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의 삶(11) 롬8:28-30 2014.3.16(일)
제자의 확신, 끝까지 도우리라
한 주간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많은 유머와 수수께끼를 가진 나라가 이스라엘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수수께끼중 이런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고통이나 슬픔을 주지 않고도 눈물나게 하는 것은?” 답은 “양파”입니다. “살아 있으면서도 노아 방주에 실리지 않은 것은?” 답은 “물고기”입니다. “경건한 유대인이 커피를 마시기 전에 하는 일은?” “입을 벌리는 일”입니다. 며칠전 우연히 한국 수수께끼 하나를 보았습니다. “봉사활동을 오래하다가 드디어 빛을 본 사람은?” 답은 심봉사입니다. 심봉사가 오랫동안 앞을 보지 못하다가 드디어 눈을 떳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심봉사 수수께끼를 들으면서 제게 떠오르는 것이 기도였습니다. 기도가 무엇일까? “아, 심봉사처럼 오래 인내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응답되는 것이구나“. 깨달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기도합니까? 기도하면 어떻게 됩니까? 지난 주에 우리는 “성령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기도는 성령의 일이다. 우리안에 계신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하게 하는 일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성령님이 우리안에서 하시는 일은 죄를 이기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기도해서 어떻게 됩니까? 도대체 기도하면 어떻게 되길레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까? 영국의 영성가 C. S. 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있습니다. 이 책은 지옥에 있는 마귀 대장이 땅에서 활동하는 조카 마귀에서 쓴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귀 대장은 기도를 제일 무서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도못하게 하려고 조카 마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기도할 때 두 가지 작전으로 기도하지 못하게 하라. 기도를 시작할 때는 기도해봐야 소용없다고 속삭여라. 그래도 기도해서 문제가 해결되면 그것은 기도안해도 해결될 것이었다고 믿게 하라. 기도는 결국 쓸데없는 것이요 허무한 것이라는 것을 주입시켜라”.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갖는 생각이 이것입니다. “과연 기도는 응답될까?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래도 기도하다 무슨 문제가 해결되면 “혹시 기도 안했어도 해결될 것은 아니었나?”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기도는 응답됩니다. 모든 기도는 응답됩니다. 기도 응답은 성경의 증거말고도 일반 과학으로도 증명됩니다. 미국의 윌리엄 파커 박사와 세인트 존스가 쓴 <기도가 인생을 바꾼다“가 있습니다. 이 책은 기도 응답을 과학적으로 실험해 보고 결과를 보고한 것입니다. 먼저 이들은 45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15명씩 세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심리요법으로 기도하는 사람 15명, 불규칙적인 기도자들 15명, 정규적인 믿음으로 기도자 15명, 이들은 서로 떨어진 곳에서 서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각자의 방법으로 기도했습니다. 심리요법으로 기도한 사람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불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되 생각날 때마다 기도하게 했습니다. 정규적인 믿음의 기도자들은 하나님께 정규적으로 기도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9개월 10일 후에 그 결과를 조사했습니다. 결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심리요법으로 기도한 사람은 65%가 마음의 평안함을 경험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불규칙으로 기도한 사람은 아무런 마음의 평안이나 변화가 없었습니다. 정규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은 72%가 마음의 평안과 함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분명합니다. 하나님께 정규적으로 드리는 기도는 과학적으로도 효과가 있슴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기도는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의 축복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이보다 훨씬 크고 위대한 축복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첫 번째 축복은 기도하면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28절 볼까요?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을 하나씩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 “모든 것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했으니 모든 것이 선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악도 있고 선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선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선이 어떻게 생기는가를 보여줍니다. “선을 이루느니라”. 선은 이루는 것이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믿고 살아도 선은 그냥 오는 것은 아닙니다. 악이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선도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선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합력하여”했습니다. 이 말이 중요합니다. “합력한다”는 말은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들이 결과적으로 하나가 되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가끔 시계를 보십니까? 언젠가 한번 시계가 고장 나서 속을 열어 보았습니다. 바늘이 셋이 있었는 데 시침, 분침, 초침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바늘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돌고 있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다 한 방향으로 돌 것 같은 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로 반대로 돌면서도 시간은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합력한다”는 말입니다. 