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26:1-127:5 2014.5.11(일)
Love, 사랑의 집으로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님을 생각하는 주일입니다. 오늘 뜻깊은 날, 우리는 지금 한신가족 축제로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집으로”라는 영화를 아십니까?(사진) 서울에 사는 상우가 어머니가 잠시 맡겨 시골 외할머니집으로 갑니다. 거기서 놀기 좋아하는 개구쟁이 소년 상우와 늙고 허리가 굽은 할머니와의 많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자란 어린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잊고 사는 고향, 어머니, 집이 생각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집에서 태어나 집에 살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은 우리 존재의 모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언젠가 BBC에서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어 단어는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세 단어가 나왔습니다. 1위, mother, 어머니, 2위, home 집, 그리고 3위, love, 사랑입니다. “어머니, 집, 사랑”, 사실 이 말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요? 이 말은 영어를 쓰는 사람들뿐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들입니다. 이 세 단어를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집”입니다. 왜냐하면 집에 가면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가 있는 곳이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집이 가장 좋은 집일까요? 사랑이 있는 집입니다. 저는 오늘 예배를 위하여 오늘의 말씀 시편 126편과 127편을 여러번 묵상했습니다. 이 말씀속에 하나님니 기뻐하시는 가정의 모습이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랬더니 좋은 집의 특징이 오늘 말씀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은 영어 단어 love와 내용적으로 일치했습니다. 저는 말씀을 읽으며 영어 단어 love의 네 가지 의미를 말씀에 비춰 보았습니다. love의 첫 번째 l은 laugh. “웃음”입니다, 두 번째 o는 obey, “순종”입니다. 세 번째 v는 vision, “꿈”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e는 encourage, “격려”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오늘 말씀에서 말씀하신 좋은 가정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행복한 웃음이 있고 둘째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있으며, 셋째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있고 넷째 그 비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격려하는 가정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이 네 가지를 갖춘 행복한 가정, 하나님이 기뻐하는 집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은 l, laugh, “웃음”이 있는 가정입니다.
오늘 말씀 126:1-2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아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의 첫 번째는 laugh, “웃음”이 있는 가정입니다. 제 아무리 좋은 가정도 웃음이 없으면 행복한 가정이 아닙니다. love, 사랑의 첫 번째 특징은 웃음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정도 잘 웃습니까? 행복은 웃고 사는 것이고 웃어야 사랑입니다. 몇 년전 IMF로 인해 민심이 흉흉해지고 나라경제가 순식간에 불황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경제 관료 몇 사람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데 그때 마침 김영삼 대통령이 다가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모였나? 무슨 문제가 있는가?” “예, 각하, IMF 때문에 머리를 맞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그래? 그래 뭐라캣나? 내가 임프를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나?” 당황한 비서가 옆에서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각하, 임프가 아니라 IMF입니다. 국제 통화기금이라고....”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내도 안다. 그래서 내가 안 그랬나? 국제통화 너무 많이 쓰면 살림 거덜 난다고”. 어느 병원 시체실에 세 구의 시체가 새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시체들은 모두 웃고 있었습니다. 검사관이 물었다. “아니, 시체들이 왜 웃고 있는거요?” , 담당자가 말했습니다. “네, 다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시체는 십억 원 복권에 당첨되어서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도 심장마비로 죽었는 데, 자기 자식이 학교에서 일등 했다고 충격 받았답니다”. 검사관이 물었다. “세 번째 사람은?” , “예, 이 세 번째 사람은 벼락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벼락을 맞았는데 왜 웃고 있나?” , “예, 이 사람은 자기가 사진찍히는 줄 알았답니다.” 여러분은 지금 웃어야 정상입니다.
