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6:41-44 2013.11.17(일)
감사는 축복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감사가 있습니까? 어떤 일로 감사합니까? 어떤 교회가 감사절을 맞아 동네 유치원에 맛있는 음식을 선물했습니다. 떡복기, 피자, 김밥. 유치원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교육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점심은 우리 동네 교회 목사님이 맛있는 음식을 선물한답니다. 점심때 오시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이야기하세요”.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모두 일어나 “감사히 먹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때 맹구가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간신히 먹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두 종류의 인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히 사는 인생이 있고 간신히 사는 인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 간신히 살까요?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돈 때문에 할머니를 납치해 인질로 잡았답니다. 그리고 집으로 전화했는 데 마침 며느리가 받았습니다. “당신 시어머니를 내가 데리고 있다. 빨리 돈 천만원을 붙이지 않으면 어머니를 안 돌려주겠다”. 며느리가 말했습니다. “어림없는 소리,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인질범이 말했습니다. “돈 안부치면 시어머니를 당장 집으로 보내겠다”. 그때 며느리가 소리쳤습니다. “잠깐만, 계좌번호가 어떻게 되죠?” 이런 때는 웃어야 수준에 맞습니다. 어머니 계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데 감사하지 못하니까 간신히 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행복의 비결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행복하고 감사하면 기적이 나타나고 감사하면 축복받습니다.
예수님이 한번은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뱃새다 광야에 모여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그림). 남자만 5천명이었으니까 남자, 여자, 어린아이 하면 2만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했더니 사람들이 배가 고팠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하늘의 양식과 함께 육신의 양식도 먹이고 싶었습니다. 마침 어린이 하나가 보릿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습니다(떡, 물고기). 예수님이 그것을 붙잡고 기도하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모두가 먹고 12광주리를 거두었습니다. 감사의 기적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감사로 기적을 맛보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감사의 첫 번째 이유가 무엇일까요? 믿음입니다.
믿음 때문에 감사합니다.
왜 믿음이 감사의 첫 번째 이유일까요? 지금 뱃세다 광야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2만명 이상 모였는 데 식당도 없고 수퍼마켓도 없습니다. 빵집도 없고 있더라도 그만한 사람을 먹일 만한 빵이 없습니다. 혹시 빵이 있어도 그것을 살 돈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이 걱정합니다. “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먹이나?” 그러나 예수님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라” 했지만 재촉도 하지 않고 평안합니다. 왜 예수님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평안한 것일까요? 믿음 때문입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풍성하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를 반드시 먹이신다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말씀을 아십니까? 마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30절에서 말합니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31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우리가 염려하지 않은 이유가 딱 하나 있습니다.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신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이유도 딱 하나 있습니다.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그 자녀를 반드시 책임지신다“. 감사의 뿌리에 믿음이 있습니다.
며칠전에 저희 집과 쌀과 과일이 배달되었습니다. 열어보니까 시골 아버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쌀 세 부대, 감, 고구마등이 울멍 줄멍 노끈으로 묶어져 있었습니다. 그 위에 이름이 크게 쓰여 있었습니다. “윤재”. 아버지 글씨였습니다. 해마다 변함없이 쌀과 과일을 보내는 것은 부모님밖에 없습니다. 변함없는 사랑,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신다”, 이것은 오랫동안 제 믿음입니다. 부대를 열어 쌀을 만져보았습니다. 알알이 익은 곡식속에 부모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가 배어 있었습니다. 그날 쌀은 저에게 두 가지 믿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은 때가 되면 반드시 열매를 맺히신다.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은 반드시 나에게 공급하신다. 이 믿음이 저에게 감사하게 했습니다. 감사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환경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때문에 감사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믿음 때문에 감사합니까?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그 분은 나를 반드시 도와 주신다. 그래서 나는 염려가 없다”. 그래서 감사합니까? 제가 돌아가신 분을 많이 봅니다만, 죽음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숨을 내쉬는 데 다시 들이쉴 수 없으면 죽는 것입니다. 숨 하나가 생명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매일 여러분에게 숨쉬게 합니까? 숨 쉬고 들이쉴 수 없으면 죽는 데 얼마나 많은 세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숨쉬게 했습니까? 어느 교인에게 폐가 아파 미국으로 치료받으러 갔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이 환자는 우리 병원에 있는 특수 산소를 공급하면 몇 달은 더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에 천불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분 아들이 부자라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3개월인가 더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3개월을 계산해 보았습니다. 한 시간에 천불이니까 하루면 2만 4천불입니다. 1개월은 72만불입니다. 3개월은 216만불입니다. 우리 돈으로 약 25억쯤 됩니다. 3개월 숨쉬는 데 25억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얼마나 공짜로 많이 산소를 마셨는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매일 돈도 받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공짜로 숨쉬게 한 것입니다.
