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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큰 자인가-막 9:33~37

누가 큰 자인가-막 9:33~37
이름 김광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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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시스(Saint Francis)의 일화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기도 중에 프란시스는 페루기아 호수에 있는 섬에서 사순절을 보내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게 하고 작은 배로 자신을 그 섬에 데려다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프란시스는 빵 두덩어리를 준비해서 섬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40일후에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홀로 그 섬에 남아서 기도와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사순절 동안 아무 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고 철저하게 금식하며 오직 기도에 힘썼습니다. 약속대로 40일이 되자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이 때 친구는 빵 한 덩어리와 먹다 남은 반쪽 덩어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프란시스는 친구가 찾아오기 직전 빵 반쪽 덩어리를 먹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40일동안 금식했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프란시스와 같은 자세가 중요합니다. 아마 40일 금식을 끝내고자 할 때 사탄의 시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너는 대단하다. 이렇게 40일을 온전히 금식한 사람이 예수 외에 또 누가 있겠느냐? 이제 네 친구가 와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가 너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서 너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사탄이 프란시스의 마음을 흔들어 크고 싶어 하는 마음을 부추겼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프란시스는 자신에게 이런 유혹이 찾아올 것을 미리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빵을 준비했고, 40일 금식을 다 하고 마지막 순간에 빵 반쪽을 먹음으로 자신의 금식을 숨기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 안에 크고 싶어 하는 마음을 물리쳤습니다. 프란시스와 같은 사람들은 누가 큰 자인가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크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누가 크냐?’는 식의 다툼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끝내셔야 할 때가 오고 있음을 감지하시고 제자들을 준비시키시고자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여행을 시작하셨습니다. 갈릴리 지역을 지나며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그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도착하셨습니다. 여기서 뜻밖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께서 제자들이 서로 토론했던 것을 다 듣고 그 내용을 확인하시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메시야로 등극하시면 자신들도 한자리씩 차지하게 될 텐데,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인가로 서로 다투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한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고 어린아이를 안으시며 진정으로 큰 자가 누구인가 교훈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려는 큰 자는 과연 누구입니까?
 

첫째로 낮아지는 자이어야

알버트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 박사가 아프리카 가봉에서 의료 선교를 할 때 수술실 청소, 화장실 청소, 식당 청소,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혼자서 다 했습니다. 어느 날 식당 청소를 하고 있는 데 건장한 청년이 구경만 하고 서 있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가청년, 그렇게 서 있지 말고 같이 청소하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나는 그런 일은 안합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인데 청소 같은 것은 안합니다. 그런 일은 공부 안 한 사람이나 하는 것입니다대답합니다. 그때 슈바이처 박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학생 시절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공부를 많이 한 다음에는 아무 일이나 다 하고 있습니다. 봉사하는 것이 내게 가장 큰 기쁨이 되었지요.”슈바이처는 말로만의 겸손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의 낮아짐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본문 35절입니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끝의 자리에 앉으면 주인이 결국 높은 자리로 안내할 것입니다. 미리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가는 밀려나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큰 자가 되기 원한다면 먼저 낮은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본문과 동일한 기사가 마태복음 18장에도 나옵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세우고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가 크냐를 논쟁하고 있는데 예수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진리입니다. 천국은 누가 높으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천국 의 시민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자리다툼하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곳이어야 합니다. 마치 부모 없이는 살 수 없다고 믿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큰 자가 되려면 먼저 낮아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섬기려는 자이어야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의 저서 동방순례(Die Morgenlandfahrt)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동방으로 여행하는 순례단 중에 레오(Leo)라는 하인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자고 걷는 동안 그는 언제나 묵묵히 섬기는 일에 열중하였습니다. 순례자들이 힘들어 할 때 노래를 불러주고 휘파람을 불면서 지친 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레오는 사람들을 마주치기만 하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레오가 일행 중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가 사라진 것입니다. 순례자들은 그가 해를 당한 것이 아닌가 걱정하며 찾아 나섰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일어났습니다. 여행길은 기쁘지 않았고 서로 다투기 시작하여 마침내 순례를 포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비로소 레오가 순례단을 이끈 진정한 리더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 후일 그들이 레오를 만나 발견한 충격적 사실은 그가 하인이 아니라 그들을 파송한 교단의 지도자였다는 것입니다. 섬김이 바른 리더를 만듭니다. 섬김으로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35절입니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예수께서 섬김의 원리를 가르치시기 위해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세우셨습니다. 당시 어린아이는 사회적으로 매우 낮은 위치에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품에 안으시면서 가르치셨습니다. 어린아이를 섬기는 것이 예수를 섬기는 것이며 그것이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큰 자입니까? 큰 자가 되려면 끝자리에 있는 자, 즉 어린아이처럼 무시당하는 존재들을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를 섬기면 당장 돌아오는 유익은 없습니다. 더 유력한 자를 섬겨야 나중에 유익으로 돌아온다는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큰 자는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직분은 절대로 계급이 아닙니다. 권한이 아닙니다. 도리어 섬기라고 주신 기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조건 없이 섬기고, 다른 이가 알아주든 말든 상관없이 종의 자세로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자입니다.
 

