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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기석목사

아름다움의 순례자

아름다움의 순례자
사60:1-3
(2000/12/31, 송구영신예배)


저문 강에 삽을 씻고

2000년의 마지막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 후 우리는 새날을 선물로 받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천년 대의 시작이라는 부푼 설레임으로 한 해를 시작했지만 이 시간 우리에게 남은 것은 우울한 회한입니다. "올해는 참 좋았어!" 하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웠어도 우리는 이처럼 살아있고, 살아있는 한 삶은 계속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새해에 떠오르는 최초의 빛을 만나러 사람들은 제주의 성산 일출봉을 찾습니다. 정동진의 해돋이는 관광 상품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해돋이를 보면서 그분들은 눅진눅진하고 질척질척한 묵은해를 반납하고 보송보송한 새해를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이겠지요. 아득한 물금 위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올해는 새롭게 살리라 다짐하는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하지만 설렘으로 새해를 맞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묵은해를 잘 갈무리하는 것입니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중에서

물도 흐르고, 시간도 흐르고, 우리의 인생도 흘러갑니다. 오늘 하루가 비록 고단하고 힘겨웠을지라도 내일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강물에 삽을 씻으며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들도 은총의 강물에 우리 삶의 묵은 때를 닦아내야 합니다. 슬픔과 괴로움,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나 서운한 마음도 다 씻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내일을 아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나온 것은 묵은해의 해묵은 감정을 털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달력과 수첩을 새 것으로 바꾼다고 해서 시간이 새로워지진 않습니다. 우리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제 이 시간 조용히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며 기도합시다. 청산하지 못한 마음의 앙금이 있거든 털어버립시다. 주님은 주홍빛 같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는데,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삽을 닦으며 마음 속 슬픔까지 닦아내는 시인의 심정으로 우리 마음의 때를 닦읍시다.

(징 소리가 울릴 때까지 조용히 기도한다)

이제 우리 새 날을 맞았습니다. 새해를 기도로 준비하면서 저는 가슴 깊이 울려오는 말씀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첫째, 우리는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을 보면 주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게 상책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다 얻었다 해도 본래적인 자기를 잃어버리면 헛산 셈이라는 말입니다. 석가모니 성인은 태어나면서 "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했다지요. 자기가 귀한 존재인 것을 알아야 사람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 이름이, 직함이, 내가 소유한 것들이 나인가요? 물론 그런 것들이 나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다 시간과 함께 스러져버릴 것들입니다. 그것 말고 세상의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나의 나됨이 있는가', 그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너무 자신의 삶을 시시하게 여겨요. 자기 몸을 함부로 다뤄요. 욕망이 잡아끄는 대로 너풀거리며 살아요. 자기를 함부로 다루기 때문에 다른 이의 생명도 존중하지 못해요. 사람들을 자기 욕망 충족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비인간화하고, 상대방을 비인간화하는 길이 아니겠어요? 우리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성도들을 가리켜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엡2:10)라고 말했어요. 하나님이 하시려는 선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들의 존재 이유라는 말이에요.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며 기뻐하신다고 말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3:17)