서로 다른 것이 결과적으로 시너지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격언에 “돈이 없을 때 나쁜 것만큼 돈이 있을 때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돈은 없을 때 불편한 것은 맞지만 돈이 있다고 항상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말로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가 한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얻는 것이다.”. 세상에서 우리가 다 얻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끔 원하는 대로 다 얻는 것보다 원하는 대로 다 얻지 못하거나 다른 것을 얻을 때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어촌에 남자들이 고기잡이를 떠났습니다. 남은 것은 아낙네들과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어도 오지를 않습니다. 알고보니 커다란 풍랑이 바다에 불어 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밤새 기다리던 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남편을 도와 주시고 빨리 오게 해주세요”. 그런데 웬일입니까? 한 아이의 실수로 촛불이 넘어져 집에 불이 났습니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불을 끄기는 했지만 집은 거의 타고 말았습니다. 고기잡으러 간 남편들은 안오고 집은 불타고, 이런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 다음 날 바다에서 죽은지 알았던 남편들이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풍랑을 만나 몇 시간 동안 시선을 넘었는 데 갑자기 멀리서 불빛이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쪽으로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 왔더니 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불은 간밤에 아이들의 실수로 생긴 불이었습니다. 집에 불날 때는 망한 줄 알았지만 결국 그 불이 사람을 살린 것입니다. 이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도날드 보로쉬(Donald G. Bloesch)란 사람은 이것을 “하나님은 가끔 악을 이용해 악을 없애신다.”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축복이 아무에게나 오지 않습니다. 다시 28절 보십시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이 축복이 옵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름받아야 합니다. 자기 뜻대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기도입니다. 결국 기도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합니다. 기도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저는 안되었기 때문에 된 사람입니다. 고3때 대학입시를 앞두고 연탄까스를 마시는 바람에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했지만 신학교에 들어가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유학을 준비했는 데 미국 비자를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가서 예수님을 발자취를 따르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학자가 되고 싶어서 목회학 박사를 마치고 철학박사에 또 도전했는 데 학교에서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로 되어 한신교회 목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뜻대로 안되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잠시 낙심하지만 그래서 결과적으로 잘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5세기의 성자 어거스틴은 탕자였습니다, 아프리카 힙포에서 하나님을 떠나 살았습니다. 이름모를 여자와 결혼도 하지 않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로마로 간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는 환락의 도시였습니다. 어머니가 눈물로 말렸지만 그는 결국 로마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로마에서 만난 것은 시라쿠스라는 학자였습니다. 그는 어거스틴의 웅변술과 수사학에 재능이 있는 것을 알고 밀라노 궁전에 수사학 교수로 보냈습니다. 그가 밀라노에 가 보니까 암부로시우스라는 유명한 설교자가 명성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예배에 참석했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뒤 2년 후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세계교회사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가지 말아야 할 로마로 갔지만 로마는 그를 하나님을 만나게 했습니다. 안되는 일이 되는 일이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제네바에 와서 일하다 쫓겨났습니다. 얼마 있다가 다시 돌아와 성공했습니다. 쫓겨났기 때문에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나오미는 흉년 때문에 고향을 떠났습니다. 모압땅에 가서 남편 잃고 두 이들 잃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실패자로 다시 돌아왔을 때 보아스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며느리 룻을 다윗의 증조모가 되게 했습니다. 안되는 것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극적인 사람이 요셉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애굽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피하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감옥은 그에게 재기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창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다같이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하나님이 바꾸신 것입니다, 동생을 노예로 판 형들의 죄악을, 이유없이 감옥에 보낸 보디발 아내의 죄악을 선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전날의 한숨변하여 내 노래 되게 하셨습니다. 그 배후에는 항상 기도가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그 은혜를 경험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을 따라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꿔주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기도의 첫 번째 축복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무엇일까요?
