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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on(12) (요일2:20-29) 성령의 기름부음이 필요합니다 2014.10.26일)

Re-vision(12) (요일2:20-29) 2014.10.26)

성령의 기름부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것은 우리는 자주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중에 정호승이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그가 쓴 넘어짐에 대하여이란 시에 이런 귀절이 있습니다.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할 때만 꼭 넘어진다. 오히려 넘어지고 있으면 넘어지지 않는다. ........ 아직도 넘어질 일과 일어설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나를 넘어뜨리고 넘어뜨리기 위해 다시 일으켜 세운다 할지라도”.

 

넘어지는 것은 세대 차이가 없습니다. 누구나 넘어집니다. 10대는 시험과 경쟁과 대학때문에 넘어집니다. 사실 10대가 싸우는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내가 누구냐? 자기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이 싸움 때문에 10대는 힘듭니다. 그래도 더 힘든 것은 20-30대일 것입니다. 이 시대에 직면한 문제가 인생의 가장 힘든 문제들입니다. 사랑, 결혼, 직장, 단어만 들어도 무겁습니다. 김남도의 책 제목이 이 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 줍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40대는 어떨까요? 어떤 분이 한국에서 40대로 사는 것은 사망진단서를 받고 사는 시한부 인생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OECD국가중 우리 나라 40대 자살율이 가장 높습니다. 제시간에 퇴근 한 번 못해 보고 일만 하다가 하고 죽습니다. 그래서 나온 책이 이의수의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입니다.

 

50-60대는 어떨까요? 서울대 송호근 교수의 책 제목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너무 아파서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한참 일한만한 인생의 황금기에 직장을 그만 둬야 합니다. 아직도 자식들은 키워야 하는 데 몸은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서 울고 싶어도 소리내서 울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50-60대입니다. 그 중에서 여성은 어떨까요? 여성은 더 아픕니다. 의사인 유은정 박사가 쓴 책이 이렇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아프다>. 10대에서 40, 50, 맨 아프다는 사람뿐입니다.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프고, 그래서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아프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쓰러지고 넘어진다면, 우리는 두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넘어질 때 잘 넘어지는 법과 넘어져도 일어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차피 넘어지는 것이 인생이라면 잘 일어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항상 기뻐하라했지만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라했지만 우리가 24시간, 365일 기도할 수 있습니까? “여호아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라했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성경만 읽을 수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지금 100일 말씀대행진 기간인데 여러분은 계속 성경을 읽으시나요? 교회가 정한 순서에 따라 오늘도 성경을 읽으셨나요? 어떤 분은 깜빡 해서 못하고, 어떤 분은 지루해서 못하고, 어떤 분은 바빠서 못하시지 않았나요? 한 해동안 교회에서 봉사하시는 여러분, 어떻습니까? 처음과 달리 요즘 나사가 조금 풀리지 않았습니까? 장로, 권사, 안수집사로 임직받은 분들, 임직받은지 몇 달도 되지 않았는 데 벌써 게을러지지 않았나요? 어떻게 할까요?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런 대책이 성경에 있나요?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대책이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우리에게 생소하기도 하고 오해가 되는 주제입니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합니다. 성령의 임재, 성령충만, 이런 말은 자주 듣지만 성령의 기름부음이란 말은 많이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생소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 말은 병든 사람을 치유할 때나 쓰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병든 사람 치유할 때만 쓰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 전반에 걸쳐 우리를 회복시키는 성령의 지속적인 사역을 말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 20절을 보시겠습니까? 요일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시느니라”. 27절입니다.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여기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두 번 나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우리가 어떻게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기도하다가 자동차의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여기에 자동차가 있습니다. 이 자동차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열쇠와 기름입니다. 열쇠는 자동차를 스타트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키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이 여러분에게 믿음의 열쇠를 주신 것을 아십니까? 16:18절입니다.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네가 매면 매일 것이요 네가 풀면 풀리리라”.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열쇠는 믿음의 열쇠입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때 이 열쇠를 주셨습니다. 믿음의 열쇠는 우리 신앙의 자동차가 출발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그러나 열쇠가 있다고 차가 계속 가지 않습니다.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기름은 자동차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가끔 길에서 자동차에 기름이 없어 깜빡 깜빡 하는 것을 봅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딱 하나입니다. 주유소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데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스타트하기 위해 키가 필요하고 계속적으로 달리기 위해 기름이 필요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이 두 가지가 다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미 믿음의 길을 출발했습니다. 열쇠 때문입니다. 일단 출발했으면 그때부터 문제가 되는 것은 기름입니다. 왜 지속적으로 기도가 안될까요? 기름의 문제입니다. 왜 성경읽기가 시들할까요? 기름의 문제입니다. 왜 봉사가 기쁘지 않을까요? 기름의 문제입니다. 왜 사업 때문에 낙심이 될까요? 기름의 문제입니다. 왜 인생이 쉽게 지치고 피곤할까요? 기름의 문제입니다. 어떻습니까?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여러분의 삶과 신앙에 성령의 기름으로 가득 채우시지 않겠습니까?