미국 보스턴 의대 마저리 실버 교수 팀이 장수의 비결에 관하여 연구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오래 사는가?” 그리고 100살 이상의 미국인들을 상대로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장수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랬더니 놀라운 것은 어떤 특별한 공통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장수한 사람들은 대부분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50년 동안 하루 두 갑 이상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100살 이상 장수하고 있었습니다.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수한 사람은 대부분 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안일 외에는 운동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사람도 102년이나 장수하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정상적인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담배피우는 사람도 장수하고 운동안한 사람도 장수하고, 도대체 장수의 이유가 무엇일까? 그러다가 중요한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장수하는 사람은 잘 웃는 사람이다”이라는 공통점입니다. “장수한 사람은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잘 웃는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장수하기 원하십니까? 잘 웃으십시오. 웃음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인 것을 믿습니까? 어떤 회사에서 고객만족도를 조사하기 위해 행복테스트를 실시했답니다. 1부터 10까지 숫자를 적어놓고 어느 지점에서 사람이 웃는지를 테스트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대부분 1-2의 지점에서 웃었습니다. 여자는 3-4의 지점에서 웃었습니다. 남자는 7~8지점에서 웃었습니다. 그레서 여자가 남자보다 10년을 더 삽니다. 잘 웃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정에서 웃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127:2절 뒷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좋은 가정은 잠이 있습니다. 잠은 평안입니다. 평안은 용납에서 옵니다. 잘 받아주고 잘 용납하면 평안해집니다. 그러면 웃습니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가족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가족이란 내가 돌아가면 언제든지 받아주는 곳이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유일하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곳이 가정입니다. 이 세상에 유일하게 서열이나 능력 때문에 차별받지 않는 곳이 가정입니다. 어느 가정이나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 있지만 잘났다고 가족들에게 더 대우받거나 못났다고 가족들에게 차별대우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족은 못난 가족, 아픈 가족, 안풀리는 가족을 더 불쌍히 여깁니다. 가정은 세상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곳, 밖에서는 모두 자기 보호, 자기 방어 때문에 무장하고 살다가 집에 오면 모든 것을 무장해제하고 자유롭게 쉽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에서 웃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정에서 웃는 가장 큰 이유가 있습니다. 126:3절, “여호아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우리가 가정에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이유는 믿음 때문입니다. 어떤 믿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어떤 큰 일? 구원의 큰 일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한 사건이 가장 큰 일입니다. 우리가 웃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구원받은 것으로 인해 기뻐합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때문에 즐거워 합니까? 그래서 웃음의 반대는 슬픔이 아니라 불신앙입니다. 우리는 슬픈 일이 있기 때문에 안 웃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웃지 않습니다. 콘라드 하이어란 사람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웃음의 반대는 슬픔이 아니라 불신앙이다. 지옥에 가면 심각한 사람이 있고 천국에 가면 웃는 사람만 있다”. 하나님 때문에 웃습니다. 구원 때문에 웃습니다. 웃어야 믿음이고 웃어야 사랑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은 O. obey, “순종이 있는 가정입니다.
두 번째 love의 o는 obey, “순종”입니다. 왜 사랑이 순종일까요? 딱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127:1을 보실까요? “여호아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아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깨어 있슴이 헛되도다”.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세우시고 지킵니다. 세운 것은 하나님이 부부를 만나게 해 가정을 이루신 것이고 지키신 것은 가정을 돌보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하나님께 우리가 잘 복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한 3년전에 미국 뉴욕에 갔다가 프린스톤을 잠시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안내하시는 목사님이 꼭 봐야 할 것이 있다고 해서 따라 갔는 데 같은 거리에 마주보는 두 집이 있었습니다. 안내자에 따르면 두 집은 약 200년 이상되었는 데 한 사람은 맥스 쥬크(M.Jukes)라는 사람의 집이고 또 하나는 요나단 에드워드 목사의 집이었습니다. 170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 두 사람은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같이 자란 동네 친구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선조가 영국에서 이민온 것도 같았고 동시대에 동일한 영향을 받고 산 것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200여년이 지난 후 전혀 다른 후손을 배출했습니다. 우선 쥬크란 사람은 모두 1292명의 후손은 두었는데 유아 때 사망한 사람이 309명, 거지가 310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부가 50명, 도둑이 60명, 살인자가 70명, 그 외 평범한 사람이 53명이었습니다. 오직 20명만이 장사를 했는데 그중에서도 10명을 감옥에서 배운 기술로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에드워드는 모두 617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대학 총장이 12명, 교수가 75명, 의사가 60명, 목회자가 100명, 군대 장교가 75명, 저술가가 80명, 변호사가 100명, 판사가 30명, 공무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1명, 미국의 부통령 1명이 었습니다. 그래서 왜 이런 차이가 낫는가 연구했더니 쥬크와 에드워드의 세 가지 차이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낫다고 밝혔습니다. 