인아저씨가 카네기에게 “앵두가 먹고 싶으냐?” 라고 묻기에 부끄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했습니다. 마음씨 좋은 주인아저씨는 “한 웅큼 네가 집거라”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카네기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아니, 집으라는데, 왜 안 집느냐?” 이번에는 주인아저씨가 한 웅큼 집어 건네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주인아저씨가 ‘한 줌 집으라’고 했는데 왜 그냥 있었느냐?” 그러자 카네기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아저씨 손이 내 손보다 훨씬 더 크잖아요.” 아무리 버둥버둥 해 보아야 우리의 손은 작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훨씬 더 크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실 때까지 맡기고 기다려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 (M. Luther)가 한번은 너무 피곤하여 잠자리에서 이렇게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 세상이 하나님의 것입니까? 내 것입니까? 하나님, 이 교회가 하나님의 것입니까? 내 것입니까? 당신의 세상이고, 당신의 교회입니다. 이제 그들을 당신이 돌보세요. 저는 그만 자겠습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불평과 시기를 그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며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림으로 성취의 은혜를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