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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70430]바퀴의 환상을 통해서 본 하나님의 섭리와 인생/ 에스겔 1:15-19

바퀴의 환상을 통해서 본 하나님의 섭리와 인생

에스겔 1:15-19(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오늘 설교는 피영민 목사님의 설교를 참고 했습니다.

에스겔서 1장은 대단히 어려운 본문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5년 째 되던 해에 그발강 가에서 기도 하다가 신비한 환상을 봤습니다. 에스겔은 세 가지 환상을 보았습니다. 네 생물의 환상(4-14), 바퀴의 환상(15-21), 하늘보좌의 환상(22-28)입니다.

네 생물의 모양은 사람의 형상 같습니다. 그 생물들은 각각 네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물들의 얼굴 모양은 앞은 사람의 얼굴이고 오른 쪽은 사자의 얼굴이고 왼쪽은 소의 얼굴이고 뒤는 독수리의 얼굴입니다. 생물은 날개가 네 개입니다. 생물의 날개 소리는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고 군대의 소리와도 같았습니다.

이 네 생물은 바퀴가 넷씩입니다. 그러니까 바퀴가 16개가 됩니다. 바퀴의 모양과 구조는 황옥 같이 보입니다. 바퀴 안에는 바퀴가 또 있습니다. 바퀴는 둘레가 크고 높고 무섭습니다. 바퀴 둘레에는 눈이 가득합니다. 영이 가는 곳에 생물들도 가고 생물들이 가는 곳에 바퀴들도 갔습니다.

네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이 있습니다. 생물의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습니다. 그 모양은 남보석 같았습니다.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나는 형상이셨으며 불 같았습니다.

보좌 사방 광채는 무지개 같았습니다. 그 무지개 같은 것은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입니다. 그래서 무지개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엎드려서 이 형상이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에스겔이 본 네 생물의 환상, 바퀴의 환상 그리고 보좌의 환상 중에서 바퀴의 환상을 다루겠습니다.

대부분의 성경주석가들은 이 바퀴를 하나님이 인생을 다스리는 섭리라고 말합니다. 3:6절을 보겠습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여기서 인생을 바퀴로 비유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한마디로 말하면 '섭리신앙'입니다. 섭리(攝理)라는 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합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섭리란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신모세 목사님이 쓴 [조직신학요약]이라는 책에서는 하나님의 섭리란 그분께서 창조하신 온 우주 만물을 친히 보존하시고 통치하시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정리를 하면 섭리란 하나님께서 만드신 온 우주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세상을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보존하시고 통치하십니다. 어머니가 자기가 낳은 아이를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를 잘 보살피고 양육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십니다.

섭리의 3요소가 있습니다. 보존입니다. 하나님의 보존하심은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유지하고 보존하시는 사역입니다. 협력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과 떨어져 스스로 살지 못하며 하나님과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살 수 있습니다. 통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만물을 그 존재 목적에 맞도록 통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일반섭리입니다. 하나님은 필연적인 법칙들과 인간들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십니다. 심지어 우리가 볼 때 우연한 일들도 사용하셔서 섭리하십니다. 특별섭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적들을 사용하십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간혹 기적이 일어나는데 하나님의 특별섭리입니다.

인생의 원리를 바퀴로 보는 내용은 옛날 고대문헌도 나오고, 다른 종교에서도 그렇게 보고, 심지어는 유행가에도 나타나있습니다. 가수 조영남씨가 부른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에스겔서 1장은 하늘 보좌 위에 앉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사에도 바퀴처럼 관여 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설교는 바튀의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살펴보겠습니다.

 

1. 인생은 굴러갑니다.

바퀴가 굴러가듯이 우리의 인생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굴러갑니다. 굴러가기 때문에 인생은 위로 올라갈 때가 있는가 하면 아래로 내려갈 때도 있습니다. 인생은 그런 것입니다.

인생을 굴러가게 만드신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사람은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내려올 날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 섭리를 아는 사람은 낮은 곳으로 내려갔다고 인생을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바퀴처럼 돌기 때문에 언젠가는 올라갈 날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신 사건이 나옵니다. 떨기나무는 포도나무처럼 열매를 딸 수 있는 나무도 아니고 백향목처럼 집을 짓는 재목으로 쓸 수 있는 나무도 아닙니다. 또 감람나무처럼 기름을 짤 수 있는 나무도 아닙니다. 떨기나무는 광야에 지천에 널려있는 쓸모없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그 나무에 불이 붙으니 그 나무를 통해서 모세가 변화되엇습니다.

주님은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사건을 통해서 제게 두 가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 ‘네가 떨기나무처럼 별 볼 일 없는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기죽지 말아라.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서 모세가 변화된 것처럼 너에게 하나님의 불만 붙으면 너를 통해서 위대한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라는 가르침입니다. 둘째, ‘네가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처럼 대단한 역사를 일으킨다 할지라도 너는 교만하지 말아라. 겸손해라. 왜냐하면 너에게서 나의 불이 꺼지면 너는 떨기나무처럼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가르침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바퀴가 구르는 것과 같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교만하면 안 됩니다. 그 자리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내려와야 할 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높아져도 겸손해야 합니다. 낮은 자리에 있다고 기 죽을 것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돌고 돌기 때문에 언젠가는 높아질 날이 있을 것입니다.