첫째 쥬크는 방탕한 무신론자였고 에드워드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쥬크부부는 서로 미워하며 살았고 에드워드 부부는 서로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셋째 쥬크는 자녀들의 교육에 관심이 없었고 에드워드는 온 힘을 다해 자녀들을 가르쳤습니다. 이 차이가 200여년이 지난 후 놀라운 차이를 가져왔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정도 하나님을 잘 믿겠습니까? 믿음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주인이라면 우리가 할 일은 그 분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가 가정에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선 하나님이 가정을 세우셨습니다. 우리 부부를 짝지워 가정을 만든 분은 하나님입니다. 창2:22절입니다. “여호아 하나님이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이 하와를 이끌어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서로 이끌어 함께 만나게 하셨습니다. (아내, 빌리 그래함, 여의도). 창2:18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이 부분을 NIV 영어성경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내가 그에게 꼭맞는 조력자를 만들리라“. 하나님이 아무나 만나게 한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꼭 맞는 사람“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과 결혼이 비슷해 보이지만 다릅니다. 사랑은 사람에게서 나오고 결혼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사랑이 결혼의 시작이기는 하지만 사랑한다고 결혼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우리가 하지만 결혼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인간의 감정이고 결혼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정서적으로 묶지만 약속은 우리를 믿음으로 묶습니다. 감정이 사라져도 약속이 남아야 결혼생활이 유지됩니다. 오늘날의 결혼이 쉽게 깨지는 것은 감정만 있고 약속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적 감정만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이 없기 때문에 가정이 깨어집니다. 감정만으로 지속되는 가정은 오래 못갑니다. 사랑은 행복을 낳고 약속은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 결혼
행복한 가정 감정 + 약속
사람(아래) 하나님(위)
행복 하나님의 뜻
그래서 독일의 본회퍼 목사가 말했습니다. “사랑은 아래에서 오고 결혼은 위에서 온다. 사랑이 결혼을 시작하지만 결혼을 끝까지 지탱하게 하는 힘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다”. 이 약속을 믿는 것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따라가는 것을 “순종”이라고 합니다. 결국 가정을 끝까지 승리하게 하는 힘은 믿음이요 순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가정은 가족 서로에 대해서도 믿고 순종합니다. 1차적 순종이 2차적 순종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믿는 가정이 건강하고 오래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믿는 가정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믿는 가정은 사랑과 함께 믿음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으나 사랑만 의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감정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식을 수 있고 변질될 수 있습니다. 그 식은 자리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을 이루는 기둥은 사랑과 믿음입니다. 그리고 사랑과 믿음의 자녀가 순종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서로 사랑합니까? 그러나 사랑을 지나치게 과신하지 않고 언제나 믿음으로 사랑을 보완합니까? 사랑이 있으나 믿음에 기초한 사랑입니까? obey, 믿음과 순종이 사랑의 가정을 이룹니다.
셋째.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은 v, vision, “비전”이 있는 가정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은 비전, 꿈이 있는 가정입니다. 127:4-5절입니다. “보라,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같으니 이것이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이 주인이신 가정은 꿈이 있습니다. 꿈은 우리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마음의 생각입니다. 우리 마음에 일단 꿈이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꿈이 우리를 인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꿈을 화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꿈이 화살과 같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화살은 반드시 앞으로 날아갑니다. 화살은 뒤로 날아가지도 않고 머물러서도 안됩니다. 가다가 머물면 화살은 땅에 떨어집니다. 화살은 과녁을 향해 나가되 쉬지 않고 나아갑니다. 이것이 화살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꿈을 가져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27편 3절입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며 또한 상급입니다. 기업은 선물이고 상급은 과제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두 가지 존재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우리 자신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사명으로서의 우리 자신입니다. 유진 피터슨이 번역한 “메시지 성경”에 시127:3절의 기업과 상급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기업=God’s best gift. (하나님의 최고 선물), 상급=God’s final reward(하나님의 최종적인 보상). 그러니까 우리는 두 존재로 삽니다. 하나는 “우리는 하나님의 최고 선물로 태어났다”. 또 하나는 “우리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보상을 위해 산다”. 선물만이 아니라 보상이 필요합니다. 선물은 공짜로 주어졌고 보상은 노력해야 얻습니다. 선물은 이미 받았고 보상은 앞으로 받을 것입니다. 선물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셨고 보상은 내가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선물은 과거에 받았고 보상은 미래에 받습니다. 선물은 은혜로 받았고 보상은 훈련으로 받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요 선물이라는 데서 옵니다. 우리의 꿈은 어디서 나옵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주실 최후 보상을 위한 사명자라는 데서 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도 꿈이 있습니까? 자녀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비전이 있습니까? 비전은 씨와 같아서 한번 떨어지면 속에서 자라고 반드시 열매맺습니다. 고등학교 때 제가 우연히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를 읽었습니다. 거기에 이런 귀절이 있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별을 따자”. 