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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70212]하나님을 사랑하는 여섯 가지 증거/ 마태복음 22:34-40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섯 가지 증거

마태복음 22:34-40(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마태복음 22장은 긴장감이 넘치는 장입니다. 시간상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1-14절에서는 주님께서 천국을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당시에 예수님을 거절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청함을 받았지만 택함을 받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는 예수님이 자신들을 공격하신 것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15-22절에서는 바리새인들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문제로 주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23-33절에서는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인들이 이스라엘에 있는 계대결혼으로 주님을 곤란에 빠뜨리려는 질문을 했습니다. 41-46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이 누구의 자손인가를 통해서 반격하셨습니다. 주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이 대답을 못하게 되었고 그 날부터는 감히 주님에게 묻는 자도 없었습니다.

이런 긴장감이 넘치는 대화 속에 본문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내용은 서로 상대를 존중하는 유쾌한 대화 속에서 나온 내용이 아닙니다.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다고 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주님을 함정에 빠뜨리지 못하니 바리새인들이 도전하려고 모였던 것입니다. 35절에 보면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에게 물었습니다. 그의 질문은 자기가 모르는 것을 주님의 답변을 통해서 알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주님을 시험하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36절은 그의 질문 내용입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 40-41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율법에는 613개의 계명이 나옵니다. 그것을 요약한 것이 10계명입니다. 그것을 2개로 요약하면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라이고 둘째, 이웃을 사랑하라입니다. 오늘 설교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다루겠습니다.

37-38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말은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조금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너무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주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아멘이죠. 그렇다면 마음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목숨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주 하나님을 너~무너무 사랑하십니까?

우리가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주님과 관련된 것들에 대하여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내가 좋으면 아내와 관련된 모든 것이 좋게 보인다'라는 말입니다.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도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 하나님을 사랑하면 주님과 관련된 모든 것이 좋은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이런 차원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주님과 관련된 것들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것들을 통해서 내가 주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지 확인해보시기를 바랍니다.

 

1. 주의 전을 사모한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전을 사모합니다.

2장에 보면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더럽혀진 성전을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시편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주님은 주의 전을 사모했습니다. 그 사모함이 자신을 삼킬 정도였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주의 전인 교회를 사모해야 합니다. 교회는 주 하나님의 집입니다. 주 하나님의 전입니다. 우리 비전교회도 주 하나님의 집이며 주 하나님의 전입니다.

딤전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아내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그 남편은 아내가 있는 집을 사모할까요 사모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사모하죠. 너무너무 사모하죠. 직장에 출근해서 일하면서도 아내를 생각할까요 안 할까요? 당연히 아내를 너~무너무 사랑하면 아내가 생각나고 아내가 보고 싶겠지요. 남편은 퇴근 후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까요 아니면 바로 집으로 들어갈까요? 당연히 너~무너무 사랑하는 아내를 보려고 집으로 달려가겠지요. 아내를 너~무너무 사랑하니 아내가 있는 집을 사모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교회에 무관심해요.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참말일까요 거짓말일까요? 거짓말이죠. 주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교회에 관심이 많습니다. 주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교회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주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교회 살림에 관심이 많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집인 교회에 오는 것을 좋아하겠어요 안 좋아하겠어요? 당연히 주님을 사랑하면 교회 오는 것이 좋지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모든 예배에 참석하고 예배가 없는 날도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전을 사모합니다.

 

2. 주의 법을 사랑한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법을 사랑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아내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의 말이 달콤할까요 안 달콤할까요? 달콤하죠. 살살 녹죠. 아내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가 말하면 귀를 기울일까요 안 기울일까요? 당연히 귀를 기울이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처럼 달콤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순금보다 더 귀하게 여겨집니다.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119:127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성경은 주의 말씀입니다. 설교는 주의 말씀을 풀어서 전달하는 사역입니다. 그래서 주 하나님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은 성경을 읽습니다. 주 하나님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은 설교 듣기를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은 큰 평안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은 복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장애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법을 사랑합니다.

 

3. 주의 종을 존경한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종을 존경합니다.

제가 목사이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기가 좀 쑥스럽지만 제 가르침이 성경적이고 여러분에게 복이 된다면 저는 말해야 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종을 존경합니다. 주의 종을 귀하게 여깁니다.

성도들은 주의 종을 존경해야 합니다. 주의 종의 인격이 훌륭하거나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닙니다. 인격이 좀 부족하고 능력이 좀 부족해도 존경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이 선택해서 주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목회자를 영적인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왕하 2: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왕하 13: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엘리사는 승천하는 엘리야를 보고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은 왕임에도 불구하고 엘리사가 병들이 드니 눈물을 흘리면서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왕이었지만 그 정도로 주의 종을 존경했습니다.