 

2. 인생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19-21절에 보면 에스겔이 환상 속에서 본 바퀴는 언제나 네 생물과 함께 활동합니다. 네 생물이 가면 바퀴도 가고 네 생물이 멈추면 바퀴도 멈춥니다. 그런데 네 생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의문의 여지없이 천사들입니다. 우리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가 함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천사들이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 하실 때 천사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이루는 일은 천사들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천사들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103:20을 봅니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18:10을 보겠습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이 말씀에 보면 지극히 작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천사들이 함께 하며 그의 동태를 하나님께 보고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을 무시하거나 남에게 악을 행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행한 일들을 그들의 천사들이 하나님께 다 아뢰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은 구원 받은 사람들을 섬기는 영입니다. 1:14입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저는 22년 운전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큰 사고 없이 운전을 했습니다. 크게 사고가 날 뻔 했던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은 사고를 피하게 하시거나 아주 경미한 접촉사고 정도로 끝나게 하셨습니다. 제가 기억이 남는 사고가 있습니다. 대전에 집회를 갔을 때입니다. 초행길이라 이정표를 확인하느라 앞차가 멈춘 것을 뒤늦게 발견했습니다.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끼이익 하고 미끄러지더니 앞차와 키스를 했습니다. 정말 다행인 것은 두 대 다 찌그러지거나 기스 하나 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0.1초만 늦게 브레이크를 밟았다면 큰 사고가 날 뻔했습니다. 저는 그때 천사가 지켜주었다고 확신합니다. 또 한 번은 파크데일 앞 행복한교회 4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는데 자동차 바퀴가 빠졌습니다. 얼마나 황당한 사고입니까? 그 일이 아니었으면 지금도 그 자동차를 탔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감사했습니다. 만약 제가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바퀴가 빠졌다고 생각해보세요. 저는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그때도 천사가 저를 지켜주었다고 확신합니다. 천사는 성도를 보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천사를 통해 벌을 내리시기도 합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로 범죄했을 때 천사가 전염병으로 역사했습니다. 천사는 기도를 돕기도 합니다. 우리 주님이 기도하실 때 천사들이 수종들었듯이 우리가 기도할 때 천사들이 돕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도 합니다. 성경에 보면 천사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한 일도 있습니다.

천사의 사역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는다면 천사의 사역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 우리와 함게 하시고 도우십니다.

 

3. 하나님의 손길은 어디에나 미칩니다.

15절에 보면 바퀴는 네 생물의 얼굴을 따라있습니다. 네 생물이 사방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바퀴도 동서남북 어디로 보아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어디에나 미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139:7-11을 보겠습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다윗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며 언제나 존재하시고 모든 일을 살피시는 분입니다.

요나는 느니웨에 가서 그들의 악독이 하나님께 상달되었음을 외치라고 하신 하나님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욥바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하나님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도 계셨고, 바다 가운데도 계셨고, 배 밑창에도 계셨으며, 물고기 뱃속에도 계셨고, 니느웨에도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어디에나 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군대에 간 자녀를 위한 기도, 해외에 있는 선교사님들을 위한 기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주님은 들으시고 멀리서도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에 나오시던 조00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군대에 가서 운전병을 했습니다. 한 번은 그 아들이 트럭을 몰고 산길을 가다가 자동차가 절벽으로 떨어졌습니다. 아들이 순간 적으로 눈을 감았는데 기도하는 조집사님의 모습이 보이더랍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동차가 나무에 걸려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아서 살았습니다. 여기서 기도하는 어머니의 기도가 전방에 있던 아들에게 응답되어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온 우주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4. 하나님의 섭리는 바다와 같습니다.

16절에 보면 바퀴의 색깔이 황옥과 같다고 했습니다. 황옥은 녹주석입니다. 녹주석은 누런색이 아니고 바다색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다와 같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바다는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바다가 왜 썩지 않습니까? 소금이 함유되어 있어서 그런 것도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출렁인다는 것입니다. 쉬지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쉬지 않고 사역하십니다.