성령님이 우리안에 계십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신 첫 번째는 성령의 기름 부음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27절 볼까요?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다같이 너희안에 거하나니”. 성경 최고의 진리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진리도 좋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진리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 과거의 일이라면 성령님이 우리안에 계시는 일은 현재 일입니다. 하늘 위에 계신 초월적인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우리 곁에 오셨다가, 우리 안에 영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과 신앙은 우리안에 성령님이 계신 것을 믿느냐 안 믿느냐로 결정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안에 성령님이 계심을 믿습니까? 성령님은 어머니의 영입니다. 어머니가 자식과 늘 함께 있듯이 성령님도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리고 17절이 중요합니다. 14:17, “그가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슴이라”. 예수님과 성령님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계셨지만 그들속에 있지 못했습니다. 몸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계실 뿐 아니라 우리안에 계십니다.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이 하시는 가장 큰 일은 무엇입니까? 8:11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안에 거하시면 너희안에 거하시는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라“. 살리는 일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안에서 우리를 살려내는 일을 하십니다. 살리기 위해 성령님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성령님 우리안에서 우리를 살려내기 위해 기도합니다.

 

8:26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라”.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문제를 아십니다. 아픔을 아십니다. 내가 아는 것보다 나를 더 많이 아십니다. 그러나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일으켜 세웁니다. 여기서 돕는다는 말은 순안티람바노마이”, “함께 일으켜 세운다는 뜻입니다. 같이 울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으켜 세운다는 것입니다.

 

제 고향 교회 집사님 한 분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언젠가 교회에서 들었던 간증이 생각납니다. 그가 어느날 전쟁중에 총에 맞았답니다. 그래서 죽나보다 했는데 한 친구가 총탄을 뚫고 비호처럼 달려와 그를 살렸습니다. 그를 들춰 안전한 곳으로 옮겨 지혈을 하고 심호흡을 해서 살려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동료가 말하기를 그 친구가 너를 구하러 갈때 바로 가지 않고 시계를 몇 번 쳐다보면서 달려갔다고 말했습니다. 궁금해서 몇 달 후에 물었습니다. “내가 총에 맞고 죽어갈 때 네가 달려왔는 데 그때 시계를 보고 달려왔다는 말이 무엇이냐? 왜 시계를 봤니?” 했더니 친구가 말했답니다. “사실은 우리 어머니때문이야. 어머니가 내가 베트남 떠날 때 말하기를 내가 매일 12시가 되면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하나님이 네 생명을 지켜주도록 기도하겠다. 말씀하셨지. 그런데 네가 총에 맞고 쓰러져 죽어갈 때 내가 구하러 가야 하는 데 워낙 총알이 비오듯이 쏟아져서 자신이 없는거야. 그때 문득 시계를 보니 정확하게 12시였어. ”, 우리 어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니까 담대해져서 나도 모르게 달려갔지. 그래서 우리가 살았어”. 능력의 비결은 기도였습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얼마나 큰 능력입니까? 혹시 여러분의 부모님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최고의 감사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성령님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어머니는 돌아가시면 기도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이신 성령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저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 능력으로 여러분이 회복되고 힘을 얻는 것을 아십니까? 성령님은 우리안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일은 그것뿐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20절 다시 보시겠습니까? 요일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시느니라”. 여기에 모든 것을 아시느니라했습니다. 27절입니다.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여기에 모든 것을 가르치며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안에 계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일하십니다. 그 일은 이 성령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이 성령을 대신하여 기름부음이란 말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성령이 그 일을 한다 하면 될 것을 왜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안다.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한다”. 이렇게 말할까? 성령님을 기름으로 상징한 것입니다. 우선 성령과 기름이란 말의 어근이 히브리어로 같습니다. 기름을 히브리어오 네샤마라 합니다. 그런데 이 글자를 반대로 두집으면 그 다음 성령의 기능이 기름의 기능을 닮았습니다. 여기서 기름은 올리브 기름인데 올리브 기름은 부드럽습니다. 매끌 매끌합니다. 식용으로 쓰이고 화장품으로 쓰이고 치료제로도 쓰입니다. 만능입니다. 무엇보다 기름은 한번만 쓰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성전에서 성소 등불을 밝힐 때 제사장은 매일 밤 올리브를 찌어 순결한 기름으로 등불을 밝혀야 했습니다. 하루에 한번씩 매일 불을 붙여야 합니다. 먹는 것도 매일 먹고 불밝히는 것도 매일 합니다. 지속성입니다. 계속 먹어야 음식이 되고 계속 부어야 불이 켜집니다. 그렇게 해서 기름을 밝히면 두 가지가 나타납니다. 열과 빛입니다. 열은 보이지 않게 우리 속에서 에너지가 되고 빛은 우리 눈밖에서 세상을 비칩니다. 여러분은 성령이 이렇게 부어 진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 시간 그 성령이 올리브 기름처럼 여러분에게 부어지기를 바랍니까? 성령은 세 가지 영역에서 우리에게 기름붓습니다. 성경을 보면 성령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 영역에서 기름 부어집니다.