동기호테의 말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나라 인물중 “이윤재” 선생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제시대의 한글학자 이윤재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독립운동하다가 결국 감옥에 갇혀 순국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나도 커서 이윤재 선생처럼 되어야지 생각했습니다. 제 생일이 9월 28일입니다. 어느날 보니까 이 날이 연합군의 인천상륙일입니다. 그때 또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 저도 민족의 역사를 수복시키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꿈을 품고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신학교 3년간 학교 앞 2평짜리 방에서 동생들 데리고 자취했습니다. 비록 방은 작았지만 꿈은 컷습니다. 방에 이렇게 써 붙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성경적인 교회, 제자교회”. 제자교회는 제가 세우고 싶은 예수님의 교회였습니다. 한신교회는 제 마음에 품었던 비전이 이루어지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꿈을 가져도 이루지 못할 때가 있고 또 그 꿈이 잘못 사용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깨달은 말씀이 4절입니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같으니”. 왜 우리가 꿈을 가져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왜 우리 꿈은 자주 좌절되거나 변질되는 것일까? 그 꿈을 붙잡는 있는 사람이 누구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내 야망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행26:19절에 바울이 당시 유대왕 아그립바에게 심문당하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바울은 자신의 삶이 하늘에서 보여주신 것을 이루려고 달려왔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붙잡을 꿈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보여주고 하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나마 그 꿈을 내가 붙잡고 있으면 안됩니다. “장사의 수중에” 있어야 합니다. 영어 성경으로 보면 hands of a warrior입니다. 전사의 손입니다. 손도 하나가 아닙니다. 복수입니다. 전투에 나가면 백발백중이기는 전사들의 강한 손입니다. 싸움에 능한 장군들의 손입니다. 이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꿈을 가지고 있는 것도 중요하고 꿈과 스펙의 화살을 많이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꿈이 장사의 손, hands of a warrior, 전사의 손에 붙잡히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시간, 우리 자녀의 오른 손을 들어보세요. 제가 축복할 때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꿈을 주옵소서. 그리고 꿈을 가진 이 손을 붙잡아 주옵소서. 장사의 손으로 붙잡아 주옵소서. 전쟁에 능하신 만군의 여호아의 손이 저들을 붙잡아 주옵소서”. 비전을 가저야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입니다.
넷째.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은 e, encourage, “격려”가 있는 가정입니다.
네 번째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은encourage, “격려”가 있는 가정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꿈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126:5-6절을 보실까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열매는 하루 아침에 맺는 것이 아닙니다.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하고 울며 힘들게 노력해야 합니다. 127편 2절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저녁에 늦게 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공짜를 좋아하지 말고 수고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아침에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새벽 기도 며칠 했다고 응답받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을 초신자와 비교하여 “나는 누구보다 낫다” 이렇게 자만하는 사람은 절대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게리 토마스라는 영성가가 그런 말을 합니다. “자신의 믿음이 자라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자신을 늘 그리스도와 비교하라.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완전함에 표준을 두어야 믿음은 자란다. 시골에 쳐혀 있는 농부가 자신의 수준을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으리으리한 왕궁과 호화로운 궁전을 보고 나면 비로소 자신의 빈궁을 깨달을 것이다. 왕궁을 본 사람은 오두막을 견딜 수 없다. 하나님의 무한히 웅대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사람은 늘 자신의 흉하고 무가치한 모습을 보게 된다. 날마다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우리 믿음이 자란다”.
세상적 비전도 믿음의 수준도 끊임없는 노력과 눈물을 통해 자랍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격려입니다. 격려, encourage는 courage, 용기를 en,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고 말해 주는 것입니다. 격려는 그 사람안에 많은 가능성의 화살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네 안에서 많은 화살이 있어. 너는 할 수 있어. 네 안에는 남들이 갖지 않은 잠재력의 화살이 있어”. 교육은 그에게 없는 화살을 밖에서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화살을 밖으로 꺼내주는 것입니다. 교육이란 단어 educare란 헬라어로 “밖으로 꺼낸다”는 뜻입니다.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주셨습니다. 다만 있는 줄을 모르거나 꺼내는 방법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격려는 있다고 말하고 꺼내는 방법을 일러주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나 남편이나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자녀는 여호아의 기업입니다”. 아내도 남편도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어떤 분이 부모가 자녀를 교육할 때 중요한 것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녀의 길을 막지 않으면서 길이 되어 주는 것”. 자녀의 길은 하나님이 인도합니다. 우리는 자녀의 길을 막지 않으면서 길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자유가 필요합니다. 아내도 남편도 자녀도 일정한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자녀를 자녀로만>이라는 시를 썻습니다.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자녀를 자녀로만
나를 고쳐 주소서
가끔 자녀를 나의 투자의 대상으로 여기는 착각을,
나의 삶을 자녀에게서 보상받으려는 유혹을,
‘다 너를 위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했던 이기심을,
그리하여
그들이 나에게 속해 있지만
내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소서.