끝까지 도와주십니다
끝까지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28절에서 이어 사도 바울은 29-30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롬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쓰인 동사들이 모두 이미 이루어진 과거의 완료형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 다섯 가지입니다. 자,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셨습니다. 다음 미리 정하셨습니다. 다음 부르셨습니다. 다음 의롭다 하셨습니다. 다음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일어난 것은 완료형으로 쓸 수 있습니다. 우리를 미리 아시고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여기까지는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혹 구원받은 사람은 의롭게 된 것까지가 이미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롭게 된 것은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땅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영화는 우리가 천국에 올라가서 하나님앞에 설 때 일어납니다. 모든 죄를 씻고 하나님과 같은 형상을 가질 때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가 이미 영화롭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미래에 될 일을 이미 일어난 것처럼 쓰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한번 구원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끝까지 구원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작정과 결단이 숨겨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성도의 견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견인”은 견디게 하고 인내케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번 구원하기로 마음 먹은 성도를 끝까지 도와 견디고 인내하게 해 마지막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의 눈으로 보면 이해가 됩니다. 부모는 자녀가 태어나 자라면 그가 어떤 상황이 되든 책임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아직 중고등학교, 대학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중고등학교, 대학에 등록금 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직 장가, 시집가지 않았지만 얼마든지 비용들여 장가 시집 보낼 준비 되어 있습니다. 아직 아프지 않지만 아프면 언제든지 치료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부모의 마음에는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뜻”입니다. 그래서 28절 중간이 중요합니다.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여기에 “그의 뜻대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누구의 뜻입니까?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마음에 처음부터 있던 뜻입니다. 딤후1:9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한 때 번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여기에 “오직 자기의 뜻대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을 어떻게 압니까? 앞으로 거룩하게 되고 영화롭게 되어 하나님앞에까지 설 수 있을지 어떻게 압니까? 보통은 두 가지로 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기 때문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을 누가 판단하는가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누가 판단합니까? 내가 판단합니까? 하나님이 판단합니까? 하나님이 판단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믿는다고 해도 가끔 그 믿음은 감정인 때가 많고 확신과 의심사이에 있는 때도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합니까? 가끔은 구원받지 않은 자보다 못 살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증할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결정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셔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말3:6절입니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한번 구원하기로 마음 먹은 자녀를 결코 소멸하지 않습니다. 시편 33:9-11입니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됩니다. 잠19:21절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완전히 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요6:37-40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이 예수님께 온 모든 자를 온전히 구원하시는 것임을 믿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남김없이 모두 마지막에 살리실 것을 믿습니까? 그 모든자 속에 여러분이 있는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이 마지막까지 살리실 명단중에 여러분도 들어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이것을 “성도의 견인”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이 끝까지 인내케 하여 구원의 완성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1647년에 작성된 교회역사에 중요한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성도의 견인”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조금 어렵지만 한번 읽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용납하시고 유효적으로 부르시고 그의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신 자는 전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없고 끝까지 그 안에서 확실하게 견인하여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 성도들의 견인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선택의 예정에 의존되어 있는데 이것은 성부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고 불변하시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효력에 의존되어 있으며 성령의 내재하심과 성도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씨와 은혜의 계약의 성질에 의존된 것이니 이 모든 것에서 확실성과 무오성이 생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되 끝까지 책임지고 구원하시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과 예정에서 온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확증하고 우리에게 보증으로 성령을 부으셨다고 말씀합니다. 고후1:22입니다.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인친다는 것은 도장찍는다는 말입니다. 내가 너희를 “끝까지, 확실하게, 그리고 영원히 구원할 께. 그러니 걱정하지 마. 내가 부르는 사람을 나는 의롭다 하고 의롭다 한 사람을 나는 거룩하게 하고 거룩하게 한 사람은 내가 끝까지 영화롭게 할거야. 그러니 걱정마. 내가 있잖니? 정 못 믿겠으면 내가 도장이라도 찍을께”. 그래서 보내신 분이 성령님입니다. 믿으세요. 하나님은 한번 구원하기로 한 사람을 끝까지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도와주시고 확실하게 영원까지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는 우리를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어야 할 마지막이 있습니다.
최후에 승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도와 구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중요한 믿음은 “우리는반드시 결국엔 이긴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언제나 이긴다는 말은 아닙니다. 가끔 지고 가끔 넘어집니다. 그러나 결국은 승리합니다. 37절 보실까요?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러나” 했으니까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깁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전투에 실패할 수 있으나 전쟁에는 이깁니다. 하나의 전쟁은 수많은 전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전투에서 이겨야 전쟁에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전쟁에서 전투에서 이긴 쪽은 국민당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산당이 결국 전쟁에 이겨 최종 승리했습니다. 링컨의 남북전쟁도 상당히 오랫동안 남쪽이 이겼습니다. 그러나 결국 북군이 전쟁에 이겨 노예가 해방되었습니다. 김대중, 만넬라는 한참동안 전투에 졌습니다. 그러나 끝내 이겨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최후에 이기는 자가 승리하는 자입니다.