 

1) 우리의 영적 생활에 기름붓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영적 활동은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가능합니다. 가령 기도합니다. 그냥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기도에 기름부음이 필요합니다. 8장에 천사가 하늘나라에서 기도의 금향로를 가지고 하나님께 올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유향은 기름입니다. 과거 성전 향단에 기름을 부어 불살라 드렸던 것을 상기시킵니다. 기도는 향입니다. 기름을 살라 드리는 향입니다. 그것이 대접에 차고 넘칠 때 땅에서 응답이 이루어집니다. 기도는 기름을 붓는 것입니다. 조금 붓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 붓는 것입니다. 기도는 질이 아니고 양입니다. 가장 좋은 기도는 수준높은 기도가 아니라 많이 드리는 기도입니다. 왜 우리의 기도가 진부하고 답답하고 힘듭니까? 성령의 기름 부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왜 우리의 예배가 드라이하고 힘이 없고 감동이 없습니까? 성령의 기름 부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공 크리스쳔이 길을 가다가 Beautiful house 라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한 해석자가 나와서 그를 안내합니다. 한 방에 들어 갔더니 벽난로가 있는 데 난로가 아주 활발하게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난로에 물을 붓습니다. 한번만 붓는 것이 아니라 계속 붓습니다. 그런데 물을 부어도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이상하다. 물을 붓는 데 왜 불이 꺼지지 않지?” 하는 데 해석자가 데리고 옆방으로 갑니다. 옆방으로 가보니까 누가 난로로 들어가는 파이프에 기름을 붓습니다. 기름을 붓자 기름은 파이프를 통해 옆방에 있는 난로로 뚝뚝 떨어집니다. 크리스쳔이 물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해석자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세력은 사단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기도와 열심의 불을 끄려고 끊임없이 방해의 물을 붓고 있습니다. 그래도 꺼지지 않는 이유는 성령님이 기름을 붓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기름이 우리에게 계속 부어지는 한 우리 믿음의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유지되는 것은 사단의 방해와 유혹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사람들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기름부음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그랬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싸워 이겼지만 이세벨이 그를 잡으려 오자 그만 무서워 광야로 도망갑니다. 로뎀나무에 다리를 쭉 뻣고 하나님, 이제 족하오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탄식했습니다. 그에게는 더 이상 기도할 힘도 하나님을 의지할 여력도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어떻게 했습니까? 천사를 보냈습니다. 떡과 물을 공급했습니다. 그리고 어루만졌습니다. 두 번이나 그렇게 했습니다. 왕상19:5,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7절입니다. 왕상19:7, “여호아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를 멈출 때도, 우리가 탈진하여 더 이상 기도할 힘을 잃을 때도, 우리 곁에 다가와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말씀하시는 분임을 아십니까? 성령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기름부어 우리를 회복시킵니다.