듣기 좀 송구하지요? 우리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기쁨이라니요? 하지만 선지자는 우리가 제구실하면서 살면 누구보다 먼저 기뻐하실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올 한 해 自重自愛 하면서 스스로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속도에 맞추어 사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하나님은 백성들을 해변 길을 따라 곧 바로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않고, 광야 길을 멀리 우회하도록 하셨습니다. 천천히 걸어도 한 달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를 무려 40년 동안 헤매도록 하신 것이지요(출13:17-22). 해도 너무 하셨어요. 성질 급한 사람들은 다 죽었어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뿐이었어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이 보기에 더디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나님은 뭔가 '짠' 하고 드러내는 일에는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은밀하게, 그리고 천천히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처럼 분주하셔서 헐떡거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납니다. 개가 짖어도 달은 떠오르고, 겨울이 아무리 혹독해도 봄이 오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도 식물이 꾸준히 자라듯이 하나님은 더딘 듯하지만 언제나 당신의 뜻을 이루고 마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분주해요. 삶은 속도전이 되고 말았어요.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한가롭게 걷던 삶이 이제는 곧장 뻗은 도로 위를 차를 타고 질주해요. 길은 곧 인생이었는데, 지금은 시간을 잡아먹는 방해물이 되었어요. 엽서 한 장을 공들여 쓰고, 천천히 우체통까지 걸어가면서 상대방을 생각하던 여유는 사라지고, 전자 메일로 간편하게 소식을 주고받습니다. '고속 통신망'을 설치한 사람들은 인터넷이 조금만 느려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습니다. 현대인들이 다 지쳐있는 것은 서두르기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무엇을 쫓느라 그리 허둥거렸습니까? 노자에 나오는 한 대목이 생각나는군요.

"馳聘田獵令人心發狂. 難得之貨令人行妨"
"사냥질에 뛰어 다니는 것이 사람 마음을 미치게 한다. 얻기 힘든 보화
가 사람으로 하여금 덕행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한다."

우리는 뭔가를 잡으려고 정신없이 뛰어다녀요.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걸 경쟁적으로 추구하다 보니 덕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살게 되는 거지요. 과연 우리가 추구하려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좀 생각해 보아야 해요. 새해에는 의도적으로 '느림'을 삶의 전략으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분주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뵈올 수 없습니다. 욕망을 조금만 절제하고 삶의 속도를 조금만 늦추면 우리는 살아있음의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웃음띤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사십시오

철든 사람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지요? 두 아들이 있었어요. 어느 날 아버지가 아들들을 불러서,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 좀 하라"고 했어요. 큰아들은 '예' 하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그는 밭에 가지 않았어요. 물론 처음에는 갈 생각이었겠지요. 하지만 중간에 마음이 바뀌었어요. 할 일이 생각난 거지요. 데이트도 해야 하고, 컴퓨터 게임도 해야 하고…그는 자기 욕망이 명하는 대로 움직여요. 작은아들은 포도원에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싫어요' 하고 대답해요. 못된 녀석이지요? 그러고는 아버지 앞에서 휑 하니 나가버려요. 아버지는 참 속상했을 거예요. 그런데 작은아들은 집 밖에 나서면서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자기가 아버지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그는 아버지의 마음 아픔을 아프게 느꼈어요. 그는 하려던 일들을 포기하고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해요. 물론 두 아들 가운데 칭찬을 받은 것은 작은아들이겠지요?(마21:28-31)

그런데 저는 여기서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보았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성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지금까지 우리는 큰아들처럼 살았는지도 몰라요. 건성으로 '예' 하고는 엉뚱한 짓을 한 거지요.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렸던 작은아들처럼 살아야 해요. 세상은 그런 이들이 있어 아름다워요. 다른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마음 쓰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밝히는 이들이겠지요.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합니다. 2001년이 어떤 해로 기록될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한가지 아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새해에 우리가 조금은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될 거라는 사실 말입니다. 쇠라라는 화가는 수많은 점을 찍어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 點描法이라 하더군요. 우리 일상의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해 점 하나를 잘 찍는다면 우리는 빛을 발하는 이들이 될 것입니다.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정성스럽게, 그러나 확고하게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다짐하십시오.

이철수님의 판화 가운데 <이렇게 좋은 날>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화면에는 단순화된 세 채의 기와집이 보입니다. 그런데 각각의 집 창문이 있어야 할 자리마다 해가 하나씩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화가가 붙인 화제는 이렇습니다.

해가 뜬다.
집집마다 하나씩 해가 뜬다.
좋은 날이다.
이렇게 좋은 날이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교회에서 은총의 해가 솟아나기를 바랍니다. 새해를 맞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축복해 주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
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
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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