부산의 고신대학 병원에 한 환자가 애타게 물을 찾습니다. 이 환자는 후두암환자인데 목으로 물도 마실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 환자가 죽었는 데 침대 시트에 낙서 하나를 남겼습니다. “물, 물”, 그의 마지막 소원은 자기 목으로 마음껏 물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아침에도 물을 마음껏 마시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날마다 별 생각도 없이 마시는 그 물을 내 목으로 마음껏 마셔보았으면 좋겠다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공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은 풍성합니다. 우리에게 언제나 아무 때나 공급할 수 있는 능력과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다. 미국에서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부모없이 사는 한 청년이 가난하게 삽니다. 그나마 빚이 있습니다. 그래서 늘 부채청구서가 그를 따라다닙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은행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몇 년전 청년의 먼 친척이 돌아가시면서 은행에 유산을 남겼는 데 왜 찾으러 오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이 은행에 달려 갔습니다. 이름을 밝히고 계좌번호를 말했더니 은행원이 말합니다. “고객님, 고객님의 잔고가 얼마인가를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심호흡부터 하셔야 하겠습니다. 조금 많아서요”. 그래서 청년이 물었습니다. “얼마요?” 은행원이 말했습니다. “2천만 달러입니다”. 제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때 제가 생각한 것이 “아, 나도 이미 하늘의 유산을 받았다” 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은 내 아버지시다“. ”아버지의 것이 다 내 것이요 천지가 모두 내게 속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질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 때문에 감사한 것은 물질때문만이 아닙니다. 우리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말씀이 잠16:4입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그냥 대충 지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 쓰임에 맞게 지으셨는 데 심지어 악인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외모, 성격, 기질에 감사합니까? 자신의 외모에 100%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어떤 분이 대머리에 대하여 쓴 것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혹시 머리가 대머리인 분은 적어도 여섯 가지는 감사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여성에게는 대머리가 거의 없으니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여성들은 무조건 감사해야 합니다. 둘째, 대머리로 굶는 사람 없으니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대머리는 물자를 절약할 수 있어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머리에 털이 없으니 얼마나 비누나 샴푸나 물이 절약되겠습니까? 헤어드라이도 필요없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주님이 머리를 쓰다듬었으면 대머리가 되었겠냐는 것입니다. 다섯째, 엘리사 선지자나 바울 사도 등 하나님의 종들이 대머리가 많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머리가 대머리이면 하나님의 사람인 증거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여섯 째, 대머리는 주님을 편하게 해 드리니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님은 매일 우리의 머리카락을 세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없으니 셀 일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얼마나 주님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입니까? 대머리가 이렇다면 우리 머리에 숱이 많다면 얼마나 또 감사합니까?
믿음이 감사의 이유입니다. 눅17장에 사마리아지역을 지나가시다가 나병환자 10명을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9명은 그냥 가고 한 명만 다가와 감사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눅17: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이 여기서 “네 감사가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지 않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슴하셨다는 것입니다. 나병환자가 실제로 한 것은 예수님께 감사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이것을 믿음으로 보셨습니다. 감사하면 믿음이 있고 믿음이 있으면 감사합니다. 감사는 믿음에서 옵니다. 우리는 믿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나누면 커집니다.
감사가 믿음에서 시작된다면 감사는 나누면 더 커집니다. 예수님의 감사는 나눔의 감사였습니다. 먼저 그것은 작은 한 소년의 나눔이었습니다. 그는 그 날도 자기 한 사람 점심으로 먹으려고 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기도하신 후 나누셨습니다. 41절을 보시겠습니까? 막6: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기적은 언제나 나눌 때 일어납니다. 함께 먹으면 모자랄 것 같지만 정작 배고플 때는 혼자 먹을 때입니다. 보십시오. 함께 먹을 때 얼마나 풍성했는지. 42-43절입니다. 막6:42-43,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 한 소년의 작은 나눔이 남자만 5천명을 먹이고 12바구니를 거두게 했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추수감사절도 나눔의 축제였습니다. 1620년, 12월, 102명의 청교도가 117일간의 대서양 항해 끝에 미국 플리머스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추위와 배고픔뿐으로, 먹을 만한 음식도 머물 만한 숙소도 없었습니다. 전염병과 배고픔으로 도착하자마다 50여명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절망하고 있는 데 이 때 도움이준 사람들이 인디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먹는 옥수수, 감자, 밀등을 청교도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그림). 그 다음 해에도 그들은 청교들을 도와 농사를 짓고 열매맺게 했습니다. 다음 해, 청교도들이 감사절을 지킬 때 인디언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때부터 추수감사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추수감사절은 나눔의 축제였습니다. 인디언은 청교도들에게 사랑을 나누고 청교도는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나누고, 그들의 감사는 나눔의 축제였습니다.