 

다윗을 아십니까? 디윗이 밧세바에게 범죄했습니다. 나단이 그에게 와서 회개를 촉구했을 때 그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51:11-12, “하나님이여, 나를 주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다윗이 정말 두려웠던 것은 그가 죄를 지었다는 사실보다 그에게서 성령이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이 사라지면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주 떠나 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다윗은 성령님이 자기를 죄에서 회복시키는 분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죄를 지어도 성령님은 우리를 회복시킵니다. 결국 다윗은 회복되었습니다. 제가 요즘 새벽마다 기도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주여,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옵소서. 제 기도에 기름 부어 주옵소서. 제 설교에 기름부어주옵소서. 우리의 예배에 기름부어 주옵소서. 우리의 찬양에 기름 부어 주옵소서. 우리가 성경읽을 때 기름 부어 주소서”. 성령님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 기름 붓습니다.

 

2) 우리의 일상생활에 기름 붓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기름붓는 것은 영적 생활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기름을 붓습니다. 구약의 엘리야와 엘리사를 보면 재미있습니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관계입니다. 두 사람은 똑같이 성령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에게는 주로 영적인 일로 성령이 임했고, 엘리사는 주로 일상의 일로 성령이 임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는 왕상17장에서 왕하13장까지 무려 19장이나 나타납니다. 그 중에서 엘리야가 7, 엘리사가 12장입니다. 엘리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모두 10개 나오는 데 모두 일상의 일들입니다. 왕하4, 과부의 기름병, 가난해서 기름병이 말랐습니다. 4, 수넴여인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5, 아람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등병 걸렸습니다. 8, 또 수넴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모두 일상적인 일들입니다. 우리가 매일 겪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이 모든 문제를 풀어냅니다. 능력의 비결이 무엇일까? 성령의 기름부음입니다. 엘리사가 풀어낸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올라가면 왕하2:9와 만납니다. 승천하는 엘리야에게 엘리사가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엘리사는 그때 성령을 갑절이나 받았고 모든 문제를 그 능력으로 풉니다.

 

그 중 왕하4장에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엘리사 시대의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중 빚을 못 갚아 아들을 빼앗길 뻔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엘리사에게 호소하자 집에 있는 모든 그릇을 다 가져다 놓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아들들과 함께 그룻에 기름을 부으라고 합니다. 기름을 붓자 그릇이 찼습니다. 다른 그릇을 가져와 부으라고 했더니 또 찹니다. 또 그릇을 가져와 부으라고 했더니 아들이 말합니다. “다른 그릇이 없습니다”. 그때 기름이 그쳤습니다. 여기에 기름은 물론 올리브 기름입니다. 이스라엘의 올리브 기름은 우리의 쌀과 같이 먹기도 하고 팔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기름은 동시에 성령을 의미합니다. 성령을 의미하는 기름과 생계로서의 기름이 함께 만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은 우리의 영적 생활만 관여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은혜와 함께 물질의 은혜를, 사업의 성공을, 학업의 능력을, 세상에서의 축복을 안겨주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기도하게 하신 성령님은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꼭 기억하실 말씀 하나 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23:5절입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윗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기름 부으셔서 내 잔이 넘친다”. 기름은 영적인 것입니다. 잔은 세상적인 것입니다. “기름을 부으면 잔이 넘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삶을 살게 하시는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축복가운데 살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18:50절도 중요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부음 받은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영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기름부음 받으면 세상에서도 잘됩니다. 성령안에서 영과 물질이 하나입니다. 문제는 성령님이 아니라 우리의 그릇입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축복을 담을 그릇만 있다면 성령의 축복은 무한리필 됩니다. 왕하4:6,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그릇이 없으면 담을 축복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가난하고 곤궁한 것은 성령님의 공급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릇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축복을 담을 그릇만 있으면 축복은 무한대로 공급됩니다. 미국 오클라호마의 털사라는 도시에 가면 오럴 로버츠목사님이 설립한 오럴 로버츠 대학이 있습니다. 가기에 가면 학교 정문앞에 기도의 손이 세워져 있습니다. 높이가 약 20미터, 무게는 30톤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도의 손 동상입니다. 기도를 강조하는 학교답게 보는 이를 압도하면서 기도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거기에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어떤 문제보다도 더 크다.” (God is greater than any other problems).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성령의 능력은 우리의 일상의 어떤 문제보다 크다고 믿습니까? 그 분의 공급은 우리가 받을 그릇만 있으면 얼마든지 공급된다는 것을 믿습니까? 공부하는 학생 여러분, 자녀를 가르치는 부모 여러분, 사업하시는 성도 여러분, 구하십시오. “주여, 나에게도 성령을 갑절이나 주사 엘리사처럼 이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3) 우리의 사역과 봉사에 기름붓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한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사역과 봉사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교회에서 하는 봉사와 사역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습니까? 만일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의 능력으로 해야 합니다. 벧전4:11입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이 성령의 기름부음입니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어떤 사람에게 기름부을 때는 반드시 그가 하나님의일을 시작할 때입니다. 제사장에게 기름붓습니다. 제사장의 일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선지자에게 기름붓습니다. 선지자의 사역을 잘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왕에게 기름붓습니다. 왕의 사명을 잘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당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모든 봉사자, 사역자는 성령의 기름부음받아야 합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인격의 차이가 아닙니다. 능력의 차이가 아닙니다. 기름부음의 차이입니다. 사울은 한번 기름부음받고 다윗은 세 번 기름부음 받았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도행전 2장에서 4장을 보면 베드로는 세 번 성령충만을 받고 다른 사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는 분들이 더 많이 성령을 사모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처음 믿는 신자보다 집사가 나은 이유는 직분때문이 아니라 더 많이 성령을 의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집사보다 장로님들이 더 나은 것도 직분때문이 아니라 더 많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사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직분이 크지만 하나님에게는 성령의 능력이 더 큽니다.