주의 종을 존경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존대하는 것이고 주의 종을 무시하는 사람은 주님을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주의 종을 영접하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또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천사를 대접했고, 하나님을 대접했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한 것 때문에 조카 롯을 멸망하는 소돔성에서 구원해낼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그네를 대접한 것이 복이 되었다면 주의 종을 섬기고 대접하는 것은 얼마나 복이 되겠습니까.

주의 종을 존경하는 것은 자신을 위하여 좋은 것을 심는 것입니다. 주의 종을 섬기고 대접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복이 됩니다.

6:6-7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주의 종을 멸시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왕하 2장에 보면 엘리사가 대머리였는데 아이들이 엘리사를 조롱하며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놀렸습니다. 화가 난 엘리사가 그 아이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어서 죽였습니다. 이 사건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주의 종을 조롱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라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몰라서 한 일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셨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수넴이라는 지역에 사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여인은 자기 동네를 지나가는 주의 종 엘리사를 대접했습니다. 엘리사가 지나가면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해서 엘리사가 지나갈 때 쉴 수 있는 방도 만들어서 주의 종을 섬겼습니다.

교회 직분자들은 목회자에게 식사도 좀 대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공급해줘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뭘 얻어먹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이 사주는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기쁩니다. 음식이 맛있어서가 아닙니다. 내 자식이 대접했다는 것이 기쁜 것입니다. 제 아들 모세가 입대 전에 알바를 해서 제 가을 잠바를 하나 사줬습니다. 저는 그 잠바를 볼 때마다 마음이 흐뭇합니다. 잠바가 비싸서가 아닙니다. 내 아들이 사줬기 때문에 흐뭇합니다. 제가 이번에 걷는 기도를 할 때 트레킹화를 신었습니다. 확실히 발이 편하고 걷기에 좋았습니다. 저는 그 트레킹화를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한 구역의 식구들이 저와 아내가 걷는 기도를 하는데 도움이 되라고 사줬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제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수넴여인은 엘리사를 잘 섬겼는데 그것이 복이 되었습니다. 자녀가 없었는데 자녀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다가 죽었는데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그 아이를 살려주셨습니다.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어서 몇 년 외국에 나가서 살다 돌아오니 자기의 땅을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사환이 왕에게 말해서 잃었던 재산을 찾게 되었습니다. 주의 종을 잘 섬기고 대접한 것이 그에게 복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종을 존경합니다.

 

4. 주의 돈을 주님에게 돌려드립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돈을 주님에게 돌려드립니다.

7장에 보면 아간이라는 사람이 아골골짜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서 죽습니다. 그 이유는 아간이 하나님의 재물을 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를 무너뜨리시기 전에 여리고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것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취하지 말고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아간이 여리고가 무너지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땅 속에 감추었습니다. 아간이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하나님의 것을 탐낸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돌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삼상 15장에 보면 사울도 아간과 같은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서 아말렉과의 전쟁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아말렉을 심판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것을 진멸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아말렉의 왕 아각과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였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사울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집도 우리가 가진 돈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우리는 욥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주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신 분도 그분이시고 취하시는 분도 그분이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재물 중에서 취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돈 중에서 하나님께서 취하시는 것 3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십일조입니다. 요즘은 십일조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마치 십일조 설교 하는 목회자는 탐욕이 가득한 목회자인 것처럼 취급을 하고 삯군 목사라며 공격하는 글을 읽어봤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주장에 넘어가서 십일조 설교를 하는 목사를 도둑놈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십일조에 관한 논쟁은 주님의 말씀 하나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그 당시 종교인들은 철저한 십일조를 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조와 같은 작은 곡식들까지 정확한 십일조를 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시의 종교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것은 정의와 긍휼과 믿음입니다. 저것은 정확한 십일조입니다. 주님이 정확한 십일조 생활을 하는 것을 버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주님이 하라고 하셨으면 우리는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요상한 이론을 들이대면서 십일조를 부정합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십일조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기는 십일조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이 하라고 하셨으면 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헌금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헌금이나 구제를 원하실 때 감동을 통해서 요구하시기도 하시고, 의무감을 통해서 요구하실 때도 있습니다. 신자로서의 의무감, 교인으로서의 의무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의무감으로 헌금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관한 광고를 들었는데 내가 얼마 정도는 헌금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때에 주저하지 말고 헌신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감동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서원예물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서원입니다. 서원은 타의에 의해서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타의에 의해서 서원을 했건 자의에 의해서 서원을 했건 일단 서원했다면 지켜야 합니다.

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서원한 것을 요구하십니다. 서원을 갚기를 더디 하는 것도 죄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돈을 주님에게 돌려드려야 합니다.