제가 지방에서 목회할 때 교회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초청하여 사랑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IMF 때문에 직장을 잃은 어려운 이웃들을 초청해서 매주 주일 아침 7시에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식사를 대접하고 용돈 3천원씩을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50여명이 모였고 시간이 지나자 150명이 넘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제가 전주를 떠나게 되었는 데 그때 이른 아침부터 교회 나와 제가 서울로 간다고 우는 사람들이 그들이었습니다. 작년 5월 어느날, 한 분이 저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가면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저를 아시겠습니까?” 잘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모르실 것입니다”.
그러더니 제 방으로 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이 지방에서 목회할 때 사업이 망해서 갈 데 없어 목사님 교회에 가면 밥을 준다고 해서 친구와 함께 갔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4식구가 20만원짜리 단칸방에 살고 있었는 데 목사님이 저희같은 실업자들에게 밥도 주고 용돈도 주고 사랑도 주고 무엇보다 예수님을 가르쳐 줘서 감사했습니다. 그때 힘을 얻어 5-6년부터 조금씩 나아지다가 지금은 회복되어 잘 살고 있습니다. 그때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늘 목사님을 생각합니다. 이번에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 목사님이 생각나 교회 왔습니다”. 그러면서 봉투를 꺼냅니다. 그나중에 보니 200만원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목회자 세미나가 있었는 데 주보 광고를 내놓은 것입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아, 나눔의 은혜다. 그때 나는 아무 생각없이 했는 데 그때 조금 나눴더니 다시 돌아오는구나”. 그리고 그 돈을 어려워서 등록하지 못한 목회자들을 위해 썻습니다.
여러분, 거름은 한 군데 쌓아놓면 냄새가 나지만 사방으로 뿌리면 생명을 살린다는 것을 아십니까? 밥도 혼자 먹으면 맛이 없지만 여럿이 먹으면 맛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을 아십니까?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일은 나눔의 일생이었다는 것을 아십니까? 사랑없이 줄 수 있지만 주지 않고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아십니까? 오늘 우리가 지역 주민 여러분을 초청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곳에 15년째 서 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 교회는 집도 절도 없이 외로웠습니다. 몇 년 전부터 판교가 생기고 여러분이 이곳에 오자 생기가 돋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없던 땅이 여러분이 와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우리 교회는 늘 지역 여러분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떡은 떼어야 하고 사랑은 나눠야 합니다. 감사는 나누면 나눌수록 더 커집니다.
최고의 감사는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최고의 감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우리에게 생명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가을에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쌀, 과일, 오곡백과, 직장, 일터, 사업체, 가정, 가족, 학교, 친구, 모든 것이 감사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 한 가지를 위한 보조적인 것들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생명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지 죽어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생명은 어디에서 옵니까? 생명에서 생명이 나옵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살면서 아랍 사람 하나를 알았습니다. 무하마드라고 합니다(사진). 그가 이슬람교를 믿는 집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그의 아버지가 그를 불러 소리쳤습니다. “너 예수믿으려면 집을 나가라. 알라를 안믿는 것은 내 아들이 아니다”. 이때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제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가라고 하세요. 제가 어떻게 예수님 믿게 되었는지 말할게요. 재가 어디를 가려고 길을 가는 데 갈림길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리 가나 저리 가나 망설이는 데 마침 거기 두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한 사람은 죽어 있고 또 한 사람은 살아 있었습니다. 아버지같으면 누구에게 길을 묻겠습니까?” 아버지가 소리쳤습니다. “이 멍청한 놈아, 그것을 왜 나에게 물어? 산 사람에게 길을 물어야지 죽은 사람에게 길을 묻냐?” 그때 아들이 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접니다. 저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길이 맞나? 어떤 길이 진리의 길인가 묻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 모하멧은 죽었더라고요. 그런데 예수님은 죽지 않았어요. 살아 있는 분을 믿어야 나도 살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아버지가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그렇구나. 산 분을 믿어야 사는구나. 죽은 사람 믿어야 소용없다”. 그리고 온 가족이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여러분, 생명의 원리는 분명합니다. 죽어있는 사람 믿으면 죽고 산 사람 믿으면 삽니다. 생명은 산 존재에게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도 죽고 다시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시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생명이 우리안에 있습니다. 골3:3입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안에 감추어졌슴이라”. 여러분안에 예수님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으면 삽니다. 생명이 있으면 모든 일이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때가 되어 죽더라도 생명의 고향인 천국에 갑니다.
막6:41-44 2013.11.17(일)
감사는 축복입니다
뱃새다(사진)
보리떡 5개, 물고기 2마리
믿음 때문에 감사합니다.
마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막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잠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눅17: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감사는 나누면 커집니다.
막6: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막6:42-43,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
인디언과 함께 하는 추수감사절(그림)
최고의 감사는 예수님입니다.
무하마드(그림)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안에 감추어졌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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