셋째로 영접하는 자이어야

해방 후 대한민국 유학생 1호를 기록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어느 날, 고국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지도교수를 찾아갔습니다. “교수님, 조국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박사학위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아니, 몇 달이면 박사학위가 나올텐데 조금만 더 참지” “학위가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저는 조국으로 돌아가렵니다.” 결국 그는 귀국하여 자원입대를 요청했으나 나이가 많아 받아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전쟁으로 인해 버려진 아이들을 모아 감자를 삶아 먹이며 고아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버린 시골 고등학교를 얻어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숭실 대학교에서 이 소식을 듣고 그를 부총장으로 청빙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숭실대학교 부총장으로 가는데 뜻이 있다 아니하시고, 이 자리에서 고아들과 더불어 평생 고무신을 신고, 골덴 바지를 입고, 고아들을 돌보는 것과 시골에 버려진 어린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 사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그 후 평생을 아이들과 더불어 보내게 됩니다. 바로 경상남도 거창고등학교를 설립한 전영창(全永昌) 교장의 이야기입니다.

본문 37절입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천국에서 큰 자이기를 원한다면 연약한 자를 영접하라고 교훈하십니다.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곧 주를 영접함이란 무슨 뜻입니까? 크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작은 자됨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고 도울 때 비로소 하나님 보시기에 큰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자를 소중하게 영접하고 실족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크냐며 서로 다투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큰 자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린아이 같이 작은 자와 함께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큰 자입니다. 예수께서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세우신 뜻은 큰 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를 일깨워주신 교훈입니다. 어린아이들처럼 힘없고 무시당하며 소외되기 쉬운 이들을 살필 줄 알고 함께할 줄 아는 사람이 큰 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학교 교사가 어린아이들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이 집하고 차를 다 팔아 헌금을 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어린아이들이 대답합니다. “아니요” “그러면, 선생님이 매일 교회에서 청소를 깨끗이 하고, 정리정돈 잘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러자 어린아이들은 아니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러자 다섯 살 난 아이가 큰 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죽어야 되요모두가 웃었지만 그 대답은 진리였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죽어야 합니다, 내 고집, 내 교만, 내 자랑 그대로 가지고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내가 죽어야 천국에 갈 수 있으며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큰 자가 되기 원하십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큰 자는 과연 누구입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자가 아닙니다. 내가 큰 자라는 의식에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위대함은 작은 자를 그리스도 섬기듯이 섬길 때 비로소 얻어질 것입니다. 누구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영접할 때 비로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됩니다. 예수는 누가 서로 크냐고 쟁론하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죽기까지 섬기고자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선택한 그 길이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닙니까?

제자들처럼 계속 다투기만 하시렵니까? 아직도 서로 누가 크냐 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입니까? 모름지기 주님이 원하시는 큰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자도 영접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큰 자가 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05-02 16: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