121:1-4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우리 하나님은 변함없는 산과 같습니다. 교회 뒷산은 1천 년 전에도 있었고 10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고, 10년 후, 100년 후에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함없는 산과 같으십니다. 하나님은 전에도 지금도 영원토록 우리를 돕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졸고 주무시고 쉬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두가 잠든 밤에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모두가 휴가를 즐기는 시즌에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바다처럼 쉬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썩지 않습니다. 계속 예배드려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해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기도하기 위하여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선교도 해야 합니다. 교회 봉사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바다처럼 계속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인간은 거대한 바다 앞에서 겸손해 집니다. 인간은 바다를 정복할 수 없습니다. 바다를 우습게보다가는 큰일 납니다. 거대한 타이타닉호를 출항시키면서 사람들은 하나님도 침몰시킬 수 없다고 했지만 첫 번째 항해에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거대한 바다 앞에서 교만할 수 없습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면 안 됩니다.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의 작은 머리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아는 것처럼 교만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깊은 바다보다 더 깊습니다. 우리는 바다보다 더 넓고 깊은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5. 인생의 중심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6절에 보면 바퀴 안에 바퀴가 있습니다. 이 바퀴는 축입니다. 바퀴는 축을 따라서 도는 것입니다. 바퀴가 큰 소리를 내고 움직여도 그 축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요동하는 인생 가운데에도 움직이지 않는 축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인생의 중심이십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축으로 삼고 살아야 합니다. 돈이나 사람이나 권력이나 능력이 인생의 축이 되면 안 됩니다.

한 부자 청년이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도 구원에 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늘의 진리를 듣고 싶었고, 영적인 생수를 마시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따르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이유는 그의 중심축이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19:20을 보겠습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여러분의 인생의 축은 주님이십니까? 혹시 돈은 아닙니까? 사람은 아닙니까? 혹시 성공과 출세가 인생의 중심축은 아닌지요?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중심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십시오.

 

6. 하나님의 섭리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바퀴는 갈 때 돌이키지 않습니다. 한번 출발하면 똑바로 직진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일관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피상적으로 보면 무질서해보입니다. 테러도 있고, 전쟁도 있고, 불의도 있습니다. 불합리한 일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무질서하게 보이는 세상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세상은 한 가지의 방향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수서에서 고속철도 SRT를 타면 부산에 2시간 30분이면 도착합니다. 기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부산을 향해 앉아있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반대 방향을 보고 앉고 어떤 사람은 화장실을 가기 위하여 부산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어떤 사람은 옆 사람과 이야기 하느라고 남쪽이 아닌 동쪽이나 서쪽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수서역에서 출발 한 후 2시간 30분이 지나면 그 기차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 부산에 도착합니다. 섭리가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의 인생은 아버지 집에서 구덩이로, 구덩이에서 노예로, 노예에서 감옥으로, 감옥에서 총리로 움직였습니다. 총리가 목표는 아니지만 총리를 목표로 잡고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구덩이에 들어가고, 노예가 되고 또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총리라는 목표를 향해서 요셉의 인생을 섭리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를 하든 못하든 우리의 인생을 섭리하십니다. 우리가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8:29-30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려고 우리의 인생에 섭리하십니다. 우리가 이해를 하든 못하든 하나님은 일관성 있게 일하십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환경이든 좋아하지 않는 환경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일관성 있게 일하십니다.

피영민 목사님은 자수를 가지고 설명하셨습니다. 자수 뒤면은 얼기설기 엉망입니다. 그런데 앞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우리의 인생도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더 닮아가고 결국은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한 가지 방향을 향해서 섭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생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한 도구입니다. 자수에 쓰이는 실과 같습니다. 인생사가 아무리 복잡해도 하나님의 자수에 쓰이는 흰 실과 검은 실, 파란 실과 노란 실 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담백한 맛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 얽매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너무 사랑하거나, 너무 미워하거나, 너무 애 달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7. 하나님의 지혜는 무궁합니다.

18절에 보니 바퀴에 눈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무궁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눈이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눈이 없으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게 살겠습니까? 눈이 있으니 아름다운 자연도 보고, 여러분의 얼굴도 보고, 사랑하는 아내도 보고, 사랑하는 자녀들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눈은 두개입니다. 사람에게 눈이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손가락에 눈이 달렸다면 시험 볼 때 좋을 것 같습니다. 멀리보기도 좋고, 높은 곳도 볼 수 있습니다. 선반 위에 있는 물건을 찾기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운전하다가 사각지대는 손을 쭉 뻗어서 보면 잘 보일 것 같습니다. 뒤에 눈이 하나 더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뒤에서 일어나는 위급한 일을 대처할 수 있습니다. 눈이 하나만 더 있어도 이렇게 현명해지고, 지혜 있어질 수 있는데, 바퀴에는 눈이 가득하니 하나님의 지혜는 얼마나 무궁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지혜가 무궁하기에 우리는 스스로의 지혜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완전한 지혜로 역사하십니다. 18:29입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다윗은 하나님을 의뢰하여 담대했습니다. 그래서 적군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공급 받았습니다. 그래서 담을 뛰어 넘었습니다. 무궁하신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지혜요 능력이교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십시다.

오늘 하나님의 섭리를 정리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으므로 안심이 됩니다.

1. 인생은 굴러간다는 것입니다.

2. 인생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3. 하나님의 손길은 어디에나 미치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섭리는 바다와 같습니다.

5. 우리의 인생의 중심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6. 하나님의 섭리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7. 하나님의 지혜는 무궁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보존하시고 세상과 협력하시며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높여드립니다.

출처 :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글쓴이 : 마경훈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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