 

5. 주의 날을 기억하여 지킨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날을 기억하여 지킵니다.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이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날이라고 공식적으로 지정하신 날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안식일이고 신약에서는 주일입니다. 구약에서는 토요일 안식일이었고 신약에서는 일요일 주일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창조와 애굽에서의 구원을 기념하며 지켰습니다. 신약에서는 부활과 재림을 기념하며 지키는 날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언급을 했지만 주일 개념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로마시대에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면서 로마 사람들이 섬기던 태양신 축제일 Sunday를 기독교의 예배일로 바꾸었기 때문에 주일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날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일요일에 모이는 주일예배는 로마시대 교회가 주일로 공포하기 이전에 사도들과 성도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서신서를 보면 초대교회 때 성도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일을 지켰습니다.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이 말씀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유대교 전통에서 벗어난 음식을 먹었고, 유대교의 절기를 지키지 않았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4:10-11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이 말을 한 이유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구약의 절기와 월삯 그리고 안식일 등을 지키므로 복음에서 떠나 율법주의에 빠진 것을 염려하여 한 말입니다.

20: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바울이 드로아에서 주일에 설교 했던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만 주일에 모인 것이 아닙니다. 매주일 그렇게 했습니다.

고전 16: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바울은 초대교회 교우들에게 매주 첫날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며 헌금을 하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음식도 절기도 월삯도 안식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재해석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안식일은 주일개념으로 새로워진 것입니다.

교회사의 기록을 보면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에 이미 기독교회는 주일을 성수하였습니다. 2세기경의 문서인 디다케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주일은 특별한 날이므로 함께 모여 죄를 고백하고 떡을 떼며 감사를 드릴 것이다.” 사도요한의 제자였던 이그나시우스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날을 지키며 살고 있는데 이는 그 날에 우리들의 생명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주일을 기다립니다. 토요일은 주일을 준비합니다. 하나님께 드릴 헌금도 미리 준비를 하고 의복도 준비하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주일을 기다립니다. 주일에는 일하지 않습니다. 놀러가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힘씁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날을 기억하여 지킵니다.

 

6. 주의 일이 즐겁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일이 즐겁다.

결혼한 남자가 설거지 하는 것을 보면 시어머니는 열 받고 친정어머니는 그 모습이 보기 좋다면서요. 결혼 전에는 제 밥 그릇 하나 설거지통에 넣지 않던 남자들이 결혼을 하고는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식어져보세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일이 즐겁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행복합니다. 보람이 있습니다. 교회청소, 화장실청소, 주방 봉사, 찬양단, 구역장, 방송실 사역, 차량 운행, 교사, 전도, 중보기도 등 무슨 일을 하든지 감사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기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져보세요.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귀찮습니다.

어느 교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인이 300명인데 주일학교 교사가 3명이랍니다. 교인들에게 아무리 교사를 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심지어 주일학교 귀찮아서 그런지 주일학교를 없애자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주님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비극적인 모습입니다.

그 말을 듣고 우리교회를 생각하니 감사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린이 숫자보다 교사가 더 많습니다. 그것도 언발란스이기는 하지만 감사한 일입니다. 바라기는 어린이 전도가 많이 되어서 어린이 부서가 부흥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는 매 주일 아침 일찍부터 교회에 와서 교사로 섬기면서 어린이 예배나 학생 예배를 드리고, 오전 예배를 드리고, 오후 예배도 드리고, 오후 예배 후에는 기도회를 하고 돌아가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저는 두 가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그것이 우리 교회의 문화가 되었기 때문에 그 흐름을 따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힘들지 모르고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 행사가 있거나 사역이 있거나 선교를 나가면 휴가를 내고 자기 돈을 써가면서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할까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주님의 일에 자원합니다. 이사야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갔다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가 대답했습니다.

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사야가 주님의 영광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주님의 일에 자원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일이 부담이 아닙니다. 주의 일이 부담이 된다면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 예배 후에 식사를 하는 것은 좋은데 식사 봉사는 싫어합니다. 하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져서 그렇습니다.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이 주시는 멍에가 쉽고 주님이 주시는 짐이 가벼운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일이 즐겁습니다.

보통 신앙생활은 주님의 능력이 필요해서 주님을 찾으므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믿음이 생기고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면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앙적인 모든 행위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 혹은 주님의 능력을 이용하려고 하는 의도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모든 것이 자발적인 헌신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나를 위하여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사랑하십시오.

 

오늘 설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 여섯 가지를 살펴봤습니다.

1.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전을 사모한다.

2.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법을 사랑한다.

3.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종을 존경한다.

4.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돈을 주님에게 돌린다.

5.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날을 기억하여 지킨다.

6.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일이 즐겁다.

이러한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있는 신앙생활을 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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