 

찬양대 여러분, 성령의 기름부음을 더 많이 사모하십시오. 찬양대가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으면 예배를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배를 망칠 수 있습니다. 찬양팀 여러분, 여러분의 찬양에 성령의 감동이 있기 위해 찬양을 준비하는 시간보다 기도하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합니다. 다윗이 수금을 타면서 노래할 때 사울 왕을 괴롭히던 악신이 떠났습니다. 찬양에는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안내위원 여러분, 주차 봉사위원 여러분, 새가족위원 여러분, 전도대 여러분, 사회봉사팀 여러분, 장로님 여러분, 신도회 회장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역을 위하여 기도합니까? 인간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합니까? 시편을 읽다가 92:10절에 제 눈이 멈췄습니다.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

 

자주 넘어지고 상처받는 우리들, 우리가 넘어져도 반드시 한 가지만 기억하면 승리합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이 우리를 일으키십니다. 우리 평생 성령의 기름부음이 계속되도록 기도합시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 나에게 매일 신선한 기름을 부으사 내 뿔로 들소의 뿔같이 되게 하소서“. 아멘.

 

 

 

 

Re-vision(12) (요일2:20-29) 2014.10.26)

성령의 기름부음이 필요합니다

정호승,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할 때만 꼭 넘어진다. 오히려 넘어지고 있으면 넘어지지 않는다. ........ 아직도 넘어질 일과 일어설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나를 넘어뜨리고 넘어뜨리기 위해 다시 일으켜 세운다 할지라도”.

 

김남도,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의수,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송호근,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유은정, <그래서 여자는 아프다>.

 

우리는 두 가지를 배워야 한다. 넘어질 때 잘 넘어지는 법과 넘어져도 일어나는 법이다.

 

요일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시느니라”.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열쇠와 기름이다.

 

16:18,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네가 매면 매일 것이요 네가 풀면 풀리리라”.

성령님이 우리안에 계십니다.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4:17, “그가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슴이라”.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안에 거하시면 너희안에 거하시는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라“.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라”.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요일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시느니라”.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1) 우리의 영적 생활에 기름붓습니다.

왕상19:5,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왕상19:7, “여호아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51:11, “하나님이여, 나를 주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2) 우리의 일상생활에 기름 붓습니다.

왕하2:9,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23:5, “원수의 목전에서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18:50,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부음 받은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영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왕하4:6,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하나님은 당신의 어떤 문제보다도 더 크다.” (God is greater than any other problems).

 

3) 우리의 사역과 봉사에 기름붓습니다.

벧전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92:10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