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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기석목사

새로운 생명의 고동

새로운 생명의 고동
눅1:39-45
(2000/12/24)


신비한 탄생 이야기

아기를 가진 엄마들이 가장 감격하는 순간은 아마 아기의 胎動을 최초로 느낀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태동은 뱃속에 자리잡은 생명이 보내는 최초의 신호일 테니까요. 최초로 태동을 느낀 날 남편들은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는 아내의 배에 손을 얹고 두 번째 신호를 기다립니다. 그때의 두근거림, 조심스러움은 종교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 미세한 태동을 느낀 순간 부부는 온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합니다. 그 녀석이 커서 무슨 속을 썩일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행복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아기를 기다려온 가정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복음서의 첫 장은 아름답고 신비한 수태 이야기 둘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기없이 늙어가고 있던 사가랴/엘리사벳 부부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마리아에게 전해진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였습니다. 두 경우 모두 인간의 이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노인이 아기를 갖는 것도,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인이 아기를 갖는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불안했습니다. 거역하기 어려운 힘에 이끌려 하나님의 일에 자신을 바치기로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일상적인 행복을 포기하는 일인지도 몰랐습니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떠오르면서 마리아의 마음 속에는 여러 가지 의문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 여인의 몸을 빌어 태어난다니 이걸 어떻게 믿어야 하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해도 왜 하필이면 나인가. 세상에는 가문 좋고, 부유하고, 많은 배운 사람들도 많은데. 혹시 가혹한 운명이 나를 시험하는 게 아닐까?'

마리아의 마음은 흔들렸을 것입니다. 후회의 심정이 물결처럼 밀려왔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그의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하늘의 기미 알아차리기

하나님은 그런 마리아를 위해 엘리사벳이라는 동료를 준비해두셨습니다. 마리아는 문득 천사가 한 말을 기억하고는 산중에 있는 엘리사벳의 집을 찾아갑니다. 엘리사벳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을 보면서 자기에게 일어난 사건의 의미를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두 여인의 만남의 순간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성경은 마리아가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인사하는 순간 엘리사벳은 태중에 있는 아기가 기쁨으로 뛰놀았다고 전합니다. 이것은 두 여인의 태중에 있는 아기들의 삶이 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엘리사벳은 그 생명의 고동이 예사로운 것이 아님을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아기의 태동을 느낀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말합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이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
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고.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
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
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42-45)

機微라는 말 아시지요? 어떤 일의 미묘한 틀거지를 뜻하는 말입니다.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은혜로 아기를 잉태하였기에 하늘의 기미에 예민합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자기 집에 들어서는 순간 태중에서 뛰노는 아기의 몸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늙은 엘리사벳이 어린 소녀인 마리아에게 '내 주의 모친'이라는 극존칭을 써가며 인사하는 이 모습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렘브란트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간 장면을 그리면서 엘리사벳이 문밖까지 나와 마리아에게 머리를 숙여 영접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탄생하려는 희망

우리는 때때로 내게 일어나는 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혼이 예민한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내 삶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만남으로 하나님의 소명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노래 중의 하나인 '마리아의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46절부터 나오는 그 노래는 얼마나 혁명적입니까? 마리아는 하나님이 비천한 자들을 돌보시는 분임을 고백합니다. 힘있는 사람들, 잘난 사람들의 마음은 낮추시고, 약한 사람들, 못난 사람들, 무지렁이 같은 사람들을 들어 쓰시는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왜 하필이면 나같은 사람에게…' 하는 의문은 풀렸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이들을 통해 일하시는 분임을 분명히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엘리사벳이 필요합니다. 하늘의 비밀을 함께 나눌 동료 말입니다.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주고, 우리 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사람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하늘의 기미, 낌새를 알아차릴만큼 예민한 영혼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의 고동을 듣고 계십니까? 우리를 통해 탄생하려는 희망과 빛의 고동을 듣고 느끼십니까? 높은 것은 낮추고 낮은 것은 돋워주고, 절망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배고픈 이들을 먹이시려는 하나님의 꿈이 우리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십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필요하듯이, 주님에게도 우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배제한 채 새 세상을 일구려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새 세상의 꿈을 성도로 부름받은 우리들 속에 심으셨습니다. 성탄은 예수님의 나심을 축하하는 절기이기도 하지만 우리 속에서 하늘이 탄생하는 것을 함께 기뻐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이 아름다운 성탄절기에 우리 모두 하늘의 낌새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바로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의 꿈이 육신을 입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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