여러분은 최후의 승리할 것을 믿습니까? 지난 주 수요일, 우리 교회에 오신 필리핀 이종숙 선교사님의 간증에 은혜받았습니다. 선교사님은 필리핀 다구판에 있는 교도소에서 선교하는 데 필리핀 다구판은 우리의 청송교도소와 같습니다. 그는 이 교도소에서 만난 37살 먹은 강도 리치몬 발데스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사람은 강도와 강간범으로 교도소에 들어와 4년간 수감된 사람인데 이 사람이 교도소에서 은혜받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다 다짐도 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가 하루는 밤 늦게 다구판시를 지나가는 데 강도 몇 사람이 복면을 하고 칼을 들이댔습니다. 그때 선교사가 소리쳤습니다. "What do you want?" (무엇을 원하느냐?). 그런데 이렇게 소리치자 강도가 갑자기 칼을 치우더니 “선교사님?”하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알고보니 교도소에서 하나님 만난 발데스가 출소한 후 또 강도질을 한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뒤돌아서서 “발데스, 네가 웬일이냐?” “너는 교도소에서 하나님 만났잖으냐?” 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그렇긴 한 데 출소해서 직장을 알아봐도 안되고 먹을 것도 없어 지금까지 사흘을 굶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선교사가 그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포장마차로 데리고 가서 음식을 먹인 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을 다 털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돈 30,000원이 나왔습니다. 그것을 주면서 그것으로 무엇인가 유익한 일을 해보라고 했답니다. 그 뒤 1년 반이 지났습니다. 선교사님이 어느날 시장을 지나가는 데 누가 쫓아왔습니다. 보니까 발데스인데 리어커를 끌고 있었습니다. 보니까 어묵과 튀김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야기 하기를 선교사님께 돈을 받고 길거리에 버려진 나무 토막으로 조그마한 수레를 만들고 시장에 가서 어묵과 기름 그리고 작은 후라이펜을 사서 길거리 어묵 튀김 장사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장사가 잘되어 4가족이 잘 살고 하나님도 잘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도와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알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믿고 살 때 순간 순간 넘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우리가 가끔 전투에서 지기도 하지만 전쟁에는 반드시 최종 승리한다”. 다시 37절 보실까요?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여라분, 다니엘이 사자굴에 떨어졌지만 결국 느부갓네살 왕을 이기고 이스라엘은 바벨론에서 해방되지 않았습니까?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지만 감옥에서 나와 결국 하나님의 교회의 기둥이 되지 않았습니까?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지만 거기서 나와 결국 니느웨를 구원하지 않았습니까? 다윗이 실수하여 간음을 저질렀지만 회개한 후에 더 부강한 나라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모르드개가 하만에 계략에 죽을 뻔 했지만 결국은 모르드개가 승리하여 하만이 자기가 만든 나무에 달리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만 결국 하나님이 그를 일으켜 부활로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반드시 이깁니다. 최종적으로 이깁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것이 제자의 확신입니다. 이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제자의 삶(11) 롬8:28-30 2014.3.16(일)
제자의 확신, 끝까지 도우리라
<기도가 인생을 바꾼다>(책)
심리요법(15명)-65% 마음의 평안
불규칙 기도자(15명)- 아무런 마음의 평안이나 변화가 없었다.
정규적 기도자(15명)- 72% 마음의 평안과 함께 문제가 해결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모든 것이
- 선을 이룬다
- 합력한다
유대인의 격언, “돈이 없을 때 나쁜 것만큼 돈이 있을 때 좋은 것은 아니다”.
오스카 와일드,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얻는 것이다.”
도날드 보로쉬, “하나님은 가끔 악을 이용해 악을 없애신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창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끝까지 도와주십니다
롬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성도의 견인”= 하나님이 믿는 자를 끝까지 견디게 하시고 승리케 하신다.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한 때 번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말3: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시편 33:9-11,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잠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요6:37-40,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7), “성도의 견인”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용납하시고 유효적으로 부르시고 그의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신 자는 전적으로 또는 최종적으로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없고 끝까지 그 안에서 확실하게 견인하여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 성도들의 견인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선택의 예정에 의존되어 있는데 이것은 성부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고 불변하시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효력에 의존되어 있으며 성령의 내재하심과 성도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씨와 은혜의 계약의 성질에 의존된 것이니 이 모든 것에서 확실성과 무오성이 생긴다”.
고후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최후에 승리합니다.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전투에 실패할 수 있으나 전쟁에는 반드시 이긴다.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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