나로 하여금
부모로서의 권리보다는 의무로,
자녀의 성장보다 내가 먼저 성숙해짐으로
그들을 훈계하게 하소서.
그들을 이끌어 주되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으며
그들을 돕되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며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지 않게 해주소서.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으며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과소평가하지 않고
그들의 하찮은 질문과 사소한 행동방식에도
진지하게 반응하며
매사에 그들을 존중함으로
존경받는 어른이 되게 해주소서.
그리하여
‘유명한 사람’이 아닌 ‘유능한 사람’으로
‘최고의 사람’이 아닌 ‘최선의 사람’으로
‘일류의 사람’이 아닌 ‘유일한 사람’으로
우리 자녀들을
자라게 하소서.
시126:1-127:5 2014.5.11(일)
Love, 사랑의 집으로“
집으로”(영화) (사진)
love
(1) l, laugh (웃음)
(2) o, obey(순종)
(3) v, vision(꿈)
(4) e, encourage(격려)
첫째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은 l, laugh, “웃음”이 있는 가정입니다.
시126:1-2, “여호아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시127:2,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로버트 프로스트, “가족이란 내가 돌아가면 언제든지 받아주는 곳이다”.
시126:3, “여호아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콘라드 하이어, “웃음의 반대는 슬픔이 아니라 불신앙이다. 지옥에 가면 심각한 사람이 있고 천국에 가면 웃는 사람만 있다”.
둘째.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은 O. obey, “순종이 있는 가정입니다.
시127:1“여호아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아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깨어 있슴이 헛되도다”.
맥스 쥬크와 요나단 에드워드
창2:22, “여호아 하나님이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내가 그에게 꼭맞는 조력자를 만들리라)
“.
사랑 결혼
행복한 가정 감정 + 약속
사람(아래) 하나님(위)
행복 하나님의 뜻
본회퍼, “사랑은 아래에서 오고 결혼은 위에서 온다. 사랑이 결혼을 시작하지만 결혼을 끝까지 지탱하게 하는 힘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다”.
셋째.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은 v, vision, “비전”이 있는 가정입니다.
시127:4-5, “보라,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같으니 이것이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이 있도다”.
시127:3, “보라. 자식들은 여호아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기업=God’s best gift. (하나님의 최고 선물)
상급=God’s final reward(하나님의 최종적인 보상).
시127: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같으니”.
행26: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장사의 수중에”= in the hands of a warrior
넷째.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은 e, encourage, “격려”가 있는 가정입니다.
시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게리 토마스, “자신의 믿음이 자라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자신을 늘 그리스도와 비교하라.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완전함에 표준을 두어야 믿음은 자란다. 시골에 쳐혀 있는 농부가 자신의 수준을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으리으리한 왕궁과 호화로운 궁전을 보고 나면 비로소 자신의 빈궁을 깨달을 것이다. 왕궁을 본 사람은 오두막을 견딜 수 없다. 하나님의 무한히 웅대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사람은 늘 자신의 흉하고 무가치한 모습을 보게 된다. 날마다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우리 믿음이 자란다”.
자녀를 자녀로만
나를 고쳐 주소서
가끔 자녀를 나의 투자의 대상으로 여기는 착각을,
나의 삶을 자녀에게서 보상받으려는 유혹을,
‘다 너를 위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했던 이기심을,
그리하여
그들이 나에게 속해 있지만
내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소서.
나로 하여금
부모로서의 권리보다는 의무로,
자녀의 성장보다 내가 먼저 성숙해짐으로
그들을 훈계하게 하소서.
그들을 이끌어 주되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으며
그들을 돕되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며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지 않게 해주소서.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으며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과소평가하지 않고
그들의 하찮은 질문과 사소한 행동방식에도
진지하게 반응하며
매사에 그들을 존중함으로
존경받는 어른이 되게 해주소서.
그리하여
‘유명한 사람’이 아닌 ‘유능한 사람’으로
‘최고의 사람’이 아닌 ‘최선의 사람’으로
‘일류의 사람’이 아닌 ‘유일한 사람’으로
우리 자녀들을
자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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